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69
제69화
“닐! 대답해라! 네가 본 것을….”
“그만! 그만해주세요, 스칼라 님! 조사관님은 현재 위중한 상태에요.”
“이… 이….”
토벌대장인 외눈박이 늑대 스칼라가 잔뜩 성이 난 채로 서성거렸다.
임시로 마련된 자리에, 닐이 누워 있었다.
“어떻게 보지?”
“그게….”
조사관 중 신관이 말했다.
“치유력을 집중하고는 있는데… 뭔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치유력이 침투할 수가 없어요. 외견상으로는 거동도 불가능한 치명적인 부상인데 치유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
“어째서지?”
“모르겠어요… 겉보기와 달리 위중하지 않은 부상일 수도 있고… 이건 말이 안 되긴 하지만요… 다른 가능성은, 조사관님이 당한 이 정체불명의 힘이 치유를 방해하고 있는 걸지도요.”
신관의 분석에 스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자는 들어본 적도 없고… 후자 쪽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겠군. 닐, 정신이 드느냐?”
“으…….”
“…됐다, 살아만 있다면 된 거야.”
스칼라는 우레아 토벌 중, 닐을 필두로 한 조사단을 따로 파견해 정체불명의 마물 무리를 추격하게 했다.
마물 무리에는 인간이 섞여 있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그중 여럿이 토벌대 안에 섞여 들어왔었다고 알게 되었다.
“…상심이 크겠지. 이해한다.”
스칼라는 닐을 비롯한 그의 조사단을 신뢰했다.
닐은 그의 오래된 제자이며, 실력은 그의 입에서 제법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스칼라 자신의 분신과도 마찬가지인 그를, 추격조의 선두로 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판단을,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해낸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널 제외한 모든 인원이 전멸할 줄이야….”
남은 조사단을 반으로 쪼개 한쪽은 쓰러진 우레아의 뒤처리를, 한쪽은 먼저 괴인들을 쫓아간 토벌대를 지원하게 했다.
– 스칼라 님! 여기를…!
지옥이 그곳에 있었다.
대수림 곳곳이 불타 있었고 시체 수십구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 우웁… 우웨에에에엑…
– 이게 무슨… 이게 대체에에에에!
– 우웩… 무슨 지옥을…
현장을 본 토벌대원들과 조사단 대다수가 속에 있는 걸 게워내야 했다. 그 정도로 현장 상황은 처참했다.
– 가죽이… 가죽이 벗겨져 있어요.
– 조사단이다! 가죽이 벗겨진 자들은 조사단이야! 휘장이 있다!
스칼라는 이성을 잃은 채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닐은… 닐도 거기에 있느냐?”
– 찾았습니다! 여기에….
– 으윽…
“너….”
– 스승님…
털썩…
닐은 다행히, 살아있었다.
“…닐!”
그것만으로도 스칼라는 하늘에 감사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제자를 잃었다면, 스칼라는 무너졌을 것이다.
이후엔, 방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토벌대는 잠시 추격을 멈추었다.
“허억… 허억….”
“몸은 어떠냐?”
“스승님….”
“…괴인들의 정체는?”
“…….”
“알아내지 못했구나.”
스칼라가 눈을 감았다.
“크핫… 협회에는 이거 면목 없게 되었어. 그렇지?”
“…아무도 스승님을 탓하지 못할 겁니다.”
“늙은이들 생각은 또 다르겠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건지.”
“쫓지 마십시오, 스승님.”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거냐.”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 죄를 물을 자들의 흔적조차 잡지 못했다. 네가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곧 다시 추격을 시작하겠다.”
“스승님….”
이미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닐이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곧장 다시 흉수들을 추격하는 게 맞았지만 닐의 부상이 심각해 보여 자리를 곧장 뜨지 못했다.
“스칼라 님!”
천막 외부에서 스칼라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회복에만 전념해라.”
스칼라가 닐을 바라보며 한마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쿠르릉…
하늘을 쳐다보고는 한마디 내뱉는 스칼라.
“비가 오려나 보군.”
토벌대원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여기… 생존자가 한 명 더 발견되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토벌대원인가?”
“절벽 쪽에서 발견된 조사관입니다. 그런데… 상처가 조금 심각합니다.”
스칼라가 이를 악물었다.
“…가죽이 벗겨졌나?”
“얼굴 가죽이 조금….”
“대화는?”
“가능합니다.”
“직접 만나보겠다. 안내해라.”
“예.”
새롭게 마련된 천막으로 들어가는 스칼라. 그곳에 얼굴 반쪽을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울부짖는 여인이 있었다.
“으으으으… 아파아아아아아!”
