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30분 전.
모험가이자 노예 사냥꾼이기도 한 차마르는 칼헤일 지방의 대수림 깊은 곳을 수색하고 있었다.
철그럭…
그가 손에 쥔 사슬은 그의 허리까지 겨우 될 법한 키를 가진, 마족 소년의 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싼값에 사 왔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잖아? 제대로 못 해?”
“물을… 물을 좀… 며칠째….”
“입 다물어, 안 그래도 한 달 내내 허탕이라 화가 쌓여있으니까.”
“…….”
이 시대에, 마족 생존자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하다. 솔로몬의 치세 이후, 인간은 이 땅 위의 모든 종을 거느리는 지배자가 되었다.
모든 인간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지 오래다.
이 모든 건, 인간이기에 누릴 자격이 있다고.
“…찾았어요.”
“뭐?”
“찾았어요, 던전.”
“그게 정말이냐? 저번처럼 토끼굴을 착각한 게 아니고?”
“여기… 가까이 와 보세요.”
차마르는 마족 소년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가 앞에 선 구덩이까지 접근했다.
과연, 바위가 쪼개진 틈새로 어딘가의 지하로 이어지는 구덩이가 보였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한 위치였다.
이 구덩이가 던전으로 이어진다는 건 어린 마족과 차마르 모두 확신할 수 있었다.
한쪽은 인간보다 마력에 민감한 마족이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쪽은 새로운 던전을 탐색하고 그 던전의 권리를 실력 있는 모험가들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아주 평범하고, 수준이 낮은 던전에서나 느껴질 법한 마력이 이 구덩이를 통해서 누출되고 있었다.
“히히히… 적당하군. 이제 흩어졌던 녀석들을 데리고 와서….”
차마르에겐 동료가 있었지만 던전 수색 기간이 길어지자 마음이 급해져 잠시 따로 떨어져 행동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에게 작은 허점을 만들었다.
파아아아아악-!
몸이 붕 뜨는 감각.
뒤에서 누군가 강하게 밀쳤다.
당연하게도 어린 마족이다.
“죽어! 인간!”
“이 미친….”
촤르륵!
구덩이로 떨어지는 차마르가 사슬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급박한 상황에 힘 조절을 실패한 동작이었다.
우드득…
마족의 목이 그 즉시 부러지며, 떨어지는 차마르의 품으로 들어왔다.
“빌어먹으으을!”
차마르는 악독하게도, 어린 마족의 사체를 추락 피해를 완충하기 위해 사용했다.
콰직!
콰지지지직!
쿠우우우우우우우웅!
구덩이의 절벽을 튕겨 내려가는 충격이 사체의 뼈와 살을 짓뭉갰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마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착지는 성공적이었다.
차마르는 툭툭 털고 일어나며 분풀이했다.
파아아아악-!
“이 개 같은 마족 놈이!”
콰지이익!
콰지이이익!
“카악… 퉤에엣!”
자신을 위험에 빠트린 마족의 사체를 짓밟고는 그 위에 침을 뱉는 차마르.
“후우… 역시, 마족은 애든 어른이든 믿을 수가 없다니까.”
후우웁…
“이봐! 들리나?”
들리나…
리나…
목소리가 메아리쳤지만, 저 위까지 도달했을 땐 그저 바람 소리처럼 들렸으리라.
그리고 그마저도, 지척에 있지 않은 이상 눈치챌 수 없을 테고.
“…다른 입구를 찾아봐야겠군.”
[차마르가 은신을 발동합니다.] [적대적 대상에게서 몸을 감춥니다.] [은신을 유지하는 동안 쉽게 피로해집니다.]하급 모험가치고 제법 쓸 만한 능력을 가진 그였기에, 별로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은신 상태로 이동하는 것은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이 능력만 있다면 단독으로 던전을 가로지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으니 감수할 만한 페널티였다.
스르륵…
그의 허물이 공간에 이지러지며 스며들었다.
차마르의 능력은 하급 중에서도 하급이었으나 이 정도 던전에서 덜미를 잡힐 정도는 아니었다.
20여 분이 흐르도록, 그의 존재를 알아채는 마물은 없었다.
심지어는 마물이 배치된 간격이나 주변 환경 역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고.
‘쳇, 최하급인가? 꽝이군. 이거 버려진 지 좀 오래되어 보이는데… 푼돈이나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이 정도면 은신을 해제하고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편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만 참자, 출구만 찾으면….’
그때였다.
길쭉하게 이어진 통로 너머로 약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빛. 허탕은 아니군.’
꾸국…
화살을 메긴 상태로 앞으로 향한다.
통로의 내벽에 붙어 이동하면, 기척을 최소화할 수 있다.
– 키기익…
– 키이이익…
‘…고블린? 괜히 긴장했잖아?’
고블린은 최하급 마물이니 차마르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
‘그래도, 비명을 지르면 성가셔지니… 한 번에.’
