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너….”
“작별이다. 앞으론 볼 일 없겠지.”
“…….”
“나도 이 모든 일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묻지도 마라.”
롬웰은 거래 이상으로 나를 위해 움직여줬다. 아마도 이유는… 레온, 썩은 뿌리의 붕괴를 경고한 그 남자 때문이겠지.
“어서 가라! 녀석들을 여기서 막고 얼른 이쪽도 물러나야 하니까!”
끄덕…
달려야 한다.
스윽…
타아아앗-!
“거기 서!”
“닐을 죽이고 무사할 줄 아느냐!”
후우우웅-!
나무를 박차고 날 듯이 돌진해오는 조사관.
콰지지지지직-!
롬웰이 건틀릿으로 녀석의 대검을 잡아챘다.
푸슉-!
건틀릿에서 5개의 날로 이루어진 클로가 솟구쳤다.
“세 보이는 녀석만 막아! 약한 놈들은 저 녀석을 죽일 수 없으니까!”
롬웰의 말을 뒤로 한 채, 내달렸다.
에피소드 5막의 보스 중 수좌를 쓰러트리고, 에피소드 3막의 보스에게 구원받는다. 점점 미래는 알 수 없어져만 간다.
“허억… 허억….”
전장을 뒤로 한 채 도주하는 나에겐 사치스러운, 상쾌한 공기가 정신을 일깨웠다.
“쫓아라!”
“저기 있다!”
뒤에서 추격해 온 토벌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거리가 있지만, 이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히겠지.
‘계획의 절반 이상 왔다….’
품에서 지도를 꺼내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선명하게 그어진 교각 표시.
이곳, 대수림에는 오래전 버려진 인간의 문명이 있다.
대수림은 미지의 마경이며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지형이 아닌가? 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다고 하겠지만 그 안에 인간의 문명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리우디라 인근의 대수림은 대수림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극동 위치의 표피층이다. 즉, 남북으로는 오리의 구운 껍질처럼 얇디얇은 지형이라는 얘기다.
대수림의 중심부는 서쪽에 있기에 서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북쪽 혹은 북서쪽으로 가로지르려 한다면 그리 오랜 날을 소모하지 않고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교각과 인간의 문명 흔적은 무슨 소리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텐데 이건 대수림의 확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대수림 중심부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생명의 힘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처음에는 리우디라처럼 대수림의 외곽에 자리했던 마을이, 이 생명력의 힘에 휩쓸렸다.
결국 왕국 연합의 국민들은 마을을 포기하고 물러갈 수밖에 없었고 대수림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게 된 것. 교각은 그 마을과 왕국 연합 간의 물자가 오고 갈 수 있게 했던 과거의 흔적이었고.
즉, 나와 던전의 사역마들이 향하는 곳은 과거 왕국 연합의 영토였던 곳이다.
‘교각을 넘어간 후에, 건너편에서 무너트리면 추격대가 쫓아올 방법은 없다.’
기나긴 망명, 혹은 외교적 협조를 통해야만 내가 머물 새 보금자리까지 쫓을 수 있겠지만 어지간하면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거기까지만 간다면….’
그러니까…
“쿨럭… 하아….”
피가 섞인 잔기침.
“이 근방이 분명해!”
“찾아야 해! 스칼라의 제자를 죽였으니 생포해 간다면 막대한 보답을 얻을 거야!”
“놈은 지쳤어요!”
모험가들이 벌써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롬웰이 저들을 막지 못한 건 아닐 것이다.
만약 롬웰이 실패했다면, 이곳에 쫓아온 게 부족한 실력의 토벌대원이 아니라 조사단이었을 테니까.
‘여기서 한번… 뿌리쳐야 한다.’
후우…
호수의 힘을 쓰는 건 무리, 오로지 움직임만으로 상대한다.
화르륵…
동그란 화염구를 공중에 떠올린 채로 다가오는 마법사와 사냥꾼, 그리고 전사.
모두 3명.
마법을 저렇게 눈에 띄게 준비하는 행동은, 본인의 실력이 미숙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준비 과정 없이 곧장 일격을 가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장점이라 초보 마법사들이 주로 그렇게 한다고.
