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미스란테.
동토, 그중에서도 마녀의 땅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물.
청뢰포 알비누스와 함께 저주받은 검 미스란테는 마녀들이 동토에서 살아남은 이유였다.
파츠즈즈즈즛…
다시 깨어난 검엔, 온갖 저주의 문장이 살아있는 뱀처럼 휘감겨 있었다.
“저주받은 검이군….”
에켈라르트를 봉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검이니,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 가면은 뭐지? 날 놀리는 건가?”
“나름 진지한 의식이라고, 이걸 쓰는 건.”
“흥. 되었다.”
후우우우우웅…
에켈라르트의 양손에 맺히는 푸른 기운.
‘이길 수 있을까?’
악마들은 모두 제 역할을 해주었다. 이제 중요한 건 나 자신뿐.
살아보니, 중요한 일은 언제든 찾아온다.
특별한 무대, 중요한 고백. 또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경쟁까지.
기회는 늘 주어지지도 않고, 갑자기 찾아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물론, 이기지 못해도… 기회를 거머쥐지 못해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 계속되며 후회를 낳는다.
그 후회로,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후우우….”
끓는 속 기운을 내뱉는다.
“그 검을 휘두른 녀석은 단 한 번 만에 몸이 터져 죽었지. 넌 어떻게 죽을지 궁금한걸.”
“궁금하지 않아도 네 눈으로 곧 확인하게 될 거다.”
검의 힘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검을 휘두르는 내 능력이다. 최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흐으읍….”
파아아아앙-!
파우스트의 눈은 볼 수 있다.
지금 눈앞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를.
초월자 에켈라르트는 말 그대로, 에너지의 원류 같았다.
‘모든 초월자가 이럴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원작의 초월자들은 단순히 종의 한계를 벗어나 보다 높은 경지의 힘을 발휘하는 자들이다.
아마도 에켈라르트가 특이한 거겠지.
카아아아아아앙-!
녀석의 주먹이 미스란테의 검날을 후려쳤다. 검날에 맺힌 저주의 파동이 한차례 흔들리는 순간,
후우우웅-!
좀 더 위협적인 일격이 방어를 뚫고 들어왔다.
파아아아앗-!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상당히 버거운 속도다. 녀석이 봉인 당하기 전 주술사라는 건 알고 있었고 초월자의 무위에 올랐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당연히 빠를 것이다.
그렇게 예상하고 대비한 것보다도 빠른 게 문제지만.
카아아아아앙-!
…카아아앙!
“제법 잘 막는군.”
공세를 이어 나가면서 말까지 하는 여유라니.
‘검을 가져다 대는 게 고작이다.’
지금은 녀석의 살기가 느껴지는 곳에 반사적으로 검을 내밀어 방어하는 게 최선이었다.
마치 강속구를 보지 못하는 타자가, 본능적으로 번트를 치기 위해 방망이를 그 위치에 가져다 대는 것처럼.
휘릭-!
쿠우우우웅-!
발밑에서 솟구쳐 오르는 얼음기둥. 녀석이 서서히 전투에 주술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강자다.
지금 눈앞에 온 녀석은, 틀림없는 강자.
스칼라의 제자였던 닐과도 일전을 벌였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에켈라르트는 순수한 마력 그 자체를 상대하는 느낌… 닐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다.
‘한 번이라도 베어야만 해.’
콰아아아앙-!
“큭….”
저토록 빠르고 단단한 존재를 어떻게든 베어야 한다는 말이다.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하아아압!”
후우우웅-!
에켈라르트의 주먹에 빛이 생겨나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지면에 내리꽂혔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지반 전체에 거미줄처럼 실금이 갔다. 보스 룸을 떠받치고 있는 대지의 강도는 던전 코어가 책임지고 있으니, 아마도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부우우웅-!
처음으로 제대로 휘두른 검.
“어설프군.”
그럴 것이다.
까아아아앙-!
당연하게도 틀어막힌다.
그리고 이어져 오는 반격.
투우웅-!
녀석이 손에서 쏘아낸 얼음 창을 비스듬히 쳐내자, 이번엔 입에서 숨결을 내뿜었다.
‘피해야 해!’
쩌저저저저저적!
전방 일정 범위를 급속으로 냉동시켜 버리는 힘.
파아앗-!
피했으니 파고든다.
“소용없는 짓을 계속해서….”
카아아앙-!
캉!
카아아앙!
