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4
제94화
흠칫-!
“느꼈어, 아카드?”
“방금 그거?”
“응. 쾅 하고 터지는 힘.”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에켈라르트가 향한 던전을 주시하고 있는 둘.
탐욕과 그의 수하인 아이타.
“방금 출력이 초월 급을 웃돌았는데… 진명 계약일까?”
“아니, 그건 아닐걸. 애초에 그런 상황 자체가 안 만들어졌을 거야. 양쪽 모두 던전의 규칙 안에 갇혀 있을 테니까.”
“그럼 이 무식한 출력은 어떻게 설명하게?”
“확실하게 초월을 넘긴 힘이라… 확실히 기이하긴 하네.”
“놈이 이상한 악마와 계약한 거 아닐까?”
아카드가 하품하며 대꾸했다.
“악마는 다 이상해, 아이타도 알잖아.”
“아… 다 이상하긴 하지. 그치만 초월의 경지라는 게….”
“알아. 평범한 종이 그 허물을 벗고 우화하는 거잖아. 그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다만… 악마라는 게 평범한 종에 속하지는 않잖아?”
“진명 계약을 하지 않고… 지옥의 힘을 끌어온 건가?”
“아닐걸.”
아이타의 의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아카드.
“이 경우는 오히려 반대야. 지상에서 악마의 재능이 꽃피운 거지.”
“…그게 말이 돼?”
“종종 봤으니 알 거 아니야. 악마라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종족인지. 솔로몬이 대륙을 정벌하는데 동원한 것도 지금 곁에 있는 천사들이 아닌 악마들이었는 걸.”
“…….”
“신기하긴 하네… 강제로 제약이 가해진 몸으로 보다 높은 차원의 힘을 구사한다는 게.”
둘은 이 기운의 정체를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페넥스가 방금 에켈라르트를 살해하며 보인 무위는 분명히 기함할 만한 힘이었다.
날개가 자라지 않은 새가 비행에 성공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이었으니.
“만약에, 방금 이 힘이 우연이 아니라면… 재밌겠는걸.”
“동감이야.”
“초월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 진명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초월적인 힘을 휘둘렀어. 그럼… 진짜 초월의 경지에 다다르면 어떻게 될까?”
“초월자 위의 초월자… 아니지, 이 경우엔 지옥의 힘을 죄다 끌어다 올 수도.”
생각이 많아지는 아카드다.
“원래는, 파우스트 녀석의 몸에 흐르는 피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었어.”
“아카드도?”
“녀석의 악마들도 뭔가 이상해. 악마에게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평범한 악마들과는 어딘가 다르다고.”
“말라시스에 도착하면 모두가 놈을 노릴 거야. 아마 꽃피우기도 전에 죽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지….”
“아카드는 귀찮은 일도 곧잘 하니까.”
“아이타, 이 일은 앞으로 네가 맡을 건데?”
“…죽인다?”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또 한 번의 폭음.
이번에도 던전 쪽이다.
“이 경우엔… 에켈라르트 쪽이겠네.”
“그렇지? …생각보다 마력 파장이 거대한걸.”
“진짜 초월자가 된 거겠지?”
아이타의 말에 아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것 같네. 멍청한 녀석… 초월자 상위의 마력을 가지고 봉인에서 깨어났으면서 초월자가 되기 전 힘에 집착하다니.”
“엄청 호되게 당하고 깨우쳤나 봐.”
“강철 검을 휘두를 수 있는 녀석이 돌도끼에 집착한 거지. 이제라도 깨우쳤으니, 조복할 가치는 충분하군.”
“그런데… 이제 어떻게 제압하지?”
“마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있어… 이거, 상대할 수 있으려나?”
* * *
쩌적…
쩌저저저적…
바싹 타버린 숯처럼 검게 변한 에켈라르트의 주검.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에켈라르트가 이전 전투에서는 피부였지만 이제는 타버린 껍데기들을 한순간에 부숴버리고 깨어났다.
“후우우… 후우우….”
페넥스는 너무도 수월하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의 목숨을 취했다. 다만 그 힘에는 제약이 있었는지, 에켈라르트는 간신히 숨을 되찾았다.
대신, 자색 열쇠의 힘을 사용했다.
봉인된 힘과 가능성을 모조리 해방한 것이다.
들끓는 분노가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그를 찾아온 것은 공허함이었다. 마력의 격류 속에서, 자신이 좇았던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공허함.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었다는 걸 깨달은 공허함.
휘오오오오오…
동토의 한기를 휘감은 에켈라르트는 이제야 깨달았다.
초월자의 경지는… 진정한 초월자의 경지는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는 걸.
“…고맙군.”
기나긴 시간을 봉인된 상태로 축적해온 냉기의 마력. 이 넘쳐나는 마력으로 인해 그릇이 깨져나가는 것처럼 초월자에 경지에 덜컥 올라버렸던 것.
그러면서도, 과거에 살고 있었다.
이 넘치는 마력으로 과거에 머물며 인간의 주술을 사용한 것이다.
