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76
제76화
마녀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급하게 조사단을 꾸려 코닝을 따라 이동했다.
“이포스! 빨리 이쪽으로 와!”
벌써 이포스와 가깝게 지내는 페넥스.
아몬은 태평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었기에 데려오지 못했고 나와 코닝 그리고 페넥스와 이포스만이 조사단 인원이었다.
“응… 내, 내가 원래 발이 좀 느려….”
“그래? 업어줄까?”
“으… 응? 괘, 괜찮아! 그냥… 내, 내버려 둬도 돼. 여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히죽-
페넥스가 헤실헤실 웃으며 새로운 친구에게 말했다.
“곧 익숙해질 거야! 좋은 집이니까!”
“좋은 집… 응….”
페넥스가 원래 친화력이 좋은 편이긴 했지만, 유난히도 이포스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어째서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악마 도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단아 쪽이거든 이포스 역시도.’
페넥스와 이포스는 둘 다 묶여있는 세력이 없다. 지옥도 여러 세력이 나누어 지배하고 있다 보니 홀로 활동하는 악마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마 페넥스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이포스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휘오오오오오…
“눈보라가 거세군.”
“이곳은 항상 이렇다네!”
코닝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에 잠겼다.
‘던전을 꾸리는 것도 좋지만, 주변에 대한 정찰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군.’
하마터면 마녀의 흔적을 놓칠 뻔했다.
콰지지직…
어딘가 무너지는 소리.
능선에서 눈보라 너머로 무언가 보이는 듯했다.
“저곳이라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력 충돌이 일어나는 듯한 광경.
철컥…
가을 전쟁 이전에 준비해둔 단망경을 꺼내 눈보라 속을 확인했다.
콰르릉-!
지팡이에 마력을 싣고 먼 거리의 적을 격퇴한다. 의복은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잃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넝마가 된 상황.
‘…마녀다.’
스윽…
옆을 보니 코닝과 페넥스, 그리고 이포스가 멀뚱멀뚱 내가 보던 광경을 보고 있었다.
“보이나?”
“응. 보이는데?”
“…응. 보여.”
마족도 신체적으로나 마력으로나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지만, 악마는 규격 외였다.
“아!”
“…쓰러졌어.”
“끝났네, 아쉬워….”
페넥스와 이포스가 동시에 전투의 종료를 말했다. 단망경으로 간단히 사태를 확인한 후 이들에게 말했다.
“가까이 가보도록 하지.”
이곳은 서리 둥지의 인근이기도 하고 적들은 모두 전투 불능. 아마도 전부 죽은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운 좋게 정보를 얻을 기회는 없어.’
어쩌면 전투를 벌인 이들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내 주위에 악마가 둘이나 있었다.
마녀 역시도 제국은 물론이고 왕국 연합에서도 오래전 추방당한 존재들이기에, 악마의 존재가 들키는 것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사박…
사박…
휘오오오오-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 위에 눈이 쌓이고 걸을 때마다 몸이 휘청일 정도로 바람이 셌다.
“소규모 국지전이었던 모양이네!”
코닝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수는 대략 다섯.
마법흔 역시 일치했다.
쑤욱…
눈더미에 파묻힌 존재를 끄집어 올렸다.
“시체로군. 이미 죽었다.”
“여기도 죽었어!”
“여, 여기도….”
“전부 죽은 모양이네!”
전투를 벌인 마녀들은 자멸한 듯 보였다.
망토와 고깔이 흰색인 마녀 둘.
‘백색 마녀단.’
망토와 고깔이 자주색인 마녀 둘.
‘자색 마녀단.’
동토의 마녀단은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마녀들끼리 분쟁이 일어났을 확률도 있다.
“하필 이곳에서? 공교롭군.”
스윽…
발이 눈에 파묻혀 발걸음을 떼는 것도 힘이 든다고 느끼던 도중…
툭-
발 끝에 무언가 걸렸다.
쑤욱…
고깔은 사라졌고 망토는 불타 어느 마녀단 소속인지 알 수 없는 여성이 딸려나왔다.
“시체인가.”
툭…
그녀를 내려놓고 일단 다른 흔적은 없는지 조사하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나리! 이 인간, 살아있는 것 같은데?”
“…뭐?”
“살아있어, 분명히.”
“…….”
툭.
그녀를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똑바로 눕힌 채 관찰했다.
금발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자세히 살펴보니 꽤 미인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여인이 너무도 미약한 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와줘.”
“…….”
“도와… 줘….”
