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01)
“네. 미래투자 본부장님이라는 분이 두 시간 전에 직접 다 체크하고 가셨습니다.”
그간 봐 왔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으로 내 눈앞에 나타난 하늘이었다.
민소매 롱 원피스 차림이었는데, 마치 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고 있는 영화 관계자 같은 화려함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다소 의외였지만 저런 느낌도 하늘이와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하늘이에겐 저런 화려함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억척스러운 모습보다는, 차라리 저런 온실 속 화초 같은 우아함이 녀석에게 더 잘 어울리는 기질이지 않을까.
가는 목선을 드러내는 올림머리 역시 평소 녀석이 내게 보여 줬던 이미지와 영 딴판이었지만 고상한 맛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언제 왔어?”
“아까.”
“할아버지는 만났어?”
“방금 인사하고 나오는 길이야.”
“혼자 온 거야?”
“당장은.”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도 없이, 우린 함께 행사장 안을 걸었다.
하늘이는 행사장 안의 상황을 신경 써서 체크해 나갔고, 그와 동시에 마치 나의 복장 상태도 이 행사 준비의 한 일부인 듯 곁눈질로 내가 입고 있는 정장, 구두 등을 확인했다.
“재영이 기억나?”
“아니.”
“윤관이는?”
“몰라.”
“민재 오빠, 하선이 언니 다 몰라? 다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이야··· 인간적으로 너무 천하태평 아냐? 나는 오늘 행사에 오는 손님들 중 오빠랑 서로 알 만한 사람들 체크하느라, 혹시라도 괜히 이상한 말 나올까 봐 몇 날 며칠 신경을 썼는데 정작 당사자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다?”
“너 있잖아. 네가 알아서 하겠지.”
“뭐?”
“너희 집 잔치 손님들인데, 설마 나만 알고 너는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냐고. 적당히 눈치만 줘. 적당히 눈치껏 할 테니까.”
“하아···.”
뭘 이런 걸 가지고 한숨을 쉬는 건지···.
“혼자 움직이지 말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특히 우리 또래 만날 땐 먼저 나대지 말고.”
“말을 해도 꼭··· 나대지가 뭐냐, 나대지가?”
“저기 지금 팔짱 끼고 들어오는 커플 보이지?”
행사장 입구 쪽에서 젊은 커플 한 쌍이 팔짱을 끼고 들어오고 있었다.
“주민재, 정하선.”
“나랑도 아는 사이야?”
“하선이 언니는 오빠 고등학교 동창이야.”
“남자는?”
“효림제과 장남.”
“아, 그래? 안 그래도 안에서 효림제과 회장님이랑 인사 주고받았는데.”
“민재 오빠는 아마 오빠랑도 안면이 몇 번 있을 거야. 저 두 사람 결혼식 날 서로 말 편하게 하는 거 내가 본 기억이 있어.”
“너 나한테 관심 많았나 보다?”
“그렇게 나대지 말라고. 그냥 적당히 눈에 안 띄게만 처신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연히 네가 알아서 해야지. 너희 집 잔친데.”
“······.”
하늘이 이놈이 가만히 보면 정말 놀려 먹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조금만 놀려도 반응이 즉각즉각 올라오니 말이다.
하늘이의 도움으로 몇몇 정훈이 놈의 인맥들을 실수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장 안의 손님맞이 상황도 깐깐한 태산이의 미래금융답다는 평이 절로 나올 만큼 질서가 있었다.
귀빈급 인물들이 등장할 땐 꼭 경성별장 직원이 아닌 미래금융 관계자들의 의전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오늘 이 행사의 주인공이고, 가장 연장자인 태산이가 있는 곳으로 직접 귀빈들을 의전해 인사를 주고받게 만든 다음 지정 테이블로 안내를 하는 사람들.
그런 안내 수준만으로도 미래금융 쪽에서 이번 태산이의 아흔 번째 생일을 얼마나 신경 써서 준비를 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초대장에 명시된 행사 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었는데, 재경가 쪽에서는 여정이와 남 사장이 나 다음으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다음이 홍준이와 장혜란.
홍준이와 장혜란은 내가 하늘이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별다른 내색 없이 태산이에게 인사를 하러 들어갔고 다른 귀빈들과는 달리 그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정태가 원수경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정태 내외 역시 귀빈 대우를 받으며 미래금융 쪽 관계자의 의전을 받아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의전을 하늘이가 대신 넘겨받았다.
그 전에 내가 물었다.
“너 근데 우리 형수랑은 아는 사이야?”
“결혼식 날 한 번 본 게 전부야.”
“너 정태 형 결혼식 날 왔었냐?”
“어떻게 안 가? 할아버지 빼고 다 갔어.”
“그래?”
“그날 신부 대기실에서 인사 나눈 게 전부였어. 그날도 못 봤잖아.”
“언제?”
“부경가 결혼식 날. 그날도 애 때문에 저 언니만 애 데리고 객실에 올라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간단하게 입을 맞춰 놓고 정태 내외와 만났다.
“뭐야? 왜 둘이 같이 있어?”
정태가 장난을 걸어왔다.
내가 하늘이와 함께 있는 걸 괜히 트집 잡으며 장난을 걸어왔고, 그 장난에 원수경 역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도련님은 언제 오셨어요?”
“저도 온 지 얼마 안 돼요.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오늘 옷 예쁘게 입었네···.”