“자, 잠깐만 진정을….”
“아파아아아아! 빌어먹을… 빌어먹으으으을! 다 죽여버릴 거야아!”
스칼라가 그녀의 비명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아… 하아….”
“좀 진정이 됐나?”
“스칼라… 부탁이야… 날 이렇게 만든 녀석을 제발 죽여줘….”
“…….”
“제발….”
“닐과 함께 다니던 조사관이군. 묻고 싶은 게 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겠나?”
여인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의 고통이 더해지는 것처럼.
“복면을 쓴 자들이… 조사단과 토벌대를 막았어요. 두령으로 보이는 자가 나타나서는, 조사단을….”
“닐에게선 듣지 못한 말이군.”
“…닐?”
“그래. 현장의 생존자는 너와 그 녀석뿐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대, 대체….”
불길한 예감.
“닐은 죽었어요.”
쿵.
심장이 내려앉고.
콰르르르릉-!
하늘은 번개를 쳤다.
“뭔가 착각을….”
“토벌대에 숨어들었던 발푸스라는 녀석… 닐이 언짢아하던 그 녀석이… 닐을 죽이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파아아앙-!
거짓말.
스칼라는 부상당한 닐이 있는 천막으로 달려갔다.
주르륵…
간이 침상에는 아무도 없었고 닐을 간병하던 신관의 목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습당해 비명도 지르지 못한 것이다.
흔적…
흔적을 찾았다.
파아아앗-!
스칼라는 흔적을 찾아 달렸다.
되살아난 닐에게 모든 진상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지금 불타고 있는 가슴이 조금이라도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콰르릉…
투둑…
투두둑…
기어코 비가 내렸다.
흔적은 계곡을 낀 절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모를 위협에 절벽 쪽에는 병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그곳에, 닐이 있었다.
뒤돌아서서는 스칼라를 바라보며.
스칼라가 비를 맞으며 물었다.
“넌… 누구지?”
“질문이 잘못됐다. 난 누구도 아니야.”
“…도플갱어인가?”
닐이 웃었다.
“맞아.”
“놈들을 섬기는 건가? 마물이 어째서?”
“섬겼었지. 앞으로는 아닐지도.”
그가 오히려 질문을 되받아쳤다.
“그보다, 궁금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닐은 죽었나?”
닐의 얼굴에 난 상처가, 스르륵 사라졌다.
“난 몰라, 그래도… 죽었을걸?”
스칼라는 심장이 진흙 속에 잠긴 것 같다고 느꼈다. 점점 굳어, 더는 심장이 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런가… 날 이곳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였군.”
“…….”
“퇴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건가… 대담하군.”
적이지만 인정하고 만다.
“이만 가야겠군.”
“오늘을….”
콰르릉-!
쏴아아아아…
“오늘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 부디, 살아있어다오.”
닐의 얼굴을 한 모리가 양손을 펼치고 뒤로 넘어져 계곡으로 떨어졌다.
“행운이 있다면.”
푸화아아아악-!
스칼라의 할버드가 작별의 선물로 모리의 가슴팍을 베었다. 비가 쏟아지는 이때, 불어난 계곡을 추격하는 건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그는 그곳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차갑게 굳은 심장이, 다시금 움직일 때까지.
“스칼라 님! 여기 계셨군요!”
“…….”
“스칼…라 님?”
“들어라, 너희는 지금부터 이곳에서 협회의 우레아 분석을 위한 지원을 기다려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도 죽지 말아라.”
“그럼 스칼라 님은….”
콰르릉-!
“녀석들을 쫓겠다.”
* * *
쏴아아아아…
타닥…
타아악…
빌에게 의지한 채로 꽤 시간이 흘렀다.
‘이런, 또 정신을 잃었었나….’
잠에 빠진 게 아니다.
기절했을 뿐이다.
“허억 허억… 허억….”
정신을 차린 직후 깨달았는데, 이건 규칙적인 흔들림이 아니다. 빌의 호흡에도 탁한 기운이 서려 있었고.
부상을 입은 것이다.
“빌.”
“죄송합니다… 문제가 으윽….”
“내려다오.”
“하지만….”
“덕분에 움직일 수 있다. 괜찮으니 내려다오.”
반쯤은 허세다.
전투는 무리, 간신히 이동만 가능할 정도다.
두 발로 내려선 땅에 내려선 느낌은, 축축하고 서늘하며 무거웠다.
“빌, 그 부상은?”
“죄송합니다….”
“질책이 아니다. 상황을 알고 싶을 뿐.”
“…조사단입니다. 한 무리가 접근 중입니다.”
“그런가.”
