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1
제91화
에켈라르트의 남하는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졌다.
그가 설원을 디디자…
쩌저저저적…
발이 닿는 곳은 전부 얼어붙었다.
촤아아아악-!
그는 달리지도, 걷지도 않았다.
자세를 가다듬어 중심을 앞에 두자, 기괴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미끄러졌다.
마치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과 같은 속도. 이틀이 넘는 거리를 단 반나절 만에 주파한 것은, 그의 기괴망측한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겨울이었다.
그는 빙하였으며 그는 냉기였다.
범인들의 눈에는 그가 눈을 내리는 선인처럼 보일 것이다. 초월자의 무위란 것이 이 솔라리아 세계관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그가 우뚝 멈춰 선 곳은,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동굴 앞.
서리 둥지다.
“마지막 열쇠는… 이곳에 있는가.”
이미 초월자의 힘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에켈라르트가, 시급을 다투며 봉인의 마지막 열쇠를 손에 넣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것은 그가 완전한 부활을 이뤄낸 것이 아닌, 봉인에 균열을 만들어 내 스스로 깨어났기 때문에 필요한 과정이다.
아직도 그의 안엔, 2개의 열쇠가 공허하게 떠올라 있다. 봉인되기 이전에 가두었던 힘은 모두 이곳에 묶어두었다.
섣불리 열지도,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것은 에켈라르트, 그의 가능성이자 더 높은 경지로 향하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되어줄 테니까.
무사히 마지막 열쇠를 얻게 된다면, 그는 어쩌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휘오오오오…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금 이곳에 서 있다.
“초대인가….”
이곳이 던전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상당한 준비를 해뒀을 것이고 악의 기운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가 없다. 시간 속에 얼어붙었던 그다. 그에게 이 이상의 인내를 기대하는 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응해주도록 하마.”
쿠우우우웅-!
동굴에 진입하자, 던전의 입구에 결계가 만들어졌다.
뚫고자 하면 뚫을 수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되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호오….”
던전이 품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던전 코어가 내뿜는 마력의 향기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코를 간지럽혔다.
“이건… 굉장하군.”
마지막 열쇠와 코어의 마력만 있다면, 단박에 다음 경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정도다.
어쩌면, 그간 지독한 시간을 견뎌온 그에게 내린 하늘의 선물일지도.
파아아아앙-!
쒜에에에에에엑…
에켈라르트가 마력을 풀어 살펴본 결과, 이 계층에 그를 가로막는 적은 없었다. 순식간에 5계층을 주파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제4계층.
휘오오오오…
이곳 역시 마찬가지.
‘아니….’
존재감이 미약한 적이 하나.
상당히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거긴가.’
파아아앙-!
함정과 지형을 전부 무력화할 생각으로 전진했는데, 생각보다 저항이 없었다.
아니, 저항이 아예 없었다. 함정이든 적이든 뭔가가 튀어나올 법한데, 아무것도 그를 막아서는 게 없었다.
“그런가… 그 올빼미, 성가시긴….”
에켈라르트는 그를 염탐하던 올빼미 수인을 놓쳐서는 안 됐었다.
에켈라르트가 적의 마력을 갈취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걸 들킨 이상, 던전 키퍼는 소수 정예로 맞상대해 올 게 뻔했으니.
“뭐, 상관없다만.”
전능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쾌락과도 같은 힘이 전신에 넘쳐흘렀다. 에켈라르트는 자신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이 동토에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화아아아아…
커다란 원형 공동.
현대의 축구경기장을 닮은 넓은 보스 룸이다.
[우두머리 전투가 진행됩니다.] [서리의 악마 이포스가 눈사태로 퇴로를 차단합니다.] [이포스의 개성 【교감】이 적용 중입니다.]“다, 당신이군요.”
“…넌?”
에켈라르트는 뿔이 달린 소녀의 모습을 보며, 전설로 남은 한 종족을 떠올렸다.
“악…마인가?”
“고, 곰 아저씨. 어때 보여?”
– 흐으음… 무리다. 지옥이라면 3초 안에 사지를 가루로 만들겠지만, 이곳에서의 네 몸 상태로는 반대로 1분 안에 살해당할 거다.
“어… 어떡하지, 그럼?”
– …엄지를 불러라.
“다들 괜찮아? 엄지를 불러도….”
– 시끄러운 녀석이긴 해도, 어쩔 수 없지!
– 이포스, 엄지라면 이포스가 원하는 걸 해낼 수 있을 거야!
– …지켜보는 건 영 성미에 안 맞는데.
이포스가 다른 얼어붙은 영혼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오른쪽 엄지에 끼워진 반지를 회전시켰다.
끼릭…
가만히 지켜봐 줄 에켈라르트가 아니었다.
짜아악-!
