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57
제57화
[전리품 획득에 행운의 기운이 깃듭니다.] [던전 수호 임무가 종료되었습니다.] [임무 결과: 마난 외 4인(사망)] [던전 수호 임무의 보상으로 침입자의 소지품을 획득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침입자의 소지품에 마석 × 3,000을 획득합니다.] [침입자의 소지품에서 비급(혈영무악권)을 획득합니다.] [침입자의 소지품에서 혈청 잔여물을 획득합니다.] [침입자의 소지품에서 대량의 금화를 획득합니다.] [침입자들의 사망으로 그들의 운명이 뒤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Tip: 침입자의 출신 및 상황에 따라 수호 임무의 보상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때 이른 혈교의 침략은 내 심처에 이르지도 못하고, 그 발치에서 좌절되었다.
그들을 향한 연민? 이라든가 애석함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마난이라면 그래도 스토리가 꽤 진행된 다음에 확인되는 인물이다. 그런 녀석이 여기서 허무하게 죽다니….’
아무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썩은 뿌리 던전이 꽤 강해진 것은 아닐까?
‘뭐… 아몬이 거의 다 하긴 했지만.’
모바일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밸런스에 악영향을 주는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부여받은 등급보다 훨씬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든지, 리스크가 있는 대신 리턴이 크게 설계된 캐릭터가 리스크 없이 활약한다든지 하는.
아몬은 그런 캐릭터였다.
레메게톤 가챠의 상징이자 꽃이나 마찬가지였던 대악마. 그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캐릭터였으니 성능이 놀라운 것도 이해는 가지.
‘초반에 이 녀석을 얻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어마어마하구나.’
다른 걸 떠나서, 마도 공학 병기를 아몬에게 무장시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대악마지! 하는 무력을 선보인다.
다만 마도 공학 병기는 여태 가챠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도 단 1번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그 유일한 물건이 파괴되었으니 당분간 이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하겠지.
‘뭐… 굳이 기계치 옵션이 아니라도 기본 스킬셋 자체가 괴물이니까.’
아몬의 개성인 기계치를 발동하는 건 말 그대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일 때나 그런 것이고, 평소에는 우레의 마력으로 다 해결될 것이다.
“흐음….”
“차를 올리겠습니다.”
“…부탁하지.”
여유롭다.
목숨을 위협받던 상황이 분명했는데,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 내가 보기엔 오합지졸일지라도 이 터전은 네가 일군 것이며 또한 네가 이 영토의 적법한 군주다. 군주가 불안에 떨어서야 병사들도 제대로 싸울 수 없지.
문득 아몬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게 군주의 바람직한 태도인지도.’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그보다, 보상으로 얻은 마석이 조금 빈약하군.’
마석 3,000개면 10연차.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하기엔, 알지 않는가. 레메게톤의 가챠가 상당히 매운맛이라는 걸.
아마 꼴랑 허약한 사역마 몇 개에 쓰레기 무기만 잔뜩 주고 땡 칠 게 뻔했다.
‘금화는 좋고, 혈청 잔여물이랑 비급?’
각 에피소드 최종장의 보스들은 특수한 보상을 주곤 하는데, 지난번 칼 쿠르소 참수 당시엔 참회석. 이번엔 혈청 잔여물과 비급인 것 같았다.
혈청 잔여물은 후에… 그러니까 좀 많이 뒤에 나올 업데이트에서 사용되는 재료다.
이 쓰레기 게임은 게임의 핵심이 되는 굵직굵직한 시스템을 런칭 시기에 포함하지 않고 후에 업데이트로 집어넣었다는 게 레전드다. 또 그 시스템의 재료가 되는 건 업데이트되지 않은 버전에서 드랍되게 만들어 유저들을 헷갈리게 했으니… 욕을 잔뜩 먹어도 할 말이 없었겠지.
‘아무튼, 당장엔 신경 쓸 게 아니군.’
그리고 이쪽의 비급은 좀 특이한 아이템인데, 이 게임의 그나마 몇 안 되는 장점으로 꼽히는 다채로운 스킬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이다.
‘비급을 수련하면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엑스트라 스킬에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는 물건.’
뭐, 대충 그런 거다.
당연하게도 유저들이 많은 검증을 거쳤으니 안 쓰는 물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 쓴다.
이 혈영무악권의 비급도 마찬가지.
조건은 있는 대로 타면서 효율도 별로다.
그래도 나름 이 세계관에선 혈교의 무공이니 암시장 같은 곳에서 비싸게 팔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후룹…
루시퍼가 준비해 준 차를 마시며 이번 싸움에 대해 돌아보았다.
여러모로 운이 따라준 2막이었다. 암시장에서 롬웰을 만나면서….
‘가만? 만약 내가 암시장에서 롬웰을 만나지 않았으면 불쾌한 3인조를 어떻게 마주쳤을까?’
운명대로 흘러갔다고 치부하기엔 음… 꽤나 찝찝하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아무튼 그 이후에 루비의 합류로 3인조의 한 축을 격파하고… 마난이 성급하게 던전까지 추격해와서 알아서 무너져 줬으니 이것보다 나은 결과가 또 있을까?
던전은 보상을 받았고, 롬웰과의 거래 조건도 완수했다. 그리고… 내가 설계한 또 다른 성과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
스륵…
내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루시퍼가 곧장 옆에 섰다.
“보좌를….”
루시퍼가 따라붙는 게 좋을까?
뭐, 나쁘지 않을지도?
“그래.”
* * *
저벅…
저벅…
황량하기 그지없는 필드.
나와 루시퍼가 향한 곳은 썩은 뿌리의 심처로 향하는 두 번째 관문인 용암 동굴이었다.
