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6
제96화
– 제아무리 초월자라 한들, 이 몸이 몸 한 번 더듬지 못하겠느냐? 만약 에켈라르트를 벨 수 없다면… 알비누스가 벌어주는 단 한 번의 시간을 소중히 활용하거라.
아몬이 내게 당부한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염려한 것이겠지.
서리 둥지의 모두는 각자 해야만 하는 일을 예상을 뛰어넘어 해냈다.
완전한 초월자가 된 에켈라르트를 일곱 번이나 터치한 아몬이나, 알비누스의 도움 없이 에켈라르트를 미스란테로 베어낸 나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어를 위해 사용한 주술은 전부 깨져나가고 일곱 갈래의 벼락이 여전히 에켈라르트를 노렸다.
푸스스스스스스…
에켈라르트가 전투 불가능한 상태라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새카맣게 타버린 채로 피부가 마력과 함께 융해돼 지면에 붙어버렸다.
딱딱하게 굳은 에켈라르트. 이 이상, 저주를 받게 되면 에켈라르트를 조복하기 전에 그가 숨을 거둘 것 같았다.
“에켈라르트.”
“…….”
“네 패배다.”
“…….”
여기서부터는 조복의 과정이다.
“내게 굴복해라. 날 위해 네 삶을 바치겠다고 맹세해. 그렇다면….”
“삶을 얻을 것이고… 생은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새까맣게 타버린 에켈라르트가 중얼거렸다.
“패배를 인정하마.”
[곧, 에피소드 4막 최종장 초월자 에켈라르트가 종료됩니다.]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던전 수호 임무가 종료되었습니다.] [임무 결과: 에켈라르트 (생포)] [던전 수호 임무의 보상으로 침입자의 소지품을 획득합니다.]전리품은 없다.
‘상관없다, 에켈라르트를 얻기 위한 일이었으니.’
쩌어억…
그의 입이 벌어지며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동토의 차오트 부족. 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일찍이 버려졌다.”
“…….”
“젖동냥을 하고 일곱 살에 첫 살인을 했지. 살아남기 위한 모든 것을 해옴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망설여지는군.”
딱 한 걸음만을 남긴 조복 과정.
“결정했다. 더는….”
후우우우우웅…
검게 타버린 에켈라르트의 몸에 한없이 새파란 기운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더는… 참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 그 누구도 나를 속박할 수 없다!”
에켈라르트가 선택한 것은, 마력을 폭주시켜 이곳에서 있던 모든 일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몰살을 원하는 건가.’
조복은 실패했다.
첫 번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셈.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녀석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당연하게 나타나야 하는 자가 있다.
파아아아아아앗-!
가공할 속도로 1계층에 도착하는 누군가.
“후우… 안 늦었지?”
까딱…
상황을 설명하기 보다 직접 보라는 의미에서 고개를 에켈라르트 쪽으로 까딱했다.
“…그럼 그렇지, 아카드의 예상이 맞았네.”
파파파팍-!
아이타의 품에서 네 자루의 검이 빠져나와 에켈라르트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떠올랐다.
후우우우우웅…
에켈라르트는 마치 생명이 정지한 것처럼, 부풀어 오른 그 상태에서 가만히 떠 있었다.
“아카드는?”
“올 거야, 난 급한 일부터 처리하라고 해서 온 거고. 그보다….”
아이타가 떠오른 에켈라르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정말로, 초월자를 사냥했네.”
“그런 계획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척하기는….”
“그가 널 여기로 보냈다는 건, 이유가 있겠지?”
탐욕의 아카드가, 에켈라르트의 조복을 쉽게 생각했을 리가 없다. 분명 조복이 실패했을 때의 대처까지 정해뒀겠지.
에켈라르트가 조복을 거부했을 때도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녀석이라면… 이미 계산기를 다 두드려뒀을 거다.’
정말로 이대로 조복이 실패하는 것으로 이 계획이 마무리될 거였다면, 계획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여기까지도 계산했을 것이다, 녀석은. 아니었다면 이렇게 딱 맞춰 아이타가 등장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조금은 당황하는 걸 기대했는데… 재미없기는.”
아이타가 코를 찡긋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초월자라는 존재를 뭐라고 생각해?”