“…뭐?”
뭐랄까… 이 느낌.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 게임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인공 마왕 실험의 실험체답게 전투 능력이 말도 안 된다는 설정이다.
한번 본 움직임은 곧장 이해하며, 심지어 상대의 움직임을 몇 번 본 것만으로 이어질 동작까지 예측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
유연하고 강인하다.
지구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이 천재 소리를 수십 번 들어도 모자람이 없다고….
‘너희가 그랬잖아!’
카가가가각-!
“읏….”
과연, 제작사의 그 말은 사실일까?
이쯤 되면 궁금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후우우웅-!
에켈라르트의 공격.
‘주먹 안에 비수를 숨겼군.’
중간에 공격 경로를 뒤틀 생각인가.
피이이익-!
‘…역시나.’
파사아앗-!
몸을 측면으로 기울여 피해냈으니, 이번엔 내 차례.
‘어디를 공격할까?’
그 어느 곳에도 빈틈은 없다.
그래도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내밀어.
지금?
늦었어. 그래도, 내밀어.
쒜에에에엑-!
따아아아아아아앙-!
전과 다른 충돌음.
에켈라르트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떠지는 게 보였다.
녀석은, 반사적으로 대응한 거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예측하지 못한 속도로 검이 들어왔으니, 그걸 흘려내는 것도 매끄럽지 않았다.
그렇기에 충돌음이 달라진 거다.
“이게 무슨….”
녀석의 기운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걸 두려워하는 건 초월자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아앙-!
따아아아아앙-!
흐름을 잡았다.
어떤 속도로,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에켈라르트가 당황할지 알 것만 같았다.
레메게톤의 사역마들은 그 경지가 명확하게 나뉜다. 4성부터 6성까지의 태생에 따라 강함이 결정되며, 이후의 성장에도 태생은 막대한 영향이 있다.
각자가 강해지는 법 역시 태생에 따라 다르다. 다만, 그 중간층인 5성급의 강자들이 처음으로 올라서는 경지인 초월이 대표적인 무력의 단위처럼 사용됐다.
초월, 초월자의 무위
일종의 경계선인 셈이다.
모든 사역마는 이 경계선에 머문다.
초월하면 강해? 초월 전엔 별로야.
초월이랑 비벼, 초월해도 똑같아.
오직, 주인공인 파우스트만이 이런 규격에 휘둘리지 않는다.
왜냐고? 원작이 폐점 처리될 때까지 파우스트에게 벽이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서버가 종료될 시점엔 이미 파우스트가 초월자들을 몇이나 쓰러트렸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저주받은 존재 파우스트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카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앙-!
이제, 번트 따윈 없다.
몇 번의 합을 섞은 후, 알게 됐다.
제작사가 말한 파우스트의 설정은, 모두 사실이라는 걸.
‘보이고… 움직인다. 괴물 같은 몸….’
조금 빠르던 검술은 숨을 죽이고, 뒤늦게 따라오던 발엔 탄력이 붙었다. 전투에 익숙해진 것만으로 무려 초월자와 대등한 싸움을 벌이는 게 가능했다.
파아아앙-!
‘이제….’
벨 수 있다.
카아아아아아앙-!
에켈라르트가 한 손을 방패로 만들어 검을 쳐냈다.
‘역시 넌… 겁쟁이다.’
에켈라르트는 이전 전투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방어를 고수했다. 자신이 완벽한 우위에 서지 않는 이상 전력을 다해 공격하지 않는다.
녀석이… 내게 베인 이유다.
푸화아아아악-!
미스란테가 에켈라르트의 가슴을 얕게 훑고 지나갔다. 피육을 전부 베지도 못한 얕은 일격.
그러나, 전 시대의 에켈라르트는 이 일격으로 봉인당했으며 미스란테를 휘두른 꼭두각시는 몸이 터져 죽었다.
화르르르르륵-!
미스란테가 검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피를 맛봤기 때문이다.
나?
“너….”
“내 모습이 어때 보이지?”
당연히 멀쩡하다.
파우스트는 탐욕의 권능을 깨우쳤다. 이 피는… 이 세상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게 한다.
“당장 몸이 터질 것 같진 않군.”
“이 자식….”
몸이 터져 죽는 건 너다, 에켈라르트.
“네 몸부터 걱정하시지.”
후우우우우웅…
미스란테에 불어넣는 의식.
