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검술을 사용하는 악마로군….’
에켈라르트의 페넥스에 관한 첫인상이었다.
단출한 경장 차림에 장검 한 자루. 제국의 기사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다.
과거, 제국의 성세가 이만큼 거대하지 않았을 때 에켈라르트가 상대했던 기사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었다. 툰드라의 선택을 받은 그에게 있어 강철 갑옷을 입고 무식하게 돌격해오는 기사들은 손쉬운 먹잇감이었을 뿐.
“어떻게 해야 하지?”
“응? 뭘?”
“널 손에 넣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말이다.”
“어… 알려줘도 되는 건가….”
“말해다오.”
악마를 손에 넣는 방법을.
“우선, 지옥이랑 이곳 솔라리아를 이어줄 매개를 찾은 다음 제물을 바치는 거야! 이후엔 운명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밖에 없어!”
“…….”
“어…려웠나?”
“이해했다.”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은 과거부터 알고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것을 악마에게서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가정이다만, 네 계약자가 죽는다면… 넌 어떻게 되는 거지?”
“잠시 솔라리아에 표류하겠지? 그러다 계약자가 마지막에 건넨 마력이 소모되면 선택해야 할 거야. 남을 건지, 돌아갈 건지.”
“선택이라… 넌 어떤 선택을 내릴 생각인가?”
페넥스가 웃었다.
“으하핫! 나리는 안 죽거든. 선택할 이유가 없어!”
“죽지 않는 자는 없다. 네 계약자도 결국 내 앞에 무릎 꿇겠지.”
에켈라르트의 도발에 페넥스가 호응했다.
“나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난 이미 초월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곳에 초월자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으니, 날 막을 자는 없다.”
그가 페넥스를 빤히 쳐다보며 선언했다.
“널 죽이고, 네 계약자도 죽이겠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내 말이 진실이었음을 이해하겠지.”
“있잖아, 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싸워본 적이 없는 거지?”
“……뭐?”
“초월자든 뭐든 이긴 놈이 센 거야. 우리 할아버지는 대악마도 이긴 적 있다고 했는걸.”
“무슨 소리를….”
“이해시켜 줄게, 무기를 들어.”
기분이 나빠진 에켈라르트가 주술을 시전했다.
짜아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빙검 귀신 란돈을 소환합니다.] [란돈은 빙검을 토해내며 선택받지 못한 검은 란돈의 지배하에 적을 공격합니다.] [빙검은 란돈이 파괴될 때까지 혹은 성불할 때까지 유지되며 파괴되지 않습니다.]쩌저저저저적-!
지독한 한기를 내뿜는 머리가 큰 귀신이 입을 쩌억 벌렸다.
– 브우에에에…
다섯 자루의 형태가 다른 빙검이 란돈의 입에서 빠져나왔고, 에켈라르트가 그중 휘두르기 적합한 형태의 검을 선택했다.
– 끼아아아아아아-!
다시 검을 삼킨 란돈이 에켈라르트의 주변을 맴돌았다. 명령이 떨어지면, 그 즉시 살기와 함께 굉장한 공격성을 내비칠 게 분명했다.
짜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빙하의 원시 정령 칼라니를 소환합니다.] [칼라니는 에켈라르트에게 10초에 한 번씩 빙하 탄환을 건넵니다. 에켈라르트는 동시에 최대 6발의 탄환을 유지할 수 있으며 탄환은 착탄 시 폭발하며 냉기 피해를 입힙니다.]– 그으으어어어어…
“귀신과 원시 정령은 상극이지. 그런 존재를 동시에 부리는 것만으로도 네 주인이 되기엔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만.”
페넥스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설마, 그런 게 강함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더는 호의적인 대화를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군.”
화르르륵…
[우두머리 전투가 진행됩니다.] [부활의 악마 페넥스가 불길로 퇴로를 차단합니다.] [페넥스의 개성 【불굴】이 적용 중입니다.]화르르륵…
페넥스의 몸에 불길이 일렁였다.
[페넥스의 기본 능력: 타오르는 불꽃이 발동합니다.] [페넥스는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지속해서 상당량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고열인가… 상대하기 어렵지 않겠군.”
