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81
제81화
레온…
“뭐?”
“마녀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하하… 잠시 걸을까? 누군가 깰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래, 이 녀석은 내게 무엇일까.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야 한다.
‘레온… 넌 아군이냐, 적군이냐?’
후원자인 양 굴지만, 정작 얼굴은 단 두 번 본 사이다.
“성공적으로 던전에 자리 잡았더군.”
“날 감시하고 있는 거냐?”
“감시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그냥 발이 넓어 동토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는 편이라서. 겸사겸사 네가 잘 지내는지도 확인하고 말이야.”
“참 쓸데도 없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군.”
“크큭… 내가 아니었으면 던전 밑에 깔려 죽거나 스칼라에게 토벌당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확실히 해라. 넌 날 돕고자 하는 것이냐? 아니면 나를 우롱하나?”
“흐음…….”
레온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입장은 여전해. 난 그냥 쓸 만한 녀석이 필요할 뿐이야.”
“잠깐 오고 가는 거래 아니었나? 애초에 난 네 밑에 들어간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건 네가 정할 일이 아니야. 내가 정하는 거지.”
스윽…
레온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오만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것을 굳게 믿고 있는 자의 눈이다.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라고, 부끄러우니까. 마족 나으리.”
“…마족이란 건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유의 냄새가 나거든. 대기에 있는 마력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스며들었으니까. 너도 내 이 모습이 변장이라는 건 쉽게 알아챘잖아?”
– 파우스트 님, 변장입니다.
‘빌이 했던 말을 들은 건가.’
“서로 속이는 데만 열중하는 것 같은데, 별로 희망적인 미래는 안 그려지는걸.”
“크핫! 뭐 낯 좀 가릴 수도 있는 거지. 이해한다고. 그것보다, 마녀에 관한 얘기를 하자고.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니까 말이지.”
“왜 에니스의 일에 손을 떼라는 거지?”
“잘 들어. 이 일은 꽤 복잡하다. 어디 저잣거리 싸움처럼 선악이 분명하게 정해진 게 아니야.”
“…….”
“네가 청색 마녀를 도우면, 모든 일이 틀어진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이 모든 일이 우연처럼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그런가… 누군가의 크나큰 계획이 있는가 보군.”
“그래! 그러니….”
“그 계획이 뭔지 말해줄 수 있나?”
“…그건 안 된다.”
“날 신용하지 않는군. 그럼 나도 널 신용하지 않겠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개입할 수가 없는 거다! 이 일에 네가 개입하게 되면….”
“이런 녀석이었나….”
“…뭐?”
무심한 눈으로 레온을 바라봤다.
“그 잘난 비밀 뒤에 숨어서 이간질이나 해대는 게… 네 본모습인가?”
“…….”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
“파우스트! 저자는 누, 누구… 꺅-!”
파악-!
상황이 급박해졌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건 잠에서 깬 에니스였고…
“움직이지 마, 마녀.”
“아이타, 그만….”
“…레온, 이 자에게만 과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걸 알아?”
긴 앞머리로 한쪽 눈을 가린 미녀.
느껴지는 기운은 음험하고 차갑다.
그리고…
‘…무거워!’
분명, 아이타라는 여자는 어마어마한 실력자다.
“…이제는 협박인가?”
“그만! 너 닥쳐! 더는 레온을 그 세 치 혀로 평가하지 마!”
“레온, 이제는 부하에게도 끌려다니는 거냐? 차라리 롬웰과 나타났으면 대화라도 이어졌을 텐데 말이지.”
“롬웰? 널 조사단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롬웰은 큰 부상을 입었어! 감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아이타가 날 죽일 듯이 몰아붙였다.
‘그럴수록 정보만 흘릴 뿐이지.’
이 여자는 레온의 지시만 따르는 것이 분명했다. 말로는 온갖 위협을 하지만, 레온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으읍!”
“저항을 멈춰라, 마녀. 그럴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건 너야.”
“읍….”
“레온, 이렇게 하자. 차라리 이 마녀를 여기서 죽이는 건 어때?”
레온이 아이타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편이 일을 더….”
“아이타.”
레온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갑자기 터무니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두근-!
심장이 압박당하는 느낌.
심지어 힘의 방향은 내 쪽도 아닌 아이타 쪽이었음에도.
“죽고 싶은 거야?”
“크윽….”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일에 끼어들다니….”
“자, 잘못했어….”
“마녀는 풀어줘라.”
에니스가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
따악-!
하지만 곧바로 레온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가 목을 움켜쥐었다.
“아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거기서 지켜봐라. 후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군. 좋아, 이렇게 하지.”
레온이 협박이 아닌 제안으로 노선을 틀었다.
