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같은 시각 마녀단 진영.
“후퇴해야 해요! 저주가 먹혀들지 않아요!”
“사냥꾼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전선이… 전선이 돌파당하고 있다고요!”
“대모님!”
“결단을! 대모님!”
“아킬라 님!”
백색 마녀의 대모 아킬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제는 정말로 남은 방법이 없구나!’
일이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동토는 분명 긴 시간 균형을 유지해왔다. 마녀도, 마녀 사냥꾼도 서로를 할퀼 순 있어도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박아넣을 순 없었다.
그런데 지금, 마녀의 심장을 꿰뚫을 비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 모든 건….
‘모든 게 청색 마녀 때문이다!’
청색 마녀들이 대의에 따르지 않았기에 그들을 축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간악한 자들이 마지막 열쇠까지 빼돌려 버렸으니….
‘전부 잘못됐어!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전부 청색 마녀가….’
…어라?
언제부터 이렇게….
‘청색 마녀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아킬라의 생각에 뿌연 안개가 계속해서 증식했다.
지금 참담한 결과를 보자면,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 과정을 되짚어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마, 맞아… 청색 마녀가….’
– 아킬라. 아직 늦지 않았네. 다른 방법을 함께 찾….
청색 마녀단의 대모인 유소파가 망령이 되어 아킬라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그만, 그마아아아안!”
“아, 아킬라 님?”
“닥쳐, 닥쳐… 닥치라고!”
“…….”
유소파.
그녀는 정녕 망령이 되었는가.
아킬라의 눈앞에 소복이 내려와 속삭인다.
– 아킬라, 기운 내게. 아직 방법이 있네.
‘유소파! 모두 그대 때문이야!’
– 진정하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봉인지로 가세. 그곳이라면 방법이 있을 테니.
‘결국엔 에켈라르트의 봉인을 풀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잖나! 그 방법뿐이라면….’
– 봉인지로 가세. 그곳에서라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기고 침묵하는 유소파의 망령.
‘내가 미친 건가?’
망령과 대화라니.
“큭큭… 뭐, 상관없겠어. 어차피 마지막이니.”
백색 마녀단의 대모인 아킬라가 명령했다.
“봉인지로 간다!”
“아킬라?”
자색 마녀단의 대모인 마이티네가 아킬라에게 호응했다.
“아킬라의 말대로 해! 봉인지로 퇴각한다!”
“하지만… 봉인지에서 막아내지 못하면….”
“안다! 그러니 결사의 각오로 막아내야 해.”
“…예!”
마녀단이 전선을 크게 크게 뒤로 물리며 봉인지로 퇴각을 시도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전선을 크게 내주는 모습에 마녀 사냥꾼 측에서도 함부로 전선을 크게 밀어내기 망설이는 상황. 어떤 함정이나 저주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생각보다는 크게 피해를 입지 않고 봉인지로 퇴각하는 게 가능해 보였다.
아킬라는 저 멀리서 천천히 몰려오는 마녀 사냥꾼의 물결에 최후를 직감했다.
오랫동안 싸워온 원수.
언제고 둘 중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 이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을 맺을 거라 예상했는데… 결국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될 것이다.
‘자… 유소파, 말해 보아라. 네 말대로 봉인지에 왔다.’
스르륵…
유소파의 망령이 커다란 얼음 덩어리에 갇힌 에켈라르트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 봉인을….
‘에켈라르트의 봉인을 풀라는 말인가… 마지막 열쇠가 없으면 봉인을 풀 수야 있지만 가진 힘의 반도 내기 어려울 거야! 결국… 마녀 사냥꾼들을 몰아내지 못할 거라는 말이야….’
– 그게 아니라네… 봉인에 심상을 연결하게.
‘그게 무슨… 지금 나더러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순간, 유소파의 망령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은 아킬라.
‘설마… 에켈라르트의 마력을 강제로 꺼내 오자는 얘긴가?’
– ……아킬라, 그대라면 이해할 것이라 믿었네.
“유소파! 그대는 역시 영민하구나!”
“아킬라? 무슨… 유소파는 죽었다!”
“마이티네, 나와 함께하게. 봉인에 심상을 연결할 것이야.”
“뭐? 무슨 미친 짓을!”
“이 방법뿐이야! 에켈라르트의 마력을 강제로 끄집어내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뿐!”
“허… 허허….”
마이티네 역시, 끔찍한 발상이긴 하지만 그녀의 계획이 현 상황을 뒤집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녕… 이 방법뿐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기회야! 어서!”
마이티네가 봉인에 심상을 연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렸다.
“봉인지를 사수해라! 일이 성공한다면 살길이 열릴 것이야!”
“대모님의 말을 따르겠어요!”
콰르르릉-!
백색 마녀들이 봉인지의 입구를 빙벽으로 틀어막고 뇌전을 쏘아댔고 자색 마녀들이 온갖 저주를 퍼붓고 꼭두각시로 시체의 벽을 쌓았다.
