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53
제53화
칭의 사망 이후, 일주일이 지난 후, 도박의 도시 멘카니.
이곳엔 카트라니의 수익으로 거대한 공동묘지가 운영되고 있는데, 그 탄생 비화가 꽤나 우습다.
멘카니에는 노름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인원이 매해 늘어만 갔는데, 영주는 이에 대해 골머리를 앓다 도박장 카트라니에게 책임을 물은 것.
카트라니는 감히 영주에게 대항할 수 없었으니 수익 일부를 환원하여 매해 멘카니에서 목숨을 끊는 신원불명의 사망자들을 공공묘지에 안치하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도박장의 수익으로 운영되는 이 공동묘지는 멘카니의 화려함에 감춰진 흉터나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공동묘지 자체가 도박장 카트라니의 소유이다 보니 이곳의 묘지기들 역시 카트라니 소속이다.
“이보시게.”
“응?”
이전 묘지기와 교대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묘지기 휘렌이 공동묘지에 방문한 자를 살폈다.
죽립을 쓰고 목에는 염주, 치렁치렁한 가사(袈裟)까지.
‘동방 놈이구만.’
매해 있는 행사다.
공동묘지에 받지 못할 빚을 받으러 오는 자들이.
보통 이곳에 묻힌 자들은 살아생전 많은 죄를 지었는데, 그중 하나가 돈 떼먹기다. 망자들은 출신 성분 가리지 않고 이곳에 묻혀 있으니, 동방에서 떼먹힌 빚을 받으러 이 먼 멘카니까지 방문하는 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돈 받으러 왔수?”
“애도하러 왔네.”
“뭐, 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누구를 찾아왔나?”
그러자 죽립을 쓴 사내가 조금 꺼림칙한 얘기를 꺼냈다.
“한 일주일 전쯤, 이곳에 동방인으로 보이는 시체가 오지 않았는가?”
“동방인의 시체라… 음….”
휘렌에게 시체가 동방인인지 서방인인지 구분하는 것 정도는 쉬웠다.
“하나 있었지, 근데 그게….”
“왜 그러나?”
“동방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아니 애초에… 온전한 모습이 아니니까.”
“…시체가 어떠했는데 그러지?”
“듣고 싶은 거군?”
끄덕…
“머리는 이미 없었고 그 절단면은 깔끔하지 않았네. 팔 한쪽도 맹수에게 뜯어먹힌 것처럼 보였지.”
“그것참… 못 볼 꼴이었겠군.”
“우리야 이런 일이 뭐 흔하다면 흔한 일이니까… 사연 없는 시체가 어디 있겠나? 근데… 시체의 신분을 아는가?”
휘렌이 눈을 번뜩였다.
공동묘지는 안 그래도 빽빽이 들어차 내년에는 부지를 넓혀야만 한다는 요구가 있을 정도니, 연고자가 시체를 이장한다면 묘지 측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물론, 비용은 연고자 부담이겠지만.
“…딱히. 그저, 동방 출신인 자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들어 지나가는 김에 애도를 위해 방문했네.”
“아하… 난 또.”
가끔 있다. 그런 자들이.
쓸데없이 출신에 목매는 자들.
뭐, 남에게만 피해 주지 않는다면 상관없을 것이다.
“저 안쪽에 가보게.”
“고맙네.”
저벅…
저벅…
녹음이 저물어 가는 계절.
아직 때가 타지 않은 이름 없는 묘비를 앞에 두고 죽립을 쓴 남자가 주문과도 같은 언어를 중얼거렸다.
“…칭, 깨어나라.”
[마난이 혈영강시를 사용합니다.] [죽음 이후 보름이 넘지 않은 대상을 혈영강시로 부활시킵니다.] [부활한 혈영강시는 대상을 맹목적으로 따릅니다.] [부활한 혈영강시는 기억이 온전치 않습니다.]동방에서 떠나와 지금 막 멘카니에 도착한 혈교의 여섯 사자 중 하나인 마난.
불쑥…
팔 하나가 무덤에서 튀어나와 몸을 일으켰다.
휘오오오…
머리가 없던 시체에 피바람이 일더니, 피로 찐득하게 만들어진 칭의 머리가 다시금 생성되었다.
“칭,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보았지?”
“…….”
“칭.”
“늑…대….”
칭이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늑대… 커다란… 늑… 대….”
“…늑대라. 살해당한 게 맞군.”
칭 같은 자가 한낱 들짐승 따위에게 사냥당했을 리는 없을 테니, 늑대 형상의 무언가를 만나 살해당한 게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
휘익…
마난이 손을 뻗자 그의 뒤로 두 명의 인간과 혈영강시 한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칭이 살해당했다.”
“누가 감히 칭을….”
