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던전: 서리 둥지는 현재 미답파 상태입니다.] [던전: 서리 둥지를 완전히 개방하기 위해선 답파를 완료해야 합니다.] [던전의 답파는 사역마를 부려 시도할 수 있습니다.] [직접 답파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다.
쿠구구궁…
“나리, 괜찮아?”
“…괜찮다.”
“그럼 됐어!”
심장부의 문을 빼꼼 열고 질문을 던졌다가 다시 사라지는 페넥스. 그녀는 내가 깨어난 이후로 줄곧 나를 과보호하는 느낌이었다.
‘…살아남았나.’
아직도 내가 살아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부서진 교각을 건너기 전까지… 아니 건넌 후에도 믿기지 않았던 사실이다.
‘사역마들이 나를 살렸다.’
의식을 잃은 것은 거의 2달 정도.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이를 무려 두 달이나 금이야 옥이야 신줏단지 모시듯 싣고 다닌 것이다.
결코, 수월하지는 않았을 여정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단 하나의 낙오 병력도 없이, 서리 둥지에 도착했다. 그것도 예상보다 빠르게.
원작에서 왕국 연합이 소유한 동토에 망명할 당시, 체력을 비축한 상태로 정처 없이 떠돌다 겨울이 되어 동토에 정착지를 찾았다고 묘사되었었다.
‘지금도 겨울인가?’
아마도 현재, 시기상으로는 겨울… 원작과 동일한 시간대일 확률이 높았다. 원작에선 먼저 움직였지만 늦게 도착했고 현실에선 나중에 움직였지만 빠르게 도착했으니.
던전은 정신을 차리고 회복한 후에 둘러보았다.
동토에 자리 잡은 서리 둥지. 둥지라 이름 붙은 이유는 그 형태 때문이다.
5계층으로 이루어져 가장 정상에 심장부가 위치한 형태. 계층을 오르는 방식이 나선형의 통로를 따라가는 것이니, 마치 켜켜이 쌓인 둥지 같다고 해야 할까.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단순한 형태였으니, 썩은 뿌리와 같이 모험가들의 시간을 소모시킬 순 없을 것이다. 사실, 그럴 마음도 없고 말이다.
‘던전의 환경이 제법 가혹하다.’
기본적으로 동토에 자리 잡은 던전은 자원난을 겪게 된다. 보스 룸을 모두 냉기 속성으로 구성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매일 같이 난방 자원과 고열량을 가진 식량을 소모해야 하니 자원과의 전쟁이다.
‘그나마 숲을 찾아낼 수 있는 아리엘이 있어 다행인가.’
숲과 친화력을 가진 그녀 덕에 땔감을 구하는 게 수월해졌다.
타닥…
탁…
옥좌 양옆에 놓인 화로 기둥에서 잘 타고 있는 땔감 역시, 아리엘의 도움으로 구해온 것들이다. 덕분에 심장부와 사역마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온기가 감돌았다.
그러한 온기에도 절대로 녹지 않는 이 던전의 지형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던전을 나설 땐, 각오를 다지고 나서야 한다. 준비가 미흡하면 감기를 앓기 일쑤였고 페넥스 정도가 아니면 추위에 대한 내성이 없었기에.
‘식량을 해결해야 하는데….’
아리엘이 시범적으로 던전 내부에 인공 숲을 조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추위 때문에 관리가 어려웠으며 심을 수 있는 종도 한정적이었다.
썩은 뿌리에 머물 당시에는 자연 생태의 보고인 대수림에 자리 잡고 있어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었고 애초에 리우디라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기에…
‘흐음… 마을이 좀 먼걸.’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도 왕복으로 20일이 걸릴 정도다. 거리가 멀다기보단 길이 험하다. 거기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어떤 날은 아예 움직일 수도 없었다.
확실히 이건 전보다 악조건에 놓였다 할 만했다.
쿠구구궁…
“나리, 괜찮아?”
“…괜찮다.”
…시시때때로 심장부의 문을 열어젖히고 나타나는 페넥스 때문에 온전하게 생각을 이어 나가기가 어려웠다.
문득,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곳에 넘어온 후 맞이한 첫 번째 가을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사역마가 죽었고 많은 적을 죽여야만 했다. 또한, 딱히 원작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가지 않은 나만의 답을 내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롬멜과 멤피르가 아니었으면… 죽었겠지.’
적이 될 것을 염려한 녀석들이 우연이 겹쳐 도리어 아군이 되었다. 즉,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말일지도.
스윽…
옥좌에서 일어나 둥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전보다 작은 영토이지만 오밀조밀 뭉쳐있기도 하고 뭐… 나쁘지 않았다.
던전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지 않았다. 얼어붙어 있는 많은 기반 시설들을 다시 가동해야만 하고 텅텅 빈 던전을 사역마로 가득 채워야만 했다.
‘마석을 전부 잃은 게 뼈아프다.’
비축분으로 두었던 마석을 짊어지고 던전에서 빠져나오던 트롤이 낙석에 파묻혔기에 현재 내 마석 잔고는 0.
다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암담했다.
일단은 혹시 몰라 페넥스와 아리엘, 그리고 아몬을 아무것도 없는 필드의 보스로 지정해두긴 했지만 말이다.
‘뭐… 약간의 수확도 있었지.’
길 잃은 모험가가 함부로 던전에 발을 들여 목숨을 잃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꼭 파티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단 한 명의 모험가라도 페넥스와 경합한다면 페넥스의 불굴 스택이 쌓인다는 점이다.
덕분에 당분간 페넥스는 서리 둥지의 제1 보스로 존재할 것이다.
“저기… 나리!”
“괜찮다.”
“…응!”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을 것 같다.
‘후….’