“뚫어라! 마녀들이 해괴한 짓을 벌이려 한다!”
“죽여! 여기서 전부 죽여야 한다!”
후우우웅…
마이티네와 아킬라가 얼음 감옥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들의 눈이 금세 파랗게 물들었다.
‘봉인을 강제로 해제해도 마녀 사냥꾼들을 밀어낼 수 없을 거라면… 이 방법뿐이야….’
‘…자네를 믿겠네, 아킬라.’
스으으으…
또 한 번, 유소파의 망령이 곁에 머문다.
– 아킬라….
‘유소파… 이 일이 마무리되면, 그대에게 제를 지내지. 분명 우리는….’
– 멈춰야 해… 안 돼….
‘그게 무슨….’
스으으으으…
유소파의 망령 옆으로, 그녀와 똑같이 생긴 망령이 나타났다. 찢어지게 웃는 채로.
– 이미 늦었다.
콰지이이이익-!
아킬라에게 경고를 한 유소파의 망령이, 흐트러져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아킬라.
– 어리석은 마녀여….
이 목소리.
‘설마…?’
이미 심상의 연결은 진행되었다.
더는 멈출 수 없다.
휘오오오오오…
아킬라와 마이티네의 심상이 봉인으로 파고들었다.
그곳에, 얼음에 갇힌 사내가 있다.
– 기나긴 세월을 견뎌왔다. 시간마저 얼어붙을 만큼….
심상이 완전히 연결되자, 에켈라르트로부터 밀려드는 마력. 그와 동시에, 에켈라르트의 기억이 파고들었다.
– 죽여라, 죽여야만 한다.
– 청색 마녀를… 죽여라.
‘아… 아아….’
두 대모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만다.
전부, 에켈라르트의 짓이다.
청색 마녀단을 그리 간단하게 배신한 것은, 그녀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에켈라르트의 의지였다.
‘노오오오오옴! 감히…!’
‘감히 마녀단에 분열을 가져오다니!’
에켈라르트의 부활을 가장 간절히 염원한 것은 마녀단도, 뷔트너도 아니었다.
에켈라르트였다.
덜컥…
에켈라르트로부터 흘러들어오던 마력이 어느새 두 대모의 몸에 가득 찼다.
콰아앙-!
두 대모는 이제, 에켈라르트의 힘이 뻗어나갈 수 있게 하는 교각이 되었다.
파악-!
파아아악-!
봉인지에 모인 마녀들의 심상으로 파고드는 에켈라르트. 그들은 순식간에 에켈라르트에게 종속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컥… 커어어억….”
“이… 이건….”
이제, 회수할 시간이다.
휘오오오오오오…
이제는 반대로 에켈라르트를 향해 쏟아지는 마력.
모두 산 자들의 것이다.
마녀들의 마력이 일제히 봉인으로 빨려 들어갔다.
쭈아아압…
마녀들의 몸이 마치 수천 년만에 발견된 미라처럼 수분기 하나 없이 쪼그라들었다.
– 드디어, 기나긴 복수를 끝마치는구나.
마녀들의 심상으로부터 건너온 찌꺼기 같은 잔념들. 그 안에는 마녀 사냥꾼을 향한 증오가 있었다.
– 너희들의 증오로 얼룩진 마지막 바람은… 내가 이뤄주마.
쩌저적…
쩌저저저저적…
에켈라르트를 봉인한 얼음 감옥이 부서졌다. 긴 시간 잠들었던, 한 지방의 전설적인 주술사가 깨어난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봉인이 하늘에 빛을 토해내며, 그곳에서 에켈라르트가 걸어 나왔다.
“봉인이 깨졌다.”
“에켈라르트가 깨어났다!”
“베흐만 님에게 어서 알려라!”
에켈라르트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소란스럽구나, 벌레들이.”
휘오오오오오…
에켈라르트가 마녀들이 남긴 불순한 마력을 이참에 불태우기 위해 손을 올렸다.
“얼어붙어라.”
[에켈라르트가 금술: 강추위를 사용합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을 소모해 전방을 휩쓰는 한기의 파도를 형성합니다. 한기의 파도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퍼져나가며 여러 번 적중 시 냉기 저항력을 크게 낮춥니다.]휘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고름을 짜내듯, 마녀의 부정한 마력을 전부 금술의 마력으로 토해내는 에켈라르트.
“후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건, 얼어붙은 시체들로 가득한 설원이었다.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하아… 하아….”
정적을 깨는 누군가의 생존신고.
“빌어먹을 괴물 자식….”
“넌 누구지?”
“네 주인이 될 자다.”
뷔트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품 안에서 부서진 유물을 놓아주었다.
푸스스스스…
방금의 금술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유물은 제 역할을 해냈음이 틀림없다.
“이딴 곳에서 쓰일 유물이 아니었는데… 값을 받아내야겠어.”
“그대가 날 도와 일을 꾸민 자로군.”
“…도와?”
“감사하지. 편안한 죽음을 원하나?”
“얌전히 조복당하면 안될까?”
