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82
제82화
갑자기 여기서 겨울 축제 이벤트의 퀘스트 아이템인 황금 겨우살이의 이름이 튀어나올 줄이야.
“응, 아주 오래전에 이 땅에 자라던, 신목에 기생했던 영물이야. 에켈라르트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는 전설도 있었고.”
“신목이 사라진 건가?”
“에켈라르트가 봉인되면서 신목은 말라 죽었고 당연히 황금 겨우살이도 신목이 죽으면서 사라졌어.”
“따로 보관된 것도 없나?”
“있었으면 미스란테를 다시 벼려낼 수 있었을 테니까 마녀단끼리 분열될 일도 없었겠지.”
‘…그렇단 말이지?’
과연 에니스가 말하는 황금 겨우살이가 내가 가진 황금 겨우살이와 같은 것일까. 그걸 확인하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만약 일치한다면….’
이 일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려나갈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의미의 발견인가….’
길가의 조약돌과 같은 아이템도 어떤 조건에서는 같은 무게의 황금과 같이 쓰일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세상을 넓게 보아라.
새로운 발견은 내게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마석은?”
“저쪽이야. 마석은 따로 모아둔 걸로… 여기네.”
작은 창고.
그러나 보관된 것들은 전부 마석이었다.
품질은 제각각.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분류되어 있고….
“2상자쯤이겠군.”
최상급 마석은 2상자.
20연차 정도라고 우습게 보기엔 이런 사소한 이벤트로 긁어모은 마석이 나중에 기적과도 같은 일을 불러오기도 하니….
“나머지 마석은 음….”
두고 갈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전부 챙겨가야 한다.”
“이것들도?”
“당연한 소리를. 이 몸의 연구에 마석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그간 말하지 않아 몰랐던 것이냐?”
잠깐…
‘전투 국수 취식기에도 마석이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세상 쓸모없는 곳에 마석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참….
“필요하다고 해도 이 정도 양은 상당한데… 마차가 두어 대는 필요할 거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까 보지 않았느냐?”
“무엇을?”
“유물 말이다. 설마 모르는 것이냐?”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있나.
“유물… 아! 맞네!”
에니스도 뭔갈 떠올린 듯 맞장구쳤다.
“설명해라.”
“운송용 유물이 있어. 그게… 운송용이라고만 말하기엔 좀 이상하겠지만, 아무튼 그런 게 있어.”
“그런데?”
“그 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게 마족뿐이야. 마족만의 전유물이라 인간이 구동하는 건 불가능한데… 이거!”
그녀가 가져온 건 조금 뻣뻣한 주머니처럼 생겼다.
“주둥이에 피를 흘려 넣으면 돼. 실제로 작동할지는 모르겠어. 너무 오래된 물건이라.”
“아몬 넌 이게 운송용 유물이란 걸 어떻게 알았지?”
“이 녀석의 모태가 되는 유물을 직접 보았었으니까. 당시엔 꽤나 혁신적인 물건이었다만… 원형에서 그렇게 발전하진 못했구나.”
“…그래?”
“일단 생김새부터가 촌스러운 게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아몬의 모든 투정은 사실 전투 국수 취식기만으로도 반박이 가능했다.
“전대의 유물이라….”
“인간과 마족과의 교류는 한참 전에 끊어졌으니까.”
슥-
품에서 단검을 꺼내 손아귀를 살짝 베자 피가 배어 나와 유물의 주둥이로 떨어졌다.
툭-
별다른 반응은 없었지만, 이 유물이 날 허락했다는 게 느껴졌다.
유물을 발동하자,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이 뇌리에 이식되었다.
“그런 식인가….”
유물에 손을 올린 상태에서 물체에 손을 올리면 그 물체가 유물에 들어가는 방식.
“전부 담아가거라, 다 쓸데가 있을 테니.”
“그럴 생각이다.”
이 유물, 마력을 상당히 잡아먹는다.
그러니까… 묶어둔다는 표현이 맞을까?
유물을 이용하니 배가 부른 것처럼 마력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전투는 어렵겠는데.”
“당연한 소리를… 걱정하지 말거라. 설마 버리고 가기야 하겠느냐?”
말하면서 큭큭 웃는 아몬. 에니스가 멋쩍어 하며 추가적인 설명을 해줬다.
“아주 오래된 거라 그래. 전설로는 칠죄종이 사용하는 것들은 던전을 통째로 옮길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뭐?”
“나도 믿기진 않는데… 그냥 그런 말이 돈 적이 있었어.”
괴물 녀석들이 사용하는 유물답게 괴물 같은 성능이라 이건가.
똑똑…
똑똑똑…
“코닝이다.”