빙하와 화염은, 빙하 쪽이 유리한 상성이다. 거기에, 속성의 우열은 결국 어느 쪽의 경지가 더 높은가에 따라 그 영향을 크게 받기도 하니….
‘손쉬운 승리로군.’
페넥스는 에켈라르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쉬운 상대였다.
“일단… 무례함을 깨닫도록 해야겠군.”
이포스 때와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진 않을 생각이다.
에켈라르트는 페넥스가 접근조차 할 수 없게 할 의도로 원거리 견제에 힘을 실었다.
“란돈.”
란돈이 부유를 시작하며 페넥스가 있는 자리에 빙검을 내뱉었다.
콰아아앙-!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
페넥스는 그곳에 없었다.
[페넥스가 아지랑이 춤사위를 사용합니다.] [이동 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시야를 어지럽힙니다. 또한 아지랑이를 통과하는 모든 투사체의 속도를 30% 감소시키며 추적 기능을 무력화합니다.] [아지랑이가 전장에 일정량 이상 피어오르면, 열기의 회오리를 시전할 수 있습니다.]대 에켈라르트 전을 위해 파우스트가 특별히 준비한 스킬셋. 주술사와의 전투 중 대부분의 상황에 대처가 가능한 스킬셋이다.
‘역시 나리!’
페넥스는 에켈라르트와 아지랑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채로 생각했다.
‘초월자는 초월자야. 어마어마한 힘!’
얼마 전에 가을 전쟁에서 목격했던 쓰러지지 않는 우레아보다도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자다. 거기에 그녀는 불굴이라는 최악의 개성까지 달고 있는 상황.
승패가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생각을 해야 했다.
‘팔을 잘라? 아냐… 초월자에겐 신체 결손이 의미가 없는데….’
어차피 그 거대한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수복할 것이다. 여러모로 부정적인 상황.
“모르겠다! 일단 돌진!”
파아아앙-!
불길의 잔영과 함께 페넥스가 똑바르게 에켈라르트를 향해 돌진.
“란돈.”
쒜에에엑-!
빙검을 유도한 후, 방향을 틀어 아지랑이로 대처.
후웅…
잠시 느려지는 투사체의 속도, 그 틈을 타 다시 에켈라르트를 중심으로 회전하듯 달렸다.
“소용없는 짓이다.”
빙글빙글 시계 초침처럼 회전하며 간격을 좁힐 생각을 하고 있던 페넥스. 그 의도를 간파했는지, 에켈라르트가 그 불순한 의도를 틀어막기 위한 주술을 시전했다.
짜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빙하 형성을 사용합니다.] [일정 범위에 거대한 빙벽을 형성합니다.]콰가가가가가가각-!
에켈라르트의 손에서부터 만들어진 거대한 빙벽.
화르르륵…
[페넥스가 초열 절단을 사용합니다.] [단일 대상에게 폭발적인 베기 피해를 줍니다.]콰아아아아아앙-!
치이이이이…
빙벽이 뚫리며 페넥스의 회전이 계속되었다.
“큭….”
페넥스의 힘은 단순했다.
빠르고 강하고 뜨겁다.
오직 그뿐이건만, 에켈라르트를 섬?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파아아앗-!
간격을 잡은 페넥스가 그대로 파고들었다.
“어딜!”
파팍-!
에켈라르트의 손에서 반사적으로 뿜어져 나온 얼음 창과 동시에 귀신 란돈의 빙검이 페넥스를 노렸다.
후웅…
후우웅…
그러나 그녀의 기괴한 움직임에 더해 아지랑이까지 투사체를 가로막으니 명중률은 한없이 떨어졌다.
단 하나의 능력만으로 에켈라르트가 가진 다양한 힘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쒜에에엑-!
어느새 에켈라르트의 지척에 도달해 검을 휘둘러 오는 페넥스.
[페넥스가 초열 절단을 사용합니다.] [단일 대상에게 폭발적인 베기 피해를 줍니다.]치이이이익-!
‘막았다!’