“자리엘 남작의 짓일지도 모르지요.”
마난의 곁에 서 있는 자들은 불쾌한 3인조의 남은 2인인 백과 경이다.
“못난 꼴이 되었구나, 칭.”
“되살아날 순 있는 겁니까?”
마난이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일의 성과에 따라 달라지겠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칭은 부활할 것이다.”
불로불사를 추구하던 혈교 시조의 뜻에 따라 당대에도 사이한 주술이 혈교의 주류였는데, 이 때문인지 혈교의 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시금 더 강한 존재로 부활할 거라는 믿음. 그것이 그들을 순교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칭의 경우 순교와는 거리가 먼 죽음이었지만 말이다.
“정보가 없으니… 어쩔 수 없구나. 모아둔 혈청이 아깝다만….”
휘오오오오…
마난의 손에서 피바람이 일어 칭에게 깃들었다.
“…녀석의 냄새가 나더냐?”
“늑대… 냄새….”
새빨간 안개 같은 것이 궤적을 남기며 칭에게서 어딘가로 향했다.
“사자님.”
“어찌하실 작정입니까?”
마난이 운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일이 우연에 의해 일어났든, 누군가의 의도로 발생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본교의 서방에서의 첫 번째 행사가 누군가에 의해 방해받았다는 거지.”
스읍…
“흔적을 쫓는다.”
* * *
“혈교라….”
원작인 레메게톤 자체가 그리 오래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 스토리는 나 역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렇더라도 이 혈교에 관한 에피소드는 작중에서도 드러난 바가 있으니, 적어도 한마디 할 정도는 된다.
“골치가 아프군….”
원래는 불쾌한 3인조를 퇴치한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혈교.
이후에 파우스트를 플레이하는 유저는 이 불쾌한 3인조의 죽음에 관한 비사를 첩보 활동을 통해 동방 세계관과 함께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다.
‘사자가 찾아온다니….’
어쩐지 낌새가 심상치 않다.
‘혈교의 사자가 가진 무력이 어느 정도지?’
기억을 떠올려 봤을 때, 불쾌한 3인조보다는 윗줄로 묘사되었었다. 그런 녀석과 맞붙는다면… 지금의 나는 이길 수 있을까?
철컥…
괜히 마검 호수를 매만졌다.
이 검과 함께라면…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그건 결투에 한해서다. 아직 불쾌한 3인조 중 2인인 백, 그리고 경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혈교는 사이한 술법을 사용하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게 상당히 껄끄럽다.
‘쟈킴이나 아리엘로는 당해내기 힘들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고민만 깊어졌다.
스윽…
“잠시 돌아보고 오지.”
“보좌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조용히 다녀오지.”
루시퍼의 동행을 거절한 후, 천천히 심처를 빠져나갔다.
던전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건, 쟈킴이 있는 숲 필드였다.
쟈킴은 아리엘의 영토와 일부 오크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숲 필드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꽤 재밌는 짓을 했다. 부락에 불과하던 고블린의 영역이 토성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토성은, 어느새 꽤 그럴듯해졌다. 침략자들이 매번 도전해오니 그의 토성은 번번이 무너졌지만, 쟈킴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 무너지면 새로 올리면 그만이지요… 클클….
고블린다워서 좋다고 해야 할지.
성채나 요새를 축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지만, 안타깝게도 대지 필드가 없는 현시점에서는 축성에 필요한 자재 자체를 조달할 수가 없다. 숲 필드 자체에 축성에 적합한 바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뭐… 요새가 대지 필드의 주력인 이유가 있지.’
요새에 파수꾼 형 사역마만 콕콕 박아 넣은 스쿼드가 한때 유행했던 적도 있을 정도니.
아무튼, 아쉬움을 토로하는 건 여기까지로 하고 쟈킴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화염 필드다.
– 키히히히히!
휙-!
휙-!
칼날로 저글링 하는 산토가 시야에 잡혔다.
“…….”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저글링 하던 와중에도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켜 페넥스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스으윽…
시선을 돌려 그곳을 바라보니, 용암 동굴의 떨어져 나온 파편을 노려보고 있는 페넥스가 있었다.
‘내가 온 것도 모르는 건가?’
후우…
“하아아….”
엄청난 집중력으로 바위를 노려보던 페넥스가 검을 벼락같이 뽑아 들었다.
피이이이잉-!
어찌나 정확한 일격이었는지 바위가 갈라졌다는 건 그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화르륵…
절단면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페넥스.”
“응? 으아아악! 나리!”
역시, 모르고 있었군.
질겁하며 물러나는 페넥스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
“훈련!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해야 실전에서 망설임이 없는 법이니까.”
“그것도 네 스승이 일러준 것인가.”
내 말에 페넥스가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응. 맞아.”