교각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구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몬이 저쪽에 있는 이상, 구원을 보낼 것이었다면 진즉에 보냈을 것이다. 실제로 모리와 빌을 보내기도 했고.
이후에 이 이상의 구원을 보내지 않은 건, 아마 그쪽에도 사정이 있기 때문이겠지.
“여기, 혈흔이 있다! 이 근방에 있어!”
파아앗-!
일전에 봤던 녀석들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레아가 쓰러지면서 추격해온 자들.
최상의 컨디션이었어도 승패를 장담 못할 텐데,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어디쯤 온 거지?”
“곧 교각 인근의 버려진 폐허에 도착합니다.”
이건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이었다.
쏴아아아아…
비가 오면, 어지간한 흔적들은 모두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하아… 하아….”
“…저깁니다.”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그러니까, 숲과 한 몸이 되어버린 마을의 폐허가 보였다.
‘…더는 한계야.’
빌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폐허로 들어가, 몸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길어야 한 시간 정도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교각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끼이익…
“하아… 하아….”
“으윽….”
“지혈해라, 빌.”
다행히, 챙겨둔 소모품 중에 지혈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보나?”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쏴아아아아…
폐가에 앉아, 한가롭게 빗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콰직-!
멀리서 누군가 폐허를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사관이 왔군.”
“폐허 전체를 샅샅이 뒤질 모양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가, 비가 오는 게.”
“불을 질러도 소용이 없을 테니 말이죠.”
…이대로 끝인가.
나도, 빌도 알고 있다.
이 상태로 조사단을 맞닥뜨리면 그것으로 이 기나긴 탈출은 끝이 난다는 걸.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기어서도, 누군가에게 업혀서도 먼 길을 왔다.
허리춤에 있는 호수에 손을 얹으며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휘두른다면… 한 명 정도는….’
그때,
콰르릉-!
…똑.
천둥과 겹쳐 눈치채지 못할 법한 소리.
‘조사관!’
문이 열리면 검을 뽑는다.
운이 좋아서 문에 가까이 있는 녀석이 한 명이라면 그대로 목을 베고 탈출을….
끼이익…
“안녕?”
“…너.”
“비가 많이 오네, 어후. 좀 들어가도 돼?”
“피요?”
이 폐허에서 귀신을 마주쳐도 이보다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터덜터덜 들어와 다 부서져 가는 의자에 앉는 남자.
피요였다.
“날 죽이러 온 거냐?”
“엥? 내가 왜?”
그는 품에서 조그마한 조각상을 꺼냈다.
“이것 봐, 불의 토속신 조각상인데 추위를 덜 느끼게 해줘. 신기하지 않아?”
“…….”
“살래?”
그런 게 필요할 리 없다.
고개를 젓자, 품에서 다른 물건을 꺼내는 녀석.
“이건 어때? 하늘로 솟구쳐서 폭발하는 폭죽인데 소리가 커서 신호탄으로도 쓰여. 가끔… 아니, 자주 불발이 있긴 하지만.”
대체 이 녀석이 내게 왜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지, 녀석이 어째서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인지 모두 수수께끼다.
아무런 힌트도 없는… 수수께끼.
“뭐든 말해봐, 난 네가 원하는 걸 파니까.”
“…뭐?”
“뭐든 말해보라니까? 난 네가 원하는 걸 팔 거야.”
처음으로, 수수께끼의 힌트가 주어졌다. 아주 결정적이고 충격적인… 힌트가.
– 뭐든 말해봐, 난 네가 원하는 걸 파니까.
“너… 피요가 아니지?”
“…무슨 소리야?”
“네 이름.”
“아하! 내 이름 말하는 거구나?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난 파우스트다.”
“좋은 이름이네. 이제야 친구의 진짜 이름을 듣다니, 여기 오길 잘했어.”
피요… 아니, 나를 당혹에 빠트린 녀석의 진짜 이름은…
“내 진짜 이름은 멤피르야.”
에피소드 4막의 최종 보스인, 암흑 상인 멤피르.
“사겠어.”
“좋아, 네게 뭘 팔아줄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내일.”
“뭐? 하하하하하하하!”
멤피르가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조사단들이, 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것 같았다.
“저쪽이야!”
“나도 들었다!”
멤피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비쌀 텐데?”
후둑…
금화가 잔뜩 담긴 주머니를 녀석에게 건넸다.
“셈이 맞지 않아. 부족해.”
그럴 리가.
“할인해준다며.”
– 기분이다, 앞으로 나한테 사는 물건은 할인해줄게!
탁-!
멤피르가 스스로 이마를 손바닥으로 쳤다.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