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84
제84화
삼색의 마녀들에게 심장부를 내줬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들이 미스란테를 벼려내기 위해 저주의 불꽃을 피워올려야 하는데 그들의 마력으로는 단 10분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의 예측으로는 미스란테를 제련하기 위해 보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당연히 저주의 불꽃 역시 보름 동안 타올라야 했다.
그만한 마력을 어디서 구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던전 코어를 사용할 수밖에.’
꾸준하게 방대한 마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 건 던전 코어뿐이다.
어쩔 수 없이 삼색의 마녀에게 심장부의 한쪽을 내주었는데, 만약을 대비해 페넥스를 근처에 두었다.
‘어리석은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해야지.’
페넥스가 옆에 있으니 마녀들은 던전 코어를 노리는 행동을 하면 그 즉시 목이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굳이 이렇게 고생해가며 미스란테를 만드는 이유는 하나다.
‘혹시 모르니까.’
만약 에켈라르트가 정말로 부활한다면? 그를 상대할 방법 하나쯤은 마련해둬야 할 거라 판단해서다.
‘청뢰포 알비누스도 수리에 들어갔지만….’
– 기대는 하지 말거라.
아몬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알비누스 쪽에는 기대를 버렸다.
현재, 코닝의 정찰에 따르면 마녀의 땅 중심부에 전초기지가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마녀 사냥꾼들의 소행인데, 마녀 쪽은 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조만간 충돌이 일어날 수도?’
그전에도 자잘한 충돌은 있었지만 마녀 사냥꾼들이 이렇게까지 전선을 위로 끌어올린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초기지에서 조금만 더 북진하면 에켈라르트의 봉인지와 맞닿게 될 정도니….
‘마녀단 쪽도 더는 미룰 수 없겠지.’
에니스를 생포하는 건 이제 포기 상태일 거다. 위치도 모를 테고, 시간도 부족할 테니.
아마도 그들은 결국, 에켈라르트의 이른 부활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노리는 것도 딱 그런 균형이다.
에켈라르트를 등에 업은 마녀단이 마녀 사냥꾼과 엎치락뒤치락하는, 딱 그정도.
‘그럼 이쪽도 전쟁에 대비해야겠지.’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추위에 저항하는 데 필요한 땔감의 확보와 사역마들을 배불리 먹일 식량 수급이다. 다행히도 전부 해결이 가능한 문제였다.
페넥스와 세 거인을 한 조로 묶어 하루는 에니스가 말한 비밀의 숲으로 향하게 했고, 또 다른 날엔 에니스가 말한 사냥터로 그들을 향하게 했다. 생태를 무너트리지 않을 정도의 자원만 수집하도록 했는데, 그럼에도 올겨울은 충분히 날 만큼 많은 고기와 목재를 얻을 수 있었다.
“파우스트… 나, 외출….”
“또 설산에 가나?”
“응… 다들, 답답해해서… 미안.”
이포스는 던전에 일이 없으면 주로 페넥스와 어울리거나 던전이 끼고 있는 설산에 올랐다.
드루이드답게 시시때때로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이지만 내가 보기엔 허스키가 눈밭으로 산책하는 느낌이다.
“같이 가지.”
“…같이?”
아직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게 아니니, 의도적으로라도 가까워져 보려 한다. 가끔 낯을 가리고 소극적인 그녀를 볼 때마다, 던전의 생활이 불만스러운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서 말이다.
……
파파팍-!
고양이가 높은 곳의 난간을 박차고 묘기를 부리듯 뛰어오르는 것처럼 잘도 설산을 누비는 이포스. 설산을 오를 때의 그녀는 기다란 설표의 꼬리를 흔들거리며 중심을 잡고 있었다.
폴짝-!
폴짝-!
사족 보행도 서슴지 않는 게 영락없이 사람 몸에 들어간 고양이다.
‘이 경우엔 악마 몸에 들어간 설표지만….’
