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06)
횡단보도가 없는 사 차선 차도를 건너야 했는데, 모두가 다 그 도로를 건너기 시작할 때까지 신기한 팀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당 건물을 유심히 살폈다.
결국 강인성 과장이 “신 팀장! 얼른 와요!” 하고 소리를 친 후에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도를 건넜다.
신 팀장은 건물 앞에서도 혼자만의 시각으로 건물 외관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남 사장은 내가 신 팀장이 건물 외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자 한다는 걸 눈치챈 듯, 건물 안으로 안내를 하려는 지사장을 잠시 말렸다.
파리로 넘어오기 전까지, 아니 드골 공항에 도착해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방문팀 안에서 신 팀장의 존재감은 가장 미비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 사장까지 기다려 줄 정도로 그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쪽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신기한 팀장이 내게 말했다.
“이 건물이 그러니까… 우리 회사 건물이라고요?”
“네.”
“후아….”
“왜요?”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표현을 잘 안 쓰거든요.”
“…….”
“근데 진짜 과장님은 천재인 거 같네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신 팀장이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로케이션에 있는 건물을 렌트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사 버릴 생각을 하셨습니까?”
“보시기에 1층은 어떤 거 같습니까? 이미지 숍으로 변신 가능하겠습니까?”
나의 질문에 신 팀장은 이 한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이 정도 프로젝트라면 한국뿐 아니라, 파리 현지에서 VMD 생활을 하는 사람한테도 평생 남을 포트폴리오가 될 겁니다.”
지사장과 고 부장이 이 건물 1층을 이미지 숍으로 만드는 게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 부장이 내게 물었다.
“이미지 숍이요?”
하지만 난 대답할 타이밍을 남 사장에게 빼앗겼다.
남 사장이 지사장에게 말했다.
“저 간판 저건 언제 저렇게 단 거예요?”
남 사장의 시선이 도착한 곳엔 재경의 영문 로고가 붙은 간판이 건물 2층과 3층 사이에 걸쳐 붙어 있었다.
“간판 작업은 지난주에 끝났습니다.”
“간판이라는 건 사람들 보라고 달아 놓는 거 아니에요?”
“…….”
남 사장 특유의 살짝 까칠하고 차가운 어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가 대한민국 서울도 아니고 이 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재경이 뭔지 무슨 수로 압니까? 설마 한국 관광객들 보라고 저렇게 달아 놓은 거예요. 저거 당장 떼요.”
“네.”
지사장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얼른 대답했다.
“저 간판 떼고, 저기에 시니어즈 이미지 받아다 간판 똑같은 사이즈로 제작해서 달아 놔요.”
“시, 시니어즈요?”
날 향해 싱긋이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남 사장이 말했다.
“지사 사무실은 위에도 층 많으니까 아무 층이나 써도 되잖아요. 여기 1층은 시니어즈 이미지 숍으로 준비할 겁니다.”
“……!”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 * *
용기를 내야 기회가 보인다
사장 남필우는 석 달 전 음력설 연휴가 끝나고 손 회장의 호출에 조동희 전무와 함께 그룹 본사를 방문했던 날 눈치를 챘다.
손 회장의 마음이 정훈이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는 걸.
그 자리에서 손 회장은 자신과 조 전무에게 생뚜앙 지사의 이전 문제에 관해 물었다.
“지사 사무실 이전에 관한 내용도 정훈이 기획이야?”
“네.”
“자네들 생각은?”
“기획을 받기만 했지, 진행을 하란 허락은 아직 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답에 큰 웃음을 터뜨리는 손 회장의 모습에 남필우는 이번에도 정훈이가 어디선가 정답을 만들어 손 회장에게 보여 줬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도 정훈이가 자네들 두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는 모양이야?”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손 회장의 입에서 이렇듯 자극하는 표현이 나왔다는 건 아쉬움과 실망감을 동시에 표현한다는 뜻이니까.
남필우는 함께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조 전무와 눈이 마주친 이후로도 한참 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손 회장의 눈치만 살펴야 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남필우 자신과 조 전무에 대한 실망감보다 정훈이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더 큰 눈치였다.
“모직 본사에서 넘어갔다는 인사부장 말이야.”
“고성표 부장입니다.”
