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방금 뭐라고 했느냐?”
“칠죄종을 만났다. 탐욕의 좌를.”
동토까지 나타나서 내 살림을 살피던 레온이 그 탐욕이라는 얘기를 듣자 아몬은 깔깔 웃고 루시퍼는 놀라워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칠죄종이었다니… 이건 무척 놀랍군요.”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아쉽구나.”
“아몬, 그대도 칠죄종에 대해 알고 있는가?”
“마왕의 후손들이라는 건 알고 있지.”
굳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아몬이 솔라리아에 소환된 것 자체가 아주 먼 과거였기 때문이다. 솔라리아의 세력 구도는 몇 번이고 바뀌었고 칠죄종의 위상 역시 그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탐욕, 아카드에게 받은 제안에 대해 이 자리에 모인 사역마들에게 설명했다. 굳이 설명한 이유는, 이번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내 목숨뿐만 아니라 던전에 딸린 자들의 목숨까지 판돈으로 걸게 되기 때문이다.
“나리, 그 에켈라르트라는 녀석… 강해?”
이에 대한 대답은 이포스가 대신했다.
“응… 강해….”
“에엑? 얼마나?”
“초월자라고 들었고 또… 느껴졌어.”
“느껴져? 아아! 가끔 나가서 하는 그거 말하는 거구나!”
이포스가 던전이 자리 잡은 설산에 올라 동토의 기운을 느낄 때, 부정한 기운이 의식을 뚫고 들어오려 한다고 말했었다. 그 과정에서 에켈라르트의 기운을 가늠해 볼 수는 있을 테니, 어쩌면 이포스가 그의 무위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을 터.
“어어어엄청 사악하고 되게 못됐어!”
“…….”
이런 식의 설명을 원한 건 아닌데.
“그리고, 그리고 음… 마음이 너무 차가워. 온기가 아예 없어! …엇.”
갑자기 움츠러들어 루시퍼의 뒤로 숨는 이포스.
“내,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이상…했으려나…?”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해서 놀랍다 싶었는데, 역시나 고장 나 버렸다.
“…설명 고맙다, 이포스.”
“…정말?”
이포스가 스스로가 생각해도 설명이 만족스러웠는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 파우스트라고 했나? …성품은 좋아 보이네.
눈토끼의 영혼이 하품하며 한줄평했다.
– 그래, 아마도 초월자의 반열에 오른 것 같던데? 이제 막 문턱을 넘은 정도지만.
칠죄종인 아카드의 에켈라르트에 무력에 대한 평가다. 그가 일개 초월자의 무력을 오판하는 경우는 만에 하나라도 없을 테니… 가장 정확한 평가겠지.
“루시퍼. 초월자와 우리의 무위를 비교하면 어떻지?”
“초월자는… 압도적인 태생, 혹은 기연을 만나거나 끝없는 수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에켈라르트의 경우 인간 주술사라고 했으니, 같은 초월자의 경지보다도 오히려 살짝 윗줄일 겁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반적으로 초월자에 도달한 지 얼마 안 되는 경지에서는 태생의 체급으로 초월자에 오른 이들보다 오랜 수련을 통해 오른 자가 더 강할 거라는 얘기다.
뭐, 사실 이 부분은 게임 안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루시퍼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게 맞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재 초월자를 단신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자는 우리 중에 없습니다.”
게임에서도 초월은 최고 레벨에 오른 기물들이 한 차례 알을 깨고 다시 레벨 1로 돌아가는 걸 말했다. 이때 초월자가 된 기물은 1레벨임에도 다른 최고 레벨의 기물들보다 훨씬 강했다.
‘최고 레벨까지 육성한 기물이 아직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성장 재화가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이곳 동토에 와서는 모험가들을 거의 보지 못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썩은 뿌리에서 꽤 열심히 활동한 덕에 악마들이 최고 레벨까진 아니어도 그 언저리까지는 도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꾸준히 육성한 페넥스 같은 경우엔 최고 레벨에 거의 임박했고.