휘오오오…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서리 낫을 사용합니다.] [투척 시 되돌아오는 서리 낫을 소환합니다. 서리 낫은 냉기 피해를 주며 치명타를 가하면 대상을 긴 지속 시간 동안 둔화시킵니다.]휘리리리리리리릭-!
– 어이! 반칙패 당하고 싶은 거냐!
타아아앙-!
서리 낫이 허공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무슨 이치지?”
[이포스가 황제펭귄: 선수 입장을 사용합니다.] [선수 입장은 결투 성립 시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1분의 작전 타임이 주어집니다.] [작전 타임 상황에선 평화 상태가 유지되어 아무런 적대적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작전 타임 상황에선 뒤늦은 계체량이 이어집니다.]휘이이익-!
이포스의 머리에 조그만 왕관이 씌워지고 머리카락 일부가 노랗게 물들었다.
– 이포스! 소녀여! 어서 내게 상황을 설명해주게!
“있잖아….”
속닥속닥…
– 오호! 그러니까, 솔라리아에 강림했다고? 오호? 그러니까, 계약자가 여기서 한 방 먹이라고 했다고? 오호? 이기는 건… 애초에 무리겠고. 오호? 그러니까 한 방 먹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황제펭귄의 영혼이 시끄럽게 떠들으며 작전 내용을 다 까발렸다.
– 이포스, 소녀여! 지금 네 몸뚱아리는 저 벌레만도 못한 초월자보다도 약하다만!?
찌이잉-
이포스가 그 말에 충격받은 듯 눈망울에 습기가 차올랐다.
“하, 하지만… 그러겠다고… 윽… 했는…데….”
– 우, 울지 말게! 물론! 그건 이 챔피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소녀여, 걱정 놓으시게!
“…응!”
해맑게 웃는 이포스. 그녀를 보며 황제펭귄의 영혼이 한숨을 쉬었다.
황제펭귄 엄지.
말하자면 이포스의 특수 모드라고 봐도 좋은 영혼이다.
다른 영혼들과는 다른 부분이 너무나도 많을뿐더러, 조화를 거부하는 영혼이다. 또한,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인 그의 능력은 다른 영혼들의 힘을 제물로 삼는다.
일 대 일 결투 상황에선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여주는 괴물 같은 영혼이라 이포스 유저 중 일부는 이 황제펭귄만을 사용하기도 했다.
– 우선, 계체량부터 마무리 짓자고!
[뒤늦은 계체량이 시작됩니다.]– 토끼 먹고!
[제약: 밤에 먹은 눈토끼] [눈토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체중이 증가합니다.]– 여우도 먹고!
[제약: 몰래 먹은 흰여우] [흰여우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체중이 증가합니다.]– 설표도!
[제약: 간식으로 먹은 설표] [설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체중이 증가합니다.]– 마지막으로… 곰!
[제약: 디저트로 먹은 흰곰] [흰곰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체중이 증가합니다.]휘오오오오오오…
거센 마력 폭풍이 이포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계체량 완료: 웰터급] [봉인된 능력 일부가 황제펭귄의 능력으로 변경되며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황제펭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발동합니다.] [모든 메아리를 봉인합니다. 봉인된 메아리 수만큼, 능력치가 증가합니다.]황제펭귄은, 이포스가 만든 거울의 메아리를 거부한 유일한 영혼이다.
고오오오오오오…
이포스의 손에 흰색 털 글러브가 씌워지고….
[이포스가 황제펭귄: 마우스피스를 사용합니다.] [이포스가 전투 중 경험하는 통증을 황제펭귄의 영혼에게 이전합니다.] [황제펭귄이 이포스의 몸을 움직입니다.]– 자, 소녀여! 이 꽉 무시고!
“우웅!”
– 고작 웰터급으로 초월자에게 한 방 먹이기라… 쉽지 않은 도전이로군! 하지만, 포기한다면 챔피언이 아니지!
[작전 타임이 종료됩니다.] [모두 링 위로!가 발동합니다.] [3분간 전투가 시작됩니다.]휘이이이이…
에켈라르트와 이포스가 마주 보았다.
“흥미로운 힘이군. 악마만이 갖는 권능인가?”
– 흥, 공이 울렸으니 대화는 사절일세!
푸스스…
에켈라르트가 서리 낫을 녹여 얼음 창을 만들어 냈다.
쩌저적-!
파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얼음창.
핏-!
이포스가 가벼운 스탭을 밟아 얼음창을 흘려냈다.
후우웅…
간격을 좁혀 파고드는 이포스.
거리를 벌리는 편이 에켈라르트 본인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지만, 부활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그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힘.
그 힘으로 상대를 짓누르고 싶었다.
접근을 허락하는 순간 난타전이 될 터, 에켈라르트에겐 그러한 난타전을 견뎌낼 재주가 있는가.
“…한심한 판단이군.”
…있다 못해 넘친다.