끼이이익-
“푸하! 큰일났다네! 마녀들이 돌아오고 있다네!”
“…뭐?”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 이 방향으로 오고 있다는 건 확실하네!”
“어째서 그렇게 확신을….”
철컥-!
코닝이 수상하게 생긴 덫을 들고 있었다.
“마력 함정, 걸려버렸다네!”
“…….”
“깜빡 졸다가 그만….”
“일단 나가지.”
이곳은 빙벽 위였고 자칫하다간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오든의 도움을 받아 절벽을 내려온 우리들은 오든에게 경고한 후 곧장 마을로 몸을 숨겼다.
– 수는 다섯, 전부 마녀라네.
녀석들이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것이고, 만약 우리의 흔적을 눈치챈다면….
“확실한 거야? 마법 함정 말이야.”
“분명해. 그 청색 마녀가 여기 온 게 분명하다니까? 요망한 것이 우리가 떠난 직후에 나타나다니….”
“그럼 로니히 님에게 알리고 왔어야 하지 않나….”
“그럼 청색 마녀를 생포한 공은 누가 차지하는데?”
“으음… 틀린 말은 아니네. 다섯이서 새파란 애송이 하나 못 잡으면 말이 안 되긴 해. 저항하면… 어쩌지?”
“…죽여야지? 어차피 그 안에 열쇠는 소유자가 죽어도 유지된다며?”
꾸욱-
자신의 생사가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는 건, 차분하게 공포를 준다.
에니스의 지팡이를 잡은 손이 떨려왔다.
빌이 나직이 물었다.
“죽일까요?”
“죽여야지.”
이제 사람을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하지. 나서지 말거라.”
“아몬?”
아몬이 말릴 틈도 없이 툭 튀어 나가, 마녀들이 조잘대는 위치 근방의 가옥으로 잠입했다.
‘다 같이 기습을 하는 편이….’
그때, 가옥이 부서지며 거대한 기계 손이 가까이에 있는 마녀를 붙잡아 짓이겼다.
콰지이이이익-!
“꺄아아악!”
“적이야!”
동시에 주변 마력이 마녀들에게 빨려들어갔다.
완성되는 시점이 제각각일 마법 4개를 전부 쳐내야 하는 상황.
“…뻔하다니까.”
아몬의 거대한 일손 한 쌍이 마주 부딪혔다.
파지지지직-!
주변에 전격 쇼크가 가해지며, 마녀들의 마법 시전이 모두 도중에 끊겼다. 등록된 스킬도 아닌, 아몬의 순수한 전투 노하우다.
“컥….”
“크으윽….”
단 한 수로, 마녀들을 전부 무력화.
콰지이익!
으직!
“사, 살….”
퍼어어억!
“안….”
으지지직…
자비 없이 짓뭉개지는 마녀들.
그 주검을 뒤로 한 아몬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별것도 아닌 일이다. 유난 떨 것 없지.”
* * *
던전으로 되돌아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면 에켈라르트고 뭐고 그냥 아몬이 처치하면 되는 거 아닐까?’
이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은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아몬은 재밌는 질문이라면서 예상보다 상냥하게 답해주었다.
“바다는 불을 끌 수 있지. 하지만 네가 그 바다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까?”
“…….”
“지금 바닷물을 퍼 나르는 건 안타깝게도 네 가녀린 손이니… 뻔한 결말이구나.”
즉, 본디 아몬의 힘이 에켈라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더라도 현재 내게 종속된 상태에서는 그 힘의 일부를 끌어내는 것마저도 힘든 상황이기에 승부에 나서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다.
내가 약하니 아몬의 힘도 제한되는 상황.
‘…틀린 말은 아니지.’
당장의 체급 차이.
아몬이 일격을 위해 내지르는 마력이 에켈라르트에겐 숨만 쉬면 모여들 것이다.
‘상황이 어려우니… 에켈라르트를 쓰러트리는 가정을 하게 되는군.’
원작에선 마녀들의 싸움을 중재하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끝이 났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내가 더 강해졌으면 좋겠느냐?”
“…당연한 말을.”
아몬이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음흉하게 웃었다.
“혹시 모르지, 미래엔 어떤 일이 생길지….”
후우우우웅-!
정찰에 나섰던 코닝이 창공을 선회하며 돌아왔다.
“위험-! 위험하다네! 지금 이쪽으로….”
콰아앙!
콰아아앙!
콰앙!
땅의 흔들림이 저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뭔가 거대한 생명체가 가까워지는 듯….
“사, 살려줘요! 항복이에요! 무조건 항복!”
“발루아! 도망치지 말고 통제를 하세요!”
