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7
제67화
휘오오오오오…
장대한 어둠이 주변을 감싼다.
“역시, 얼뜨기답게 지저분한 힘을 다루는구나.”
말은 이렇게 내뱉지만 긴장한 게 다 보인다, 닐.
[파우스트의 강점: 탐욕이 발동합니다.] [파우스트는 모든 악마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는 실패작입니다. 악마의 무기를 사용할 때 가끔 반발이 찾아옵니다.]후웅-!
호수를 한번 휘둘러 자세를 취했다.
오랜만에 진정한 의미로 뽑아보는 악마 크로셀의 검.
스으으으으…
유려하며, 아름답다.
동시에 심오하며 불길하다.
서서히, 호수가 크로셀의 환상을 현실에 투영했다.
[파우스트가 구덩이를 사용합니다.] [구덩이는 검은 호수의 형상을 가집니다.] [구덩이는 매우 넓은 영역을 장악하며, 영역에 놓인 적의 시야 범위를 제한하며 최대 5명의 대상으로 하여 능력치의 15%를 빼앗아 옵니다.] [구덩이의 영역에 놓인 대상은 모든 체력 재생과 치유량이 50% 감소합니다.] [구덩이는 전투 동안 유지되며, 사용자의 위치를 기준으로 중심 범위를 옮겨갑니다.]찌르르하며 충만한 힘이 차올랐다.
고작 15%의 능력치를 빼앗은 것만으로도 이런 힘이라니… 닐은 적은 나이에도 수련을 착실히 쌓은 게 분명했다.
‘괜히 5막의 보스인 조사단 중 수위로 꼽히는 게 아니지.’
1막의 보스인 칼 쿠르소보다도 개인의 능력치는 위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칼 쿠르소만큼 풍부한 전투 경험이 있을지는… 확인해봐야 하겠지.
“사특하다, 사특해. 넌 모험가가 아니지?”
“궁금한 것도 많군.”
“어둠 속에 숨어 기회만 노리는 녀석이 모험가라면, 실망할 것 같아서 말이야.”
후우웅-!
녀석이 제 몸집과 비슷한 할버드를 빙빙 돌려 자세를 잡는다.
‘무투계. 난타전은 확실하지 않으면 피하고 싶군.’
제 스승인 스칼라를 쏙 빼닮아서 힘이 곰 같고 움직임은 나무를 타는 표범과 닮았다.
녀석의 조사단이 나타나는 지점인 에피소드 5 최종막은, 유저가 과금하지 않았다면 최초로 벽에 가로막히는 지점이다. 조사관 모두가 강한 것은 물론이고, 닐을 선봉으로 한 조사단 파티에게 일반적인 사역마들은 전부 갈려 나갔으니까.
플레이했을 땐, 현질 박치기로 스펙업을 해 밀었던 걸로 기억한다. 현질할 수 없는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지만.
녀석이 몸을 빼기 어려워 단신으로 이곳에 온 점, 이곳이 던전이 아닌 외부인 점.
전부 내가 이용해야만 하는 조건들이다.
피이이잇-!
[파우스트가 사무치는 부패를 사용합니다.] [사무치는 부패는 혹한을 응축한 기운입니다.] [사무치는 부패에 적중당한 주변부는 모든 속도가 10% 저하됩니다.] [사무치는 부패는 중첩됩니다.] [사무치는 부패의 중첩이 동상을 일으키는 수준에 도달하면 괴사 혹은 결손이 진행됩니다.] [동상을 일으키는 중첩 횟수는 대상의 냉기 및 독 저항에 따라 다릅니다.]전투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
액체 형태의 사무치는 부패를 쏘아냈다. 녀석은 제한된 시야에도 반응할 수 있을까?
“으음!”
티이잉-!
할버드에 튕겨 나오는 부패.
녀석의 실력은 진짜다.
의심을 거둔다. 실력자와의 목숨을 건 대결이다.
“하아아아!”
닐이 정확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날려 보내는 파동. 일전에 한번 스칼라가 사용했던 기술이다.
[닐이 흔들다리 스윙을 사용합니다.] [물결치듯 퍼지는 방사형 파동이 전방으로 쏘아집니다.] [파동은 공격력의 230%만큼 물리 피해를 주며 물결이 중첩되는 지점엔 공격력의 280%의 물리 피해를 줍니다.]콰지지지지직-!
걸리는 나무들을 송두리째 베어내는 힘. 당연하게도 거리가 멀었으니 이렇게 큰 기술엔 당해주지 않는다.
파아아앗-!
이전, 칼 쿠르소와의 싸움과는 다르게 녀석에게 붙어 있는 순간은 극히 짧을 것이다.
이곳이 장애물로 가득한 숲이기 때문이다.
사방이 노출된 심처와는 달리, 이곳에선 적이 먼 거리에 있는 나를 노릴 수단이 극히 적다.
휘오오오…
손에 가득, 부패의 힘을 담았다.
피유우우우!
부패의 힘을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연달아 쏘아냈다.
“…….”
감각에 집중하는 닐.
