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86
제86화
“그런 것이냐?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구나.”
아몬이 내 추측에 힘을 실었다.
“그러니까, 마녀들을 몰아붙여 사분오열하게 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사실은 에켈라르트의 부활까지 노린 게 마녀들이 아닌 마녀 사냥꾼들이라 이건 게지?”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흐음… 정보를 더 얻을 수 있겠느냐?”
“어렵겠지. 전초 기지에 진입할 수도 없고… 이 계획을 추진한 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니. 거기다 시간까지 없다.”
“시간이 없다고?”
아몬에게 마녀 사냥꾼의 총공세에 관해 설명했다.
“그렇다면… 에켈라르트의 부활은 막을 수 없겠군. 이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 조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이 모든 일이 우연처럼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레온이 내게 남겼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레온… 그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떤….”
그녀가 레온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듣더니 볼을 긁적였다.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준비되었던 일이라는 거군. 마녀 사냥꾼들이 갑자기 이렇게 공세를 펼친 것도, 마녀들 사이에서 에켈라르트를 부활시켜야만 한다는 게 중론이 된 것도.”
“그런 것 같군.”
“레온 그자가 이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던 이유도 이제는 알겠느냐?”
“내 적이 누군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이유겠지.”
지금도 그렇다.
에니스의 복수를 위해 마녀단을 몰살시킨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일이다. 거기다….
‘어차피 마녀단은 이미 스스로 무너지고 있잖아. 그렇다면….’
그들의 대척점인 마녀 사냥꾼을 노리기에도 영 석연치가 않다.
‘드러난 것이 너무 적어. 심증만으로 전쟁에 끼어들 수도 없고.’
“어쩌면 레온 그자가 상황을 정확히 바라본 것 같구나.”
“…….”
“애초에 우리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게 전부 쓸데없는 고민이었겠지. 동토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정도는 이러나저러나 가능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범인의 생각이니라.”
나 역시 동의한다.
내 집 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이 왜 벌어지는지조차 모른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그 집의 주인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레온에 대한 것은….
‘레온은 대체 어떻게 이 동토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거지?’
또 하나.
레온은 이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던 걸로 보아, 동토에서 벌어지는 일의 흐름 자체가 레온의 뜻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즉, 동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레온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개입할 수는 없는 상황이란 것. 심지어 나는 그의 정체나 상황을 정보가 없어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뭐가 이렇게 수수께끼가 많은 건지.’
이제까진 마석만 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긴 했다만.
‘이번 일이 끝나면 레온에게서 전부 들어야겠어.’
아몬이 날 슥 보며 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군주의 답은… 알고 있겠지?”
“…안다.”
총공세 이후, 동토의 주인이 정해질 것이다.
“총공세가 끝난 후, 움직인다.”
* * *
며칠이 지나면 마녀 사냥꾼들이 북진하여 마녀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기적이 있다면 공멸, 그게 아니라면 마녀 사냥꾼 측의 압도적인 우위로 끝이 날 전쟁.
‘하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이 전쟁엔 뭔가 있다.
그걸 알아내야만,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휘둘리는 건 질색이거든.’
지옥 같던 가을 전쟁을 겪고 나니, 더더욱 정보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만일 썩은 뿌리가 무너진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사역마들과 마석 대부분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피요가 사실 암흑 상인 멤피르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그날 잃은 몇몇은 여전히 내 옆에 머물렀겠지.
‘고로….’
마녀 사냥꾼 측에 숨어서 판을 짜고 있는 자를 찾아낼 생각이다.
“빌.”
“준비됐습니다.”
“이포스.”
“으, 응….”
전초 기지에 잠입할 생각이니 인원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이포스의 스킬셋을 대부분 변경했다. 다수를 상대하는 상황은 거의 나오지 않을 테니, 잠입과 대인전에 도움이 되는 능력들을 주로 챙겼다.
‘뭐, 그래도 이포스의 체급이 있으니 여전히 다수를 상대로 강하겠지만.’
휘이이잉…
눈보라가 거세다.
특히 국지전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전선 쪽은 눈발이 거세 앞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들었다.