“일대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건가….”
“그렇더라도, 던전에서라면….”
“던전에서라면 놈을 상대할 수 있겠지.”
그래, 던전을 이용하는 것.
에켈라르트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후, 아카드가 내게 한 제안에 대해 얘기하자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말라시스로 향하는 건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오랜만이구나, 그곳도.”
“말라시스를 알아?”
“연이 있는 곳이지.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
루시퍼가 조금 뜸을 들인 후, 아몬에게 말했다.
“아몬, 현재의 말라시스는 아몬이 기억하는 말라시스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겁니다.”
“…뭐?”
“아몬이 보았던 말라시스는 어땠었나요?”
아몬이 무언가를 추억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푸른 하늘에, 꽃향기가 늘 가득한 곳이었지. 마도 공학의 진보와 원소의 균형이 아름다웠던 왕국이지.”
“말라시스는… 이제 하늘을 볼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흠칫-!
“…그게 정말이냐?”
“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제 그들의 왕국은 태양을 피해 숨느라 지하에 파묻혀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하… 하하하….”
그녀의 눈망울에 오랜만에 감정 비슷한 것이 깃들었다.
“그런…가….”
고오오오…
그녀에게서 이따금 감정이란 게 느껴질 때마다, 비집고 흘러나오는 순수하고도 애처로운 기운.
“아카드란 녀석, 널 말라시스로 데려가겠다고 말한 거… 틀림없겠지?”
“틀림없다. 애초에 이 일을 제대로만 처리하면 내 후견인이 되겠다고 했을 정도니.”
“그렇다면 반드시… 해내야 마땅하겠구나. 초월자 놈 정도야… 끙….”
그녀가 말라시스가 걸린 일이라는 걸 확인받고는 각오를 다잡았다.
‘말라시스라….’
칠죄종의 언더킹덤인 말라시스에 가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아마도 지금까지 거쳐온 과정 자체를 튜토리얼처럼 느끼게 될지도.
실제로 파우스트가 말라시스에 머물던 시기에 많은 후속 업데이트가 있었고 스토리상 스펙도 급상승했다.
‘결국, 에켈라르트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건 변함없군.’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총공세가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
‘그러고 보니, 할 일이 하나 남아있긴 했군.’
미스란테를 연성하고 있는 마녀들.
며칠 후, 아마도 곧 총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뷔트너의 계획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간에, 마녀들은 전멸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총공세라고?”
“어째서… 말해주는 거예요?”
물론 삼색의 마녀 모두가 미스란테에 달라붙어 있는 편이, 내게는 더 좋을 것이다.
‘어차피, 큰 의미는 없어.’
에켈라르트가 깨어나 이곳까지 오는 시간을 헤아려 본다면, 이곳엔 에니스만 남아있어도 충분했다. 그러니, 그녀들이 선택하게 해주었다.
“선택할 수 있을 때, 선택할 수 있게 할 뿐이다.”
“…….”
“이제 너희가 없더라도 내 계획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겠지.”
이것을 유약함이라 매도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살인을 저지른다면, 단순한 살인귀일 테고 난 그런 살인귀가 될 생각은 없으니.
“포로 생활은 끝이다, 떠나는 건 너희 선택이다.”
만일 그녀들이 이곳에 남겠다고 결정한다면, 그녀들을 조복할 것이다.
마녀단은 전멸할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머무는 게 합리적인 선택.
하지만… 세상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난… 내 의무를 다할 거야. 발루아는?”
“…총공세가 벌어지면 모든 마녀가 죽겠죠?”
“…….”
“떠나겠어요. 선택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발루아와 세네카 모두,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여기.”
“팔찌?”
그녀가 주머니를 열어 은팔찌 하나를 내려놓았다.
“작별 선물. 저급 유물이긴 한데, 나쁘지 않아. 주변에 독이 있으면 검게 변하는 팔찌야.”
“…고맙군.”
발루아는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이건?”
“자색 마녀의 유산이 있는 곳이에요.”