“어떤 계기든 종을 초월한 능력을 보유한 자들.”
“그래, 평범한 초월자의 가치는 그 정도뿐이야. 그렇다면, 아카드와 내가 왜 고작 초월자 한 명 때문에 여기 남았을까?”
상대는 칠죄종이다.
대륙 최강자의 반열에 속한 자가 이곳에서 며칠이고 남아 있을 이유.
결론은 하나다.
“에켈라르트가 평범한 초월자가 아닌 건가?”
“너! 이이이이… 너! 그러니까, 전부 맞추는 거 재미없어. 너 말고 좀 멍청한 애는 없어?”
“그쪽을 원한다면 찾아보지.”
“됐어! 설명할게. 에켈라르트가 특별한 이유는 기나긴 봉인 때문이야. 별것 아닌 것도 긴 시간을 거치면 특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화석이나 고대 유물처럼 말이야. 에켈라르트는 봉인된 긴 시간 동안 동토의 마력을 흡수했어. 순수한 냉기를 말이야.”
순수한 냉기.
녀석이 거대한 에너지의 원류 같다고 느꼈던 건,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녀석의 전투방식도 조금 특이했지.’
기나긴 수행을 통해 초월자에 오른 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기존 능력을 한 차례 진화시켜 적들을 상대한다.
그런데, 에켈라르트는 내가 알고 있는 초월자의 전투 능력과 현격히 다른 힘을 보여주었다. 주술적인 진보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저 흉악한 마력을 이용해 상대를 때려눕히는… 기이한 전투방식.
“오랜 봉인이 그의 족쇄였군.”
“맞아, 녀석의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다는 건 느꼈지?”
“방금까지도 거기에 당할 뻔했으니까.”
자신이 가진 마력을 폭발시켜 공멸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마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이 녀석은 지금, 말하자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연어와도 같다는 말씀!”
“중요한 건 조복이 불가능하다는 것 아닌가?”
“조복? 아아… 그거 말이지? 사실은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 아니, 성공하지 않기를 바란 거라고 해야 하나?”
“…뭐?”
“그렇잖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마력 괴물을 조복하는 건…. 그래서 이 녀석의 용도는 아카드가 이미 결정했었어.”
용도가 결정되어 있었다고?
‘초월자에게 사역마에 준하는 용도가 따로 있었다고?’
“오직 우리, 탐욕만이 가능한 방법이지.”
따악-!
아이타가 손가락을 튕기자, 딱 철가방 정도 사이즈의 대장간 미니어처가 튀어나왔다.
그대로 대장간을 발로 쿵 차버리는 아이타.
콰아앙-!
– 아아악! 누구야!
“아이타다! 나와.”
– …….
콰아아앙-!
– 으아악! 시끄럽다! 시끄럽다고, 빌어먹을 아이타!
“일이야, 무기가 필요해.”
– …다음에 다시 올래?
“나와서 열 좀 식히라고. 어서.”
– 끄으응….
휘오오오오…
그 작은 대장간에서, 나보다 2배는 더 큰 존재가 나타났다.
크르르르륵…
‘…악마?’
얼굴은 앳되어 보이는데, 덩치는 커다란… 그러니까 살집이 두툼하다는 게 아니라 골격 자체가 커다란 악마가 나타났다. 이포스와는 종 자체가 다른 것 같다고 느낄 정도다.
‘뿔이 상당히 크군.’
녀석이 허리를 굽혀 나를 노려보았다.
“흐음… 특이한데, 아카드랑 비슷한 냄새가 나네?”
“어어, 그 이상 입을 놀리는 건 이 아이타가 용서치 않겠어?”
“빌어먹을 아이타가 용서치 않으면 무서워서 얼른 오줌이라도 지려야겠네. 아이고 무서워!”
“할파스, 인사해. 아카드가 탐내는 친구야.”
“호오오오오… 그 까다로운 아카드가?”
할파스라는 이름을 듣게 됐으니, 나도 모르게 원작을 떠올렸다.
‘할파스는 출시되지 않았었지.’