후욱…
후욱…
내가 그녀의 속도를 완벽하게 따라잡는 건 무리지만, 그럼에도 제법 잘 따라가고 있다.
파아앗-!
이포스가 정상에 먼저 올라 이쪽을 내려다 보았다.
‘눈이….’
이포스에게 설표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니 동공도 짐승의 그것처럼 변해 있었다.
‘산책을 나오자고 조른 건 설표인가?’
그녀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이포스가 명상을 위해 늘 취하는 자세인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스으으읍…
그녀의 코로 냉기가 빨려 들어간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볼이 발그레해지는 이포스.
“이포스, 새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새집? …좋아. 다들 따듯하고 다정해.”
“다행이군.”
“싸움이 적은 건… 불만이야. 이포스는 계속 싸워야 해.”
“어째서?”
“모든 나를 깨워야 하니까. 그러기로 약속했거든….”
“누구와?”
“나와. 음… 아, 음… 이건 그러니까… 우웅….”
“되었다, 대충 이해했으니.”
“어, 정말?”
그녀의 말은, 10개의 반지에 잠든 모든 영혼을 깨우기 위해선 계속해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뜻.
‘틀린 말은 아니지.’
더 심연에 잠든 영혼들을 깨우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이포스가 강해지는 것이다.
“있잖아, 여기 이렇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이 땅이 느껴져.”
“그런 게 가능한가?”
“작게 움트는 씨앗, 눈에 파묻힌 강이 밑에서 흐르는 소리. 사냥꾼이 몸을 움츠리고 호흡하는 소리까지.”
어느새, 그녀는 이 동토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괴로운 소리가 들려.”
“괴로운 소리?”
“신음하고, 아파하는 소리. 모두가 불행하길 바라는 소리.”
“설마….”
“저쪽이야.”
휙-!
이포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에켈라르트의 봉인지로 알려진 곳이었다.
“…이포스, 하나 물어도 될까?”
“응.”
“그 녀석은… 깨어있나?”
이포스가 눈을 감고 대답했다.
“깨어있어, 분명히.”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
이 내용에 관해선 좀 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후우우우웅-!
코닝이 날 보고 설산의 정상에 내려섰다.
“질-풍! 드디어라네!”
“드디어? 그렇다는 얘기는….”
“마녀단이 전초기지를 습격했네!”
콰아아아앙-!
저 멀리, 폭음이 들려왔다.
* * *
예상했던 대로 마녀단과 마녀 사냥꾼 양측 중 더 다급한 쪽이 먼저 움직였다.
전초기지를 북진시켜 마녀의 땅 정중앙에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조만간 벌어질 일이었다.
‘이 전쟁에서 양측의 전력이 최대한 소모되어야 한다.’
이들의 전쟁은 현재 국지전 형태로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접전지는 던전에서 그리 떨어지지도 않은 자리.
당연하게도 그들의 전쟁엔 어지간하면 끼어들지 않을 생각이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정찰병을 늘렸다. 필드를 할당받지 못했지만, 눈과 귀가 좋은 사역마들이 설원으로 나섰다.
그들은 이 동토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시시때때로 내게 보내왔다. 나는 그것들을 취합해, 양측의 무게감이 어떻게 쏠리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확실히 전력은 마녀 사냥꾼들이 우세해. 이대로 가면….’
마녀단의 패배가 확정된다.
그들이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마녀 사냥꾼들을 노려야 할지도.
‘마녀단이 예상보….’
………지직!
그때, 던전 인근에서 들려오는 굉음.
“…이건 무슨 소란이지?”
곧이어 정찰병들에게 인근에서 마녀와 마녀 사냥꾼들 간의 소규모 국지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 * *
“잡아라! 놓치지 마!”
“화살을 맞혔어!”
“크하! 잡았다, 이 사특한 것!”
툭-
마녀 사냥꾼이 발로 차자 마녀의 몸이 뒤집어졌다.
“역시, 명중!”
백색 마녀의 가슴을 화살이 꿰뚫고 나와 있었다.