[차마르가 연발 사격을 사용합니다.] [사격 시 전투력의 80%에 달하는 화살을 한 발 더 쏘아냅니다.] [추가 투사체는 명중률이 10%만큼 감소합니다.]퉁-!
명쾌한 울림과 함께 쏘아지는 화살.
쒜에에에에에엑-!
픽-!
‘한 놈.’
미간.
쒜에에에엑-!
‘…이런!’
시위를 떠난 화살이 의도하지 않은 부위로 날아갔다.
피이이이익-!
‘실패인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 꽂히는 화살.
그러나, 고블린은 그대로 쓰러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황할 필요도 없었군.’
씨이이익…
만족스러운 웃음을 내비치며 앞으로 나서려던 차마르가 멈칫했다.
‘가만… 함정일 수도 있으니….’
어둠에서 빛이 내리쬐는 장소로 나가게 될 땐 당연하게도 위험에 노출된다.
차마르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화살을 시위에 물리고 기다렸다.
그 판단은 옳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 멀리서 두 인영이 나타났다.
‘…인간? 아니, 마족이다!’
검은 머리칼.
더 볼 것도 없다.
수적으로 불리하니 일단 한 명을 쓰러트린 후에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빈틈을…
움찔!
그런데, 차마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고블린이 정신을 차리고 마족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차마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자식이!’
반사적으로 쏘아지는 화살.
투우우웅-!
쒜에에에에엑-!
위치를 들켰기 때문인지, 마족은 반사신경만으로 화살을 피해냈다.
“쳇….”
차마르는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낙담하려던 찰나, 정작 충돌로 당황한 쪽은 마족과 그 호위라는 걸 눈치챘다.
‘이 마족, 애송이로군!’
또한, 두 남녀 모두 빼어난 미인.
‘그런데 저 계집, 머리에 뿔 같은 게… 장식인가?’
모험가의 판단보다, 노예 사냥꾼으로서의 판단이 앞섰다.
이 던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릴 만한 건 저 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투우우우우웅-!
“어어어!”
그의 몸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던전의 저주!’
[썩은 뿌리의 저주가 발동합니다.] [던전 초입으로 전이됩니다.]쿠우웅!
“크아아악!”
몇 번쯤, 던전의 가치를 헤아리기 위해 탐색을 진행하던 중 저주와 맞닥뜨린 적이 있다.
그렇기에 낯설지 않은 이 불쾌감의 정체를 저주라 판단하는 것도 가능했고.
“…축객령이라.”
차마르는 착지를 잘못해 경미한 찰과상을 입은 허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둘… 뿐이었지?”
씨이이익…
사냥꾼이 사냥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도망치는 일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그 둘은 비싸게 팔릴 게 분명했다.
차마르에겐 기회가 주어졌다.
이곳은 그가 떨어진 구덩이.
아마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던전의 틈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다른 출구를 찾는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흩어진 동료들을 데리고 와 던전을 돌파하는 사이에 저 마족과 여인은 이미 도망치고 없을 것만 같다는 판단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리고 이미 손에 거머쥔 것만 같은 재화가 떠나가는 듯한 착각까지.
마족은, 특히나 큰 흠 없이 아름다운 마족은 좋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곳에 머무는 이들을 차마르 혼자 독식한다고 가정했을 시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거금이 들어올 것이다.
상등품의 마족은 던전 수색 같은 하찮은 용도로 사용되지 않으니까.
결국, 답은 정해져 있다.
“크흐흐… 이거야 원, 내빼기도 글렀군.”
큰돈을 만지고 싶다면, 크게 도전하라.
치이익…
화르르륵-!
소지한 횃대에 불을 켜는 차마르.
지금부턴 그의 행동 수칙은 정찰이 아니다.
답파다.
후방이 노려질 가능성이 있기에 은신으로 이동하는 건 피한다.
이미 아까의 빛이 흘러나오는 곳까지의 길은 외워뒀다.
– 키이이이익-!
불을 보고 달려드는 루트 웜.
평상시에는 뿌리채소와 같은 것을 먹고 살지만 고기 역시 가리지 않고 먹는 마물이다.
마치 대형견 크기의 밀웜 같은 형상.
이런 녀석은 활로도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
재빨리 품에서 직검을 꺼내 드는 차마르.
그는 아쉽게도 근접전과 관련된 능력은 보유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허둥대는 것보다는 나은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후우우웅-!
푸화아아아악-!
반으로 쪼개지는 루트 웜.
좋은 검이 분명했다.
그의 그저 그런 검술 실력에도 밀웜이 깔끔하게 양단되었으니.
“비싼 돈을 주고 구한 거니… 제값은 하네. 키히….”
그는 횃불로 루트 웜의 사체를 비춰 혹시 기생하는 다른 마물은 없는지 확인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길어야 20분.
아니, 차마르는 이제 거리낌 없이 움직일 수 있으니 15분이면 아까와 같은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
“도망칠 생각하지 말라고. 어차피 너희 둘 다, 이 차마르의 재산이란 말이다.”
* * *
‘…라는 생각으로 답파해오고 있겠지.’