식은 유황의 냄새 때문에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곳의 주인은 이 냄새를 맡으면 정겹다나.
아무튼, 지금은 그 주인을 만나러 왔다.
“…자리에 없군.”
페넥스는 이번엔 재생의 화원에서 부활하지 않는다.
왜냐고?
그녀는 상처 하나 없이 마난과 혈영강시 둘을 도륙했으니까. 그저 개성인 불굴 때문에 불꽃이 되어 예정된 패배를 맞이했을 뿐이다.
“…….”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아니,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군.”
황량한 용암 동굴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 키히히히히히!
유랑극단의 천막에 가까이 가자, 산토의 일부로 보이는 매표원이 서 있었다.
일부라고 말하는 이유는, 산토는 유랑극단의 천막 내에서는 여러 존재로 나뉠 수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기이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내 던전에 머무는 녀석들이 다 그렇지 뭐.
– 키히!
표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 던전의 주인인 것은 아는지 손짓을 해 안으로 이끄는 산토.
대형 천막은 안에 코끼리로 탑을 쌓아도 될 만큼 넓었다. 실제로 밖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실내가 넓었는데 이것 역시 산토의 기이한 힘 중 하나인 듯했다.
‘아군인데도 알아내지 못한 것투성인데 만일 적으로 만났다면….’
골치깨나 썩게 했을 게 분명하다.
– 키히히히히!
커다란 공 위에서 외발로 선 채로 긴 봉을 든 녀석.
거기에 접시를 얹어 빙글빙글 돌렸다. 이곳에 몇 번 와본 적이 있는데, 접시 돌리기 파트는 꽤 긴 편이다. 저러면서 손 틈마다 봉을 추가해서 말이다.
“…….”
관객석을 바라보다가,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 키히! 키히히!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
유랑극단의 천막에선 웃음 대신 침묵만이 가득했다.
– 키효오옷!
그러다, 산토가 입으로 막대를 물고 접시를 물때쯤 관객석에서 반응이 있었다.
“하… 하하….”
웃을 거면 제대로 웃던지, 어설프게 흉내만 내고 만다.
“으흑… 으으… 우으으….”
그야 당연했다.
울고 싶은 심정일 테니까.
“…….”
“나리, 있잖아….”
관객석엔 페넥스, 그녀가 있었다.
홀로 멍하니 앉아서는 공허한 눈빛을 무대에 보냈다.
“이번엔 잘하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녀는 칼 쿠르소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1막에 이어 다소 변경된 혈교 무리를 막아야 하는 에피소드 2막에서도 연달아 활약이 저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넥스의 개성인 불굴이 그녀의 족쇄인 상태다.
“정말이야. 나, 다음이 있으면….”
“…페넥스.”
“버….”
그녀가 눈물을 터트리며 내쪽을 바라보았다.
“버리지 말아줘, 나.”
“…….”
“잘할 테니까, 나… 다음엔 꼭 이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불굴이 가진 족쇄에 묶여,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가라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는 심해로.
안정이라는 햇빛이 들지 않는 심연으로.
“페넥스.”
“우으… 난… 난….”
“그대는 무엇을 겁내는가?”
“…….”
“인정받고 싶은 건가, 너의 존재 가치를?”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야만… 나를 버리지 않으니까.”
“…….”
“내가 있을 곳이… 생기니까.”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그건….”
페넥스가 답을 고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부터 틀렸다.
“없다. 아무것도.”
“…뭐?”
순간, 공허해지는 페넥스의 눈.
“기대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아니… 애초에 나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그러니 자유로워져라.”
“……!”
“나의 기대는 너의 두려움일 뿐. 그러니 기대하지 않는다. 너는 너로서 존재하라.”
그녀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저 네가 필요할 뿐이다. 페넥스.”
“나리….”
“네가 날 위한 검이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저 검이어라.”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선언하듯 말했다.
“너를 거둔 것이 이 파우스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네가 어떤 형태의 검이건 그걸 휘두르는 건….”
스윽…
일어서며 돌아선다.
“나일 테니.”
페넥스가 울음을 참느라 입술이 코까지 올라오려 했다.
“으아아아앙, 나리이이이!”
당연하게도 그녀와 나 사이엔, 이럴 때를 대비해 데려온 루시퍼가 있었다.
“진정하시길, 페넥스. 콧물이 묻… 윽, 드러… 아니, 그만….”
“으아아아아앙!”
쌀쌀맞아야 하는 나 대신, 루시퍼가 그녀의 울음을 달래줄 것이다.
울음을 참지 못해 끈덕지게 안겨 오는 페넥스를, 루시퍼는 감싸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아….”
[부활의 악마 페넥스의 파우스트를 향한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친밀도: ♥♥♡♡♡♡]친밀도의 증가.
그녀를 위로했기에 상승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녀가 크나큰 불안정을 경험하고, 그것에서 해방되었을 때 비로소 상승한 것이다.
이는 페넥스의 친밀도를 가장 빠르게 올리는 조건이며 다른 악마들과 달리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기에 그저 상냥하게만 그녀를 대하면 한참 뒤에서야 친밀도가 상승한다.
그녀는 늘 강박에 사로잡혀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것을 큰 충격을 줌으로써 깨닫게 한 것이다.
“으아아앙… 으흑….”
마난이 내 예상보다 훨씬 훌륭하게 페넥스의 일격에 대처했으니, 이미 죽은 녀석이지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누군가의 죽음도.
누군가의 마음도.
전부 내 의도대로였다.
천막을 홀로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남은 건 롬웰인가.”
녀석에게서도, 받아낼 게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