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il who draws RAW novel - Chapter 98
제98화
화르르륵…
시체들이 건축물과 함께 타오르며 고기가 익는 냄새가 났다. 순간, 역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은 쪽지에 온 관심이 쏠려 있어 금방 잊었다.
– 드래곤의 용인 실험에 사용됐던 물건을 기적처럼 손에 넣은 게 시작이었다.
쪽지는 일종의 일대기 형식을 빌려왔다. 평범한 찌꺼기 마족의 삶을 살다가 이 유물을 얻은 걸로 모자라 폭식의 피를 채혈하기까지.
제법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였지만, 쉽게 믿기는 어려운 얘기였다.
‘마녀에게 붙잡혀 꼭두각시가 되어 죽은 녀석이 폭식의 피를 훔쳤다고?’
글쎄… 쉽게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꿀렁…
피가 담긴 작은 약병을 자세히 살펴 보니, 이건 확실히 유물이라 부를 만했다.
‘꺼낼 수가 없군.’
피는 이 병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 안에 있던 것처럼, 배출할 수가 없었다.
쪽지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 빌어먹을… 이 유물, 완전한 게 아니었다.
‘완전한 게 아니었다고?’
하긴… 이대로는 피를 꺼내기도 어려워 보였으니.
뒤에 오는 내용을 살펴보니 이 유물의 이름은 용혈촉. 세 파츠로 나뉘어 있으며 세 파츠가 하나로 모여야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세 파츠 중 하나만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다른 파츠를 감지한다고?’
워낙 작은 유물이다 보니, 드래곤이 혹시 분실을 염려해 넣은 기능일지도.
이 남자가 가지고 있던 파츠는 채혈을 담당했고 다른 두 파츠는 정제와 투여를 담당한다고 적혀 있다.
‘혈통에 흐르는 비전을 가로챈다고? 흐음….’
폭식의 권능은 원작에서도 밝혀지지 않았었다. 애초에 밝혀진 건 탐욕의 권능뿐이긴 했지만.
쪽지와 약병을 조심히 품에 넣었다.
‘믿긴 어렵지만, 확인해볼 가치는 있겠군.’
타닥…
탁…
휘이이이이이이…
불은 금세 꺼졌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에니스.”
“하하… 며칠 동안 꿈을 꾼 것 같네.”
“그간, 네 조력에 감사하마.”
“딱딱하긴, 잘 가! 이제 이 지긋한 동토랑은 안녕이다!”
에니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던전을 향해 발을 돌렸다.
* * *
“으으윽….”
“우웅….”
아몬과 이포스가 몸을 휘감은 넝쿨을 툭툭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시퍼와 아리엘이 그녀들의 상태를 한 차례 점검하고는, 문제없다고 전해왔다.
“이포스! 아몬! 으아아아앙!”
페넥스가 양팔을 벌리고 깨어난 아몬과 이포스에게 다가갔다.
“떠, 떨어지거라.”
“으그극….”
당연히 아몬은 황급히 페넥스의 품을 피했고 이포스만 붙잡혀 질식할 정도로 포옹당했다.
“죽음은… 오랜만이구나.”
“네가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익숙해지는 게 맞지 않나?”
“죽음을 경험하는 건 나 역시도 드문 일이다. 애초에… 아니다. 알비누스와 미스란테는?”
“둘 다 부서졌다. 아마도 영원히.”
“…에켈라르트를 제압했다는 말이겠군, 그렇지?”
끄덕…
아니었다면, 그녀의 회복을 반기는 게 내가 아닌 에켈라르트였겠지.
“그럼, 녀석은 지금 어디 있느냐? 조복은….”
철컥-!
쿵!
등에 메고 있던 칼집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조복을 거부했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그보다 이 힘은 할파스인가?”
“할파스를 아나?”
“종종 어울린 적이 있었다. 믿을 만한 장인이지.”
죽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몬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는 내 궁금증을 해결해줘야 한다.
“그것보다, 이걸.”
툭.
쪽지와 용혈촉의 파츠를 건네자, 파츠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아몬.
“흐음… 재밌군.”
쪽지의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정제된 혈액을 배양해 가문의 권능을 체득한다는 건가?”
“가문? 가문이라니?”
“칠죄종 자체가 일곱 가문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느냐?”
“…뭐?”
이건 처음 아는 정보였다.
