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조사관 님,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블랭코는 닐을 비롯한 조사관들에게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김없이 설명했다.
“하….”
닐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무엇이….”
“너희들은 그걸 보고만 있었다는 건가?”
블랭코가 뜨끔하여 떠들었다.
“그것이… 너무 빠른 수법이라 말릴 틈이….”
“죽이든, 시간을 벌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쌍살도가 벌써 저만치 달아났을 테니 라폰 파티는 개죽음을 당한….”
성큼성큼 다가오는 닐.
‘내 탓을 하려는 거군.’
닐이 면전에 얼굴을 들이대고 말했다.
“난 쌍살도 보다 너 같은 놈들이 싫어. 약한 데다 겁까지 많은 녀석이 뭐 주워 먹을 것 없나 하고 이런 곳에 기웃거리는 거 말이지.”
“조사관님!”
블랭코가 이건 아니라는 듯 반박했다.
나로서는 원치 않는 행동이다.
“너, 할 말 있나?”
“없다.”
“…망할 자식. 마음에 안 들어.”
녀석이 뒤돌아서며 내게 손가락질했다.
“쌍살도에게 죽었어야 하는 건 라폰이 아니라….”
“거기까지, 닐.”
“제길… 발푸스라고 했나? 네 소원대로 외곽 경계에 배치해 주지. 영원히 내 눈에 띄지 마라.”
얼씨구.
이런 행운이?
* * *
“살벌한데… 쌍살도 녀석?”
“대수림을 떠돌고 있겠군.”
“지도도 챙겨 갔으니 스칼라가 두렵다면 대수림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지.”
글쎄…
아마도 녀석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쩔래?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 있기는 한데….”
“차?”
“응. 될 대로 되라지 차.”
“잠… 뭐?”
“일반적인 도라지 차랑은 달라. 특상품을 썼거든! 어때, 살래? 지난번 할인….”
“…됐다.”
“마음 바뀌면 언제든 말해! 하하!”
피요가 다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널브러지자 사역마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냥 쌍살도인지 뭔지 죽여버리면 됐던 거 아니야?”
“루비, 토벌대 내에서 주목받는 행동을 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그래? 근데 저 자식이 자꾸 건드리는데?”
“그를 죽인다 해도 절대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안 됩니다. 불필요한 시선을 끌 테니까요. 그리고 녀석을 묵인한 덕분에 원하던 외곽 경계로 빠질 수 있었죠. 여러모로 일이 좋게 풀렸습니다.”
“음… 대장 말이 맞아.”
라폰 파티의 죽음을 목격한 토벌대원들은, 고인의 친우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쌍살도 개자식… 애초에 토벌에 합류한 것부터가 수상했어.”
“동방 놈들은 믿을 만한 자식이 없군.”
“말은 가려 해. 여기 네가 말한 동방 놈들이 몇 있으니.”
“흠흠…”
또 다른 한쪽에선, 이번 토벌에 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우레아의 불사의 근원을 밝혀낼 생각인 모양이야.”
“그래?”
“듣기로는 협회에서 일부러 이렇게 과한 인원을 끌고 온 것도 다 그 때문이라는군. 인근 대수림을 샅샅이 조사할 생각인 것 같더라고.”
“모험가들은 아쉽게 됐어. 가을마다 큰돈 한 번 만지게 해주는 행사였는데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매년 저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건 무리라고. 우레아의 숨결에 닿은 자들이 어떻게 죽는지 못 들었어?”
“처음 듣는 얘기야.”
“넘치는 생명력으로 온몸이 부풀어서 죽는다더라. 끔찍하지?”
협회가 진심으로 임한다면, 나는 더더욱 대수림에 머물 수 없다. 그들이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건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를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것과 같으니까.
“요! 여기 따끈따끈한 배치도를 가져왔지.”
피요가 양피지를 흔들거리며 다시 다가왔다.
“그건 뭐지?”
“뭐겠어. 라폰 파티가 뒤졌으니 배치가 수정될 거 아니야? 수정된 배치야.”
