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루비가 어둠 속을 걸어 나오며 상황을 파악했다.
“르테오는?”
“죽은 모양이야.”
“…그래, 그렇구나.”
그녀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분노가 들끓었지만, 상대에 대해 경시는 하지 않았다.
‘강해….’
칭은 이제껏 만난 상대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자다.
그녀의 낙원 루비토리엄을 침범해 온 인간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이러한 강자에 속했었다.
‘빌과 모리는… 위험해.’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는 그녀.
…결단을 내렸다.
“모두 물러나서 주변을 막아줘. 휘말릴 수 있으니까.”
빌과 모리 모두 그녀의 판단을 존중했다.
“그리하죠.”
“죽지 마, 오늘 딴 돈 다 써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사라지는 빌과 모리를 미소로 배웅하고는 내면의 분노에 서서히 귀 기울였다.
“꽤 담담하군. 죽은 놈과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나 보지?”
“가까워질 사이였어, 아마도. 그런데 너….”
루비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꼭 가까웠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다?”
“크큭… 맞아. 소중한 사이였으면 했지.”
이 녀석은 생존이 아닌 재미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녀석이다. 쾌락에 집어삼켜진 멍청이.
이미 그 얼굴에 웃음을 가득 베어 물고는 그녀를 어떻게 요리할지만 잔뜩 생각하고 있다.
섬뜩-
위험한 상대다.
– 아무도 죽게 하지 마라.
그녀의 주인인 파우스트가 무리의 대장인 빌에게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도망칠까?’
빌과 모리는 이미 멀어질 만큼 멀어졌고, 칭은 자신들이 누군지 모른다.
맞붙는 건 위험할지라도 도망치는 것 정도는 쉽게 가능할 것 같은데….
“도망칠 생각이냐?”
“…….”
“하긴, 늙은이랑 놀아줄 생각이 쉽게 들지 않겠지. 그럼 이건 어떠냐?”
스으윽…
품에서 둘둘 말린 양피지를 꺼내는 칭.
“얼마 전에 받은 전서다. 교의 정보를 원한다면….”
그녀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입 밖으로 의문을 즉각적으로 내뱉고 만 것.
“…교?”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상대에게 걸려들었다.
“교를 모른다고? 하… 너희, 동방과는 관련이 없는 거군. 이거야 원… 어디서 쭉정이들이 걸려들어서는…. 어디냐? 설마 체첼린에서 내게 죽은 그 얼간이들 때문이냐?”
“…….”
“대답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냥 죽어라.”
파아아앙-!
근육으로 가득한 몸이 루비 앞으로 쏘아졌다. 오른손으로는 손바닥을 뻗으며, 왼손으로는 모리를 붙잡았던 예의 그 기술을 준비하는 칭.
파아아악-!
루비는 불길한 기운이 번뜩이는 손바닥을 발로 후려 차고는 손을 변형했다.
우드드득…
그리고 칭의 목을 움켜쥐기 위해 움직였지만…
덥썩-
“잡았다.”
으드드드드득-!
“으아아아악!”
팔 전체의 뼈가 부스러지는 느낌에 칭을 발로 차 거리를 벌리는 루비.
“생각보다 물렁물렁하잖아? 왜 그래, 좀 더 즐겁게 해달라고.”
휘오오오…
몸 안에 숨겨진 야성의 힘이, 조각난 뼈들을 순식간에 맞췄다.
트롤을 웃도는 재생력.
“신기하군. 완전히 박살 난 줄 알았는데.”
후우웅…
[루비의 기본 능력: 내면의 야수가 발동합니다.] [루비는 신체 일부를 늑대인간의 형태로 변형할 수 있습니다. 만월이 떠올랐을 때 효과가 최대로 증가합니다.] [루비의 기본 능력: 육탄병기가 발동합니다.] [루비는 내면의 야수 형태일 때 무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루비가 공격에 성공할 때마다 내면의 야수 지속 시간이 늘어나며 처치에 성공하면 내면의 야수 지속 시간이 대폭 늘어납니다.]양팔과 양다리를 늑대인간의 그것으로 변형시킨 루비. 그녀에게는 천만다행인 것이, 동그란 달이 밤하늘에 떠 있었다.
‘오늘 밤은 만월이야.’
급작스러운 변형은, 몸에 무리를 낳는다. 또한 준비 없이 만월에게 몸을 내맡겼다간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리니 시간을 끌 수밖에.