단순하게 마족의 우두머리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칠죄종은 모두 선대 마왕을 옹립한 일곱 가문이다. 마왕은 일곱 가문의 여식과 모두 맺어졌고 각 가문에는 마왕의 피를 일부 이어받은 자식들이 태어나 지금의 칠죄종이 되었지.”
그렇군, 가문의 형태였나.
원작에선 칠죄종과 그리 가깝게 지내본 기억이 없었으니… 몰랐을 만하다.
“선대 마왕은 일곱 가문이 서로 견제하길 바랐던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다만 칠죄종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개화했지.”
문득, 인공 마왕 실험이 떠올랐다. 인위적으로 마왕의 피를 투여해 새로운 마왕을 만들어내려던 실험.
‘내가 경험한 실험 역시, 이 물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가.’
용혈촉의 일부를 손에 든 채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방문했다.
“준비는 끝마쳤나?”
싱글싱글 웃는 아카드다.
* * *
“이제 코어만 떼어내면 끝이로군.”
코어만 떼어내면, 이주 준비가 끝난다.
다만, 코어가 이동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걸 전에도 배웠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말라시스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가끔은 가깝고, 가끔은 너무 멀지.”
장난치는 건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나도 그렇게 알고 있으니.
‘말라시스는 계속 이동한다.’
그렇기에 마족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는 것이다. 누구도 공략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만한 병력이 이동하는데… 위험하지 않나? 주변에 노출되는 걸 피할 수 없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세 거인이 쿵쿵거리면서 걸어 다니는데 소 닭 보듯 볼 행인이 있을까?
당연히 소문이 돌 것이고 그 소문은 동토에서 벌어진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음욕의 귀에 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팠지. 자, 받아라.”
툭…
손바닥 크기의 주머니.
‘이건….’
“이전에 내가 직접 사용하던 건데, 일명 가계낭(假界囊)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야. 마족이 만들어낸 물건은 아니지만 어쩌다 얻게 된 걸 개량해서 양산한 거라고.”
가계낭(假界囊).
직역하자면 뭐 가짜 세계 주머니 정도일까.
원래는 솔라리아가 아닌 선계에 머물던 선인이, 모종의 이유로 이 대륙에서 사망해 남게 된 유물이다. 당시 인간 왕국이 이 물건을 습득해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마왕에게 진상했다고.
‘엄밀히 말하면 마족이 선계의 유물을 도둑질한 셈이지.’
솔라리아의 주민들은 세계가 다양한 차원으로 쪼개져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애초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 존재한다는 방증이었으니.
‘선계와 요계는 동방 쪽이었지…?’
요괴와 선사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지옥처럼 따로 분리되어 있었고, 동방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동방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다.
물론, 작중 파우스트는 동방 땅을 밟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세계관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
마족이 우연히 선계의 유물을 손에 넣었던 시기의 마족 문화는 귀족적이면서도 학구적이었다. 가계낭의 기이한 힘은 이 시기에 낱낱이 파헤쳐져 지금까지도 마족의 고유한 유물로 잘 사용되고 있다.
‘말라시스 소속 마족의 상징이기도 하지.’
칠죄종이 거느린 수하들은 보통 이 가계낭을 지니고 있다.
“이 주머니가 무슨 용도인지는 아나?”
“…대강은.”
“오, 그래? 어떻게 알게 됐지?”
“떠돌이들이 떠드는 걸 훔쳐 들었던 모양이지. 기억엔 없다.”
“흠… 그런가. 우선, 내용물을 확인부터 해보자고.”
따아아악-!
휘오오오오…
가계낭의 주둥이가 열리며 주변을 뒤덮었다.
콰르르릉-!
콰르으응!
벼락이 내리치는 돌산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하핫! 미처 안에는 청소를 못 했거든, 알아서들 해주라고!”
‘우레 속성 사역마가 머물렀던 건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가계낭의 내부에서 느껴졌다. 모티브가 선계의 유물이었다고 하니 이해가 되는 힘이다.
‘작은 세계를 구현하다니… 심지어 날씨까지.’
“코어는 이곳에 보관하면 된다. 간이 던전 같은 역할을 하니, 문제는 없을 거야. 다만 가계낭이 파괴당하면 죽겠지?”
“…….”