‘그나마 이럴 땐 코닝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녀가 기상에 상관없이 불철주야 전장의 상황을 전해줬기에, 전장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찾아! 마녀가 이쪽으로 갔다!”
가끔 이런 말이 들려오면 눈밭에 숨어 사냥꾼들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크르르르르…
“욥.”
으지지지지지직-!
설원의 짐승들은 이포스의 가냘픈 주먹에 으깨졌다.
“하아아암….”
이포스는 이 지독한 한파가 오히려 편안한지 하품까지 하며 잘 따라왔다.
‘편해 보이는군.’
나는 골수까지 치미는 한기에 가끔씩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인데도, 이포스는 눈밭을 뒹굴기 바빴다.
“이포스.”
이포스를 부르면 그녀는 언제나, 조금 머뭇거리면서 눈알을 굴리다가 천천히 대답한다.
“…응.”
“매번 대답이 늦는데, 이유가 있나?”
“그게…”
– 으이그, 답답한 마족! 잘못한 게 있을까 봐 그렇지! 이포스는 겁이 많거든!
이포스 대신, 눈토끼의 영혼이 답했다.
“사실인가?”
“으, 응….”
“그랬군.”
이렇게 그녀에 대해 또 한 가지를 알아갔다.
“딱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의사소통은 이전보단 원활했으면 좋겠군.”
“으응.”
이포스는 내 앞에만 오면 긴장하는 게 보였다. 아니, 사실 모든 이들 앞에서 긴장하긴 한다만….
‘가만, 설표나 곰을 불러왔을 때는 좀 더 활기차 보였었는데?’
그렇다면 평상시에도 그들을 불러오면 안 되는 걸까?
이에 대해 슬쩍 물어보니 그녀의 대답이,
“그게… 안, 안돼. 곰 아저씨는 늘 화가 나 있어서….”
– 이포스는 나랑 여우가 제일 친해! 그나마 성격이 비슷하거든.
– 우리보다도 낯을 가리지만 말이지….
여우까지 나서서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답해줬다.
– 누가 화가 나 있다는 거냐아아아!
“히익….”
– 곰이 깼다, 도망쳐!
– 숨어!
곰을 피해 숨는 동작을 취하는 토끼와 여우.
– 후우욱… 후우욱… 졸리군.
곰은 그대로 발라당 누우며 다시 이포스의 몸으로 사라졌다.
– 크어어어어…
마지막 작별 인사도 호탕한 코골이가 끝이었고.
“봤…지?”
“그래, 이해했다.”
이포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래도 곰 아저씨… 착해. 다 날 위해서 화를 내는 거야.”
그게 이포스가 가진 힘이다.
얼어붙은 영혼이 그녀를 위해 행동하는 것.
다만, 모든 영혼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녀의 왼손, 5개의 반지에 깃든 영혼들은… 이포스의 다른 영혼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언젠가 그것들도 볼 수 있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눈밭을 거닐을 때, 빌이 말했다.
“저곳이 전초기지입니다.”
이곳까지 오는 데만 하루 반나절 정도. 전선에 변화가 없는 걸 보니, 총공세가 아직이라는 코닝의 정보도 정확했다.
* * *
“부상자인가?”
“큰 부상은 아니고 탈진해서 쓰러진 듯합니다. 잠시 쉴 곳이 있을까요?”
“이런… 남는 병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럼 일단 적당한 곳을 찾아 눕혀두겠습니다!”
“음… 그래. 총공세가 곧이니 아마도 자리가 나는 곳이 있을 거야. 수시로 찾아와서 병상을 확인하게.”
“예.”
급하게 지어진 목조 건물을 빠져나와 이동하는 둘. 그 사이엔 들것에 실린 부상자가 있었다.
스윽…
부상자가 슬쩍 담요를 걷어 자신을 짊어지고 가는 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이포스.”
“헛….”
그녀가 후다닥 다시 담요로 눈을 가린다.
그래… 전초 기지에 부상병을 데리고 온 두 마녀 사냥꾼은 나와 빌이었고 부상병은 이포스였다.
굳이 이포스에게 자세한 연기는 부탁하지 않았다. 평범한 대화도 그녀에겐 힘든 과제였으니 부상자 연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여기, 기척이 없습니다.”
