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1
제61화
투두두두두두두…
말이 평원을 가로지른다.
밤낮없이 말에 올라타 리우디라로 향한 게 벌써 며칠이 지났다.
말 위에 올라 잠이 든 적도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당연히 이런 지옥의 행군을 말이 버텨낼 리 없었고 중간에 내려 마을에서 말을 갈아탔다. 아까운 금화가 구멍 난 듯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금화는 언제든 벌면 그만이지만, 애써 뽑아둔 사역마들은 잃게 되면 피눈물이다.
푸르르르…
말이 달리는 것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생각을 정리했다.
‘쓰러지지 않는 우레아라니….’
듣도 보도 못했던 이름이, 중간에 말을 갈아탄 마을에서 튀어나왔다. 가을만 되면 대수림에 나타나 주변 마물의 준동을 일으키는 불사의 괴물.
어째서 그 어디에서도 가을마다 찾아오는 대수림의 마수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던 걸까?
원인을 골똘히 분석해 본 결과, 이유는 내가 취한 정보 수집의 방식 때문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의 일상에 스며들어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는 방식을 취했었는데, 이 방법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모두가 보편적으로 입 밖에 내기 꺼리는 정보는 얻을 수 없다는 것. 즉, 마치 규칙이라도 정한 것처럼 아예 존재 자체를 발설하지 않는 정보는 접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안전한 첩보 활동을 지향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터져 나왔다.
촌락 수준에 불과한 리우디라는 매해 대수림의 마물이 번성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마을 자체에 함구령이 내려졌다기보다는… 아마도 별다른 건 아닐 것이다. 매년 해악을 끼치는 존재에 대해서 입에 담는 것 자체를 죄악시했던 것일지도.
‘아마 희생자가 나온 해도 있을 거고… 마물이 발생했을 때의 뒤처리도 협회 측에서 알아서 했을 테니까.’
이 부분은 실제로 확인해 보면 될 노릇이지만, 사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깨진 유리 조각을 피해 남은 물이라도 어떻게든 주워 담아야 한다.
지금 중요한 건,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관한 예측이다.
토벌령이 내려진 것을 확인한 시점도 이미 한참 뒤였다. 아마 리우디라에 도착하면 모험가들이 바글바글할 거다.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모여든 모험가 중 인근의 강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토벌령 자체의 벌이가 짭짤하며, 만약 공을 세우면 대형 마물이 남기는 전리품에도 그 권리를 약간이나마 인정받기 때문인 듯하다.
‘앞선 상황이 어떻게 됐건 간에 본격적인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 토벌령의 무리와 합류해야 한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짐작하게 하는 징조가 어젯밤 찾아왔다. 컨디션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점차 쌓이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
‘분명하다. 던전 코어에 문제가 생긴 거야.’
던전 썩은 뿌리의 숙주, 쓰러지지 않는 우레아가 등장했다는 건…
– 매년 가을이 절정에 다다르면 썩은 뿌리의 숙주가 깨어난다. 이 과정에서 던전은 붕괴하는 동시에 재구축되기 때문이다.
던전이 무너졌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 아마도 그 과정에서 코어가 옮겨졌다.
던전이 무너지기 전에 옮겨졌든지, 혹은 코어 스스로 붕괴 후에 자리에서 이탈했든지.
‘아마도 전자겠지.’
왜냐고? 당연히 아몬과 페넥스가 그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을 리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루시퍼까지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적법한 계약자인 내게 그 코어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 대비하기는 했을 테지만, 그래도 피해가 있었겠지. 예고 없이 찾아온 재앙이었으니까.’
문제는 현재 이들이 있는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썩은 뿌리는 애초에 대수림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들어졌으니 무너진 던전에서 빠져나오는 것만 해도 힘에 겨울 것이다.
아마 모험가들이 모여들고 정찰병들이 가득한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럴 땐 그나마 악마들을 모두 썩은 뿌리에 남겨두고 온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그나마 그편이 생존확률이 훨씬 높을 테니 말이다.
