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6
제66화
뿌우우우우우우!
사방에서 정찰조들이 연신 신호를 울려댔다.
이동하던 도중 몇은 제거하기도 했지만, 주로 발이 빠른 자들이 맡은 역할이기에 지금에 와서는 그들을 전부 제거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뿌우우우우우!
이들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 구우우우우우!
우직…
우지지직…
애초에 모암이라는 거대한 사역마가 함께 이동하고 있었으니 멀리서도 우리 위치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좋아! 아직은 따라붙지 못하고 있다!”
다리가 불편해 모암에 올라타 이동 중인 쟈킴이 그나마 행렬에서 가장 시야가 좋았다.
“하아… 하아….”
벌써 빠르게 이동한 지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진즉에 숨이 차올랐지만, 전력 질주를 한 것은 아니라 쓰러지진 않았다.
여기 있는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대수림에 인간의 기척이 가득하다.
잡히면, 죽거나 고통받다 죽는다.
단순한 공식.
“정확한 계획은?”
안 그래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던 차에, 아몬이 물어왔다.
난 아몬의 질문에 알고 있는 것과 예상하는 것, 그리고 변수들까지도 전부 얘기했다. 내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요는… 대수림을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제국을 벗어나 소왕국 연합 쪽의 국경을 넘는다는 것인가.”
깔끔한 정리.
“맞다.”
새로운 거처에 대한 정보가 적힌 지도를 아몬에게도 건넸다.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몬이 말했다.
“확실히… 여기까지라면 저들도 못 쫓아오겠구나.”
“우리는 거기서 종적을 감추고 다시 힘을 키운다.”
“좋은 생각이니라. 계획에 허술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만… 예를 들면….”
삐이이이이익-
다시 한번 정찰조의 신호와 함께, 나무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하하, 잡았다 이 쥐새끼들…!”
토벌대원 중 하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아마도 정찰조에게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떨어지는 동시에 눈이 사백안이 될 정도로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푸화아아아악-!
“페넥스!”
페넥스가 토벌대원을 머리부터 반으로 갈라버렸다.
다행히 이건 단순한 근력과 기술만으로 이뤄낸 성과지만, 이 이상 가다가는 그녀가 악마의 힘을 끄집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바로 이런 부분이 허술하다는 거지.”
“…….”
“누군가는 몰려드는 날파리를 막아야 한다.”
아몬과 페넥스는 이 역할을 맡을 수 없다.
이대로 이탈한다면, 스칼라가 우리를 추격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아몬과 페넥스의 정체까지 드러난다면….
그때는 제국이 추격해올 것이다.
제국을 감당할 수 있는 단일 세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너무 늦지 않도록.
“아몬.”
“먼저 가라는 얘기겠지?”
“그래.”
“알겠다.”
이곳에서 미래로 향하는 길목을 지켜야 하는 건 나여야만 한다.
“염려할까 봐 알려주마. 마음 놓고 싸워도 좋다.”
“뭐…?”
전력을 다하는 건 코어에 무리가 갈 거라 판단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
“상관없다. 어차피 이대로 무탈하게 넘어가더라도 도착하기 전에 네 코어는 기운이 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난 죽는 건가?”
“내게 방법이 있다.”
역시나 아몬이다.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만 있어라. 내 앞에 기어서라도 도착해.”
그녀가 뒤돌아서 행렬에 합류하며 말했다.
“네가 내일을 살 수 있게 해주마.”
점점 느려지는 내 속도에, 루비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나도 남….”
고개를 젓고 그녀에게 말했다.
“행렬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루비, 행렬에 그 누구도 접근하게 하지 마.”
점점 그녀가 멀어진다.
“응…!”
행렬은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스스스스스…
나뭇잎이 휘몰아친다.
파파팟-!
기척 세 개가 동시에 스쳐 지나간다. 바로 덤벼들 줄 알았지만, 놈들은 마치 날 못 본 것처럼 하고 지나쳤다.
‘어째서지? …아.’
팔에 맨 붉은 천.
토벌대원의 증표 때문에 그들에겐 아군으로 보였을지도.
이대로 저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처리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저들은 우연히 가까이 있었을 뿐, 행렬을 멈춰 세울 만큼 강하지 않다. 저 정도는 루비가 우습게 처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려야 하는 건….