‘마법사부터?’
아니, 기습을 할 거라면 다른 녀석부터다. 마법사는 첫 일격만 받아내면 다음 공격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슥-
품에서 단검을 꺼내고, 바닥에서 돌을 주웠다. 기습은 혼란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 커어어엉! 커어엉!
사냥꾼의 개가 짖어댔다.
“피 냄새를 맡았다! 이곳에….”
쒜에에엑-!
푸우욱!
“컥….”
사냥꾼의 머리에 박히는 단검.
“어디냐!”
파아아아악-!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돌을 던져 나무를 맞췄다.
“주, 죽어어어!”
화르르륵…
콰아아아앙-!
화염구가 나무 하나를 통째로 폭파했다. 그리고 이 광경은 그들에게서 지나친 주의를 끌어냈고.
푸우우우욱-!
“어… 어어억… 언…제….”
그사이 전사의 뒤에서 나타나 녀석의 등에서 가슴을 꿰뚫었다.
풀썩…
“자, 잠깐… 살려줘요… 난….”
마법사가 울며 물러섰다.
파지지직…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녀의 손에 모이고 있는 과도한 마력이 곧 전격을 토해낼 거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서걱-
툭…
여인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두둑…
이제는 항상 하던 일인 것처럼 호수에 들러붙은 피와 기름을 털어냈다. 온갖 악을 그러모아 완성한 호수에, 몇 방울의 악을 더 떨어트렸다.
쒜에에에엑-!
파아아악!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화살이 박혔다.
“저기서 소리가 들렸어! 저기다!”
달려야 한다.
더는 도착을 늦출 수 없다.
파아앗-!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말단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달리는 행위 역시 관성적으로 이루고 있었다.
파아악-!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잡았다! 이 망할….”
푸화아아아악-!
휙- 하고 뒤돌며 검을 뿌렸다.
그리고 잠시 시야가 흐려졌다.
푸화아아아악…
귓가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아아아악…!”
푸화아아악!
…서걱-!
“이… 이 괴물….”
…뭐지?
감았던 눈을 뜬 것처럼, 시야가 흐릿했다.
주변에는 열이 넘는 시체.
‘몇 명이나… 죽인 거지?’
일단 눈앞에 엉덩방아를 찧은 토벌대원의 가슴에 검을 밀어 넣었다.
푸우우우욱…
“으으윽….”
구역질이 난다.
토할 것 같아.
“저기! 저기예요!”
“찾았다!”
그래… 또 오는 거냐?
“우웁….”
아니, 이대로는 무리다… 바로 전투를 치렀다간 쓰러져서 죽게 될 거다. 어딘가 몸을 숨길 만한….
큰 계곡과 이어진, 절벽 쪽의 바위.
저곳이다.
서둘러 녀석들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위치로 몸을 숨겼다.
‘으윽….’
정신을 잠시 놓친 사이에, 몸에 상처가 생겼다. 다행히 출혈이 심하진 않았다.
뽕…
포션을 상처 부위에 흘렸다.
치이이이이…
‘으으으… 으아아아악!’
입을 비집고 나오려는 비명을 손으로 막았다.
“놈은 지쳤을 거야… 상처도 입었을 거고.”
“무시무시한 녀석이에요… 토벌대원들을 그만큼이나 살해하다니….”
“방심하지 마, 언제든….”
녀석들이 날 지나쳐 가는 게 느껴졌다. 말소리도 그만큼 멀어지는 게…
‘…아니.’
지나간 척, 다시 기척을 죽이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위치를 들켰나? 어째서… 아, 그렇군.’
정신이 몽롱한 탓에, 핏자국을 놓쳤을 수도 있다.
스윽…
다시 호수로 손을 가져갔다.
– 끄으으으…
순간,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 끄으으으아아아아아아!
이것은 징조.
한 번, 느껴본 적 있던.
콰아아아아앙-!
우레아가 무너졌다.
스칼라가 마침내, 그의 곁에 남은 조사관들과 함께 가을의 괴수를 쓰러트렸다.
여기까지도, 예측한 바다.