초월자의 경지에 오르면, 전과 가장 달라지는 부분 중 한 가지는 능력의 수발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마력과 인식의 점유를 필요로 하는 얼음 창. 이 얼음 창을 형성하는 데에 들어가는 수고가 초월자에 이르면 반의반도 안 되게 줄어든다.
단순히 얼음 창을 예로 들어 그렇다는 것이다. 기초적인 전투 능력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상승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러니, 육탄전이 펼쳐지면 오히려 에켈라르트 쪽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후우웅-!
품으로 파고든 이포스가 여러 발의 잽을 날렸다.
후후훙-!
탐색전이나 마찬가지.
퍼퍼퍽-!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주먹은 전부 에켈라르트의 얼굴에 처박혔다.
흠칫-!
이포스가 그 즉시 가드를 올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에켈라르트의 오른팔이 거대한 얼음 망치로 바뀌어 이포스의 가드를 후려쳤다.
찌이이이이잉-
– 너, 너무 빨리 달아오르는데.
이포스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피 맛 나….”
– 벼, 별거 아니야!
피해를 받아 직접적인 통증을 느끼는 건 황제펭귄의 영혼이다. 이포스는 현재 몸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이, 두려워하지 않고 황제펭귄에게 전투를 맡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 코피 정도는, 흥!
후우우웅-!
이포스가 몸을 앞으로 굽혀 전진, 에켈라르트는 또 한 번 품을 허락했다.
파아앗-!
공격이 밀고 들어오기 전에 에켈라르트가 전면에 빙벽을 형성했다.
콰아아아앙-!
흰색 글러브가 빙벽을 때리자 빙벽이 허무하게 깨져나갔다.
“호….”
그 파괴력에 놀라기는커녕 흥이 오른 에켈라르트가 두 팔에 냉기를 휘감았다.
휘- 휘휙-!
이번엔 들어오는 잽을 전부 피해내고 이포스의 복부에 오른 주먹을 꽂아 넣었다.
– 푸허어어어…
황제펭귄의 바람 빠지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비명.
에켈라르트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그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이포스의 오른쪽 주먹이 에켈라르트의 얼굴을 강타한 것.
순간 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그는 초월자다.
휘이이익-!
몸을 뒤틀어 다리로 이포스의 얼굴을 후려쳤다.
파아아아아앙-!
재빨리 올린 가드에 틀어막히는 공격. 그 사이, 거리가 벌어진다.
뿌드득…
팔이 부러질 것 같은 격통을 참으며 황제펭귄의 혼이, 이포스의 몸이 억지로 앞을 향해 달려든다.
[이포스가 황제펭귄: 난타전을 사용합니다.] [간격 안에 들어온 적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합니다. 이때, 받는 피해량이 10% 증가하지만 입히는 피해량 역시 20% 증가합니다.]에켈라르트가 난타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응할 주술을 시전했다.
짜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유빙의 술을 사용합니다.] [떠다니는 유빙처럼 공격을 흘려냅니다. 30%만큼 회피율이 증가하며 공격에 명중하더라도 적중 시 효과를 무시하고 입는 피해의 20%만큼을 감소시킵니다.]쩌저저적-!
살얼음이 낀 에켈라르트의 몸을 이포스가 두들겼다.
콰과과과과과광-!
반대로 이포스의 몸 역시, 에켈라르트의 반격에 노출됐다.
퍼어억!
퍼어어어억!
피와 살이 튀는 난타전.
퍼버버버벅-!
뻐어어억…
“우욱….”
콰앙-!
“윽….”
에켈라르트가 처음으로 신음을 흘렸다.
“감히…!”
그것이 불쾌해져 더 강한 주술을 끄집어내려는 찰나.
데에에엥-
[하필 이때 공이 울리다니! 가 발동합니다.] [이포스가 한 라운드 내에 최대 체력의 절반만큼 피해를 받는다면, 무조건 공이 울립니다.] [1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집니다.] [휴식 시간에는 평화 상태가 유지되어 아무런 적대적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허억… 허어억….”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포스와 에켈라르트가 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 소녀여….
“나눙 갠탸나. 펭깅 넝?”
황제펭귄의 능력인 마우스피스를 착용한 것으로 모자라 이어진 타격전에 볼이 부어올라 발음이 새는 이포스. 그녀가 황제펭귄의 혼을 바라보았다.
눈이 왕밤만큼 부어올라 붕어처럼 보였고,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와 멍. 이포스와 황제펭귄의 얼굴은 마치 서로의 거울인 듯했다.
육체의 피해는 이포스가.
통증은 전부 황제펭귄이.
“데헤헤… 난 펭깅망 미더.”
황제펭귄이 피 묻은 침을 흘리는 이포스에게 말했다.
– 역시나 초월자! 반면 우리의 전력은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지.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지옥에서도 악명을 떨친 콤비 아닌가?
“마댜!”
고오오오오…
황제펭귄의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 다음 라운드에 녀석을 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