에켈라르트가 페넥스의 주력 공격기를 직접 빙검으로 막아낸 후 희열을 느끼는 찰나.
끼긱…
페넥스가 순식간에 힘을 거두고 검로를 뒤틀어 다른 방향에서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그 첫 번째 검마저 막아낸 에켈라르트는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검으로는… 이길 수 없다.’
초월에 이른 육체는 반사적으로 페넥스의 변칙적인 검을 막아냈지만, 이것은 행운일 뿐이다. 상대는 자신이 막아낸 것을 행운이라 부를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검을 의도적으로 구사했다.
“너, 여기가 약하네?”
카아앙-!
카아아아앙!
히힛 하고 웃으며 악마 같이 몰아붙여 오는 페넥스를 향해, 왼손을 펼치는 에켈라르트.
“죽어라, 악마여.”
“읏, 이건 제법….”
원시 정령 칼라니를 부려 얻어낸 여섯 발의 빙하 탄환.
콰과과과과과아앙-!
페넥스가 탄환 대부분을 피해냈지만 결국 한 발의 탄환에는 적중당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그것만으로도 크게 나가 떨어져 처박히는 페넥스.
압도적인 힘의 차이다.
“란돈!”
에켈라르트가 승부를 마무리 짓기 위해 과감하게 공세를 펼쳤다. 빙검 두 자루가 동시에 토해진다.
팍-!
경각심을 느낀 페넥스가 일어서며 진각을 밟았다.
그러자, 거대한 열기의 회오리가 솟구쳐올라 주변의 눈을 녹였다.
콰아아아아아-!
[페넥스의 열기의 회오리가 발동합니다.] [열기의 회오리는 고속으로 회전하며 화염을 내뿜습니다. 또한 주변의 모든 투사체를 끌어당기며 회전이 끝나면 끌어당긴 투사체를 사방으로 쏘아냅니다.]애써 쏘아낸 빙검 두 자루와 얼음 창들이 모조리 회오리로 빨려 들어갔다.
‘어디냐!’
에켈라르트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페넥스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회오리의 반경에 숨어들었군.’
아마도 그녀는 회오리의 회전이 끝나는 순간, 흡수한 투사체들이 일으킬 혼란과 함께 기습해 올 것이다.
‘노린 건… 나 자신의 주술에 걸려 넘어지는 거였나.’
“…어림없지.”
짜아아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얼음 고치를 사용합니다.] [단단한 얼음벽이 솟아나 구체 형태가 되어 모든 방위를 감쌉니다.]쩌저저저저저저저적-!
수 개의 얼음벽이 솟아나 동그란 달걀 형태로 에켈라르트를 감쌌다.
짜아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빙하 주술: 얼음 요새를 사용합니다.] [에켈라르트를 중심으로 사방에 거대한 얼음 성벽이 솟아오릅니다.]콰가가가가각-!
성벽 너머로 열기의 회오리가 보였다.
설령 회전이 멈추고 투사체가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고 해도 별다른 타격 없이 넘어갈 것이다.
* * *
화르르륵…
에켈라르트의 말대로 페넥스는 열기의 회오리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쩌저저저저적-!
탄식이 튀어나올 만큼 대단한 방어 주술.
‘뚫을 수 있으려나?’
페넥스는 골똘히 생각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가?
혹은, 버려질까 두려운가?
…아니다.
그녀의 주인은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저, 알고 있을 뿐이다.
그녀가 검으로써 얼마나 예리한 건지.
무엇을 벨 수 있고 무엇은 벨 수 없는지.
한 번의 휘두름에 설령 조금 얕은 상처만을 남기더라도 그건 휘두르는 자의 몫일 뿐 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그녀는 구원받았다.
결핍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관계에, 파문이 생겨난 것이다.
당당하게 자신이 머무는 곳을 내 집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검은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생각은 단순해야 하며, 의지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버려지지 않을까가 아닌 어떻게 해야 더 날카로울 수 있을까.
페넥스는 이제야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녀의 주인이 검으로써의 그녀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도록.
최근의 그녀는, 전력을 다해본 적이 없다.