“그렇군.”
스륵…
양피지를 펼쳐 배치도를 확인했다.
‘음?’
전에 비해 상당히 좋은 위치를 받게 되었다. 이거라면….
“근데… 네가 듣기엔 좀 거북한 소식이 있어.”
“…뭐지?”
“배치도 한 장이 사라졌어.”
“…뭐?”
“아마 쌍살도 혹은 녀석의 내통자가 빼돌린 거 아닌가 하는데….”
그렇다는 얘기는….
‘…이런.’
피요가 어깨를 으쓱했다.
“배치 수정을 요구했는데 묵살 당했어.”
“닐인가.”
“어, 맞아.”
쌍살도에게 배치가 노출된다고 해서 토벌대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될 만한 부분은 없었다.
노출이 되어 곤란한 건, 오직 나뿐이다.
스윽…
주변으로 눈길을 주자, 저 멀리 조사단 무리 틈바구니에서 닐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 흥.
“사춘기 소년 같군.”
“닐 말이지? 골치 아픈 걸… 저 녀석은 지 사부를 똑 닮아서 비겁한 사람을 싫어해.”
“…내가 비겁하다는 사실을 굳이 돌려 말하는 것 같은데.”
“아하하하! 그게 그렇게 들렸나? 에이, 비겁한 게 어딨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겁 주는 게 더 나쁜 행동이지.”
닐의 행동은 적절치 않았으나, 그가 날 미워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아마 내가 평범한 모험가였다면 닐의 평가에 전전긍긍했을지도.
“그보다 큰일이네… 정말 배치도를 가져간 게 쌍살도라면….”
“우레아 토벌이 시작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겠군.”
“아마 아직 대수림에 있다면 너를 죽이려 할걸? 음, 뻔해. 쌍살도의 사고방식은 알기 쉽거든. 어떻게… 도와줄까?”
“…도와준다고?”
피요가 툭 내뱉은 말이 신경 쓰였다.
쌍살도는 기습이긴 했지만 나름 유명한 라폰 파티를 말 그대로 갈아버렸다. 그런 강자와 싸우는 걸 무릅쓰겠다니?
“못할 것 없지. 대신… 공짜는 아니야. 상품을 사주면!”
“…이번엔 또 무슨 찬데.”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차. 대신 이건 좀 비싸.”
“…그보다 우리 언제부터 친구였지?”
“같이 위기도 겪고 교감도 나눈 거 아니었어?”
“…….”
“…됐어, 특별히 할인해주려고 했는데. 싫다면야… 쌍살도가 덤벼들어도 난 몰라!”
“마음이 바뀌면 말하지. 친구는… 좀 생각해보고.”
툭툭…
녀석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물러났다.
“그래, 나랑 친구 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진 않다고?”
* * *
다시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토벌대가 우레아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냐면,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저 멀리 우레아로 추정되는 뭔가를 포착할 수 있었다.
“히야… 저게 우레아….”
“스칼라는 괴물이군, 저런 괴물을 정면에서 상대한다고?”
“오우거 상대하는 거 못 봤어?”
“조사단도 하나 같이 괴물들이야.”
우레아를 앞에 두고 토벌대 최후의 휴식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비장한 표정으로 불안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오히려 태연한 내가 이상할 정도였다.
‘오히려 가장 불안해해야 하는 건 난데 말이지.’
지금은 아군처럼 보이지만, 우레아가 쓰러지자마자 이들은 적으로 뒤바뀐다. 아니, 만일 우레아가 쓰러지기 전에 사역마들을 발견한다면 그때부터 적이 될 확률이 높다.
죽음의 마라톤이 임박한 지금, 신기하게도 심장은 지나치리만큼 고요했다.
스윽…
누군가 경계의 틈을 비집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손에 주어진 건 여러 번 접힌 쪽지.
‘롬웰인가?’
– 상황이 좋지 않다. 나름의 계획은 있는 거겠지?
당연히 계획은 있다.
원작의 스토리에서도 알차게 써먹은 계획이라고.