“나머지는 어딨지?”
“저쪽으로 도주하는 걸 내 매가 확인했어.”
“가보자고.”
삐이이이익-
마녀 사냥꾼 중 한 명이 호각을 불자, 그의 매가 허공을 선회하다 남자의 어깨에 앉았다.
“뭐야? 저긴?”
“여기에 이런 동굴이 숨겨져 있었다고?”
“마녀단의 함정인가?”
스윽…
그들 중 누군가 설원에 난 핏자국을 발견했다.
“핏자국을 보아하니, 저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야.”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몇이었지?”
“둘. 백색이랑 자색이었어.”
“비밀 은신처 같은 거 아니야?”
“그럼 더 잘 됐지. 전리품도 챙겨갈 수 있게 된 거니까.”
부상당한 마녀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이 안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아, 혹시 모르니 문에 척력 덫을 깔고 가지.”
“괜찮은 생각이야.”
가끔, 동굴에 진입하면 곧장 입구가 무너져 내리는 등의 함정이 설치된 곳들이 있었다. 마녀들이 특히나 그런 함정을 잘 이용했는데, 마녀 사냥꾼들 사이에서 개발된 척력 덫을 이용하면 원천적으로 그런 함정의 발동을 막을 수 있었다.
거대한 문이 떨어지든, 돌 더미가 무너져 내리든 덫이 충격을 받으면 이 모든 것들을 강한 힘으로 튕겨내니 그 틈을 이용해 빠져나가면 되었다.
끼긱-
“자, 설치 끝. 이제 사냥을 마저 끝내러 가지.”
“막다른 곳으로 오다니… 추격을 포기할 줄 알았나?”
“경험이 많지 않은 마녀겠지.”
동굴에 진입하자, 설치한 척력 덫이 발동했다.
[콜린의 척력 덫이 발동합니다.] [발동에 실패합니다.]“…뭐?”
꾸지지지지지직-!
척력 덫이 찌그러지며 반투명한 막이 동굴 입구에 내려왔다. 그 즉시 파우스트에게 전달되는 메시지.
쿵쿵-!
“제길, 뭐지?”
“던전이야! 이런….”
“마녀가 들어가는 걸 봤다며? 왜 곧장 발동하지 않은 거지?”
“모르지 이 던전이 마녀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던전 키퍼가 일부러 우리까지 집어삼키려고 했을지도.”
화륵-!
횃불을 켜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행.
그들은 셋에 불과했으나 자신감이 넘쳤다. 동토의 포악한 설인도 그들은 여러 번 쓰러트려 왔기에 갖춘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조심해, 이 앞부터는 마녀가 기습해올지도 모르니.”
“주의하자고.”
첫 계층은 휑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버려진 던전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정말로 마녀의 은거지일지도 모르겠어.”
“피 냄새… 녀석들은 여기서 계속 전진했군.”
“어쩔까?”
“우리도 계속 가야지.”
다음 계층에 올랐을 때, 핏자국을 따라가던 마녀 사냥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한걸.”
“왜?”
“피 냄새가 여기에만 남지 않았어.”
“마법을 사용한 거 아니야?”
“맞을지도. 근데 어째서… 이런….”
뭔가를 눈치챈 마녀 사냥꾼이 소리쳤다.
“안 돼, 함정이야! 모두 물러….”
티이잉-!
장식물처럼 보였던 수정 함정이 마력을 발산하며 떠올랐다.
[★★★★★ 지독한 눈보라의 수정 함정이 발동합니다.] [지독한 눈보라가 이어집니다. 수정에 담긴 마력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휘오오오오오오…!
확연하게 얼어붙는 공기.
“빌어먹을 함정이 있었어.”
“조심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다행히 치명적인 함정은 아닌 것 같군. 눈보라 정도야….”
“조금… 추워지는군.”
마녀 사냥꾼들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뭔가를 발견한다.
커다란 빙벽을 엄폐물처럼 사용하고 있는 마녀들. 한쪽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저 군.”
