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그걸 잊고 있었네!”
주섬주섬 주머니를 챙기는 멤피르.
“어쩔 수 없지, 도와줄게.”
툭.
멤피르가 호두만 한 단약 두 개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먹어.”
“이게 뭔데?”
“방독에 도움이 되는 거야.”
킁킁…
빌이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더니 한마디했다.
“미약한 독이 섞여 있습니다.”
“독을 먹으라는 건가?”
“그럼 죽던가.”
멤피르가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과한 독성은 전부 제거했어. 얕은 독성이 너와 네 가신의 활력을 단시간 끌어올려 줄 거야. 그거라면 버려진 교각까지는 갈 수 있을걸? 육체는 이미 한계잖아.”
난 교각에 간다고 말한 적이 없다.
“너….”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다른 길은 전부 추격이 이어질 거고, 유일한 탈출 방법은 추격로의 차단인데 근방에 그게 가능한 건 오래되고 버려진 다리뿐인걸.”
그러면서 밖을 힐끔 하며 한숨 쉬었다.
“조사단이 조금만 똑똑했다면 지금이라도 교각으로 향했을 텐데 말이지.”
뭐, 다 좋다.
그래서…
“조사단, 이길 수 있나?”
“나라고 해도 조사단 전체는 쉽지 않아. 더군다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는.”
“쉽진 않지만….”
“…….”
“가능하다는 얘기군.”
스윽…
방독면과 비슷하게 생긴 가면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멤피르.
“앞으론 못 보게 되겠네, 파우스트.”
“멤피르, 왜 날 돕는 거냐?”
“무슨 소리야? 난 상품을 팔았을 뿐인걸.”
거짓말이다.
그가 고작 금화 한 주머니를 얻겠다고 조사단 전체와의 싸움에 나설 리가 없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멤피르의 시야가 내리깔린다.
“그럼 넌 왜 날 구했지?”
“그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하루 사이에 수십 명을 죽이면서도, 그는 어째서인지 구하고 말았다.
“아하하하! 그것 봐! 각자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좋아… 슬슬 가볼까? 이렇게 싼값에 일하는 건 장사 시작한 후로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가 우뚝 멈춰 서고는 충고했다.
“한 가지 일러두자면, 스칼라가 아끼는 제자를 죽였으니 그에게 평생을 쫓기게 될 거야. 각오는 한 거겠지?”
“선택한 적도 없다. 단지, 받아들일 뿐이지.”
“하하! 좋은 말이네… 이제 되도록 숨을 참아. …간다.”
흐으읍…
멤피르가 오래된 문을 걷어차 날려버리며 독무가 담긴 단지를 깨트렸다.
콰아아아아아앙-!
푸쉬이이이이이이이이-!
* * *
문이 열림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조사관 한 명이 멤피르를 찌르려 했다가 독을 확인하고 황급히 물러났다.
“…독! 독이다! 물러나!”
푸쉬이이이이이이-
비가 오는데도 거침없이 퍼져나가는 독무.
“달려! 내가 막을게!”
파우스트와 빌이 벼락같이 튀어나와 교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내달렸다.
“보내줄 것 같으냐!”
[바네벨트가 심장 찌르기를 사용합니다.] [심장에 검이 닿으면 검이 폭발하며 파편을 뿌립니다.] [각 파편은 공격력의 40%의 피해를 줍니다.]쒜에에에에엑-!
타아앙-!
괴상하게 생긴 단도가 한차례 조사관의 공격을 튕겨내었다.
후웅-!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연격.
톱날처럼 안에 홈이 파인 단도가 조사관의 검을 낚아챘다.
“소용없다! 이 검은….”
그 순간, 멤피르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멤피르의 검 파괴자가 발동합니다.] [검 파괴자에 붙잡힌 검은 폭발적인 속도로 내구도를 소모합니다.]카가가가가가각-!
콰지이이익-!
반으로 뚝 부러지는 검.
“이, 이렇게 될 리가….”
푸우우욱-!
순식간에 검을 파괴당한 조사관은 멤피르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안 될 건 또 뭐야?”
“어… 억….”
“그를 놔줘요!”