[파우스트가 실체 없는 악을 사용합니다.] [사무치는 한파의 형질을 변환할 수 있습니다.] [구덩이 안에서는 변환 속도와 변환할 수 있는 양이 증가합니다.]팅-!
티이이잉!
부패의 힘이 나무에 부딪히자 각도를 바꾸어 튕겨 나아갔다.
팅-!
티이이잉-!
티이잉!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장애물과 부딪힐수록 닐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팅-!
동시에 마지막 장애물에 부딪힌 후 제자리에 멈춰 있던 닐에게 향했다.
여러 방향에서 쏘아지는 공격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집중포화를 가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나도 모른다.
파우스트이기에 가능할 뿐.
부패의 투사체 역시, 마치 수족처럼 어떻게 움직일지 뻔히 보였다.
“흡!”
파아아앙-!
닐은 할버드를 횡으로 크게 휘둘러 세 부패를 모두 쳐내려 했으나, 하나는 쳐내지 못했다.
녀석의 왼쪽 어깨에, 부패가 스며든다. 아직은 그저, 움직임이 조금 둔해진 정도.
아직 유효타를 먹이진 못했지만, 꾸준히 녀석을….
쿠웅…
갑자기 찾아온 심장이 마치 내려앉는 감각.
‘…그런가.’
호수의 힘을 남발하면, 그만큼 코어와 연결된 내 생명력이 줄어든다. 나는 지금 마력이 아닌 생명력으로 전투를 펼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닐이 품에 감춰뒀던 호각을 불었다.
“이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나?”
“소음일 뿐인데.”
“조사관의 구원 요청이다. 조사관들끼리만 알아듣는 소리지.”
“…….”
“이 영역… 소리를 가두진 못하지?”
눈치챌 만한 사실이다.
“앞이… 앞이 안 보여! 들어오지 마라!”
“진입하지 마! 나, 날 꺼내줘!”
구덩이에 들어오려는 모험가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로써 그들은 미약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만약 녀석들이 전열을 정비해 구덩이에 들어온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어려워지겠지.
“어이! 이 시커먼 영역에 들어오지 마라! 조사관들만 진입하게 해!”
닐은 자신만만하게 내가 없는 허공을 보며 웃었다.
“이곳에서 날 붙잡아두면 가만히 죽어줄 줄 알았나? 멍청한 놈.”
“이렇게 시끄러운 녀석인 줄 알았다면 대화도 나누지 않았을 텐데.”
“내 구원을 들은 조사관들이 이곳에 당도하겠지. 아니… 그들이 설령 늦더라도 스승님께서 우레아를 쓰러트리고 나타나실 거다. 스승님이 나타나면… 너흰 모두 죽은 목숨이야.”
“그럼… 그 전에 널 죽여야겠군.”
“하, 가능할 거라 보냐? 머저리 새끼….”
호흡을 가다듬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번 일격에 녀석을 죽일 것이다.
부패의 기운도 코어의 기운을 갉아먹는 데 일조하지만, 이 넓은 범위에 구덩이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부담이 컸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
강력한 일격?
아니, 호수와는 맞지 않다.
치명적이고, 음습한 일격이 필요하다. 단 한 번에 녀석을 죽음으로 몰아붙일 연계가.
“좋아.”
“뭐가 좋다는 거지?”
“이번이 내 전력이다. 이걸 막아내면 네 승리다.”
“큭… 푸하하하!”
“막지 못하면 죽어.”
“…….”
녀석이 웃음을 뚝 그쳤다.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겠지.
휘오오오오오…
퓨퓨퓻-!
퓨퓨퓻-!
일전과 마찬가지로 부패를 여러 방향으로 쏘아냈다. 첫 3발은 뒤로, 다음 3발은 닐의 주변 나무들로.
한순간에 뭉텅,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울컥… 하고 뭔가 치솟으려 했지만, 그것을 억눌렀다.
티이잉-!
팅!
나무에 튕기며 다시 한번 공격을 준비하는 부패. 그러나, 녀석도 한 번 경험한 패턴이니 이전보다 손쉬운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흐으읍….”
할버드를 말아쥐고는…
‘지금.’
콰지이이익-!
콰지이익!
“…뭐?”
녀석과 근접한 나무 뒤에서 바로 쏘아낸 부패가 나무를 뚫고 녀석에게 날아갔다.
매우 빠른 속도로, 강한 기운을 담았기에 사방에서 모여드는 부패보다 더 먼저 녀석에게 도착할 터.
놈은 선택해야 한다.
자신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드는 3개의 부패를 감당하든지, 그것들보다 약간 빠르게 도착할 2개의 부패를 감당하든지.
어느 쪽이든, 무거운 양손 병기인 할버드로는 전부 쳐낼 수 없으니 선택해야만 했다.
“큭큭… 이래서 단순한 녀석은….”
후우우우웅…
할버드가 진동했다.
“전부 베어버리면 그뿐이다!”
[닐이 강철의 파문을 사용합니다.] [참격이 원 형태로 퍼져나가며 준비 동작이 필요합니다.] [참격은 공격력의 180%만큼 물리 피해를 줍니다.]콰지지지지지지지직-!