아까는 예상치 못한 만남에 조금 당황했지만 진정하고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자 그렇게 요란법석을 피울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녀석은?”
내가 말한 녀석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고블린 무투가였다.
“아직은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그 부분은 침입자를 몰아낸 후에, 재생의 화원에 기대야 한다. 기도 따위도 필요 없다.
이 순간,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를 구하는 길이다.
“파우스트 님, 뾰족한 방책이 있으십니까?”
“그건….”
콰아아앙-!
그때, 심처의 문을 열어젖히며 페넥스가 뛰어 들어왔다.
콰아아앙-!
“나리이!”
“페넥스, 이곳은 파우스트 님의 심처입니다. 침입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무례한 짓을… 경박한 행동은 자중을!”
“…아, 알았어. 그치만!”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던전의 저주가 발동했는데? 아무도 안 다쳤어?”
“파우스트 님께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무뢰배에게 상처 입을 분이 아니십니다.”
“아하!”
…아니야, 상처 입을 뻔했다고.
위험했다고, 정말로.
‘뭐, 어쨌든 결론은 화살을 피했고 녀석을 침입해 온 개구멍까지 튕겨냈다.’
썩은 뿌리의 저주가 초반에 사용하기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침입자를 입구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던전의 미답파 구역에 관한 힌트를 얻게 되는 점이다.
‘저런 곳에 개구멍이 있었군. 그리 멀지 않은 위치이니 녀석을 저지한 후에 저곳도 봉쇄해야겠어.’
일거양득이긴 한데, 일단 아직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페넥스가 나설까?”
옥좌에 앉아 턱을 괴고 물끄러미 녀석을 바라보았다.
“읏….”
그래, 네가 나서면 이름도 모르는 모험가 따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겠지.
‘던전 수호가 발동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모험가의 숨이 붙어있는 이상 던전 수호 상태는 해제되지 않는다. 페넥스의 빌어먹을 패배 확정 패시브가 계속된다는 거다.
‘녀석이 뚫리면… 그다음은 무기력증 상태의 나다.’
루시퍼도 나도, 현재는 종이 인형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그러니 심처로 모험가가 들이닥치는 순간 상황 종료.
게임에서야 다시 도전하면 된다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아마도 죽음이 가장 가까운 결과가 아닐까.
‘그러니까, 모험가가 심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쿵쿵!
페넥스가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지금 싸울 수 있는 건 페넥스 뿐이잖아! 그럼 페넥스가 싸울….”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 반문에 그녀가 움찔했다.
“…응?”
“왜 싸울 수 있는 게 너뿐이라 함부로 단정 짓는 거냐?”
페넥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알기 쉬운 표정이다.
질문의 의미를 열심히 궁리하는 표정.
“우움….”
곰곰이 생각하다가 벽에 부딪혔는지 소리친다.
“고블린 혼자는 안 돼! 죽을 거야!”
“고블린?”
아아.
그렇게 생각했구나.
“아까운 자원을 허비할 수는 없지. 남은 고블린은 내보내지 않을 거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
“페넥스는 바보 아니야! 다 알아!”
쿵…
갑자기 느껴진 던전의 진동에 페넥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쿠구궁…
이만하면 확실하겠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슬슬, 시간이 됐군.”
“시, 시간?”
“여길 봐라.”
던전 수호가 시작되었을 때, 심처에는 던전의 지형도가 펼쳐진다.
후우우우웅…
적합한 지형에 적합한 병력을 배치하여 침입자를 막아내는 게 던전 수호.
이는 튜토리얼이라고 볼 수 있는 1 지역 답파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레메게톤의 주 컨텐츠다.
‘답파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 침입자가 습격해오는 이런 사태는 보통은 벌어지지 않지만….’
만일… 미완성의 던전을 누군가 습격해오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졌다면, 그때만 가능한 재밌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는….”
“녀석이 침입해 온 틈은 이곳. 이곳과 심처까지 길을 이으면 대강… 이런 식일 거다.”
출입한 개구멍으로부터 심처까지 직선에 가까운 형태. 거기다 나름, 변수가 있었는지 구불구불한 경로가 한 구역 추가됐다.
적어도 난 이 모든 구역을 답파한 기억이 없다. 애초에 답파에 성공한 영역이 기껏해야 두 구역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즉….’
개구멍을 기준으로 심처까지 이어지는, 일정 범위의 미답파 구역까지 한시적으로 파우스트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다는 소리다.
“침입자가 여기를 가로질러 오고 있다는 거야!?”
“그래.”
“…그런데 이게 왜?”
아직도 모르나.
뭐, 됐다.
스르륵…
“그렇게 되면 녀석은….”
내 손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져 미답파 구역 중 한 곳에서 멈췄다.
“반드시 이곳을 지나쳐야 한다.”
“어…….”
“파우스트 님 이건….”
그래.
이제야 눈치챘나.
“여기서 멈출… 아니….”
잘만 하면, 침입자는 물론이고 이 던전의 골칫덩이까지 단번에 제거할 기회인걸.
“멈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