“이 일에 손을 떼면 마석 두 상자를 주마.”
“레온!”
“입 다물어, 아이타. 다음에 끼어들면 벌로는 안 끝날 거니까.”
“…….”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차분하게.”
저들끼리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었다.
‘마석 두 상자라… 흐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석을 두 상자나 준다고?
“그리고 만약… 결말이 어떻게 되든, 마녀의 일에 끼어들어서 살아남는다면… 마석 여섯 상자를 주마.”
“…뭐?”
“이건 협박이 아니다. 널 가늠하기 위한 거래지.”
“당연히 조건이 있겠지?”
“이 일과 관련 없이, 이후엔 내 일을 도와라.”
“하….”
“당연히 대가는 있다, 지금처럼 말이야.”
수하가 되라는 말도 아니다.
단지 일을 도우면 마석을 잔뜩 안겨준다는 제안이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이 거래가 네게 무슨 이득을 주지?”
“마석 두 상자를 택한다면 제 분수를 아는 자를 부리게 될 것이고… 마석 여섯 상자를 택한다면 괜히 쓸모없는 녀석에게 마석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
“하지만 만약… 만약에라도 네 던전이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다면 음….”
녀석의 눈빛이 서글서글해졌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는 자를 부리게 되는 거지.”
슬쩍 에니스의 얼굴을 봤다.
“…….”
그녀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이대로 그녀를 돕는 걸 포기하면 마석 두 상자다. 그녀는 내가 편한 길을 고르리라 생각한 거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어느 쪽?”
“당연히, 상자가 많은 쪽이다.”
“하하!”
레온이 배를 잡고 웃다가 정색했다.
“실패하면 죽을 거다, 확실하게.”
“던전에 깔려 죽을 뻔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지.”
그래, 가을 전쟁을 거치며 배운 것이다.
“위기를 피한다고 뭔가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거.”
“…….”
“결국엔 맞이하게 되더라고.”
“포부 하나는 인정하지. 당분간은 볼 일 없을 거다.”
“내가 이 모든 일을 끝냈을 땐….”
돌아서는 레온과 아이타에게 말했다.
“내 몸값이 좀 비싸질 거야. 감당할 수 있나?”
“…힘내보지.”
* * *
“하아암… 어제 그 녀석들 배웅은 잘 해줬느냐?”
“알고 있었으면서 왜….”
“졸리기도 했고, 녀석들에게 살의도 없었으니 말이다.”
“…….”
“괜히 끼어들면 대화의 흐름만 꼬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마녀?”
“미, 미안해….”
에니스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사실은… 어제 가지 말라는 데도 그 자리에 간 거라….”
“그랬었군.”
아몬이 에니스에게 경고했던 듯했다. 대화에 끼어들지 말라고 눈치까지 준 모양인데, 하필 끼어들어 상황이 좀 소란스러워졌었다.
‘헤프닝이지.’
후우웅-!
코닝이 날아오며 소리쳤다.
“목적지를 확인했네!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하느라 자세히 확인하진 못했지만 스무 명 남짓이 있는 모양이더군.”
“스무 명 규모라… 잠입이 맞겠군.”
고개를 끄덕이고 오든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리는 편이 낫겠군.”
“그러지. 뭔가 소란이 일어나면 달려갈 테니 신호만 하시게.”
오든이 절벽에 기대 털퍼덕 앉았다.
휘이이잉-!
“코닝, 계속 감시해줘. 혹시 접촉이 있을 것 같으면 경고해주고.”
“알았네!”
눈보라를 물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자국이 남을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된다. 촌각만 흐르면 금세 새하얀 눈으로 뒤덮일 날씨였으니.
“보물고의 위치는?”
“마을이랑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그래서 조심해야 해, 자칫하면 들킬 수가 있어.”
마을은 눈보라에 가려 그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았지만, 감시 역할을 하는 망루에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이곳에서도 감지되었다.
“저격할까?”
“스무 명이랑 뒹굴고 싶으면 그래도 좋고.”
“끄응… 어쩌지, 이쪽 길을 지나가야 보물고에 닿을….”
그때.
빌이 동전을 튕기더니 말했다.
“근방에 말소리가 들립니다.”
“어떻게 알았지?”
“아까 전, 이 동전과 연결된 다른 동전을 마을 내부에 눈으로 뭉쳐 던져넣었으니….”
빌이 괜히 눈덩이를 뭉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심심한 건가? 라고 착각하긴 했었다. 그게 이런 수였을 줄이야.
치익…
“단발성이라 오래는 못 듣습니다.”
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전에서 말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다행히 망루에는 감지되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그 계집을 못 잡았다고?”