참격에 휩쓸려 사라지는 부패의 기운. 그에 더해 주변의 나무가 쑥대밭이 되며 모두 쓸려나갔다.
아예 나무 뒤에 숨어서 공격하는 행동 자체도 봉쇄해버릴 예정이었던 모양.
닐은 이 한수로 무거운 할버드로는 모든 투사체를 쳐낼 수 없을 거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이용해 전투의 우위에 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키하하! 어디 숨….”
녀석은 근방의 나무를 베어 넘기며 내 위치를 제 맘대로 추측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참격과 함께 상상 속의 내 위치를 참격 바깥으로 밀어냈겠지.
후우웅…
퓨퓻-!
나는 녀석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구덩이에서의 시야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녀석은, 나무를 베었으니 나무는 없다고 제멋대로 착각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참격이 휩쓸고 간 그 찰나에 이미 나무 위에 있던 난, 참격의 여파에서도 자유로웠고 도약하며 몇 초의 시간 역시 벌 수 있었다.
‘나무를 베었으니 위는 안전해’라고 멋대로 착각해버린 게, 녀석의 패착이다.
피핏…
[사무치는 부패가 동상 기준치에 도달합니다.] [괴사를 일으킵니다.]적중한 곳은 일전에 마킹해둔 녀석의 왼쪽 어깨.
쩌저적…
“크아아아아악-!”
푸스스스…
녀석의 왼쪽 어깨가 썩어 사라지며 외팔이가 되었다.
한 팔로는 할버드를 다룰 수 없다.
그런데…
빠지이익-!
녀석의 목걸이가 갑자기 부숴지며 엄청난 기운이 솟구쳤다.
[늑대의 비호가 발동합니다.] [착용자의 신체 능력이 일순간 증폭됩니다.]말하자면, 호신부다.
스칼라가 제자를 걱정해 선물한, 애지중지하는 징표.
파아아악-!
놈이 할버드를 한 손으로 잡아챘다.
“죽이겠다! 노오오오옴!”
[닐이 위험한 존재감을 사용합니다.] [대상이 근거리에 존재할 때, 대상을 끌어당깁니다.]후우웅…
마치 중력처럼 녀석에게 빨려든다.
난 호수를 앞으로 향해 녀석을 내려찍으려 하고, 닐은 한 팔로 할버드를 하늘로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아아앙-!
후우우우웅-!
바람이 휘몰아칠 정도의 힘 대 힘의 충격.
울컥…
“푸허어억….”
참고 있던 피가 토해졌다.
닐이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얼굴이, 곧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피피핏-!
처음 발출한 6발의 부패 중, 뒤로 쏘아낸 3발이 마침내 되돌아왔다. 딱 이 시점에서 녀석이 죽지 않았다면 필요할 거라 판단했었다.
“이….”
녀석은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할 것이다. 뒤돌아 날아오는 3발의 부패를 쳐내든, 내 검을 상대하든.
그리고 그 선택이 의미가 없음도 이때쯤엔 알았을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죽는다.
“으아아아아아!”
닐이 괴성을 지르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타아아앙-!
할버드를 휘둘러 나와의 거리를 벌린 것. 그대로 뒤돌아 부패를 쳐낼 생각이다.
당연히, 그렇게 둘 순 없다.
파아아앗-!
최대한 자세를 다잡고 곧장 녀석에게 붙었다.
휘이익…
…인정할 만했다.
녀석은 최후의, 최후의 순간까지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부패를 쳐내는 대신, 허리를 한껏 뒤틀어 3발의 부패를 모두 피해냈다. 그리고 그 3발의 부패는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부패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공허하게 풀려버린 눈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는 걸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타다당-!
부패를 일시에 후려쳐 녀석의 머리로 튕겨냈다.
퍼퍼퍽-!
[사무치는 부패가 동상 기준치에 도달합니다.] [괴사를 일으킵니다.]“어… 으어….”
파사삭…
녀석의 머리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내 최선이었다.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이 계속 나왔다.
스르륵…
구덩이를 거두자, 저 멀리 모험가들이 보였다.
“저, 저건….”
“조사관! 조사관이다!”
위험한 존재감의 4인이 시야에 잡혔다.
“닐… 니이이이이일!”
“안 돼에에에에!”
“스, 스칼라 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닐과 함께 있던 조사관들….
뛸 수 있을까?
당장엔 무리다.
그럼, 녀석들을 여기서 상대한다고?
제정신인가?
어떻게… 어떻게 해야….
“밥들 잘 먹고 애먼 데 힘들 빼시는군.”
저벅…
저벅…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쓴 사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내 앞에 섰다.
저 중 한 사람을, 난 알고 있다.
녀석이 조용히 내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도망쳐라, 파우스트. 여기서 시간을 벌어주마.”
에피소드 3막의 보스.
무두장이 롬웰이다.
녀석이… 말했다.
“얼간이 조사관들의 머리 가죽은 얼마나 매끈할지 궁금하구나! 크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