“하하! 얼마 못 갔는걸.”
마녀 쪽에서도 그들을 발견한 듯했다.
“멍청이들아, 숙여!”
“이게 겁도 없이 누구 보고….”
그때.
콰아아아아앙-!
주절거리던 마녀 사냥꾼의 정면으로 마치 대포에서 쏜 듯한 커다란 눈덩이가 날아왔다.
콰지이이이이익-!
“프리만!”
“이쪽으로 와!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무슨 개소리를!”
“그럼 죽던가!”
콰아아아앙-!
“제길….”
파아앗-!
처음 눈덩이에 맞은 사내는 죽었다.
사람이 납작해졌으니 죽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살아남은 두 마녀 사냥꾼들이 눈덩이를 피해 마녀들에게 다가갔다. 이제야 그녀들이 왜 빙벽 뒤에 숨었는지 알게 된 그들이었다.
“저거… 보여?”
“대포 거북… 제길 이쪽에서 노리기 어려운 위치를 잡았군.”
“던전 키퍼가 설계한 대로겠지… 너희… 이 눈보라 너희 짓이야?”
“우리 짓이라니?”
“함정을 밟았지?”
“…그게 뭐?”
“이곳에서 탈출하기는 더 힘들어지겠네.”
“여기… 너희의 은신처가 아닌 건가?”
“하! 우리가 대포 거북이를 부릴 수 있었으면 너희는 진작에 죽었어.”
으윽…
신음 소리를 내며 상처를 부여잡고 있는 마녀. 잠시 동료 마녀를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진행하는 마녀.
“그거 알아?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이것보다 거대하다는 거.”
“…그게 정말이냐?”
“거짓말은 안 해. 대포 거북이 전부가 아니야.”
“제길….”
“너희만으로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잘됐네, 어차피 죽을 목숨. 동지라도 데려갈 수 있게 됐으니.”
“그 입 안 닥쳐?”
“안 닥칠 건데? 어때, 이제 좀 쫄려?”
“이 썅….”
“그만. 굳이 이렇게 말을 늘어트린다는 건… 제안이 있어서겠지?”
“페슈아를 살려줘. 너희가 자랑하는 거… 있지?”
마녀 사냥꾼들은 오랜 세월 마녀와 싸워오며 갖가지 지식을 축적해왔다.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게 두 가지.
하나는 죽어가는 자도 벌떡 일으키는 힐링 포션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손쇠뇌였다.
“이걸 주면? 그다음은?”
“페슈아까지 전력이 된다면… 해 볼 만해. 같이 여길 빠져나가는 거야. 그다음은 서로 갈라지는 거지. 최소한의 존중을 가지고.”
“헛소리. 이곳이 아니었으면 너희는 진작 죽었다.”
“헛소리. 그럼 이곳에서 너희도 죽으면 되겠네.”
“…….”
페슈아라는 마녀가 억눌린 신음을 토했다.
“으윽… 아파아아….”
“페슈아! 정신 차려!”
마녀 사냥꾼이 눈알을 굴리다가 따로 준비된 주머니에서 신비로운 액체가 담긴 병을 꺼내 들었다.
“제길… 이게 마녀를 살리려고 쓰이면 안 되는 건데….”
치이이이이…
포션이 페슈아의 복부에 닿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났다.
“으으으으으으으!”
“조금만 참아라, 염병….”
한쪽이 치유하는 사이, 남은 마녀 사냥꾼과 마녀가 눈빛을 교환했다.
“제안은, 받아들인 거겠지?”
“그래. 서명이라도 필요한가?”
“괜찮아. 이미 위증의 저주를 시동했으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사지가 분리되어 죽을 거야, 너희.”
“흥.”
정신을 차린 페슈아까지… 넷.
서리 둥지에 떨어진 마녀와 마녀 사냥꾼이 잠시 힘을 합했다.
“그럼, 여기 주인의 얼굴이나 흠씬 패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