끼이이익-
적당한 건물에 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아마도 병사들의 짐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막사 중 한 곳인 듯했다.
“총력전이라 이거군. 모두 전선으로 나가 있는 것 같다.”
“그 말이 맞는 듯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
어떡하긴….
“마녀 사냥꾼들을 뒤에서 떠민 자가 누군지 찾아내야 한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개 병사의 지위를 달고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으니… 적어도 간부급 이상이다.’
마녀 사냥꾼들의 지휘체계 정도야, 적당한 놈을 찾아 심문하면 나오게 되어 있다. 심문당한 놈은 총공세를 펼치기까진 잠들어 있겠지만 말이다.
곧장 외부에서 적당해 보이는 녀석을 찾아 심문을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저항했고, 당연하게도 응징했다.
“크윽… 대, 대부분은 지금 전선에 가 있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가 대장이자 야전 사령관으로 불린다. 그리고 그 밑에 4명의 부대장으로 이루어진 구조.
작전 회의엔 4명의 부대장과 기록관이 따라 들어간다.
여기서 하나, 벌써 실마리를 찾았다.
“가장 최근에 이곳에 합류한 부대장은?”
“그건…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멜튼 부대장이겠군. 이제 막… 4년쯤 되었을 테니.”
“4년이라….”
가장 오래 마녀 사냥꾼으로 활동한 부대장의 연차는 10년이 넘는다고 했으니, 이쪽은 아닐 것이다.
“부대에 남아있는 부대장은 없나?”
“두 사람… 가웬과 크레타 경이 남았어. 제발 죽이지 말아줘….”
꿀꺽…
“으읍… 내, 내게 뭘 마시게 하는….”
빌이 가져온 약물을 혼합한 물을 마시겡 하자 의식을 잃는 대원.
“아몬 님에게 검수받은 물건입니다. 이틀은 잠만 잘 거라는군요. 중간에 깰 걱정도 없고요. 다만, 불면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굳이 죽이지 않는 이유는, 그게 오히려 번거롭기 때문이다.
어차피 총공세가 시작되면, 하등 의미가 없다.
“이제… 제가 나설 차례군요.”
“가웬과 크레타에 대해 알아봐.”
“파우스트 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난 기록관이 남긴 기록물을 뒤져보지.”
“…좋은 방법입니다.”
기록관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국지전이 펼쳐지고 있는 이 시기에 태평하게 실내에서 머무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를 죽일 필요도 심문할 필요도 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작전 회의에서 오고갔던 내용들이다.
‘찾았다, 회의록.’
기록관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이포스가 순식간에 서재에서 회의록을 낚아채 내게 가져왔다.
“이거… 맞아?”
“…잘했다.”
이포스의 머리를 쓰다듬자, 또 내 시선을 슬쩍 피하는 그녀.
길게 끌 것 없이, 회의록을 살폈다. 가장 최근 것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누가, 어떤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가 상세하게 기록된 회의록은 기대 이상으로 두툼했다.
‘기록관이 눈치채기 전에 원하는 정보를 전부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 혼백석엔 문제가 없는 거겠지?
혼백석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회의에서 이루어진 대화의 흐름을 보건데, 이 혼백석이란 건 에켈라르트가 부활했을 때 그를 다시 봉인할 수 있는 기물인 듯했다.
다만 대화의 흐름이 다소 특이한 것이, 이 혼백석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한 명뿐인 듯했다.
‘어디서 이런 걸 구한 거지?’
생각해 보면 칼 쿠르소도 참회석이라는 보물을 잘도 구해, 가지고 다녔었으니… 그리 이상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파락…
파라락-!
회의록을 넘기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그럴 수밖에, 중간 부분은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니 크게 건질 정보가 없었다.
– 지금, 열쇠를 가진 청색 마녀를 놓쳤다는 말씀입니까?
– 그렇다고 들었네.
청색 마녀의 열쇠에 집착하는 자.
파라락…
파라라라락…
시작 지점.
녀석일 것이다, 분명히.
모든 게, 여기부터 시작되었다.
– 에켈라르트에 대해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