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모두 이 붉은 천을 어깨에 메라!”
다음날이 되자, 대수림 진입을 포기한 자들을 제외한 토벌대가 준비를 끝마쳤다.
“준비는 완료됐습니다.”
“출발하겠다!”
“출발!”
대수림처럼 나무가 빽빽한 곳에는 말이 들어가기 힘들기에, 무거운 짐을 사람이 짊어졌다. 이들의 속도가 곧 토벌대의 속도를 결정지을 것이다.
‘중간중간 쉬어가겠군.’
이날 하루에 총 8번을 휴식했다. 휴식 중에 살펴보니 토벌대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었지만, 비전투원까지 합해 족히 100명은 넘어 보였다. 이마저도 추리고 추려낸 인원인 듯했다.
“어이, 그거 알아?”
휴식을 취하던 중, 누군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최근에 리우디라에서 실종된 모험가 파티가 몇 되는 모양이야. 이 일이 아니었어도 조사단이 곧 파견됐을 거라더군.”
“에헤… 여기 뭐 노릴 게 있다고 기어들어 와? 기어들어 오기를.”
“그러는 우리도 지금 들어가고 있잖아? 말 좀 가려 해.”
“…생각해 보니 그렇네.”
토벌대의 출정 첫날엔,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토벌대와 우레아와는 거리가 꽤 되는지 그 썩은 마물은 이곳에서 볼 수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한 건 둘째 날이다.
“단체로 소풍이라도 가나? 아가리 좀 닥쳐라.”
행군 중 누군가의 잡담이 쌍살도의 심기를 거슬렀나 보다. 그리고 녀석의 그런 거친 언행을, 이제는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그만 좀 으르렁거려라, 지치지도 않냐?”
다섯 명이 쌍살도의 앞을 가로막으며 한마디 했다. 그들이 나서자 주변에서 수군거렸다.
“라폰 파티다….”
“와… 하긴… 다들 언제까지 참나 했어.”
라폰 파티도 이 근방에서 꽤 유명한 모험가들인가?
“…그거 나한테 한 소리냐?”
“너 말고 여기서 또 누가 헛소리했는데? 성격이 그 모양이라 평생 솔로만 해야 하는 녀석이 자꾸 토벌대에서 왕 행세를 하려고 해?”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쌍살도가 비단 오늘만 사납게 군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 으르렁거렸던 게 한몫했다.
쌍살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병신… 어차피 닥칠 거면서.”
굳이 쌍살도의 뒤로 한마디 더 하고 사라지는 남자. 그걸 보며 피요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웃었다.
“이거 일 났네?”
쌍살도의 뒷모습에서 절대로 억눌러지지 않는 살기가 느껴졌다.
토벌대의 이틀째는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이 되었을 때도, 특별히 불온한 움직임은 없었다.
단지 쌍살도와 라폰 파티의 수장인 에이드문트 라폰이 서로 냉전 상태를 유지한 채로 행군했다는 것 정도. 덩달아 행군 분위기도 서늘함이 감돌았다.
내 옆에서 늘 태평하게 노닥거리는 피요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쌍살도는 악독해서 지금껏 솔로로만 행동했거든. 공공연한 사실이긴 한데, 지금껏 그 말을 한 상대는 모두 죽였어.”
“넌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는 거지?”
“떠돌이 생활을 하려면 귀가 열려 있어야 하거든.”
으쓱…
피요가 팔짱을 끼며 괜히 몸을 부풀려 있어 보이는 척했다.
“…그렇다면 이제 라폰은 살해당하는 건가? 토벌대 내에서?”
글쎄? 토벌대의 대장인 스칼라가 그걸 두고 볼까?
“모르지? 아마 별문제 없이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구실만 만들어지면 찌르겠다고 덤벼들걸?”
슬그머니 얘기에 끼어드는 남자.
“재밌는 얘기들을 하고 있군그래.”
“…블랭코?”
“내 이름을 아나?”
“어쩌다 듣게 됐지.”
블랭코가 나이가 많다고 한들, 모험가들 사이에서 서로 존대하는 경우는 드무니 그도 편하게 나를 대했다.
“출발 전엔 불필요한 싸움을 막아줘서 고마웠다.”
“고맙긴! 쌍살도가 그 자리에서 칼부림을 일으키면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텐데 당연히 말렸어야지.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군.”