‘초월자에게는… 걸맞은 힘이 있거늘.’
혹한의 주술사가 괴상한 악마와의 일전으로 진정한 힘을 깨우친 것이다. 이로써 에켈라르트는 더 방대한 마력을 거느리게 됐다.
이것은 파우스트에게 있어 좋은 소식임과 동시에 나쁜 소식이었다. 그를 조복한다면 진정한 초월자를 얻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향하는 길이 좀 더 험난하게 바뀐 것.
콰아아앙-!
3계층에서 2계층으로 향하는 문이 부서졌다. 위로 오를수록 좁아지는 서리 둥지 던전의 특성상, 얼마 안 가 그곳을 지키는 악마를 마주했다.
“…이럴 것 같더라니.”
진정한 초월자를 맞이한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딱 이 지점에서, 이 몸이 뒤처리를 전부 해야 할 것 같았느니라.”
[우두머리 전투가 진행됩니다.] [우레의 악마 아몬이 뇌전을 일으켜 퇴로를 차단합니다.]아몬이 한순간에 에켈라르트의 상태를 꿰뚫어 보았다.
“진력을 소모했군. 누구 짓이지… 빨간 머리? 하얀 머리? 아니면… 둘 다인가?”
“……시끄럽군.”
“이럴 줄 알았으면 계획을 좀 수정할 걸 그랬군. 너무 조심스러웠나?”
아몬이 중얼거리다, 박수를 쳤다.
짜악-!
“일단은 기존 계획대로 가지. 규칙을 설명하마.”
“규칙?”
콰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발작하듯 날린 얼음 창이 아몬이 있던 자리에 틀어박혔다.
“성질도 급하긴….”
“내가 네 녀석의 규칙을 지킬 것 같나?”
“그래, 그래… 초월자께서 어련하시겠나? 그 무렵에는 다 저 잘난 맛에 사는 거지. 그래도 설명은 해주마, 안 그러면 전투가 아닌 해괴한 춤사위가 벌어질 테니까.”
아몬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알비누스를 수복했다. 조금은… 다른 형태지만.”
“알…비누스? 설마 그 고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단 말이냐?”
“마녀들은 나름 애지중지하던 모양이다만… 아무튼, 워낙 낡아서 일회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고 사용 방식도 많이 달라졌느니라. 이전엔 대포였지?”
“자꾸 시답지 않은 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지금부터!”
그녀가 히죽 웃었다.
“내가 네 몸에 닿는 횟수만큼 알비누스가 번개를 장전할 거다.”
“몸에 닿는다고?”
“공간 좌표 설정이라… 뭐 그런 게 있다. 각 낙뢰를 일정한 좌표로 유도하는 작업이지. 대상을 추적해서….”
“…헛소리는 끝났나?”
“설명을 대충 넘겨놓고 나중에 딴소리하지만 말거라. 그런 녀석을 한두 번 봤어야지… 영 맥이 빠져서 말이다.”
휘오오오오…
[에켈라르트가 금술: 얼어붙은 강 아래를 사용합니다.] [3시간 동안 주술을 의식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 시간이 끝나면 얼음 고치에 파묻혀 3일 동안 잠이 듭니다.]리스크가 큰 힘.
그러나 에켈라르트도 이제는 여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죽음에 달하는 피해를 받으면, 정말로 죽을 것이다.
기이이이잉-
[아몬이 비무장: 일손을 사용합니다.] [아몬의 심상에 감응하는 한 쌍의 손을 소환합니다.]파지지지직…
“아까운 것들, 다시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아몬은 이번 전투에서 그녀의 기계손이 파괴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렇다면 후회가 남지 않게 잘 써주마.”
기이이잉-
작은 기계손 한 쌍이 아몬의 손에 덮어 씌워졌다.
다그라라라라락…
“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까. 세상에 노동은 왜 존재하는가… 전투 국수 취식기의 위대함은 세상에 언제쯤 알려질 것인가.”
끼긱-
아몬이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다.
“시작하지.”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동시에 땅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둘.
콰아아아앙-!
콰가각-!
일견 찰나의 소리처럼 합쳐졌지만, 순식간에 세 번의 충돌이 있었다. 아몬이 두 번의 충돌에서 손해를 봤고 마지막 충돌에선 서로 비등했다.
‘확실한 초월자로구나.’
밑에서부터 느껴지던 기운과는 천양지차다. 아몬은 어째서 자신만 이런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지 한탄했다.
[아몬이 번개 같은 속도를 사용합니다.] [뇌전을 일으켜 보다 빠른 속도로 행동합니다. 이동 및 반격과 회피 등 모든 행동에 적용됩니다.]파지지지직-!
줄기줄기 번개를 흩뿌리는 움직임.
이제야, 아몬의 속도가 에켈라르트와 견줄 만해졌다.
파아앙-!
에켈라르트의 주먹을 잡아채고,
쑤욱…
텅-!
손바닥이 그의 복부를 두들겼다.
[첫 번째 낙뢰의 대상이 설정됩니다.]“일단 하나.”
빠아아아악-!
