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손님?”
“그래! 너와 운명이 이어진 자다.”
아제룹이 말한 손님은, 추석 이벤트의 메인 보상인 배포 캐릭터와 그 중복 파편일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뜬금없는 타이밍에 지옥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찾아올 리 없을 테니까.
보통 모바일 게임의 이벤트 배포 캐릭터들 같은 경우, 컨셉은 명확하지만 성능은 가장 높은 등급에서 한 단계 낮은 등급의 캐릭터다.
당연하게도 레메게톤 역시 그러했고, 배포 캐릭터는 5성 사역마. 다만, 일반적인 5성 사역마와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벤트에서 해당 캐릭터의 중복 파편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메게톤은 영혼의 조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입에 잘 붙지는 않는다.
‘이벤트 캐릭터는 풀 돌파가 가능하다.’
여기서 돌파라는 말은, 기물의 중복 파편인 영혼의 조각을 모을수록 해당 기물의 능력이 상승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돌파 최대 횟수는 여섯 번.
한 번도 획득한 적 없는 기물을 얻었을 땐 명함을 땄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편인데, 이후에 중복된 기물을 뽑으면 최대 6번까지 기물 자체의 잠재력이 강화된다.
6번까지 강화한 기물은 풀돌파 상태라고 표현하곤 한다. 물론 5성이든 6성이든 풀돌파 기물을 보유한다는 것 자체가 핵과금의 영역에 다다른 아주 극소수의 플레이어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좀처럼 보는 일은 드물다.
마석 트럭을 아무리 갖다 박아도 운이 나쁘면 돈이 물 쓰듯 사라지니….
아무튼, 제작사에서도 유저들에게 마석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벤트에서 돌파의 맛을 보여주는 편인데, 대부분 배포 사역마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사역마가 부족한 내게 있어선… 풀돌파 사역마는 이벤트가 아니면 얻지 못할 귀한 존재다.’
아제룹이 까딱거리며 말했다.
“그럼, 방문을 허락하지.”
“…….”
후우우우웅…
파지직…!
아제룹의 눈구멍에서 주황빛이 퍼져 나왔다.
5성에 해당하는 기물.
파아아앙-!
지옥문을 나오자마자 박차 올라 공중으로 떠오른 존재. 커다란 날개를 가진, 올빼미 수인이었다.
[★★★★★ 올빼미 비행사를 소환합니다.]파아앗-!
지옥문에서 주황빛 영체가 빠져나와 올빼미 비행사의 몸과 부딪혀 흡수되었다.
[★★★★★ 올빼미 비행사의 영혼을 찾았습니다.]파파파팟-!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
[★★★★★ 올빼미 비행사의 영혼을 찾았습니다.]……
5번이나 같은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지옥문을 건너온 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장난기 넘치는 앳된 얼굴에 이마에는 안대를 걸치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여인.
척-!
그녀가 나를 공중에서 내려다보았다.
“돌-풍! 나는 바람을 가르고 나타난 기린아! 코닝이라고 한다네!”
“…….”
그래, 기억났다… 코닝.
특이한 말투와 컨셉으로 서브 컬쳐 쪽으로 인기가 상당했던 녀석.
내가 말한 추석 이벤트의 핵심 보상이다.
‘이벤트 배포 사역마라 그런가?’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우웁!
가슴을 쭉 내밀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녀석.
“그대의 이름은?”
“…파우스트다.”
“파우스트!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독특한 녀석이다.
성능과는 무관하게 유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역마답다.
“…그런데 지금 낮인가?”
“낮이다.”
“음! 역시, 그럴 줄 알았네! 괜히 졸린 게 아니었어! 그럼, 잘 자게!”
스윽-
녀석이 이마의 안대를 내리고는 바로 선 채로 잠들었다.
“크허어어어어… 크허어어어어….”
잠버릇이 좋지 않은 올빼미.
야행성이기에 주로 밤에만 활동한다는 설정이다. 저렇게 자면 위치를 다 들킬 텐데, 어떻게 살아있는지 신기할 따름.
끼이이이익…
“나리, 괜찮아?”