“쌍살도 말이냐?”
“그래. 녀석의 이름은 이문이야. 동방에서 흘러들어온 지 좀 된 녀석이지.”
“이문….”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만….”
“당신도 쌍살도가 무슨 짓을 벌일 거라고 예상하나?”
블랭코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토벌대엔 쌍살도 만큼 이름값이 나가는 녀석들이 있으니 지켜보고 있을 땐 별일 없겠지만, 녀석이 범죄자 출신이라는 게 걸리는군.”
“…범죄자?”
피요가 거들었다.
“쌍살도는 범죄자 출신이거든. 자기 파티원들을 마음에 안 든다고 살해한 전적이 있어.”
“…어떻게 모험가가 됐지?”
“모험가가 별건가? 그 사건은 오래되기도 했고 흐지부지 넘어가서….”
셋째 날도 그렇게, 끝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밤이 되기 전까지는.
– 뿌우우우우-!
깊은 잠에서 깨어난 모험가들이 경보 소리에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스칼라가 경계병에게 보고를 받고 있는 게 보였다.
“인근에 오크 무리 출현! 뭔가에 쫓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위 마물일 수도 있겠군. 방향은?”
“서쪽입니다!”
“무장하고 따라와라!”
“스, 스칼라 님!”
토벌대의 대장인 스칼라가 조사관 몇과 함께 먼저 움직이고 남은 모험가들도 서둘러 횃불을 들고 서쪽으로 이동했다.
“밤중에 이게 무슨 일인지….”
블랭코와 피요가 하품을 하며 따라붙었다.
그들이 내게 딱 달라붙기 전에 일행에게 말했다.
“루비, 힘을 쓰지 마라.”
“응, 알았어!”
크워어어어어어어!
오크 무리가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촤아아악-!
커다란 할버드로 오크 무리 사이에 뛰어들어 종횡무진 날뛰는 스칼라.
콰직-!
후두둑…
녀석이 피를 뒤집어쓸수록 오크 무리의 수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우리가 나설 것도 없겠는데?”
“그런데 뭔가 이상하군… 느낌이….”
쿠우웅…
쿠우우우웅…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거대한 흔들림.
쒜에에엑-!
콰지이이이익-!
오크의 시체를 내던져 모험가 한 명을 으깨는 힘.
“오, 오우거다! 오우거야!”
“하나가 아니야! 다수다!”
모습을 드러낸 건 어깨와 허리에 해골을 잔뜩 두른 오우거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다섯이 넘는 머릿수.
‘우레아 때문인가?’
그동안 대수림에 오우거의 생태가 존재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마도 깊은 곳에 있던 녀석들이 무언가에 이끌려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산개해라! 녀석들의 공격을 정면에서 상대해선 안 돼!”
“흐하하하! 드디어 일이군!”
[제르만이 사냥꾼의 선별을 사용합니다.] [지정한 대상과 같은 종족을 상대할 때 전투력이 크게 상승합니다.]피유우우우우웃-!
토벌대의 또 다른 강자 트롤 사냥꾼 제르만의 화살이 오우거에게 날아갔다.
퍼어어억-!
화살이 박히는 소리치고는 다소 과격한 파육음.
– 우으으으으워어어!
화난 오우거 한 마리가 토벌대가 있는 곳으로 바위를 날렸다.
“피해라!”
“으, 으아아악!”
후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파괴력.
오우거가 보여준 기겁할 위력에 토벌대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흐아아아압!”
[스칼라가 흔들다리 스윙을 사용합니다.] [물결치듯 퍼지는 방사형 파동이 전방으로 쏘아집니다.] [파동은 공격력의 230%만큼 물리 피해를 주며 물결이 중첩되는 지점엔 공격력의 280%의 물리 피해를 줍니다.]콰지지지지지직!
스칼라의 방금 공격에 사정없이 나뒹구는 오우거들.
“발푸스! 피해!”
파아아앗-!
콰아아아아아아앙!
방금 내가 있던 자리를 오우거의 몽둥이가 후려쳤다.
휘리릭-!
피요가 오우거의 목에 채찍을 감았다. 보통은 채찍을 감은 쪽이 유리할 테지만, 오우거의 목은 마치 화강암 기둥 같아서 그저 거슬리는 정도의 타격인 듯했다.