파아앗-!
파아앗-!
느껴지는 기척이 다섯으로 늘어났을 때, 감지해 내는 이질감.
‘이 녀석은 안 돼!’
파아아앗-!
나무로 가려진 곳을 검으로 노렸다.
푸화아아아악…
“어… 어억….”
아군에게 불시에 기습당할 줄은 몰랐던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는 녀석.
삐이이이이이-!
정찰조의 신호.
이어 떨어져 내리는 세 명의 토벌대.
“이건 뭐 하는 새끼야?”
“이 자식, 그놈 아니야?”
움찔-!
셋 중 한 명이, 내가 방금 죽인 시체를 발견했다.
“다들 조심해, 이….”
파아아앙-!
걸음을 박차 가장 조심스러워 보이는 녀석에게 접근했다.
“읏…!”
녀석이 눈을 깜빡였다.
전투에 숙련된 모험가가 아니다.
푸화아아아악-!
가슴을 반으로 가르고 다른 두 녀석에게 곧장 몸을 돌렸다.
“미, 미친!”
“뭐 하는….”
차아앙-!
스릉-
각자 병장기를 허리춤에서 뽑아들었다.
푸화아아아악-!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녀석들의 목에서 피분수가 일었다.
쿠우웅-!
쿠웅!
셋.
‘아니… 넷인가?’
1분도 안 되어 내 손으로 목숨을 빼앗은 자의 수다.
– 큭… 크하하하! 완전 애송이였잖아? 너 사람 죽여본 적… 없는 거지?
– 제 맘대로 칼도 휘두르지 못하는 놈이 감히 내 앞을 막으려 드느냐!
전부 봄에 내게 죽었던 자들이 했던 말이다.
촤르륵…
호수에 달라붙은 피를 털며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어설펐던 내게 죽어간 자들이 지금 나를 보면, 경악할지도.
타아아아아아앙-!
총성과도 같은 폭음.
파아앗-!
허리를 뒤틀어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했다.
쒜에엑…
콰지이이익!
콰지지지지직-!
나무 한 그루를 뚫고 지나간 것도 모자라, 뒤이어 나무 한 그루를 더 쓰러트리는 무언가.
‘…화살인가.’
[제르만이 소란스러운 저격을 사용합니다.] [마력을 실은 화살을 발사해 공격력의 210%의 물리 피해를 줍니다.] [모든 피해를 줄 때까지 관통합니다.]“휘유… 빗나갔나?”
숲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 정도 파괴력을 가진 화살을 쏘아낼 녀석은…
‘…트롤 사냥꾼 제르만.’
출발 전에 눈에 익혀뒀던 녀석이다.
경계할 만한 대상이었으니.
‘제거한다!’
파아아아아앗-!
녀석이 다시 화살을 쏘아내기 전에 정면으로 밀어닥쳤다.
“큭… 진정하라고, 어이!”
커어어어어엉-!
측면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존재. 그 덩치가 흉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사람이 아니라 사냥개였다.
단박에 내 목을 물어뜯으려 하는걸, 팔꿈치를 휘둘러 짐승의 가슴팍에 쑤셔 박았다.
콰지이이익-!
끼이이이잉…
“레비! 이런 개자식이!”
괴물 같은 체격이었지만, 파우스트는 병기로 태어난 자다. 그 한 번으로 사냥개의 숨통이 끊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저기다! 놈이 제르만을 노리고 있어!”
“찾았다!”
[머피가 마법 탄환을 사용합니다.] [시야에 있는 대상에게 따라붙는 마력 투사체를 발사합니다.] [탄환은 마력에 기반한 물리 피해를 줍니다.]투두두둣-!
매직 미사일이라고도 불리는 기술.
하급 마법사들이 주력으로 사용한다.
위협이 될 만한 자는 아니다. 다만, 녀석의 파티원이 우르르 몰려오는 게 확인되었다.
파아아앗-!
그 즉시 나무 위로 몸을 숨겼다.
살육전은 토벌과는 다르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자와 이해하지 못한 자의 전투 방식 역시도.
나는 생각한다.
적도 생각한다.