“좋은 가르침이군.”
“페넥스가 할 수 있는 건, 나리의 적을 베는 것뿐이니까.”
이토록 충직한 악마가 있을까.
오직 검 한 자루로 주인을 수호하는, 정직한 악마.
‘하지만… 만일 3인조와의 일이 우려하는 것처럼 번진다면….’
그녀는 아마도 참패할 것이다.
승리하지만 패배할 것이다.
그것은 순리이다.
가슴 아프더라도 그녀의 성장에 꼭 필요한 순리.
나로서는 그저 그 순간이 왔을 때 그녀에게 해줄 말을 고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 매진하도록.”
“응! 잘 가!”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다음,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기이잉…
기이이이잉…
버려진 폐연구소.
파직…
녹물이 흐르고 절단된 케이블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폐연구소는 그러니까… 아몬에 한해서지만 지옥의 과학 문명이 솔라리아보다 훨씬 발전했기에 존재하는 컨셉이다.
루비와 빌 일행이 보내온 소식을 접하자마자 급하게 확장한 곳이다. 뇌전 필드이지만, 아직 적절한 사역마는 준비하지 못했다.
‘있었어도 거절했겠지만.’
이곳은 오로지 폐연구소의 소장으로 군림할 아몬을 위해 준비되었다. 당연하게도 아몬의 비밀 연구소 또한 이곳의 부지로 옮겨왔다.
혼자 쓰기엔 너무 광활한 거 아닌가 싶을 넓은 공간을 둘러보자니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인 것이냐?”
“아몬.”
“그보다, 잘 되었다. 마침 네 의견이 필요하던 때이니라.”
뒤돌아보자 아몬이 무슨 그릇 같은 것을 머리에 얹은 모자를 쓰고 입에는 그 모자에서 이어진 빨대를 물고 있었다.
“전투 국수 취식기다.”
“…….”
“이렇게 하면 전투 중에도 허기를 달랠 수 있을뿐더러 영양을 공급할 수 있지. 놀랍지 않으냐?”
“…대단하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을 척척 만들어 내는 게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녀석이 지옥의 지성이라니.
‘지옥… 괜찮은 거냐?’
내가 알기로 지옥의 과학 문명이라고 해 봤자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건 아몬뿐이라고 했다. 녀석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으니 이런 괴작들이 탄생하는 것 아닐까.
“역시 그렇지? 보는 눈이 있구나.”
히죽 웃는 아몬.
이럴 때는 빈틈투성이다.
그녀는 순수한 발명광이다.
“다음에 방문할 때까지 하나 더 제작해 둘 터이니, 그때 함께 써보는 게 어떠냐?”
“…같이?”
“그래. 섭취 중에 대화가 가능한 지도 점검해 봐야 하니 말이다.”
“좋아.”
스윽…
아몬이 모자를 살포시 내려놓으며 물었다.
“혈교라지?”
“말했던가?”
“루시퍼에게서 들었다.”
“맞아.”
“알로케스의 종복들이군.”
“…뭐?”
이건 뜻밖의 얘기다.
“뭘 놀라는 거냐? 솔라리아가 악마의 영향으로부터 부자유하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
“철혈 공작 알로케스가 한때 그들의 주인이었으나, 버림받은 지가 오래지.”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군.”
“가만히 있어도 소식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떠들기 좋아하는 족속은 지옥에도 있으니. 그래서….”
아몬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두렵더냐?”
“…아직 맞설 준비가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한다.”
“준비된 전쟁만큼 어리석은 게 없지. 준비할 수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니까.”
아몬이 날카로운 단어를 골라 말했다.
“슬슬 네가 군주임을 자각하는 게 어떠냐?”
“무슨 소리지?”
“내가 보기엔 오합지졸일지라도 이 터전은 네가 일군 것이며 또한 네가 이 영토의 적법한 군주다. 군주가 불안에 떨어서야 병사들도 제대로 싸울 수 없지.”
“…틀린 말은 아니군.”
“오만할 필요는 없지만, 겸손은 최악이니라. 이것도 저것도 아니란 말이지.”
그녀와 대화를 나눌수록,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온다면 맞이해라.”
“…….”
“그뿐이다.”
“그렇군.”
스으윽…
아몬의 폐연구소를 벗어나고 반나절이 지난 후, 루비와 빌 그리고 모리 일행이 던전에 도착했다. 이들에겐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한동안 던전에서 대기하라 명했다.
그로부터 보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침입자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이 순간부터 던전 수호가 진행됩니다.]예상했던 불운은, 이내 운명이 되어 당도했다.
침입을 눈치챈 사역마들이 차원문 중계기의 마력 공급을 중단한 후, 내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래….
빗장을 열어라.
그리고,
“성대히 맞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