휙-!
빌과 모리가 오우거의 사각으로 이동해 녀석의 등판에 단검을 잔뜩 박아 넣었다.
파파파파팍-!
“소용없네, 오우거의 가죽은 두꺼워서 느낌조차 없을 거야.”
호수를 뽑아야 할까?
‘아니, 눈에 띌 확률이 높다.’
스칼라의 일격도 견디는 오우거가 호수의 힘에 무너지는 건, 이 자리의 모든 이들에게 자극적인 장면일 테니까.
[바이란이 숯검정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화염 저항력을 준비된 제물만큼 낮추고 화염 피해를 줍니다.] [저항할 수 있습니다.]지푸라기를 잔뜩 휘감은 나무토막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화르르르르륵-!
“바이란!”
“영감, 이쪽은 우리 파티가 맡을 테니까 일행이랑 남쪽으로 가줘! 그쪽에 오우거 2마리가 야영지 쪽으로….”
“이런… 알았다!”
저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는데도 그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을 순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블랭코와 함께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
“이거 불안한데….”
피요가 히죽 웃었다.
“아까 쌍살도가 그곳으로 향한 걸 봤거든….”
자칫하면 토벌대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서 내게 앙심을 품은 쌍살도 이문을 마주칠 수도 있었다.
“저기다!”
블랭코와 피요가 가리킨 방향에, 오우거가 서 있었다. 녀석은 지쳐 보였으며, 그걸 상대하는 건 라폰 파티였다.
“저 멍청이가….”
블랭코가 갑자기 그들에게 소리쳤다.
“위험하다! 라폰!”
“…블랭코?”
그때, 라폰 파티의 측면에서 갑자기 다른 오우거 1마리가 튀어나와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아앙-!
“커허허헉….”
라폰 파티의 전위 한 명과 마법사가 그대로 짓이겨지며 날아갔고…
“애들러!”
– 크워어어어어!
콰지이이익!
라폰의 방패를 내려찍는 정면의 오우거도 기세를 높였다.
“크흑….”
코피를 쏟는 에이드문트 라폰. 충격을 받았으니, 당연히 주변의 이상도 눈치챌 수 없었다.
오직 나와 일행의 시야에만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런….”
“쌍살도! 멈춰라!”
파아아아아아앙-!
[이문이 거합: 쌍두사를 사용합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병기를 뽑아 정면으로 교차하며 휘두릅니다. 직선 반경에 공격력의 400%만큼의 피해를 주지만 무엇에도 부딪히지 못했을 때, 자세가 무너집니다.]폭발적으로 뽑혀 나오는 이문의 두 자루 칼.
촤아아아아아악-!
피를 뿌리며 지나간 그 자리는, 오우거는 물론이고 라폰 파티의 남은 인원이 있던 자리였다. 엑스자로 교차하는 칼날은 그 앞에 걸리는 건 뭐든 토막 냈다.
인간의 살점도, 오우거의 뼈마저도.
후두둑…
“이무우우운! 뭐 하는 짓이냐!? 감당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다니!”
“블랭코… 난 오우거를 쓰러트렸을 뿐인걸?”
“이 미친 작자가… 스칼라와 조사단이 널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으냐?”
“…역시 그렇지? 그럼 어쩔 수 없지.”
쌍살도 이문에게서 살기가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거기 있는 녀석도 베는 수….”
쌍살도의 날 노려보는 그 눈빛은, 모험가의 눈빛이 아닌 살인마의 눈빛이었다.
“…조사단이 왔군. 이봐, 너.”
“…….”
“앞으로가 기대되지 않아?”
이건 살인 예고다.
“난 너희 같은 가짜와는 달라. 파티에 숨어서 자신들이 강한 줄 착각하는 떨거지 새끼들과는….”
쌍살도의 칼끝이 나를 가리켰다.
“난 모욕을 참지 않아, 절대로. 기억해 두라고. 킥… 또 보자?”
후두둑…
철컥…
쌍살도가 칼에 묻은 피를 털고 다시 등에 멨다.
파아아아앗-!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녀석.
녀석이 사라진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조사단이 자리에 나타났다.
저벅…
저벅…
조사단의 수장이자 스칼라의 제자인 닐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