파아아앙-!
루비와 칭이 순식간에 얽혀들었다.
파아앙-!
파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공방을 겨루는 둘.
하지만, 자세히 보면 루비의 공격 대부분이 칭의 양손에 붙잡혀 쳐내어졌다.
수십 년을 수련한 고수.
문화도 사상도 다른 동방의 무인들이 아슬렌 제국까지 스며들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들이 가진 무력 때문이었다.
파아아악-!
이내, 그녀의 한쪽 다리가 붙잡혔다.
후우웅-!
그대로 온 힘을 다해 패대기치는 칭.
콰아아앙-!
루비는 나가떨어져 움찔거렸다.
“시시하군.”
“…….”
“어쩌면 내가 네년의 일족을 오늘 이 자리에서 멸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아니지? 오늘 네가 마지막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른 동족들도 같이 저승으로 보내주마, 으하하하하하하!”
루비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우뚝 섰다.
– 꼭… 살아남아야 한다.
– 너만큼은 살아야 해….
– 우리 몫까지… 내일을 살아가 줘.
잠시 숨겨두었던, 그녀의 잊고 싶던 기억들을 칭의 그 한마디가 불러왔다.
“…즐거워?”
“즐겁고말고! 너도 즐겼으면 한다. 다가올 네 죽음을.”
루비가 히죽 웃었다.
“그래, 나도 즐겨야지.”
으득…
으드드드득…
시간이 되었다.
그녀의 몸이 완전한 늑대인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드득…
으득…
“오오….”
루비는 그녀의 이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으드드득…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머리는 몇 배나 거대해졌다.
그르르르륵…
[루비가 만월의 짐승을 사용합니다.] [만월의 짐승 상태에서는 모든 신체 능력이 대폭 증가합니다.]옷은 전부 찢어지고 짐승의 털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르륵…
몸을 살짝 웅크린 상태의 루비. 칭은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다.
“이제야 마음에 드는….”
피이이이이잉-!
칭이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굳었다.
울컥…
오른쪽 귓가에서 피가 흘렀다.
사라진 오른쪽 귀는 루비의 손에 들려 있다.
“…허.”
파팍-!
관자놀이 쪽을 몇 번 두들기자, 칭의 피가 멎었다.
“이제야 해볼 마음이 든 거냐?”
말은 태연하게 내뱉었지만, 칭은 방금 그 일격을 한순간 시야에서 놓쳤다.
심장의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강적을 만났다는 것에 그저 기뻐한다.
그는 이미 괴물이다.
[칭이 혈류 폭발을 사용합니다.] [체내의 기를 운반하는 혈액이 빠른 속도로 움직여 짧은 시간 경지가 상승합니다.]오랫동안 지속하기는 어려운 능력.
단기 결전에 특화된 칭만의 힘이다.
불룩… 불룩…
그의 얼굴에 혈관이 울룩불룩 불거져 나왔다.
“자, 해보자고!”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격돌하는 두 괴물.
뻐어어엉-!
뻐어어어어엉-!
칭의 주먹이 루비를 후려칠 때마다 마치 그 부위의 공간이 지워지는 것처럼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다.
루비가 본능적으로 그 파동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살짝씩 닿을 때마다 그 부위의 살점이 짓뭉개져 사라졌다.
그르르르르…
“개를 훈련하는 것 정도는 쉬운 편이지!”
후우우웅…
빠아아아악-!
그의 주먹이 마치 망치처럼 루비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후려쳤다.
으지지직…
두개골이 부서질 듯한 충격을 받은 루비.
크아아악!
본능적으로 파고들어 칭의 어깨를 물었다.
“그야말로 짐승이구나! 클클….”
칭은 이 짐승이 울음을 토해내게 만들고 싶었다.
그 울음이 사람의 절망인지, 짐승의 포효인지가 궁금했기에.
팍-!
루비 목의 울대를 후려치고는 다시 자세를 취하는 칭.
루비도 몇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금 칭에게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멀어질수록 칭과의 싸움은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파아악-!
파아아아악-!
칭은 이마저도 그리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가 보기에 루비는 장수의 몸을 타고 난 갓난아기처럼 보였기에.
가진 힘은 넘치는데, 쓸 줄을 몰랐다. 궤적은 훤히 보이고, 의도 또한 읽혔다.
정답을 알고 푸는 문제 같은 싸움.
다시금 그러한 공방이 이어졌다.