“그래, 그 친구가 직원들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건물 이야기를 꺼내. 그런데 이게 자네들 방식은 아니거든. 질문 몇 개를 던져 보니까 단번에 정훈이가 보냈다는 걸 알겠는 거야.”
“…….”
“맞지?”
조 전무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을 했고, 그에 손 회장은 한결 더 반가운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해 봐. 자네들 정훈이 감당 안 되지?”
조 전무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남필우는 내심 인정을 하면서도 그 인정을 손 회장 앞에서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고.
“네.”
“이야….”
“…….”
“내 성질도 참 많이 죽었다. 사장, 전무 둘이서 과장 하나 감당 못 한다는 소릴 듣고도 화가 나기는커녕 기분이 좋은 걸 보면 말이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 버리고 싶었다.
“지금부터는 감당하려고 하지 마. 가르치려고도 하지 말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려놔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 같은 것도 가지지 마.”
대단한 신뢰를 보여 주고 있는 거였다.
도대체 명절 연휴를 맞아 방문한 생뚜앙 지사에서 손 회장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현재 있는 인사부에서는 활동에 제약이 많을 거야. 정훈이 따로 불러서 이야기 나눠 보고 전략기획팀에 자리 하나 만들어서 옮겨 줘.”
“네.”
그렇게 모직 본사로 복귀한 남 사장은 정훈이를 불러 만든 자리에서 결국 인정이라는 걸 해야 했다.
처음엔 혼을 내려고 했다.
가르친다는 개념이 아니라, 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느냐고 혼을 내고 조심을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배우게 되었다.
“고 부장이 회장님께 지금 알아보고 있는 건물을 보여 드렸다고 한다. 네가 시킨 거야?”
“네.”
“왜?”
“왜라니요? 한국에 있는 누군가는 그 건물의 실물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야 계약을 하죠.”
“그걸 지금 내 앞에서 핑계라고 대는 거야?”
“핑계를 제가 왜 댑니까?”
“뭐?”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핑계를 대냐고요. 원래는 제가 가려고 했는데, 회장님이 이번 명절 땐 직접 손정태 사장과 함께 순방을 할 테니 저는 그냥 한국에 있으라고 하셔서, 그래서 고 부장한테 그럼 회장님께라도 보여 드려라, 그렇게 말을 한 건데 제가 잘못한 겁니까?”
“너는 회사가 우스워? 조직이 만만해? 어떻게 그 큰 프로젝트를 사장인 내 컨펌도 안 받고 그룹 회장님께 바로 보여 드릴 수가 있어?”
남 사장은 여기에서 한 방 먹었다.
“6층짜리 작은 건물 하나 매입하는 게 큰 프로젝트라고요?”
“뭐?”
“60층짜리 아니고, 6층짜리예요. 서울 강남에 있는 거 아니고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라고요.”
“너 지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지?”
“아뇨.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건지는 알겠는데, 이게 왜 제가 혼이 나야 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저 지금 칭찬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
“고작 6층짜리 건물 하나 매입하는 게 그렇게 큰 프로젝트라고 생각을 하셨다면, 왜 사장님이 진작 안 가 보셨습니까?”
“뭐, 뭐?”
“이번 명절 연휴 때 얼마든지 같이 가실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
“저는 회장님이 한국에 있으라고 해서 같이 못 갔던 거고, 사장님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것도 이해가 잘 안 됐거든요. 다른 지사도 아니고, 우리 모직 해외 지사를 회장님이 방문하시는 데 사장님도 동행을 안 해, 조 전무도 동행을 안 해. 정작 그룹을 콩가루로 만들고 계신 건 사장님과 조 전무면서 제가 고 부장을 시켜서 알아본 건물을 회장님께 보여 드린 건 또 문제가 되는 거예요?”
할 말이 없었다.
“명절이니까 가족들도 만나야 하고, 차례도 지내야 하고… 그게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죠. 사장인데도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존중을 해 드려야죠. 그렇게 하면서도 사장 자리, 전무 자리가 계속 보장이 되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겠죠. 그런데 사장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편하게 사장 생활을 하실 거면 저한테 조심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필우는 그 대화에서 정훈이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제가 사장님이었음, 제가 지사 사무실 이전의 필요성을 말씀드리고 고 부장 시켜 괜찮은 건물을 알아봤다고 했을 때, 바로 그럼 같이 가 보자고 했을 거예요.”