나를 과보호하려는 페넥스가 문을 빼꼼 열고 나타났다.
‘마침 잘 됐군.’
녀석을 이 자리에 둘 순 없으니 생활 구역으로 옮겨야 했다.
“데리고 가라, 이름은 코닝이다.”
“코닝? 새 친구야?”
“그래.”
페넥스가 코닝을 위로 번쩍 들고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깨지않는 잠이라니….
내게만 보이는 UI를 터치해 코닝의 돌파 효과를 확인했다.
– 바람 저항력 + 30%
– 모든 사용 가능한 능력에 ‘강풍’ 효과.
– 비행 시도 시 활주 거리가 크게 감소.
– 궁극기 재사용 대기 시간 15% 감소.
– 낮에도 활동이 가능
전투에 매우 큰 관련은 딱히 없는, 적절한 밸런스다.
배포 캐릭터다운 느낌.
대악마의 돌파 효과 구성이 이렇게 되어있었으면 문제가 됐겠지만, 이벤트 보상답게 뭐 어차피 공짜니까 라는 느낌이다.
“파우스트 님.”
잠시 자리를 비웠던 루시퍼가 지옥문에 있는 날 찾았다.
“…왜 그러지?”
“정찰병이 던전 입구에서 뭔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 * *
가을 전쟁 이후 2개월, 대수림에선 쓰러지지 않는 우레아의 해체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물의 사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값어치를 품고 있다. 생전에 강력했던 마물일수록 더더욱 큰 가치를 가지는 게 보통이다.
“두 달은 흘렀는데 여전히 썩지 않고 있다니… 어마어마한 생명력이야.”
“귀부인들 고급 화장품이나 고가의 액막이에 들어가니 껍질이라도 환장하고 사 간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협회가 이번에 죽은 토벌대원들 위로금까지 섭섭지 않게 챙겨줬는데도 오히려 한참이나 이득을 봤다더군.”
정치와 국가 간 분쟁과는 무관하게, 솔라리아 전역에 뿌리내린 모험가 협회가 그 비대한 덩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사업체와 같은 성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사람 장사다.
원하는 곳에 넘치는 인력을 파견하고, 거기서 보는 손실은 금화로 메꾼다.
어차피 정해진 거처 없이 활동하는 떠돌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의 헛된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자들은 극히 적었다. 죽을 수도 있는 곳에 발을 들이미는 모험가들도, 그들에게 죽을 수도 있는 곳으로 들어가라 등 떠미는 협회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실.
모험가들의 땀과 피로 쌓아 올린 협회는 실체 없는 괴물로 솔라리아에 존재한다. 벌써, 토벌대를 휩쓴 대참사를 애도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모두 토벌을 통해 얻은 이득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척…
척…
아슬란 제국의 깃발이 곳곳에 내걸렸다.
“제국 놈들… 공을 가로채려는 건 아니겠지?”
“우레아? 관심도 없다더군. 하긴… 제국군이 뭐 하러 이런 데 숟가락을 얹겠어? 대륙의 절반이 넘는 곳에서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다른 목적이 있어서 온 거라더군. 우레아는 며칠 들여다보다 말았어.”
우레아가 쓰러진 후, 이제는 구경꾼들로 전락한 토벌대원들의 말처럼 제국군들은 처음 며칠 동안은 우레아의 사체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후엔 협회 관련 인물인 케일럿과 함께 대수림을 수색했다.
“흐음… 과연, 악의 흔적이 느껴지는구나.”
“그렇게 보십니까, 교구장님?”
“시간이 흘러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확실해. 하지만… 그게 악마의 출현을 의미하지는 않아 보이는구나.”
“토벌대를 도륙한 게 악마가 아니라는 겁니까?”
교구장이라 불린 노인이 끄덕였다.
“악마가 출현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게야. 이보게, 스칼라. 그들이 자넬 보고 도주했다고 말했지?”
“…맞습니다.”
“그럼 더더욱 아닐세. 악마가 있었다면 오히려 스칼라를 포함한 토벌대 전원이 이곳에 묻혔겠지.”
대신관이 의뭉스럽게 웃었다.