혼백석을 꺼내는 뷔트너.
스으으으으…
그의 동공과 머리칼이 검게 물들었다.
마족의 상징.
“마족이었군. 그 패악질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하구나.”
“있잖아, 네가 잠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너희 종족은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게 맞을 것이다.”
“……건방 떨기는.”
뷔트너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검을 뽑았다.
“너는 오늘이, 내가 지난 8년 동안 바라왔던 순간이라는 걸 알까?”
에켈라르트가 속삭였다.
“너야말로 모르고 있군.”
“…뭐?”
“오늘은, 그 누구보다 이 에켈라르트가 염원해 왔었다.”
* * *
“아~ 붙었다! 붙었어.”
“어, 보이네.”
“아카드! 그냥 여기서 둘 다 해치우고 가져가면 안 되려나… 안 되겠지?”
깍지 낀 손을 목뒤로 젖히고 몸을 한껏 누인 채로 전투를 지켜보는 탐욕의 아카드와 그의 수족 아이타.
“매혹에게 빌미를 주면 끝장이야. 그 사갈 같은 자가 잔뜩 벼르고 있을걸. 원래 계획대로 가야 해.”
“에켈라르트는 정말 초월자인걸? 파우스트인지 뭔지 하는 꼬맹이에게 너무 버거운 일을 맡긴 거 아니야? 실패하면 모든 게 어그러지는데도?”
파앗!
아카드가 검지를 치켜올렸다.
“믿을 수 있는 자란 뭐라고 했지?”
“…기억 안 나는데.”
“일을 잘하고 눈치가 빠르며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는 자여야 해.”
씨익…
“그런 자가 진심으로 따를 때, 비로소 믿을 수 있는 녀석을 거느린 거지.”
“어디 사는 요녀랑은 상당히 다른 인재관이네~.”
“매혹이랑 나는 상극이지. 내 심미안은 고차원적이라 진짜 쓸만한 녀석을 원하는 거고, 그 친구는 여왕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개미 군단을 원하는 거야.”
아이타가 크게 한 숨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걔가 저 괴물을 어떻게 이겨. 뷔트너인지 뭔지 매혹의 수하도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아… 내가 나서야 하는 것 같은데….”
“아까 한 얘기 뭐 들었어? 어디까지나 애들 싸움은 애들 싸움으로 끝나야 해. 그래야 끝맛이 좋아.”
아이타가 볼을 부풀리며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쟤는 암만 봐도 성인인데….”
“우리 애도 우량아야.”
“…….”
그녀는 참견을 포기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파우스트 말이야. 역시 악마를 사역하고 있는 거지?”
“물론. 너도 봤잖아?”
“말라시스에 파란이 일어날 거야. 72악마는 왕의 혈통만이 사역할 수 있는 존재들이잖아.”
“뭐… 역사상 없었던 일도 아니고, 출생만 들키지 않으면 돼.”
“아카드의 실험 말이지?”
“응. 그쪽 출신이라는 것만 들키지 않으면 적당한 관심 정도는 무마할 수 있어.”
“글쎄… 이 시기에 나타난 악마 사역자를 과연 적당한 관심만으로 끝내줄지… 암만 생각해도 감춰두고 키워야 하는 거 아닐까?”
히죽 웃는 아카드.
천진난만하며, 광오한 웃음.
“무기로써 성장하길 바라는 게 아니야. 왕으로서 성장하길 바라는 거지.”
“난 모르겠어.”
“나도 몰라.”
아이타가 밑을 내려다보다가 현장을 손가락질했다.
“아, 졌다.”
결판은 나기 마련.
“곧 매혹에게 기별이 가겠지. 저 녀석보다도 훨씬 강한 녀석을 보내 에켈라르트를 회수하려 하겠지만….”
음흉하게 웃는 아카드와 아이타.
“과연 뜻대로 될까?”
* * *
“쿨럭….”
“나쁘지 않은 실력이었다.”
“어떻게… 이런… 힘을… 초월자…였다니….”
“…주제도 모르는 녀석.”
털썩…
배에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지는 뷔트너.
후우우웅…
그의 품에서 흘러나온 혼백석을 에켈라르트가 챙겼다.
휘이이이이…
그의 손에서 얼음 창이 만들어졌다.
“감히 날 훔쳐보는 건… 누구냐!”
파아아아아앙-!
허리를 틀어 얼음 창을 쏘아내는 에켈라르트.
파아아아앙-!
푸드덕…
얼음창을 피해낸 거대한 올빼미 수인이 그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는 저 멀리 사라져갔다.
파우스트의 사역마, 코닝이다.
그녀는 이대로 파우스트에게 날아가 그녀가 본 것을 말할 것이다.
“열쇠가 있는 곳인가….”
고오오오…
“어차피 가는 방향이군.”
에켈라르트가 최후까지 봉인된 힘을 해방할 계획을 품고 남하했다. 목적지는 청색 마녀의 열쇠가 있는 곳.
…서리 둥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