“…….”
“그동안 본사에 가만히 앉아서 뭐 하셨던 겁니까? 아무것도 안 하셨잖아요. 그러셔 놓고 이제 와서 저한테 회사가 우습냐느니, 조직이 만만하냐느니…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앞으로 어느 직원이 자기 업무 외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볼 거며,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까?”
“…….”
“저는 갑자기 좀 걱정스러운데요? 사장님이 그런 꽉 막힌 사고방식으로 우리 재경모직을 우스운 회사, 만만한 조직으로 만드실까 봐요.”
선을 넘는 표현들이 정훈이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남 사장은 반박을 할 명분이 없었다.
정훈이는 재경모직의 대주주 중 한 명이다.
그걸 남필우가 잊고 있었던 것이고, 그 자리에서 정훈이는 그 부분을 상기시켰던 거다.
손 회장과 장 회장, 정태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훈이다.
그에 반해 남 사장은 자신의 아내인 손여정과 자신의 지분을 다 합친다 해도 정훈이 혼자서 가지고 있는 지분만큼도 안 된다.
그게 정훈이가 자신의 사무실과 전무실을 큰 어려움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정훈이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부족한 자신을 인정해 주기 위해 그간 많은 배려와 예의를 갖춰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20년 넘는 세월 동안 큰 위협 없이 모직의 사장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보니, 이 자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고, 또 만연해져 있었다.
그걸 손 회장도 아니고, 장 회장님도 아닌 고작 입사 1년 차밖에 안 되는 정훈이가 따끔하게 꼬집어 준 것이었다.
마치 반항이 불가능한 큰 어른에게 혼이 나는 것처럼, 분하고 짜증이 나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기에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을 하고 나니 정훈이가 자신에게 올렸던 지사 사무실 이전 기획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지금의 재경모직에게 절실한 내용인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남 사장이 더 이상 정훈이를 자신의 처조카, 혹은 회장님의 아들, 인사부 과장으로 대할 수가 없게 된 것이….
* * *
생뚜앙 지사 사무실 이전 기획서를 다시 꼼꼼하게 확인한 남필우는 결국 며칠 뒤 정훈이를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다.
“생뚜앙 그쪽이 직원들 근무 환경이나 생활 환경이 척박한 건 사실이야. 그런데 60명, 70명밖에 안 되는 직원들이 쓰기엔 건물이 너무 큰 거 아냐?”
“넓게 쓰라고 하면 되죠.”
“어느 나라나 부동산은 자산이기 때문에 충분히 투자해 볼 가치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매입을 하더라도 한 층 정도는 빼놓고 나머지는 렌트를 돌리는 게 경제적이지 않을까?”
“그 푼돈 아껴서 참 큰돈 버시겠습니다.”
“말을 좀 가려서 해.”
“저는 분명 가린 말을 먼저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흘려들으신 건 사장님이고요.”
“…….”
“이 기획. 제가 아닌 다른 직원이 만들어 올렸음 분명 짬이 됐겠죠?”
“…….”
“제 기획도 이렇게 짬이 되는데, 다른 직원들이 회사 생각하며 만들어 올린 좋은 기획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짬이 됐을까요? 그걸 아셔야 합니다, 사장님. 그 기회들을 놓친 건 사장님이 아니라 우리 재경모직이라는 걸요. 대주주 중 한 명인 입장에서 우리 회사가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어이없이 놓칠 뻔한 사장님을 상대로 말이 예쁘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정훈이의 입에서 대주주 중 한 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순간, 그간 정훈이가 자신을 많이 봐주고 있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남필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적을 이어 갔다.
“그렇게 오만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될 거야.”
“사장님.”
“왜?”
“제가 오만해 보이십니까?”
이상하게도 번번이 선을 넘고는 있는데, 그 선을 넘는 게 오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게 솔직한 남 사장의 심정이었다.
“오만이라는 표현 대신 기대라는 표현을 써 주셨음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남 사장은 다시 악몽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저번 자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훈이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오만이란 표현이 아닌 기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맞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