“빨리… 더 빨리 가야 해.”
“루비, 진정하길.”
“대장! 진정하게 생겼어? 지금 다들 우리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아니면….”
그 뒤에 이어질 문장은 말하는 데 엄청난 심력을 소모한다. 그러니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니 주인으로서 그녀에게 조언했다.
“초조함을 드러내지 말라. 지금부턴 매 순간순간이 시험의 연속이며 살얼음판일 테니.”
“…어째서 그렇게 침착한 거야?”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난 고립된 이들의 군주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내 코어가 있기 때문? 아니다. 그들이 이대로 사라져 버린다면, 코어가 있든 없든 내 생존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푸르르….
다그닥…
말이 멈춰 섰다.
4필의 말이 몸통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댔다.
공기가 차갑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와중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리지.”
우리는 가을이 가기 전, 리우디라에 도착했다.
“미친 자식들 아니야? 어디서 이렇게 많이 온 거야?”
“난들 아나? 한동안 잠잠했으니 이렇게 한탕 하러들 온 게지.”
“어이, 거기 멈춰 서 있지 말고 썩 꺼져.”
“뭐 이 새끼야?”
내가… 우리가 기억하는 촌구석 리우디라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 작은 촌락 전체가 모험가들의 방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니.
모두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멍하니 입구에 서 있었다.
“안 들어갈 거면 비켜!”
툭-!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모험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모두 내 적이나 마찬가지다. 이들과 맞서 싸우는 최악의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
빌도 말문이 막힌 건지 입을 꾹 다물고 멍하니 리우디라를 바라보았다.
절망과 좌절.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 그래야만 바뀌는 미래다.
“가지.”
* * *
리우디라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각양각색의 파티는 물론이고, 솔로로서도 이름난 강자들이 모였다 보니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벌써 목적지까지 오는 데만 싸움판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
…그중에 한 번은 관중들이 돈까지 걸고 응원하고 있었을 정도다.
“죽여! 패 죽이라고!”
“키하하하하! 저 멍청한 얼굴 좀 봐!”
“너한테 걸었다고! 똑바로 해!”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가 토벌령에 파견된 협회 임시 본부에 도착했다. 기록관이 줄지어 선 모험가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내 차례가 되어 그에게 다가갔다.
“이름.”
“…….”
“…이름!”
“발푸스다.”
빌이 가진 위조 신분증 중 하나를 건넸다.
“반말은 씨… 근데 거참… 생긴 상판대기와는 안 맞게 상당히 터프한 이름이구먼. 그런 얘기 많이 듣지 않아?”
“그런 편이지.”
자기도 반말부터 내뱉어 놓고서는 상당히 뻔뻔한 작자다.
“토벌령 문서를.”
“여기.”
“하하… 신출내기에서 갓 벗어난 모험가구먼? 아무튼 머무는 동안 신난다고 사고 치지 말고 대기하다가 저녁 회합에 참여하도록 해. 모든 건 거기서 결정될 테니까.”
“저녁 회의?”
“그런 게 있어. 그냥 알아들어.”
“그보다, 대수림으로 가는 입구는 봉쇄된 건가?”
“그걸 말이라고… 당연하지! 협회의 허가가 없으면 지금은 못 들어가지. 미리 정찰 전력으로 투입된 백전노장들 말고는 다들 대기 명령이야.”
“…정보 고맙군.”
“고맙긴… 나머지 일행 신분증도. 빨리 처리하고 저녁까지 한잔들 하고 있으라고.”
임시 본부에서 빠져나와 대로변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오로지 내 손에 달려있다는 게… 조금은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싸구려 위조 신분증만으로 이 토벌령에 참가할 수 있다는 건 그나마 행운인가.’
강제로 대수림에 진입하는 건 명백한 자살 행위. 이 많은 모험가의 이목을 끌고 대규모 이주를 시도하기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빌, 목록을 적어줄 테니 해당 품목들을 저녁 회합 전까지 준비하도록.”