에켈라르트가 발로 아몬을 걷어찼으나, 그녀의 가드 위에 적중. 이후의 추격은 거대한 일손들이 저지했다.
콰아아앙-!
이전 싸움에선 그렇게 믿음직했던 일손이 단 2초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후우우웅-!
에켈라르트의 의지만으로 아몬의 발 주변이 얼어붙었다.
짝짝짝짝-!
자그마한 기계손들이 서로 짝을 맞춰 박수를 치자, 스파크가 튀었다.
파지지지직-!
복잡한 주술의 술식이 순식간에 엉키며 취소되고, 금방 자유를 되찾는 아몬.
다시 충돌.
콰아아아앙-!
“크윽….”
에켈라르트의 밀어붙이는 힘이 엄청났다. 그는 지금, 근접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4계층과 3계층에 나타났더라면, 이포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고 페넥스 역시 일격을 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에켈라르트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진정한 초월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몰랐기에 당한 것이다.
그래도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에켈라르트가 내지르는 공격의 위력 하나하나에 그것이 담겨 있었다.
후우웅-!
그의 주먹을 허리를 뒤로 젖혀 피해내는 아몬.
팍-!
에켈라르트가 반대쪽 손끝을 비수처럼 변하게 해 내려찍으려는 찰나,
콰아아앙-!
일손이 그를 후려쳤다.
‘어디…!?’
펀치의 충격으로 잠시 아몬의 위치를 놓쳤다.
위? 혹은 뒤?
파지이이익-!
아몬은 일손의 뒤에서 나타났다.
“예상하고 있었….”
콰아아아앙-!
그의 등을 후려치는 또 다른 일손.
“이건 예상 못 했을걸.”
파바박-!
순식간에 세 번의 터치.
[두 번째 낙뢰의 대상이 고정됩니다.] [세 번째 낙뢰의 대상이 고정됩니다.] [네 번째 낙뢰의 대상이 고정됩니다.]흠칫-!
다음 손을 뻗어나가던 아몬의 동공의 크게 확장됐다.
파아아악-!
에켈라르트가 그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아 땅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머리를 붙잡은 그 상태로 내달리며 최대한의 충격을 주는 에켈라르트.
후우우우웅-!
일손이 아몬을 빼내고자 움직였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저저저적!
일손의 손바닥 정중앙을 꿰뚫고 나오는 얼음기둥.
기이이… 기이이이…
툭…
커다란 일손은 이제 기능하지 않았다.
“싱겁군.”
머리를 붙잡힌 채로 공중에 붕 뜨는 아몬.
팍, 팍…
아몬의 양손이 에켈라르트가 그녀를 붙잡은 팔을 내려놓으란 듯이 두들겼다.
[다섯 번째 낙뢰의 대상이 고정됩니다.] [여섯 번째 낙뢰의 대상이 고정됩니다.]“와라, 알비누스.”
“장난질은 그만하지.”
“…들켰나?”
아몬이 왼손을 에켈라르트를 향해 내밀고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흉내 냈다.
기이이이잉-
“빠앙….”
서걱-!
기이한 기운이 모여들던 아몬의 왼손이 깔끔하게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남길 말은?”
“…잘 봐뒀느냐?”
“뭘 말이지?”
“네가 죽기 전 보게 될 마지막 모습을.”
“…같잖은 허세였군.”
콰드드득-!
아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우두머리 전투가 종료됩니다.]……
휙-!
아몬의 부서져 가는 사체를 내던지는 에켈라르트.
“남은 건… 던전 키퍼뿐인가.”
진정한 초월자가 된 에켈라르트가 마지막 1계층, 서리 둥지의 심장부 문 앞에 섰다.
문에 손을 대지 않아도, 그의 마력만으로도 문이 서서히 열렸다.
쿠구구구구구구…
휑한 공간.
특히나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 천장이 동그랗게 뚫려 있기 때문이었다. 별이 보이는 밤하늘이 꼭 여기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소서.
마녀의 목소리다.
청아한 듯, 불길한 목소리.
– 저주로써 오소서….
“이건….”
들어본 적 있는 문장이다.
– 장대한 악으로서 오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아주 오래전, 그가 봉인되기 직전의 기억이다. 끔찍한 검과, 그걸 휘두르는 꼭두각시.
– 악을 삼키소서. 저주받은 이여.
후우우우우웅…
그제야,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천에 휘감긴 검을 들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동안, 서서히 검을 휘감은 천이 풀렸다.
“그 검….”
저주받은 검 미스란테.
휘오오오오오오…
검붉은 끈적한 기운이 파우스트를 휘감았다. 사탄의 가면을 쓴 그가 자세를 잡았다.
“…시작하지.”
가면 속 눈구멍에서 흘러넘치는 저주의 기운이, 에켈라르트의 심장을 서늘하게 했다.
[던전: 서리 둥지 최후의 전투가 진행됩니다.] [위기일발! 적이 던전의 심장부까지 도달했습니다.] [파우스트가 던전 코어를 조작해 퇴로를 차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