–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이 쪽지를 다 읽으면… 그 즉시 캠프에서 벗어나라.
‘…뭐?’
– 곧장 소란을 만들어 낼 생각이다. 캠프가 휩쓸릴 확률이 높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오면 네가 계획한 것을 실행해라.
곧장 뒤돌아서 일행에게 말했다.
“모두, 이탈한다.”
“응?”
“그게 무슨…?”
“설명할 시간이 없다.”
토벌대원들의 눈을 피해 일행과 황급히 캠프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하필 피요가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숲속에서 볼일을 보고 온 모양.
“응? 단체로 오줌 누러 가? 어디 가는 거야?”
녀석에게 적당히 할 말을 고르고 있는 와중에, 상황은 급변했다.
– 끄으으으으어어어어어어어어!
쿠우우우웅…
꼼짝도 하지 않던 우레아가 발걸음을 옮기며 괴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캠프에서 비명이 터졌다.
“저, 정찰병 보고! 우레아가 무언가에 반응을 보입니다!”
…롬웰이 움직인 게 분명하다.
“추, 추가 보고! 정체불명의 괴인들이 우레아를 유인해냅니다!”
“막아라! 정찰조는 뭐 하고 있는 거냐!”
“그게….”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피요에게 말했다.
“피요.”
“으… 응?”
피요는 아마도, 상황이 변하면 적이 될 것이다. 캠프에 남겨둬 죽이는 편이 옳다.
하지만…
“…곧장 캠프로 돌아가지 말고, 산책이라도 즐기다 가지 그래.”
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인간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아… 그런 거군.’
내 행동 원리는, 인간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 오로지 대원칙, 파우스트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에 따라 움직일 뿐.
우습게도 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날 호의로 대해준 이 녀석이 여기에서 죽지 않았으면 해서 내뱉은 말이다.
많은 생명을 빼앗은 내가 누군가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크나큰 모순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원칙은 모든 모순 위에 존재한다.
파우스트가 행복하기 위해선, 뭐든 상관없다는 뜻이다. 딱히 정당할 필요도, 선할 필요도.
“하하… 그게 뭔….”
피요가 황당하다는 듯 날 쳐다보는 와중, 저 멀리 떨어진 우레아에게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마력 반응이 이어졌다.
넘치는 생명의 기운.
“제길….”
파아악-!
피요의 손목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내가 벗어난, 그러니까 우레아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정확하게 나와 피요가 있던 쪽이었다.
파아앗-!
앞으로 쓰러지듯 피요와 함께 넘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레아가 넘치는 생명의 숨결을 사용합니다.] [우레아가 주변의 생명력을 끌어모아 쏘아냅니다.] [숨결에 적중당한 대상은 체력을 회복하며 최대 체력을 초과하는 추가 회복량만큼 생명 피해를 받습니다.]면도칼이 수염을 가로질러 턱을 매끈하게 만드는 것처럼, 대수림 한 가운데가 뻥 뚫렸다.
아슬아슬하게 나와 일행은 숨결을 피할 수 있었다. 그건 피요 역시 마찬가지.
“어… 어어….”
피요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등지고 떠나며 조언했다.
“피요. 여길 떠나라, 죽을 수도 있으니.”
“…….”
캠프 쪽에서 계속 큰 고함이 들려왔다.
“전개! 전개하라! 지금부터 우레아 토벌을 시작한다!”
“토벌대를 수습한 후에 곧장 스칼라 님에게 가세하라! 반복한다! 토벌대를 수습한 후에 곧장 스칼라 님에게….”
캠프는 아비규환이었다.
적어도 토벌대의 절반에 달하는 인원이 우레아의 숨결에 휩쓸렸다.
많은 이들의 죽음.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터져나간 자들의 주검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었다.
수십이 쓸려나갔다.
별다른 대비를 할 새도 없이 그 많은 생명이 죽은 것이다.
…나는 그것이 슬프거나 괴로운가?
‘…아니.’
지금 이 상황은,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순간이니까.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이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