먼 길을 이동해야 하니, 커다란 배낭에 마른 식량을 가득… 거기에 각종 약초와 치료제 그리고 포션까지.
“…생각하시는 바가 있는 거군요.”
“썩은 뿌리는 버린다.”
“알겠습니다.”
루비가 울상을 지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하아….
* * *
저녁 회합이 이뤄지는 장소는 야외였다. 뚝딱뚝딱 오전 오후 동안 두드려 만든 광장.
듣기로는 이번 토벌령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협회 측도 당황했을 정도라고.
“반갑다. 케일럿이라고 한다. 내가 이번 토벌령의 책임자다.”
“드디어 나타나시는군!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네가 제르만인가. 건방지긴 하다만 자신감 없는 녀석보다는 낫다.”
“헹….”
커다란 사냥개와 그만큼 커다란 곡궁을 짊어진 남자가 케일럿의 눈총을 받았다.
“트롤 사냥꾼 제르만… 저 녀석도 온 건가?”
“여전히 목이 뻣뻣하군. 감히 협회 극동 지부 간부에게….”
케일럿이 계속해서 회합을 주도했다. 자잘한 얘기는 흘려넘기고,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귀 기울였다.
“우선, 통제를 위해 5명을 기본으로 파티를 구성한다. 구성이 완료된 파티만이 토벌령에 참가할 수 있다.”
“뭐? …얘기가 이상한데? 솔로들은?”
“현재 편성으로는 솔로까지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럼 공적은 어떻게 나누지?”
“당연하게도 인원수대로 나눈다.”
언뜻 보면 깔끔한 듯싶지만, 솔로 측에서는 화가 날 만도 한 방식이다.
“그렇군… 알았다.”
말한 녀석은 쌍살도라는 녀석인데, 등에 흉악한 칼을 두 자루나 메고 있다. 동방에서 온 녀석들은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대부분 경무장에 동방식 병기를 다룬다.
‘그것보다 저 반응은 납득한 게 아닌데….’
아마 저자와 파티가 된 녀석들은 죽을 것이다. 녀석이 일부러 억누른 살기가 조금씩 거슬렸다.
스윽…
토벌령에 대한 얘기가 한창인 가운데, 누군가 나에게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팟…
내 일행이 그사이를 가로막으려 했지만 빌이 잠시 멈칫하더니 그의 접근을 허용했다.
그자는 내 손에 쪽지 하나를 건네고 사라졌다. 쪽지엔 이와 같이 적혀 있었다.
– 롬웰이다. 내 수하들이 레온 님의 지시로 현재 대수림에 먼저 들어와 있다.
‘…뭐?’
이건 뜻밖이다.
– 이번 토벌령에 조사단이 파견됐더군. 이러면 이 롬웰이 약속을 못 지킨 게 되어버려. 그건 싫다고. 마침 레온 님께서도 널 도우라 말씀하셨으니, 손이 닿는 데까지 돕도록 하지.
‘롬웰…!’
– 사정은 들었다. 꽤 놀랄만한 사실도 몇 개 있었는데, 제법이야. 토벌대가 대수림에 진입하면 이쪽이 먼저 네게 접촉하도록 하지. 아… 그리고 레온 님께서 네게 남긴 전언이 있었다.
레온의 전언이라니… 뭘까?
– 안에선 절대 열리지 않는 문이, 밖에서는 쉽게 열리기도 하는 법.
“하….”
기가 차는군.
레온은 모든 걸 예견했나?
“작년에 이어 토벌대의 대장을 맡게 된 스칼라다. 이 얼간이들아.”
한눈을 팔았던 것도 잠시 순간, 단상으로 시선이 향했다.
‘스칼라? 설마….’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외눈박이 늑대! 당신인가!”
“스칼라라고? 크하하하하! 재밌겠는데?”
에피소드 9막 최종장의 보스.
외눈박이 늑대 스칼라.
“…일이 단단히 꼬였군.”
나는 녀석을 너무 일찍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