[지젤이 얼음송곳을 사용합니다.] [냉기로 이루어진 뾰족한 얼음이 대상을 노립니다.] [약간의 방향 변경이 가능하며, 주입한 마력에 따른 냉기 피해를 줍니다.]쒜에에에엑-!
피하기 어려운 각도.
정확히 등을 노리는 마법이다.
스윽…
멤피르의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가 입을 벌렸다.
[멤피르의 허기진 발라코프가 발동합니다.] [발라코프는 배가 찰 때까지 마법을 포식합니다.]휘오오오…
마법이 빨려 들어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짓…말….”
푸화아아아악-!
독무를 뚫고 나온 멤피르가 마법사의 목을 쳤다.
“돈이면 다 돼.”
그 하나하나가 전투의 향방을 바꿀 엄청난 지보. 암흑 상인 멤피르의 무구는 그야말로 보물 위의 보물이었다.
벌써 동료를 둘이나 잃은 조사단의 단원들은 독무에 연신 기침하며 멤피르를 상대해야 했다.
“독만 아니었어도… 콜록….”
“콜록… 무구에 의존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콜록… 똑똑히 깨닫게 해주마.”
동방 출신으로 보이는 검객이 검풍을 일으켰다.
후아아앙-!
자신이 향할 길의 독무를 걷어낸 검객이 앞으로 내달렸다.
[치로가 시든 칼날을 사용합니다.] [검을 휘두를 때의 관성이 조금 줄어들어, 수발이 자유로워집니다.] [대신, 공격력이 20%만큼 감소합니다.]쒜에엑-!
날아오는 검을 다시 한번 검 파괴자를 이용해 잡아채려는 멤피르.
“잔재주! 어림없다!”
후웅-!
검이 엄청난 속도로 궤적을 틀어 검 파괴자를 피한 후, 멤피르의 허리를 가르려했다.
스릉-!
그 순간, 멤피르의 허리춤에서 투박한 철검이 뽑혀 나왔다. 이 무구는 멤피르가 가진 수많은 보물 중 그에게 있어 가장 값진 것이지만 특별한 능력은 없었다.
카아아앙-!
조사관 치로는 멤피르와 정식으로 검을 맞댄 순간 깨달았다.
이 자의 보물도, 기상천외한 병기도 모두 이 자의 숨겨둔 실력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것임을.
카아앙-!
캉!
“어째서… 이런 실력을 가지고도….”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에피소드 4막의 최종 보스 암흑 상인 멤피르. 그의 전력은 온전한 조사단보다도 위에 있었다.
“자신을 장인에 빗대는 놈들은 죽을 때, 꼭 그 말을 하더라고?”
푸화아아아악-!
“으으으어….”
“…장인도 아닌 것들이 말이지.”
* * *
폐허를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기묘한 운명이다.
원작에선 감당하기 어려웠던 대적자들이, 나를 내일로 보내줄 구원자로서 나타났다.
‘몸에 온기가 돈다.’
멤피르가 건넨 독단 때문이다.
차가운 비를 맞고 있음에도 온몸이 후끈거렸다.
“…파우스트 님, 보이십니까?”
“…보인다.”
교각.
교각이다…!
그리고 그 교각을 건너기 위해 사역마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그들을 보았고, 그들 역시 나를 본다.
“…나, 나리이이이이이!”
페넥스가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려 했다.
“파우스트 님께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행렬 역시 비가 왔음에도 온몸 구석구석에 피가 묻어 있었다. 피가 밸 정도로 많은 추격자를 뿌리친 거겠지.
‘그리고….’
교각 역시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엔, 이곳에 도달했구나.”
아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회의 기쁨은 나중으로 미룬다.
스칼라가 추격해오고 있을 것이다.
“왜 건너지 않고 있는 거지?”
“교각의 중심부가 끊어져 있다.”
“…뭐?”
“관리되지 않은 낡은 것들이 멀쩡하기를 바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구나.”
“그런….”
“그래도, 임시지만 거의 수복되었다. 영 불안하긴 하지만….”
아리엘의 숲 마법으로 중심부를 이어 붙인 듯했다. 나무줄기가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가는 몰골이구나.”
“…….”
“나머진, 여유가 생긴 후에 듣지.”