“브로시아가 직접 갔는데도 잡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멍청한 것. 3번째 열쇠를 눈앞에서 놓치다니!”
“전투의 흔적은 있는데… 아시다시피 눈보라가 몰아치면 뒤쫓기가….”
“동토를 벗어났을 수도 있겠어. 흐음… 역시, 아킬라의 계획대로 진행해야 하나.”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3번째 열쇠를 기다리기엔 봉인이 너무 약해졌어. 만약 에켈라르트가 스스로 봉인을 깨고 나오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쓸려나가겠지.”
아킬라의 계획이라는 말.
괜히 불안해진다.
“인원을 물리지. 재물은 전부 챙겼나?”
“예. 다만… 크게 효용이 있는 물건은….”
“청색 마녀는 애초부터 연성과 제련 같은 잔재주에 재능이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기대했건만… 정작 골동품들만 가득하군. 해가 완전히 뜨면 철수할 것이니 일러두어라.”
졸지에 철수 계획까지 엿듣게 되었다.
“정오를 말하는 거라면,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오든이 들킬 위험이 있겠어.”
코닝에게 전달해 오든을 미리 다른 위치에 대기시키고, 정오가 되었다.
“간 듯하군.”
그제야 편하게 움직여 에니스가 말한 보물고 입구까지 왔다.
“저 절벽 위에 입구가 있다고?”
“응. 그래서 빙벽을 올라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 거야.”
근거지를 둘러싼 빙벽 꼭대기에 입구를 만들었다니….
“…오든.”
“크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모두 한 번에 올려줄 테니.”
오든의 손에 올라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후우우웅…
에니스의 내면에 잠든 열쇠가 진동하며 수상쩍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여기야, 들어가자.”
내부는 상당히 커다랬다.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많다거나 이런 건 아닌 듯한 게…
“음?”
“호….”
나와 아몬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이건 뭐지?”
주전자와 비슷한 형태의 대포다.
“멋지지? 청색 마녀의 자랑이자 전설로 전해지는 유물이야.”
이 세계에 건너와 본 것은 죄다 싸구려 유물이 전부였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유물을 구경한다.
“알비누스라는 건데, 신성이 담긴 낙뢰를 유도하는 힘이 있다고 해. 어때?”
“고장 났구나, 이거.”
아몬이 풀 죽은 듯 말하자, 에니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에켈라르트와의 싸움에서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
“…내부가 전부 타버렸구나. 건질 부품이 하나도 없어. 다만, 마지막 숨 정도는 토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아니… 할머님은 이제 알비누스가 다신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말했는데….”
“아, 물론 여기엔 내 손이 닿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하긴 한다만…. 이 녀석, 내가 가지지.”
“뭐?”
“내게 주거라, 알비누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딴 고물을 받아서 어디다 쓰지?
그리고 결론에 다다랐다.
“줘.”
“아니 둘 다 생떼를….”
알비누스가 고물이라고?
‘전투 국수 취식기 같은 것도 세상에 나오는 마당에….’
한동안 그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면서 진지하게 피드백하느라 혼이 났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꼭 마석만이 전부가 아니다.’
게임에서 유저가 강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마석을 투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도 마석만이 파우스트가 강해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자리 잡게 됐었고.
‘아직도 게이머의 사고방식이 남아있던 거겠지.’
필요하다면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
“다른 유물은 또 뭐가 있지?”
“어… 잠시만….”
에니스가 수상한 천에 휘감긴 검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끄응….”
“이건 뭐지?”
“알비누스랑 동시대의 유물이야. 마찬가지로 청색 마녀의 자랑이지.”
“이 검이?”
“응, 저주의 검 미스란테.”
“저주의 검이라….”
“위험하니까 만지면 안 돼.”
“어째서?”
“미약한 저주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니까…. 에켈라르트는 알비누스의 포격을 받고도 칠주야나 버텼는데 결국 이 미스란테에 찔려 봉인되었어.”
“그만큼 강력한 저주인가….”
“모르지? 하지만, 대모님께선 이 검이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검이라고 했어.”
스르릉…
천에 감싼 검을 뽑자, 날이 먼지처럼 부서졌다.
후두둑…
“…음?”
“원래도 이랬어. 신경 쓰지 마.”
“날이 부서진 건가….”
“응. 에켈라르트의 봉인에 모든 힘을 사용했나 봐. 다시는 휘두를 수 없어졌어.”
“어째서지? 이걸 만든 건 청색 마녀들이라며?”
“그게… 가장 중요한 소재가 이 검을 만들 때 마지막으로 쓰였거든. 전설 속에나 나오는 거라 실존했는지도 의문이긴 해.”
“그게 뭔데?”
에니스가 막힘없이 답했다.
“황금 겨우살이.”
“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