“근데, 가계낭을 만들 때 들어가는 소재가 비영석이거든. 전 대륙을 뒤져도 이만큼 단단한 걸 찾기가 힘드니 아마 초월자 이상 가는 적을 만나더라도 녀석이 며칠 동안 이 유물을 부수는 데 몰두하는 것만 아니라면 파괴되지 않을 거야.”
가계낭에 대한 주의사항 역시 들을 수 있었다.
“편리하다고 함부로 여닫으면 안 돼. 가계낭은 영혼과 연결되는 유물이라 전투 중에는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고 추격당하는 중에도 사용해선 안 돼. 특유의 기운이 사방에 드러나니 적들이 기척을 알아챌 거야.”
“직접 가계낭에 들어가는 건?”
“그것도 조심해야 해. 최대 체류 가능 시간은 3시간이야. 그 이상 시간이 흐르면 안에서 문을 열 수가 없으니 영원히 갇히게 될 거야.”
뭐, 원작이랑 설명은 똑같군.
“자, 말라시스에 가게 되면 새 가계낭을 받을 수 있겠지만 네 사역마들이 쾌적하게 머물만한 환경은 되지 않을 거야. 급한 대로 이거라도 사용해.”
가계낭이라고 다 같은 등급인 건 아니다. 직위가 올라감에 따라 받게 되는 가계낭의 등급이 달랐다.
“이건 감식에도 걸리지 않는 가계낭이니, 이걸 주력으로 사용하고 새로 지급받게 되는 가계낭은 위장용으로 사용하도록 해.”
“전력을 숨기라는 건가?”
“외부에서 연고도 없이 들어온 마족이 가계낭에 악마가 버글거리면 말라시스가 뒤집힐걸. 불필요한 소란은 막자는 의미.”
말은 그렇지만, 다른 칠죄종에게 내 정체를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다.
“아, 그리고 이것들도.”
수상한 반지를 여러 개 받았다.
“반지를 끼고 있는 동안엔, 악마의 기운을 지워줄 거야. 내가 직접 개량한 물건이니 눈치챌 수 있는 녀석도 없고.”
시험 삼아 페넥스에게 반지를 넘겼다.
스윽…
“오! 이것 봐. 뿔이 사라졌어, 나리!”
“…재밌군.”
악마들에게 반지를 나누어주자, 이 반지를 내게 건네는 이유를 말하는 아카드.
“물론, 너도 끼워야만 해.”
“…나까지?”
“당연한 말을. 악마의 무기를 태연하게 메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이목을 끌 게 뻔하잖아.”
“그렇군.”
“굳이 그 무기들이 아니더라도 네 힘만으로 말라시스에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스윽…
반지를 착용하자, 호수와 설원에서 뿜어지던 마기가 점차 희미해졌다.
따아악-!
휘오오오오오…
가계낭을 개방해 던전의 사역마 대부분을 넣었다.
가계낭에 들어가지 않은 사역마는 4명의 악마뿐.
“자, 그럼 가볼까.”
* * *
동토를 벗어날 때까지 쉴 틈 없이 걸었다. 중간에 이럴 거였으면 그냥 가계낭에 들어가 있을걸… 이라고 불평하는 아몬은 제쳐두고서라도, 꽤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다.
어째서 마차를 이용하지 않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발자국은 눈이 내리면 지워질 거야. 근데 마차가 오고 간 흔적은 말똥을 전부 치우지 않는 이상 남게 될 거고. 말똥을 치우면서 다니는 것보단 걸어가는 게 낫지 않나?”
바로 동의했다.
음욕이 보내온 하수인이 말똥으로 우리를 추격해온다고 상상하니,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하필 말똥 때문이라니… 그건 못 참는다.
이틀을 더 걷자, 이제 눈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젠 산림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아이타, 이쯤이면 되겠지?”
“적당해 보이네! 그럼 부를까?”
“좋아!”
…불러?
‘뭘 부른다는 거지?’
원작에서도 말라시스에 가는 방법은 워낙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커다란 괴조를 타고 대륙을 횡단한다든가, 거북이가 심해에 있는 동굴로 실어 나른다든가.
‘그래도 칠죄종이니, 조금 고상한 방법이겠….’
뿌우우우우우우-!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진동이….”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땅속을 엄청난 속도로 헤집고 나타난 건, 거대한 땅벌레였다.
쩌어어어억-!
누가 봐도 마물처럼 보이는 땅벌레가 아가리를 벌리자, 아카드가 녀석의 입 속을 가리켰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