아몬이 소리쳤다.
“굼벵이들아, 이제 됐다. 건너도록! 다리가 버텨줄지는 하늘에 맡기는 게 좋겠다!”
“건너야 합니다! 서두르십시오!”
오크와 고블린, 악마들과 여러 속성의 사역마들이 간격을 두고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혹시 다리가 무너질 것을 염려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자들은 마지막에 건너기로 합의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삐걱…
삐걱…
연신 불안한 소리를 내는 교각.
하지만…
‘건넜다.’
숫자는 무려 백이 넘고 무리의 장이 스칼라인 토벌대를 피해 도주에 성공했다. 스스로가 해내고서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얼마나….’
으직…
으지직…
“안 돼! 무너진다!”
콰지지지지직!
쿠우우웅…
– 구우우우우우우!
교각의 일부가 무너지며 유적 수호자 모암이 교각 밑으로 떨어졌다. 쟈킴 역시, 여기에 휩쓸려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이 현실감 없는 사태보다도 더 현실감이 없는 건, 이 무너지고 있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놓고 간 게 있지 않으냐아아아아!”
이 목소리…
‘스칼라!’
아몬이 소리쳤다.
“다리를 무너트려라!”
이미 무너지고 있는 다리에 올라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스칼라.
콰직…
콰지직!
스칼라가 말한, 내가 놓고 간 것은 아마도 지금 그가 쥐고 있는 것을 말하는 듯했다.
죽은 닐의 할버드다.
“흐으으읍!”
스칼라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건, 맞으면 죽는다.
파팟-!
내 앞을 막아서는 페넥스와 루비. 그럼에도 불안감은 사그라들지가 않았다.
“흐아아아아아!”
그때, 이곳에선 보이지 않았지만,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쟈킴이 스칼라에게 달려들었다.
쿠우웅-!
그 때문에 스칼라가 던진 할버드의 궤적이 살짝 어긋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내가 아닌, 절벽의 일부를 때렸고 절벽 전체가 흔들렸다.
‘받아내려 했으면… 전부 죽었다.’
페넥스, 루비… 그리고 나도.
쟈킴은 스칼라를 밀쳐낸 그대로, 스칼라에게 떠밀려 계곡으로 추락했다. 이 잠깐 사이에, 믿지 못할 장면이 너무 많이 펼쳐져 당혹스러울 지경.
쏴아아아아아…
살짝 물러나서 건너편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스칼라.
그는, 끝끝내 교각을 건너지 못했다.
모암의 무게로 교각이 무너져 내렸고, 쟈킴이 스칼라의 마지막 횡단 가능성마저 차단했다.
…둘의 희생으로 스칼라가 교각을 건너오는 것만큼은 저지할 수 있었다.
“이름을….”
스칼라는 분명 날 보고 있다.
“이름을 알려줄 수 있나?”
“…….”
“부탁이다, 남은 평생을 쫓을 대적의 이름 정도는 알려다오. 실체 없는 증오는… 내게 너무 가혹하다. 부디 날 전사로서 대해다오.”
그에게 이름을 말하면, 쫓길 것이다.
평생을 피할 순 없을 것이고 언젠간 마주치겠지.
그럼에도, 고민은 없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이곳의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군주이기 때문이다.
그와 대등한 높이로 대화해야 한다.
“파우스트다.”
“파우스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칼라의 안도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닐이 별 볼 일 없는 자에게 죽은 게 아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전사로 대해주었으니, 그 역시 나를 전사로 대할 것이다.
“외눈박이 늑대 스칼라… 이 이름에 맹세한다. 이 하늘 아래 숨 쉬는 동안 파우스트… 내가 그대의 대적자로서 살아갈 것임을.”
뒤돌아 답했다.
“…고대하지.”
쏴아아아아…
“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
비에도 가려지지 않는 절규가 들려왔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비가 더 거세게 내렸다.
그의 슬픔과 좌절이 눈 주변에 맺혔다 사라진다.
오늘의 일은 승리일까, 패배일까?
뭐가 됐든….
‘이제….’
털썩…
이게, 내가 기억하는 가을의 마지막 모습이겠지.
“파우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