…기억났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그녀가 누군지.
‘청색 마녀단이다.’
청색 마녀는 에피소드 6의… 그러니까, 현재 멈춰있는 내 에피소드 4의 실마리가 되어줄 마녀다.
“코닝.”
“예잇!”
“그녀를 둥지로 데려가.”
“질-풍! 안전하게 모시겠네!”
* * *
“하아… 하아….”
마녀의 고열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재생의 화원은 던전 코어의 힘으로 사역마를 재생하는 시설. 나름 숲속성 사역마가 이 시설의 인력으로 존재할 시 그 생명의 힘을 조율할 수 있게 되는 곳이다.
“어렵겠어요.”
아리엘이 난색을 드러냈다.
“재생의 화원은 파우스트 님의 사역마가 아니라면… 회복의 권능이 미치지 않아요.”
“직접 치료하는 방법은?”
기이잉-
내 뒤편에서 아몬이 다가오며 말했다.
“부상이 엄중하니 대부분 듣지 않을 것이니라. 피도 꽤 많이 흘렸고….”
“뭔가 방법이 없나?”
“쉽고 빠른 해결책은 늘 존재하지. 그리고 그 대부분은 이 몸의 머릿속에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냐?”
그녀는 지성의 별.
응급처치 방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머나먼 동토까지 나를 살려 보냈으니 말이다.
“사역마 계약이다.”
“…뭐?”
“이대로 두면 죽는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면 뻔하지 않겠느냐? 이 마녀와 사역마 계약을 맺으면 될 일 아니더냐?”
“하지만….”
이는 처음 듣는 얘기다.
‘게임에서는 없던 시스템인데?’
당황스러움도 잠시.
“뭘 놀라고 그러느냐. 애초에 사역마 계약이 마족의 맹약에서 탄생한 것이거늘.”
“…마족의 맹약?”
“그래.”
“난 인간을 사역마로 거둘 생각이 없다.”
“상관없느니라. 회복하는 즉시 해약하면 그뿐이다.”
재생의 화원이 가진 생명의 권능을 이용할 때까지만 사역마 계약을 유지하라는 얘기.
‘대단한 꼼수군.’
계약이란 게 그렇게 쉽게 무를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아몬이 그렇게 말하니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시간이 없다. 즉시 의식을 준비할 테니….”
“기다려. 만약 그녀가 거부한다면….”
“거부하면 죽는다, 그것뿐인 일이 아니더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뭐,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청색 마녀는 퀘스트 NPC라고!’
동토에서 일련의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퀘스트를 제안하는 NPC. 지금 의식을 잃은 그녀가 원래 부여받은 역할이다.
애초에 그녀가 작중에서 파우스트와 접촉하게 됐을 당시엔, 이렇게 다친 모습은 아니었었다. 버려진 던전에 누군가 자리 잡았다는 것을 눈치챈 청색 마녀가 직접 찾아오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었는데….
‘뭐가 꼬인 거지?’
왜 청색 마녀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아니… 그녀가 살기 위해 직접 사역마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건지.
‘선택지가 없다.’
그녀는 인간이었고, 던전의 권능을 부여받지 못하니 오직 사역마 계약만이 그녀의 구원이었다.
“의식이 없는 것 같은데.”
“상관없느니라. 사역마 계약은 영혼에게 전해지는 울림이니. 영혼이 허락한다면, 의식이 없더라도 계약은 유효하다.”
지이이이잉-
아몬이 손을 뻗자, 청색 마녀의 몸이 누운 그대로 서서히 떠올랐다.
“…….”
“…….”
그런데, 계약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주문이 뭐더라?”
“…….”
“너무 오래된 일이라… 음….”
한참을 고민하던 아몬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말했다.
“종으로써 나를 섬기리라. 따라하거라.”
“그게 다인가?”
“나머진 의식에 전부 들어가 있다. 간단한 시동어일 뿐이다.”
아몬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종으로써 나를 섬기리라.”
휘오오오오…
음험한 마기가 마법진을 통해 청색 마녀의 미간을 파고들려 했다.
치지직…
파지지직…
그녀의 이마에 내가 종종 착용하는 염소 해골의 문양이 잠시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 청색 마녀를 소환합니다.]‘지옥문을 통하지 않은 사역마 계약도 가능한 거군.’
아니면, 오히려 이런 계약이 더 흔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받아들였으니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 * *
으직…
으지지직…
청색 마녀를 휘감고 있던 넝쿨이 생기를 잃고 뜯겨나갔다. 그만큼 대상에게 많은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었다는 말이나 매한가지였다.