다만…
[우레아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발악합니다.] [우레아가 넘치는 생명의 숨결을 사용합니다.] [우레아가 주변의 생명력을 끌어모아 쏘아냅니다.] [숨결에 적중당한 대상은 체력을 회복하며 최대 체력을 초과하는 추가 회복량만큼 생명 피해를 받습니다.]쓰러진 우레아의 고개가, 이쪽을 향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뛰, 뛰어!.”
“늦었어요! 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을의 괴수가 남긴 마지막 숨.
엄청난 힘을 동반한 숨결이 토벌대원들이 있는 곳을 휩쓸었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삐이이이이이이-!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파아악-!
무너지는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내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콰직…!
손이 절벽에 위태롭게 자라난 나무에 간신히 닿았다.
“으으으윽….”
풀썩…
간신히 절벽을 올라와 주변을 바라봤다.
“…….”
토벌대원들의 사체는 흔적도 없었다.
“…빌어먹을.”
우레아가 남긴 숨결로 인해, 교각으로 향하는 길이 끊어졌다. 이렇게 되면 먼 길을 빙 돌아가야 한다.
‘버틸 수 있을까?’
목적지까지 도착할 때까지, 내 몸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레아가 토벌되었다.’
녀석이 올 거다.
외눈박이 늑대 스칼라가.
‘롬웰도 이쯤 되면 퇴각했을 거야. 이제부터는….’
뒤쫓아올 스칼라보다 먼저 교각에 도착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아니, 스칼라가 아닌 조사단만 하더라도 대응이 불가능했다.
파아아앗-!
달려야 했다.
쉴새 없이 발을 놀려야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허억… 허억….”
솔직히 말하자면 더는, 무리다.
‘도착할 수 있을까?’
점점 뿌예지는 시야와 심장을 토해낼 것 같은 호흡.
‘가야만 해, 나는….’
만약 살아남는다면, 이날을 평생 기억할 것만 같다. 이토록 괴롭고 힘든 날이 두 번 다시 올 리 없을 테니까.
“하아… 하아….”
얼마나… 달렸지?
녀석들에게서 벗어났나?
시야가, 벽으로 가로막힌다.
털썩…
‘벽이 아니라… 바닥이구나….’
더는 움직일 수 없다.
‘죽는… 건가?’
죽어도 상관없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살고 싶다.
살아서 승아가 만든 세계가 어떻게 완결지어지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난….’
–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만 있어라. 내 앞에 기어서라도 도착해.
정신은 흐릿해져 갔지만, 아몬과 마지막으로 나눈 말만큼은 기억이 났다.
꿈틀…
기어서라도 난, 약속 장소에 가야 한다.
바스락…
‘…이런.’
불길한 기척이 들려왔다.
‘내가 놓친 토벌대원이 있었나?’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방금 들려온 기척이 내 진행 방향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찾았다.”
“이곳에 계셨군.”
익숙한 목소리.
‘…다행이다.’
안도감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쳤다.
* * *
으으윽…
규칙적인 흔들림에, 정신을 차렸다.
“…빌.”
“깨어나셨습니까?”
“어떻게 된 것이냐.”
난 지금, 빌의 등에 업힌 채로 이동하고 있었다.
“행렬을 이탈해 되돌아온 것뿐입니다. 아무래도 불길한 광경을 목격해서….”
우레아의 최후를 그들도 본 것이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의 판단이다.
“모리는…?”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야 했습니다.”
“뭐?”
시간을 벌다니… 무슨….
“말을 아끼셔야 합니다, 파우스트 님. 출혈이 심하십니다. 서둘러….”
상처가 다시 터진 모양이다.
상처 부위에 압박을 다시 가했다.
‘으윽….’
모리가… 날 위해 시간을….
“모리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니, 어떻게든 살아올 겁니다.”
“목적지는 일러줬나?”
“…….”
빌은 모리에게, 우리가 갈 곳을 말하지 않았다. 들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모리는 죽으러 간 것이다.
돌아올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혹시라도 적에게 생포 당하는 사태를 가정해 적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겠다는 의지.
나는 모리를 동정해야 할까?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화를 내야 할까?
아니, 이젠 최선의 답을 안다.
“훌륭하다.”
군주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