‘이번엔 전력으로….’
에켈라르트는 강하다.
초월자니까,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그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진정한 의미의 초월자가 아니었다. 그저 거대한 마력 덩어리일 뿐.
반면, 악마는 다르다.
전투라는 기예를 극한까지 갈고 닦은 괴물들.
화르륵…
검에 불꽃이 피어오른다.
악마는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다.
끼리리릭…
끼리리리리릭…
회오리의 열기가 다해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곧 투사체를 사방으로 쏘아내며 장렬히 산화할 것이다.
전장에 남겨진 것은 얼음의 성채.
그리고 성벽 너머에 유리된 검사.
지금부터 펼쳐질 일은 고무적이면서도 기이한 이야기다.
‘호흡은 길게, 열기를 한 점에 모으는 이미지….’
파우스트의 지난날과 관련된 얘기.
그가 솔라리아에서 겪었던 현실은 늘 원작보다 불운하고 부조리했다.
칼 쿠르소는 원작보다 강할뿐더러 보다 다양한 능력을 사용했고 불쾌한 3인조는 셋이 아닌 혈교의 사자와 함께 다섯이 되어 나타났다.
경험한 적 없던 썩은 뿌리의 붕괴도 살아 있었어야 하는 청색 마녀들이 몰살당한 것도.
모두 의외의 결과였고, 그를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주 작은 네잎클로버가 있었다.
‘예리하고 뜨거운 찌르기. 예리하고 뜨겁게… 예리하고… 뜨겁게….’
파아아아아앙-!
회오리가 흩어지며 사방에 투사체를 쏘아냈다. 찾아오는 게 당연한 불운은, 페넥스의 정면으로 얼음 창을 쏘아냈다.
파아아악-!
왼팔을 희생해 얼음 창의 궤도를 바꾸는 페넥스.
끼기기긱…
오른팔은 원래 하려던 일을 한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앞으로 쏘아지는 듯한 자세로 장렬한 찌르기.
[페넥스가 렌즈 안의 태양을 사용합니다.] [초고열의 찌르기를 시도합니다. 찌르기는 물리 피해와 화염 피해를 입히며 찌르기에 적중당할 경우 확정적으로 발화 상태가 되며 지속적인 화염 피해를 입습니다.]콰아아앙-!
콰가가가각-!
성벽을 뚫긴 했으나 고치의 단단함 앞에서 가로막히는 힘.
그러나.
“으그그그극….”
예리하고, 뜨거운 찌르기.
[사역마가 고된 수행 끝에 새로운 능력을 개화합니다.] [렌즈 안의 태양이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변형됩니다.]끼기기기긱…
찌르기의 궤적이 점차 커지며, 이내 동방의 용처럼 변해 정면의 빙벽을 꿰뚫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페넥스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사용합니다.] [정면을 향해 초고열의 찌르기를 시도하며 이때, 찌르기의 궤적으로 화룡을 쏘아냅니다.] [화룡은 공격력의 500%만큼 화염 피해를 주며 화룡에 피해를 받은 대상은 찌르기에 100%의 추가 물리 피해를 받습니다.]화르르르르르륵…
얼음 고치가 화룡에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그 안에 있던 에켈라르트의 가슴에 찌르기가 적중한다.
푸슈우우우욱…
“이게… 대체….”
파우스트에겐 매우 낯선, 긍정적인 의외가 발현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라?”
푸스스스…
페넥스가 불꽃 깃털에 휩싸여 사라진다.
[페넥스가 파티에 충분한 피해를 주었기에 강제로 패배합니다.] [【불굴】의 효과로 제한된 피해를 초과하여 적이 입은 피해를 무효화 합니다.] [적이 이 피해로 사망에 이르렀다면 부활합니다.] [페넥스가 불길로 되돌아갑니다. 잠시 후에 부활합니다.] [관문의 마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페넥스가 부활하지 않습니다.] [우두머리 전투가 종료됩니다.]……
오늘 이 순간 에켈라르트와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던 파우스트와 아카드 일행, 심지어는 당사자인 페넥스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