“네게 그만큼 잘해준 기억은 없는 걸로 아는데.”
“알아요. 부탁도 함께라 그래요. 혹시 자색 마녀단이 전멸한다면… 유산을 취하시고… 그곳에 혹시 미처 해방하지 못한 꼭두각시가 남아있다면 해방을 부탁해요.”
담담하게 미래를 말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에니스가 투덜거렸다.
“모두 가라 그래… 여긴 나 혼자만 있어도 충분해!”
“…….”
“기분이 이상하네요. 분명 두 마녀단 모두 죗값을 치르길 바랐는데… 그게 내 복수였는데….”
그녀가 날 보면서 슬픈 눈을 했다.
“복수는… 정말로 부질없는 걸까요?”
툭.
검지와 중지를 교차해, 그녀의 이마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부질없는 복수는 없다. 찝찝한 건 복수를 네 손으로 이루지 못해서겠지.”
“……아.”
하루 뒤, 마녀 사냥꾼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 * *
바람만으로도 눈이 흩날리는 벌판.
8년.
자그마치 8년이나 고향인 말라시스에서 떨어져 나와 매혹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고된 노동도 곧 끝이 나겠군.’
금의환향을 꿈꾸는 것은 출세를 한 번이라도 마음에 두었던 자들의 당연한 관성이지만, 이번엔 정말로 그 금의환향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뷔트너의 삶이 이곳에서 끝날 리가 없지.’
지난하고 지난한 일이었다.
“가웬 공, 전선의 상황은?”
“보급대를 타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격퇴에 성공했고 전선 전체에 피해가 누적되고 있지만 예측 범위 내입니다.”
“으음… 알겠네.”
가웬에게 향하는 대장인 베흐만의 눈빛이 믿음으로 가득했다.
‘더러운 인간 새끼….’
가까이서 그를 보필하며 알게 된 사실은, 그가 가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일가족 전체가 마녀에게 몰살당한 후에 마녀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후에 그가 이따금 보여주는 과한 행동은 보기 역겨울 때가 많았다. 포로로 잡힌 마녀에게 변태적인 고문을 하며 즐긴다든가, 마녀를 강제로 취한다든가.
이제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 슬픔과 복수심이 아닌, 가학성과 폭력성은 아닐지 의심하게 됐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이 돼지 새끼의 목도 눈밭 아래에 파묻어줘야겠어. 그건 그렇고… 그날 본 녀석들은 환영이었던 건가? 대체 뭐지….’
총공세 며칠 전, 감히 전초기지에 기어들어 와 매혹의 밀서를 빼내 간 녀석들. 심지어는 특별한 향을 미리 뿌려놓지 않으면 정신을 어지럽혀 제압하는 함정도 어떻게 했는지, 멀쩡히 파훼했다.
‘제국 정보국 놈들인가? 이제 와서? 아니라면… 왕국 연합이나 칸의 간자인가?’
자신보다 무력은 낮았지만, 그래도 한 수는 있던 자들.
거기다….
‘그때 녀석들을 구한 건… 숨겨둔 조력자들인가?’
그 즉시 사라졌기에 놓쳤지만, 걱정은 사실 크게 없었다.
‘매혹 님께 연통을 보내기도 했고… 이 일을 방해할 만큼의 실력도 없었으니, 임무 완수가 우선이다.’
에켈라르트를 조복하고 큰 힘과 사랑을 하사받을 것이다.
푸화아아아악-!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벌레 같은 마녀들. 네년들은 오늘에야말로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니.”
그때.
“급보!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봉인지… 봉인지 방향에서 거대한 마력이….”
설마…!
뷔트너는 전에 보았던 자들이 자신이 아닌 에켈라르트를 노린 것은 아닌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확인해 봐야 해.’
대장인 베흐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게, 가웬! 전선과 함께 뒤따라 가지!”
“예! 반드시….”
치지직…
콰아아아아아아아-!
봉인지에서 엄청난 마력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