서버가 유지된 기간이 짧았으니, 72악마가 전부 출시될 순 없었다. 당시에 출시되지 않은 악마들에 관한 추측은 보통 2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아직은 미출시일 뿐 시기가 오면 출시할 것이다.
둘째는 해당 악마와 계약한 npc가 스토리에 등장해 출시할 수 없다.
할파스는 이 중 후자일 거라고 추측했었는데…
‘정답이었군. 계약자가 있었어.’
무장의 악마 할파스.
설정상으로는 뭐든지 무기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악마다.
“그러니까, 이 친구 무기 좀 만들어줘.”
“소재는?”
“저기.”
“음?”
할파스가 에켈라르트의 최후를 보며 중얼거렸다.
“크아아앗? 순수한 냉기잖아? 양이 꽤 되는걸?”
“그렇지? 우연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조화라고 할까나?”
“무기를 만들어 주라는 건 아카드가 시킨 거냐?”
“아니었으면 내가 가졌지.”
“뭐라든?”
아이타가 내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여기 이 친구한테 잘 봐달라는 차원에서 뇌물로 바치래.”
“그래도 아직은 풋내기인데?”
“미래를 보는 거지.”
“뇌물은… 그렇다고 혹할 친구는 아닌 것 같다만… 꽤 강단이 있어 보이는걸.”
뇌물?
‘교묘한 화술이군.’
생고생을 해가며 에켈라르트를 쓰러트렸는데 마치 선심 쓰듯 말하다니. 좀 멍청한 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감사를 표했을지도.
‘내가 잡은 거잖아?’
물론… 에켈라르트가 조복을 거부한 이후로는 나로서도 대처 방법이 마땅치 않았지만 말이다.
“어쩌겠어, 아카드가 그렇게 결정한걸.”
저벅…
저벅…
“맞아, 내가 결정한 거야.”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건 탐욕, 아카드였다.
“모처럼 좋은 구경을 했으니, 관람료는 내야 하지 않겠어?”
“흐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후우웅-!
후우우우웅-!
할파스가 에켈라르트를 눈여겨보며 말했다.
“냉기가 너무 강한데, 까딱 잘못하면 마병이 튀어나오겠어. 조심해야겠는걸.”
휙-!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여 내게 물었다.
“이봐, 소원이 있어?”
“소원?”
“사용하게 될 자의 염원이 담겨야 진정한 꿈의 무기라 할 수 있지. 네가 무기에게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여태까지 무기에게 맞춰온 거 아니었어?”
…기능 같은 건가?
내 무기가 어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딱히 없는데….
그래도 병기 중 그나마 익숙한 날붙이였으면 좋겠고…
‘호수를 휘두를 때처럼 칼질 몇 번 하고 나자빠지는 것만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군.’
팟-!
할파스가 갑자기 내 양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뭔가 떠올렸지?”
“뭐?”
“떠올렸을 거야. 내가 영감이 팟! 하고 떠올랐으니까.”
무슨….
할파스의 망치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오…
따아아아앙-!
그녀가 에켈라르트를 때리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녀석의 육체는 순수한 에너지로 뒤바뀌었다.
극한의 음기.
따아아앙-!
망치가 음기를 후려칠 때마다 주변으로 한파가 휘몰아쳤다.
쩌저저저저저적!
따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적…
열 번은 넘는 두드림.
담금질이라든가, 풀무라든가… 그런 걸 쓸 기색은 없어 보였다.
‘뭐, 악마니까.’
[할파스가 병기 창조: 염원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염원이 담긴 병기를 창조합니다.] [반드시 걸맞은 소재가 필요합니다.]따아아아아아앙…
따아아아아앙…
망치 소리가 잦아들 때쯤, 함부로 주변을 침범하던 한기 역시 잦아들었다.
“인간이 병기가 될 줄이야.”
내 솔직한 감상에 아카드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 아니지. 초월자는 틀에서 벗어난 존재야. 에켈라르트 본인도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하고 죽지는 않았을걸.”
눈을 빛내는 아카드.
“초월자는 세계의 일부. 우리는 세계의 일부를 병기로 만든 것뿐.”
“완성이다!”
따아아아아아아앙-!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
빛무리를 흩뿌리며, 에켈라르트가 있던 곳에 한 자루의 도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