스윽…
몸을 반쯤 일으키는 마녀.
“여기는….”
“깨어났나.”
“누구….”
마녀가 허전한 자신의 의복 상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옷을 가져다주어라.”
“예.”
인간 여자가 입을 만한 사복 정도는 얼마든지 있었다. 건네받은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물었다.
“여기는… 어디야?”
“좀 복잡하다.”
“사역마 계약… 어째서?”
“네 몸이 만신창이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쪽에 회복에 정통한 인물이 없어서 말이지.”
아몬이 말해준 사역마 계약 해제의 시동어를 내뱉었다.
“자유로워지거라.”
후우웅…
마녀의 이마에 문양이 떠올랐다가…
치이이이…
“으윽….”
이내 사라졌다.
“이만하면 내 궁금증 몇 가지를 풀어주는 대가는 충분하겠지?”
“…….”
“넌 누구냐?”
“…….”
“갑자기 말문이 막혔나?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마녀.”
마녀의 존재를 밝혔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는 내 반응에,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너… 마족이구나?”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
“하긴, 던전을 가졌으니까.”
“마족과 마녀가 만났으니, 조금 더 솔직한 대화가 오고 가도 되지 않을까?”
“…….”
“난 네 생명의 은인이다.”
하아…
그녀가 한숨 쉬더니 내 추궁에 못이겨 답했다.
“청색 마녀단. 이름은 에니스.”
끄덕…
‘역시 맞았군, 청색 마녀가.’
에피소드의 열쇠인 청색 마녀.
“그럼 에니스라 부르지. 왜 쫓겼지?”
“그건….”
“다른 마녀단에게 쫓기고 있나?”
꾸깃…
에니스가 원피스를 잠시 꽉 쥐며 말했다.
“맞아, 사정이 있어.”
“사정이란 게 뭐지?”
“목숨을 구해준 건 고맙지만…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어.”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누가 동토의 스토리를 모를 줄 알고?
“내부 분열인가?”
“윽….”
동토의 스토리는 원작에선 이러했다.
마녀의 땅을 지배하는 세 마녀단은 과거 이 땅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전설적인 한 존재를 봉인했다.
‘빙하의 에켈라르트.’
먼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던 원주민인 서리 주술사 에켈라르트를.
세 마녀단은 그 일 이후, 일종의 연합 형태로 이 땅에 자리를 잡았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파우스트가 이 땅에 도착하고 얼마 후, 마녀를 증오하는 무리인 마녀 사냥꾼들이 에켈라르트의 봉인을 깨트려 마녀들을 자멸하게 만들 계획을 세우는데… 방법이 상당히 치졸한 편이다.
‘내부 분열이지.’
마녀단의 내부 분열을 노려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하고, 파우스트인 플레이어는 청색 마녀단을 도우며 그들을 화합하게 하고 이 땅에서 공공의 적인 마녀 사냥꾼들을 몰아내는 것.
그게 이번 동토에서 벌어질 일들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그때.
“흑… 으흑….”
“왜 울지?”
“다… 다 죽었어.”
“다 죽다니?”
“청색 마녀단이… 전멸했어.”
…뭐?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뭔가 문제가….
“이제 내가 동토에 남은 유일한 청색 마녀야….”
“…이런.”
청색 마녀단은 살아 있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색 마녀단이나 백색 마녀단과의 협상이 가능하다고.
후우우웅-!
심처의 문을 누군가 힘차게 열어젖히고 등장했다.
“질-풍! 주의하시게! 마녀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네!”
“…그런가.”
아무래도, 이번엔 일이 조금 빠르게 진행될 모양이다.
“마, 마녀들이야… 날 잡으러 온 거야! 도, 도망쳐야 해!”
“…어디로?”
“어디든! 이곳이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 마력이 온전하지 않아서 막지 못할 거야! 그러니….”
에니스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이곳이 어딘지 모르고 있다.
‘새집에 왔으니 진작 떡을 돌렸어야 했나….’
그렇다면 파우스트가 이곳에 왔음을, 뒤늦게나마 알려줄 생각이다.
“새로운 이웃이다. 환영해주도록.”
내 말에 청색 마녀 에니스가 뜻을 잘못 이해하고는 겁을 먹었다.
“그게 무슨….”
루시퍼만큼은 내 말의 의도를 눈치챈 듯 조용히 물었다.
“생포입니까?”
아니.
“말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