유모차에 누워 땡글땡글한 눈으로 낯선 환경을 눈에 담고 있는 승현이를 보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승현이를 들어 안았다.
“누가 이렇게 예쁘게 옷을 입혀 줬어? 엄마가 그랬어? 아님 아빠가 그랬어?”
승현이를 품에 안고 요리조리 흔들고 있는데, 원수경이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 신기해. 어쩜 이렇게 아기를 잘 안아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애 아빠보다 도련님이 더 잘 안는 거 같아.”
이래 봬도 내가 애 셋을 키워 본 사람이다.
이 정도 안정감은 기본 아니겠나.
“이름이 승현이라고 했지?”
하늘이가 정태에게 물었고, 곧 정태는 원수경에게 곧 하늘이를 정식으로 소개해 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 다음 대답했다.
“맞아. 승현이. 정훈이가 아버지랑 같이 선택한 이름. 나중에 정훈이도 애 아빠 되면 그땐 내가 아버지랑 같이 조카 이름을 선택할 거야.”
하늘이가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왜 그렇게 느끼한 눈으로 보면서 나한테 하는 거야?”
“내가? 내가 언제?”
드디어 타이밍이 잡혔다는 듯 정태가 원수경에게 물었다.
“방금 내 눈빛 느끼했어?”
“완전. 하늘 씨가 지적 안 했음 내가 했을 거야.”
“아 참, 두 사람 우리 결혼식 날 보고 처음이지?”
“결혼식 날도 인사만 잠깐 했지, 정신이 없어서 이야기도 많이 못 나눴어.”
“하늘아, 인사해. 오빠 와이프.”
내심 궁금하던 참이다.
하늘이와 원수경의 조합.
장남처럼 자란 공주.
그리고 스스로 여왕이 되기 위해 재경가를 선택한 여우.
“피··· 무슨 소개가 그래? 그냥 빠져. 우리끼리 하는 게 훨씬 낫겠다. 저 기억하시죠, 언니?”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특히 이번에 스너프 건으로 이 사람이 미래금융 쪽이랑 자주 왕래를 하면서부터는 더 자주요.”
“와 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정식으로 다시 인사해요. 장하늘이에요.”
“원수경이에요.”
“어른들이 대부분인 자리지만, 나중에 대충 분위기 잡히면 우리끼리 따로 테이블 잡고 와인 한잔해요. 아 참, 혹시 아직 모유 수유 중이세요?”
“지난주에 힘들게 뗐어요. 이젠 괜찮아요.”
“잘됐네요. 나중에 같이 시간 가지고, 지금은 안으로 들어가세요.”
난 승현이를 다시 유모차에 태운 후 정태에게 말했다.
“고모, 고모부, 아버지, 엄마 다 안에 계셔, 회장님이랑. 회장님한테 승현이 보여 드려. 좋아하실 거야.”
“그래, 조금 이따가 보자.”
원수경은 안으로 들어가며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하늘이를 쳐다봤다.
그런 원수경을 향해 다시금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인 하늘이.
내게 귓속말로 낮게 말했다.
“성격 장난 아니겠다.”
“누구? 우리 형수.”
“어.”
“왜?”
“관리 엄청 받나 보네.”
“무슨 관리?”
“아무리 애 보는 거 도와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젖 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 엄마 몸매가 어떻게 저래? 저 정도면 사기 아니야?”
“네가 못 하는 걸 남이 하면 다 사기냐?”
“오늘은 나대지 말라고 했다.”
“너 돌아이지?”
* * *
같이 씻을까?
현악기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악보를 펴고, 악기 점검을 잠시 하더니 이내 경성별장 정원 가득 현악기 연주 소리가 은은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 연주를 시작으로 본관 연회관에 모여 있던 인물들이 태산이를 중심으로 동시에 밖으로 나왔다.
태산이의 양옆을 영석이와 우리 홍준이가 각각 지키며 같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그간 막혀 있던 답답함이 살짝은 뚫리는 기분이 든다.
보기가 좋았다.
“손 회장.”
1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라운드 테이블이 다섯 테이블씩 네 줄로 맞춰진 야외 행사장이었다.
무대 바로 앞.
첫 줄의 다섯 테이블 중 중앙 테이블이 오늘의 주인공 태산이와 그 가족들이 앉게 될 테이블이었고.
“네, 회장님.”
“같이 앉지?”
“…같이요?”
홍준이는 재빨리 눈알을 굴렸다.
이미 태산이의 가족만 해도 영석이와 그의 처, 하늘이. 그리고 둘째 영우 가족까지 여덟이다.
“그러지 말고 같이 앉아.”
태산이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일부러 더 보라는 식으로 직접 자리를 새로 배정하기 시작했다.
“영우야.”
“네, 아버지.”
“네가 아이들 데리고 남 사장하고 같이 앉아.”
“네.”
영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재경가 테이블로 옮기기 시작하자, 홍준이도 얼른 장혜란과 정태, 그리고 원수경에게 자리를 옮기자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산이는 우리 가족이 상석 테이블로 옮겨 올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자기 기준의 좌석을 배치하기 위해 상황을 살폈다.
“정훈이.”
“네.”
“정훈이가 이쪽으로 앉아.”
이미 자신의 마음을 좌석 배치 하나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나와 하늘이를 그 상석 테이블, 상석 자리에 나란히 앉게 만들었다.
오늘 이 행사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나와 하늘이라는 걸 자리에 참석한 모두에게 알리고 있었다.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