파아앙-!
파아아앙-!
쉽게 잡아채고, 넘긴다.
‘자, 여기가 비었구나!’
전력을 다해, 손바닥에 힘을 실어 루비의 복부를 조준했다.
“뒈져라, 짐승 새끼야.”
그렇게 말하고는 루비와 시선이 교차했다.
‘…어라?’
루비의 눈에 맺힌 것은, 본능과 절망이 아닌 한 줄기 이성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휘릭-!
루비의 손이 내뻗은 칭의 팔을 얽혀 들어갔다. 마치 뱀처럼.
그래, 일전에 루비를 잡아챘던 칭 그 몸짓처럼.
“설마 네 녀석….”
칭의 무술이었지만, 몸은 늑대인간의 것. 당연히 파괴력 또한 달랐다.
푸화아아아악-!
팔이 뽑혀 나오며 피 분수가 일고.
“죽는 건….”
루비가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칭의 발목을 낚아채 그대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찍었다.
“너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흙먼지가 가라앉자, 어깨 위로 모든 게 사라진 칭의 시체가 남아있었다.
“허억… 허억….”
늑대인간이라는 이름이 악명을 떨친 이유는 그 타고난 강철의 신체도 있었지만, 천부적인 전투 지능 때문이다.
늑대인간을 완벽하게 죽일 수 없다면, 도리어 완벽하게 살해당한다.
이제는 전설처럼 남겨진 일화일 뿐이지만, 칭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전설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스르륵…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알몸이 되어가는 루비.
펄럭-!
걸칠 만한 커다란 로브가 그녀에게 주어졌다.
“루비, 이곳을 벗어납니다! 소란이 너무 컸어요.”
빌의 목소리다.
“…응!”
루비가 칭의 시체는 내버려 둔 채 쪽지가 진품인지 확인하고는 자리를 떴다.
빌과 모리, 그리고 루비가 한데 모여 쪽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 칭, 슬슬 합류해라. 롬웰이 네 꼬리를 밟는 모양이다. 자리엘 남작도 슬슬 네 뒤치다꺼리에 신물이 난 모양이고. 일주일 내로 교의 본단에서 사자님이 방문하실 예정이니….
“…교?”
“칭이 말했어. 교… 아무튼 교의 정보를 원하냐고.”
“알 수가 없는 내용이군요… 흐음.”
“뒷배는 자리엘 남작이었군. 무슨 꿍꿍이지?”
쪽지를 계속해서 읽어나가는 일행. 이후의 내용은 합류하는 날짜와 합류하는 위치 정도만이 전부였을 뿐, 별다를 게 없었다.
“일단 파우스트 님께 알려야겠군.”
쪽지의 내용을 담은 서찰을 흑요정 여왕 아리엘이 훈련한 새에 매달아 파우스트 편으로 보내고 며칠 뒤, 답장이 그들에게 전해졌다.
답장을 읽은 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내용인데?”
모리의 질문에 빌이 대꾸했다.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
* * *
빌이 전해온 정보는 즉각적으로 해석되었다.
“칭을 사냥했다고? 루비가?”
운이 좋았다.
아니, 운이 너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칭은 에피소드 2막의 보스 중 하나다.
칼 쿠르소보다 개인의 무력은 약하지만 불쾌한 3인조 셋이 힘을 합쳤을 때는 그보다 강하다.
루비는 그런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녀는 더 강할지도 모른다.
‘아냐, 그래도 순전히 운이 좋았다.’
상성이 먹혀들지 않았다면, 시체가 되는 건 칭이 아닌 루비였을 것이다.
첩보 활동의 인원을 너무 공격적으로 휘두른 내 탓이 크다. 그래도 이 모든 게 잘 풀렸으니 해피 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빌이 전해온 쪽지의 내용 중 교에 대한 부분. 불쾌한 3인조의 출신지를 떠올려 낸 후엔 사태를 정확히 이해했다.
“혈교(血敎)로군.”
불쾌한 3인조를 퇴치한 후 한참 뒤에나 풀리는 혈교의 정보. 에피소드 2막에서는 그저 패악질을 벌이는 동방 무인들을 상대할 뿐이건만….
아무래도 스토리상 더 뒤에 나오는 혈교가 예정보다도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째서? 라고 한다면….
역시나 그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망할 베스 교.”
다가오는 운명은, 베스 교를 도와 그림할 남작을 제거한 그날 밤 뒤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