아무튼, 오늘은 던전을 둘러보고 많은 것들을 재점검할 예정이다.
‘알아볼 것도 있고 말이지.’
던전을 다시 일으킬 만한 실마리를 퍼뜩 떠올린 오늘, 나는 심장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기반 시설에 왔다.
커다란 우체통.
레메게톤의 공지 및 이벤트 알림이 이뤄지는 장소다.
‘제발… 편지가 잔뜩 있기를.’
대다수 편지는 사실 점검과 관련된 공지사항 편지일 것이다.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얹어주는 사료 덕에 열어보는 맛은 있었다.
끼익…
우체통을 열어보자, 편지가 쌓여 있었다.
[공지: 정기 점검 및 보상 일정]……
[공지: 정기 점검 및 보상 일정]“역시인가….”
편지 하나당 마석 300개.
매주 있는 사료여서인지 매우 짰다. 다른 내용을 찾아야 한다.
[공지: 서버 불안정에 따른 사과문 및 보상 안내]“…아.”
맞아, 이런 게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쯤, 서버가 한 번 엉망이 된 적이 있었다.
서버 공격이니 뭐니 그땐 말이 많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 제대로 된 해명은 없었고 사료만 잔뜩 줬었던 기억.
– 보상 내용: 3,000 마석
[마석은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이거다!’
무려 10연차.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부국강병을 이뤄낸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데 속도가 붙었다.
[글로벌 이벤트: 아시아 다운로드 1차 목표치 달성!]– 보상 내용: 3,000 마석
[마석은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그래, 이런 것도 있었지.’
아마 꿈을 크게 가져서 3차 목표치까지 정해뒀었던 걸로 기억한다.
‘1차 달성이 끝이었지만….’
빌어먹을… 3차 목표치까지 달성했으면 좀 좋아?
그래도 벌써 6,000 마석이다.
이것만 해도 어딘가 싶다.
남은 편지들도 모조리 읽었다.
자잘한 사료로 주어진 마석까지 합치니 10,000개는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해도 30연차를 겨우 넘는 수치이긴 하지만 말이다.
‘부족해….’
던전이 다시금 번영하기 위해선 이정도로는 부족했다.
뭔가 획기적인….
스윽…
‘그래, 이런 거.’
색이 다른 편지 하나.
마지막 편지다.
우체통을 열어본 이유도 이 소식이 혹시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다.
[추석 이벤트 및 업데이트! 네 영혼은 송편 맛이 나네?]– 이벤트 내용: 가을의 정령들이 변덕을 부려 모험가들의 영혼에 송편과도 같은 마력흔을 남겼습니다. 이 마력흔을 전부 모으면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바일 게임에서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하는 건, 바로 추석 이벤트다.
공교롭게도 난 가을이 되자마자 던전에 날벼락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 가을 이벤트를 제대로 누릴 수가 없었다. 던전이 무너졌는데 뭘 어떡하라고?
이 때문에 가뜩이나 자원에 쪼들리는 상황에서 굉장히 아쉬워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해서 이벤트 기간 내내 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가을 전쟁.
그렇다.
던전이 무너진 후, 내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토벌대원들이 수십이다.
여기서 하나의 가정.
‘혹시… 만약에라도 이때가 이벤트 기간이었다면?’
그래, 만일 내가 그날 거둔 자들의 영혼 역시 이벤트에 포함됐다면….
[마석은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성장의 씨앗은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담긴 항아리는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암흑이 좀먹은 사과는 심처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다량의 육성 재료 및 추후 업데이트 될 내용의 재료들까지.
영수증처럼 주르륵 올라오는 보상들. 마석도 마석이지만, 성장 재화 역시 부족했기에 이 얼마나 꿈 같은 보상인지 모른다.
‘아마 이벤트 최대치의 보상을 받은 건가?’
원작에서는 이벤트 상점 UI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송편 형태의 마력흔을 보상과 교환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상점이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 그저 목표 달성치만큼 보상을 주는 듯했다.
‘하아… 다행이군. 그렇다는 얘기는?’
대망의 마지막 보상이 남아있을 것이다.
“…….”
어째 소식이 없다.
‘그 녀석은… 받지 못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추석 이벤트는 나름 널널하게 진행되어 하루 이틀만 빡세게 달려도 목표치를 다 채울 수 있었었다.
‘내가 가을 전쟁 때 몇 명을 죽였지?’
머릿속으로 죽인 자들의 수를 세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인간에서 한참 벗어난 듯하지만, 그래도 얼추 계산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상하네… 분명히 기준을 넘었는데 말이지.’
메시지가 뜨지 않았으니,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건지도.
“흐음….”
심장부로 되돌아와 아쉬운 마음에 옥좌에 앉아 끓는 속을 달래고 있는 도중, 루시퍼가 다른 사역마의 부름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내게 돌아왔다.
“파우스트 님.”
“말하지.”
“지옥문이… 스스로 깨어났다고 합니다.”
“…뭐?”
지옥문은 이곳 서리 둥지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아제룹의 해골은 이미 내 피를 매개로 계약했기에 어디든 그 문과 함께 내 곁에 머무를 수 있었다.
아제룹은 평소엔 잠들어 있다가, 내가 마석을 들고 나타날 때만 정신을 차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잠에서 깨어났다고?’
뭔가의 신호다.
아마도 내게 긍정적인… 뭔가의.
“직접 가보지.”
“예.”
지옥문이 존재하는 5계층의 밀실.
휘오오오…
덜그럭…
덜그럭…
지옥문에 메인 사슬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크큭… 누가 이 몸의 단잠을 깨워서 말이지.”
“똑바로 말해라.”
아제룹이 눈을 밑으로 내리깔아 그 문을 가리켰다.
“널 찾아온 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