[미스란테가 피주자의 피를 맛봤습니다.] [검의 주박을 사용합니다.] [미스란테와 대상이 공명합니다.]지이이이이잉-
마치 종처럼 울리는 미스란테.
[미스란테는 피주자가 사망할 때까지, 혹은 미스란테가 파괴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저주를 가합니다.] [저주는 중첩되며 30초마다 새로운 저주를 시전합니다.]오직 이, 단 한 가지 능력만으로 동토의 전설로 남은 검이다.
고향 없이 헤매는 마녀들의 울분이며, 강대한 대적자에게 퍼붓는 원한이었다. 이 검을 연성하기 위해 몇이 죽었을지, 검이 발하는 진동만으로도 짐작이 되었다.
“이제 와 그까짓 저주가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글쎄….”
지이이잉-
[미스란테가 피주자에게 홍수의 저주를 퍼붓습니다.] [최대 마력이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그만큼 최대 체력이 감소합니다.]처음부터 꽤 쓸 만한 저주가 나왔다. 이미 마력을 넘칠 만큼 가지고 있는 에켈라르트에게 이 이상의 마력이 더해진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파아아아앙-!
에켈라르트가 이 싸움이 장기전으로 가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걸 이해했는지, 곧장 공격해 왔다.
이제 창과 방패가 뒤집혔다.
“그깟 검, 부숴버리면 그만인 것을!”
콰아아아앙-!
설원 늑대의 정령 한 쌍이 튀어나와 에켈라르트와 함께 덤벼들었다.
짐승의 움직임은 단순하다.
특히나 무는 것 외에 장기가 없는 짐승일수록 더더욱.
그저 상대해야 하는 손이 좀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됐다.
카아아앙-!
위… 아니, 아래다.
후우웅-!
콰지이이이익-!
살짝 뛰어올라 몸을 회전하며 검을 뿌리자 늑대 정령의 목이 부러졌다.
– 끼이잉…
푸스스스…
타아아아앙!
회심의 정권!
‘예상했지.’
따아아앙-!
미스란테의 검날로 받아내는 힘.
오히려 그 힘을 받아 내 몸이 더 멀리 밀쳐지도록 유도했다.
“도망치지 마라!”
지이이잉-
[미스란테가 피주자에게 익사자의 저주를 퍼붓습니다.] [이동하지 않는 동안 근력이 최대 2배까지 상승하지만 이동하는 동안 행동 속도가 계속해서 감소합니다.]치명적인 저주.
단 두 번의 저주만으로 에켈라르트의 근접전은 무력화됐다.
후우우우웅-!
에켈라르트가 방법을 바꿔 커다란 얼음 창들을 잔뜩 소환했다.
“맞아줄 거라 생각해?”
“맞을 수밖에 없을 거다.”
휘오오오오오…
에켈라르트가 합장하자 그를 중심에 두고 원형으로 퍼져나가는 빙벽의 파동이 일어났다.
콰가가각-!
콰가가가가각-!
서서히 내가 발붙일 곳을 줄여나가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속셈.
콰가가가가가각!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과연, 이 넓은 전장을 빙벽으로 뒤덮을 만큼 엄청난 마력이다.
아마도 다다음 빙벽이 만들어질 때쯤, 녀석은 준비해 둔 얼음 창을 사용할 것이다.
‘전부 막을 수는 없을 텐….’
지이이잉-
[미스란테가 피주자에게 종이 인형의 저주를 퍼붓습니다.] [피주자의 원소 저항력을 없앱니다.]“…에켈라르트.”
“놈, 이제 곧….”
“끝이다.”
철컥…
내가 품에서 꺼내든 건, 아몬이 맡긴 작은 기계손이었다.
다그라라라라락…
왼손에 덮어씌워지는 기계손.
– 이 몸이 에켈라르트를 잔뜩 더듬고 올 테니, 필요한 순간이 되면 망설이지 마라. 단 한 번뿐인 일격이니. 시동어는….
“…노오오오오오오옴!”
에켈라르트가 황급히 방어 주술로 전환했다. 아마도 이 기계손이 무슨 요술을 벌일지 직감한 거겠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흉내 낸 후, 녀석을 향해 말했다.
“빵.”
[청뢰포(靑雷砲) 알비누스가 발동합니다.] [일곱 개의 대상을 발견했습니다.] [낙뢰를 유도합니다.]뻥 뚫린 하늘에서, 일곱 갈래의 벼락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