“악마란 그런 존재야. 함부로 입에 담을 만한 악이 아니란 말이지.”
“그럼… 이 악의 흔적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닐은 이 힘에 당했습니다!”
“제자의 일은 유감이지만, 악마가 남긴 유물에 당한 것 같구나.”
“악마의… 유물이라고요?”
“그래. 솔라리아에 떠도는 유물 중엔 악마의 손길이 닿은 물건 역시 존재한단다. 여기에 남아있는 흔적은 그런 유물일 게야.”
“그런….”
이건 스칼라가 원한 답이 아니다.
결론이 이렇게 나버린다면….
“악마는 없었다. 이 정도로 결론짓자고.”
“…추격대는 없는 겁니까?”
“악마의 출현이 아닌 이상… 제국은 움직이지 않네.”
“……그렇군요.”
아슬란 제국의 엉덩이는 무겁다.
이 거인을 일으켜 세우기엔, 모험가 수십의 목숨 따위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스칼라 군.”
“교구장님….”
“닐의 일은 안타깝네. 내가 자네를 지켜봐 온 건 꽤 오래전부터지….”
“…….”
“그 삭막하고 융통성 없던 사내가, 그 아이를 만나서 많이도 바뀌었어. 하지만, 거기까질세. 자네의 인생은 여전히 자네가 결정할 수 있어.”
교구장의 말이 맞았다.
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스칼라의 남은 인생을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제도는 어떤가?”
“아슬란…말입니까?”
“그래. 언제까지 초야를 뒹굴며 험한 꼴을 봐야겠나? 나라면 제도에 자네를 추천해 줄 수 있네.”
“…….”
“그곳이라면, 자네의 평안이 이루어질 거야. 모든 것이 정화될 걸세. …자네가 슬픔과 분노에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말이야.”
“말씀 감사합니다, 교구장님.”
꾸벅…
고개를 숙이는 스칼라.
“하지만… 반려하겠습니다.”
“스칼라!”
“늑대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그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늑대로서 살아가고… 늑대로서 죽겠습니다.”
교구장이 눈을 감았다.
“그게 자네가 택한 삶이로군. 분노인가….”
“……”
그리고는, 스칼라에게 미소 지어 주었다.
“좋군, 자네다워.”
* * *
루시퍼가 정찰병의 소식을 가져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해서 가보니, 상상도 못 했던 물건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이건….”
“마석입니다.”
모두 2상자.
누군가 말도 없이 최상급 마석 두 궤짝을 던전 근처에 놓고 사라진 것.
경황이 없어 잊고 있던 존재가 금방 떠올랐다.
“레온….”
던전 썩은 뿌리가 붕괴하기 전, 나를 빼돌려 경고했고… 롬웰을 떠밀어 나를 돕도록 한 자다.
– 이번 일을 마치면 최상급 마석 궤짝 2개 분량을 넘기지.
궤짝 안에는 쪽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 가을에 남겨두고 간 물건이야.
‘…이상한 녀석.’
나는 녀석이 부탁한 물건을 넘기지 못했으니, 이 마석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녀석은 마석을 내게 넘겼다.
‘어째서지?’
– 난 처음부터 숨김없이 말했어. 내 신용을 받을 만한 자가 필요할 뿐이야.
문득, 녀석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녀석은 정말 그저 나를 부리고 싶을 뿐인가?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을 지키는 광기를 보여가며 말이다.
자신을 향한 신뢰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는 녀석이라….
“레온… 보고 있던 건가?”
녀석은 이미 내가 동토에 머물게 됐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걸 알기에 이렇게 정확한 위치에 마석을 갖다 놓았을 테니까.
‘내 쪽에서 접촉할 방법은 없으니… 아마도 녀석이 내가 필요해지면 찾겠지. 그때 생각하면 된다.’
아마도 당분간은 녀석과 접점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뭐, 이건 잘 써주도록 하마.’
뒤돌아서며 말했다.
“루시퍼.”
“예.”
슬슬, 시간이다.
“모든 마석을 지옥문으로.”
얼어붙은 땅에서 재기의 바람을 일으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