당연한 이치다.
“어딜 도망가려고!”
파아앗!
파티의 전위가 튀어 올라 나와 눈을 맞췄다. 가장 멍청한 자다, 이 녀석은.
“안 돼! 혼자 올라가면….”
푸화아아악-!
“꺽….”
쿠우웅-!
목이 베인 채로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녀석.
“나무 채로 불태워주마!”
[머피가 화염구를 사용합니다.] [화염으로 뒤덮인 마력 구체를 발사합니다.]화르르륵…!
불타는 화염구가 빽빽한 나뭇잎을 뚫고 어딘가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저… 저 멍청이가!”
마법사의 행동이 큰 화를 불러왔다.
화르르륵…
불이 인근으로 옮겨붙으며 녀석들이 있는 곳에 불씨가 마치 비처럼 흩날렸다.
“콜록….”
연기를 직접적으로 마시진 않지만, 땅으로 떨어진 낙엽에서도 불이 일어나 시야를 가렸다.
‘지금!’
파아앗-!
나무 밑으로 떨어지며 트롤 사냥꾼 제르만의 목을 노렸다.
역시나 자신이 노려질 걸 알고 있었던 녀석. 정확한 타이밍으로 떨어지는 나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파아아아앙-!
녀석이 간과한 것은, 본인의 장기가 내게 먹혀들 거라고 오판한 것.
콰아아아앙-!
“뭔….”
호수가 녀석의 날아오는 화살을 박살 내며 밑으로 그어졌다.
서걱-!
파괴력에 비해 작은 소음으로 그친 참격. 제르만의 머리가 좌우로 갈라졌다.
파팟-!
“컥…!”
연기와 불꽃 사이로 단검을 쏘아내 두리번거리는 다른 녀석을 쓰러트리고,
파아앙-!
화르르륵!
불길을 뚫고 다른 두 녀석까지.
“조….”
푸화아악…
푸욱…
쿠우웅…
뒤로 넘어가는 토벌대원.
후두둑…
피를 터는 사이, 불청객이 불길과 연기 사이로 불청객이 나타났다.
“발푸스… 이게 대체….”
블랭코다.
“대체 무슨 짓을!”
피요와 마찬가지로, 짧은 토벌 일정 동안 어울렸던 사내다. 그가 우레아의 숨결에 휩쓸려 죽지 않았기에 이곳에 나타날 수 있었겠지.
“도망쳐라, 이곳에서.”
“…뭐?”
“이곳에 접근하는 자들은 모두 죽는다.”
“…….”
블랭코는 내가 방금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내 앞길을 막는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
난 죽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일 뿐.
“…여기가 아직 내가 죽을 자리는 아닌가 보군.”
파아앗-!
블랭코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오랜 세월 노장이라 불리며 살아남은 이유.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다.
후우…
억누른 한숨이 마음속으로나마 쉬어졌다.
과연, 최선의 판단을 해주었다.
토벌대는 무슨 정의의 조직이 아니다.
모험가의 대의에 악의 근절은 없다.
나도, 블랭코도 만족할 만한 마무리다. 이다음에 있을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것에.
휘리릭-!
콰지이이이이이익!
스쳐 지나가서 나무에 박히는 할버드.
으직…
그 주인인 자가 다시금 박힌 할버드를 뽑아냈다.
“…여기까지다.”
에피소드 5막 최종장의 보스인 조사단.
“이 모든 게… 네놈이 꾸민 짓이었다?”
그 조사단을 이끌었던 자.
조사단장 닐이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가 주변의 시체들을 둘러보다 답했다.
“설득력이 없는 말은 믿지 않아.”
“…뭐, 일부라도 맞다고 한다면?”
후우우웅…
할버드가 진동했다.
“전부 토해낼 때까지, 죽여주마.”
“…….”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너 같은 녀석은.”
이길 수 있을까?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철컥…
호수에 손을 올렸다.
이겨야만 한다.
이겨야… 내일을 볼 수 있다.
스릉-
휘오오오…
마치 먹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검은 기운이 검집에서 검과 함께 빠져나왔다.
“무슨….”
호수가 감추고 있던, 진짜 힘이 풀려나왔다.
“나도 네가 싫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