“싫어! 아까부터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빗자루를 탄 마녀들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까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 수는 셋.
“아, 안….”
콰지이이익!
방금 둘로 줄어들었다.
“어어… 어어어!”
아몬이 날아오는 자색 마녀와 백색 마녀의 빗자루를 일손으로 잡아챘다.
“꺄아악!”
“너, 너희들은….”
방금 마녀를 짓뭉개고 이쪽으로 향해오는 존재는, 익히 아는 생김새다.
“음… 어떻게 보느냐?”
“누가 봐도 서리 거인이지?”
후우욱…
후우우욱…
흥분하여 콧김을 뿜어내는 거인들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휘이이이…
두 눈에 동공은 사라지고 보랏빛 광채만 흘려대는 거인들. 오든이 얼음 기둥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거인들을 노려보았다.
“역시… 너희들인가.”
후우욱…
후우욱…
“어떻게 된 거지?”
“거인들이 갑자기 토, 통제를 따르지 않아서… 그보다 당신들은… 너! 처, 청색 마녀!”
“드디어 찾…은 게 아니라 우리가 붙잡힌 거군요.”
흰색 마녀와 자색 마녀는 저항을 포기한 상태.
‘죽일까?’
이미 제압당한 마녀들이었으니,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잘 됐군. 안 그래도 정보가 필요했는데. 그보다….’
흐으으으음-!
“오라!”
오든이 집채만 한 몽둥이로 그에게 달려드는 거인 중 하나의 가슴팍을 시원하게 올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공간을 휩쓸었다.
경지를 떠나서 거대한 육체를 가진 자들의 싸움은 확실히 볼 맛이 났다.
“크하아악!”
능력도 쓰지 않은, 순수한 육체의 힘.
“노오오오옴!”
팔꿈치 안쪽을 다른 거인의 목에 걸고 눈밭에 넘어트리는 오든.
콰아아앙!
“꺄아아악!”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피가 튀기고, 살점이 튀겼다.
저 끔찍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오든도 대단했지만, 저것에 얻어맞고도 몸을 가누는 거인들이 대단해 보였다.
“크윽… 이 자식이!”
“카하아악!”
거인들이 점차 비명이 아닌 단어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 안 돼… 세뇌가… 세뇌가 풀릴 거예요!”
자색 마녀가 아연실색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콰아아앙-!
“붙잡았다! 갈겨!”
“으오오오오!”
“어디이일!”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오든은 다른 서리 거인들과도 확실히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었다. 주먹에 실린 파괴력이 달랐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그, 그만….”
“넌… 대체… 아니… 여기는?”
세뇌에서 풀려난 거인들이 동시에 이쪽을 쳐다보았다.
“마녀! 우리를 농락하다니!”
“감히 인간 따위가아!”
졸지에 자색 마녀 때문에 우리까지 위험에 처한 상황.
후우우웅-!
오든이 몽둥이를 횡으로 들어 거인들을 가로막았다.
“날 기억하지 못하겠나?”
“넌 누… 카, 카쿠스잔?”
“카쿠스잔이라고? 정말인가?”
세 거인은 알고 있는 듯했다.
설인이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
“크하하하하!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진즉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야말로! 그때 크레바스에 떨어진 자네를 아직도 잊지 못했었는데….”
“카쿠스잔! 우리와 가자! 이 수모… 모든 마녀를 죽여야만 갚을 수 있겠어. 네가 있어 준다면….”
“그만들 하지. 난 섬기는 이가 있는 몸이니까 말이야.”
“뭐? 설마….”
오든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제 사역마라네. 이미 오래전, 계약을 맺었어.”
“어째서….”
“지치기도 했고… 크레바스에 떨어진 순간 직감했네.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스토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최후의 구명줄로 사역마 계약을 선택하는 경우는 많았다. 오든은 계기에 대해 호탕하게 넘겼지만, 과거에 크레바스에서 어떤 사고가 있던 듯했다.
“계약을 거스른 사역마에게… 어떤 재앙이 초래되는지… 알고들 있겠지?”
“그런….”
“그렇다면….”
서리 거인 둘이 아몬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리도 거두어 주게!”
“카쿠스잔과 가겠네!”
아몬이 대답하기도 싫다는 듯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그 즉시 돌아가는 열정적인 동공들.
쿠우웅!
쿠우웅!
둘 다 한쪽 무릎을 꿇고 땅에 주먹을 가져다 댔다.
“우리를 거두게나!”
“싸움만큼은 자신이 있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가늠이 안 되어 오든을 바라봤을 때, 그가 멋쩍게 말했다.
“이 녀석들을 거두어 줄 순 없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