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27)
“처음 우리 재무리스크팀에서 브랜드 캐스팅에 들어갈 경비, 캐스팅 성공 시 커버해야 할 미니멈 개런티 내용에 긍정적인 평가 점수를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부경과 태영이라는 검증된 유통판, 그리고 유통 구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건 제대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절반을 날리고 시작을 하겠다는 거예요. 사업성을 확인하고 진행 컨펌을 내린 우리 재무리스크팀 입장에선 전혀 예상을 못 했던 리스크를 받은 거라고요.”
“하지만 그 부분은….”
결국 내가 손을 들어 두 부서장을 진정시켰다.
“영업부장님.”
보고 있던 서류를 마지못해 덮으며 연 부장이 대답했다.
“…네.”
“지금 영업부에서 하고 있는 가장 큰 걱정이 신규 브랜드에서 잡힐 미니멈 개런티 물량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 그와 동시에 현재 부경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쪽 매장의 인력을 어떻게 다 끌어안을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난 곧바로 재무리스크팀장을 다시 불렀다.
“팀장님.”
“네.”
“현재 재무리스크팀은 방돔 지사에서 요청했던 브랜드 캐스팅 사업 기획에 에이 트리플 플러스 등급 판정을 내렸고, 그룹 본사에서 떨어진 보이콧 명령으로 인해 재무리스크팀의 사업 선구안에 문제가 있단 평가가 나오는 게 가장 큰 리스크겠죠?”
“그런 것보다는….”
“그 사업 기획 누가 올린 겁니까?”
“…….”
“네. 제가 올린 겁니다.”
재무리스크팀장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억울할까.
어쩌면 영업부장보다는 재무리스크팀장의 입장이 훨씬 더 난처해진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업을 기획한 상대가 나이고, 또 그 사업을 제대로 펼쳐 보기도 전에 부경 쪽 전 유통판에 대한 보이콧을 유도해 내고 있는 상대 또한 나란 사람이다 보니, 엄한 영업부장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일 테고.
“에이 트리플 플러스. 최상위 평가 점수죠? 저라서, 그 기획을 만든 사람이 저기 때문에 그런 평가 점수를 주셨던 거 아닙니까?”
“그야….”
난 웃음을 묻혀 가며 자리에 모인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믿어 주셔야죠. 우리 한 20분 정도만 쉬었다가 할까요? 오늘 본사에서 떨어진 부경백화점 보이콧 명령에 부서별로 가지고 있는 걱정이나 우려의 성격은 이 정도면 대충 파악이 다 됐습니다.”
“……?”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로의 표정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가 따로 준비해 놓은 내용이 있는데, 담배 피우시는 분들은 나가셔서 담배도 한 대씩 피우고 오시고, 화장실 다녀오실 분들은 다녀오세요. 저는 발표 준비 좀 하고 있겠습니다.”
“발표요?”
연 부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네.”
“무슨….”
“우리가 왜 지금 부경을 상대로 보이콧을 해야 하는지, 왜 이 보이콧이 성공을 할 수밖에 없는지, 보이콧 이후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지.”
“…….”
“20분 뒤에 다시 시작하죠.”
* * *
우리가 ‘지금’ 부경유통을 보이콧해야 하는 이유
회의 도중 내가 쉬는 시간을 제안하고 10분이나 흘렀을까?
“과장님은 화장실 안 다녀오십니까?”
회의실을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로 돌아왔고, 김원호 부장은 함께 들어온 연 부장이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내 곁으로 다가와 고소한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날 걱정해 주기까지 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러냐는 듯 더는 별말 없이 내 노트북 화면을 잠시 쳐다보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앉은 김 부장.
다른 부서장들 역시 아직 내가 제안했던 20분 쉬는 시간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난 노트북으로 빠르게 발표 자료를 확인한 후, 회의실 안의 상황을 살폈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할까요?”
모두가 그러는 게 좋겠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의 노트북 조작으로 발표 내용을 스크린 화면에 띄운 후, 리모트 컨트롤을 이용해 회의실 안의 모든 조명을 껐다.
내가 임시로 만들어 낸 어둠 속에서도 영업부장과 재무리스크팀장의 눈은 유독 빛이 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부경유통을 보이콧해야 하는 이유>
스크린 위로 뜬 발표 제목에 잠시였지만 회의실 안에 모인 부서장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리 우리끼리 보는 거지만, 저렇게 대놓고 보이콧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거야?”
“이쯤 되면 전면전이라고 봐야 하는 건데··· 그런데 저기에 왜 ‘지금’이라는 표현을 강조해 놨지?”
그들의 웅성거림이 알아서 멈출 때까지 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자신들의 반응이 발표자를 멈추게 만들고 있다는 걸 인지해서일까, 그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다물며 자세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지금이 아니면 우리 재경모직이 브랜드 유통으로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할 기회가 앞으로 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내용을 화면에 띄웠다.
“현재의 대한민국만큼 쇼핑 관련 오프라인 유통 구조가 일방적인 국가가 없습니다. 최소한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요.”
그 내용을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 자료가 화면에 올라왔다.
동시에 90년대의 대한민국 쇼핑 관련 유통 구조와 현재의 유통 구조를 보기 쉽게 비교해 놓은 그래프도 함께 띄웠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90년대와 비교를 했을 때, 30년이나 더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이 훨씬 더 경제 규모도 커졌고 소비자들의 지적 수준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대한민국만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갖추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봤을 때 쇼핑 관련 오프라인 유통 구조가 후퇴되었습니다.”
90년대와 오늘날의 국내 백화점 브랜드 수를 보기 쉽게 비교를 해 놨더니, 그걸 보며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인정을 하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리베라, 태화, 극동, 홀리데인, 뉴코아, 라미르··· 9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태영, 부경 양강 구도가 아닌 각 지방을 대표하는 지역 백화점들이 도시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지역 백화점들의 매출이 해당 지역 안에서만큼은 태영과 부경의 백화점을 크게 앞섰죠.”
마치 그 시절이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몇몇 내 눈에 띄었다.
“IMF. 그리고 세계 경제 위기. 양극화를 조장하는 두 번의 큰 파도가 대한민국을 훑고 지나간 이후 국내 쇼핑 관련 유통 시장은 소리 소문 없이 태영유통 그룹과 부경쇼핑 쪽에서 아예 장악을 해 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웃렛이라는 개념이 들어왔죠. 당연하다는 듯 면세점 사업도 그들이 독식을 해 버립니다.”
“······.”
“이러한 구조가 옳다, 옳지 않다는 걸 따질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시장은 이렇게 고착화가 되어 버렸고, 그걸 바꿀 수 있는 대안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린 판단을 해야죠. 이 시장이 우리에게 유리한 시장인지, 아닌지. 우리가 지금처럼 방돔 지사를 움직여 KS 인터내셔널, 그리고 한일 어패럴이 컨트롤 중이었던 브랜드들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무조건 우리에게 유리한 시장입니다. 왜?”
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 재경모직도 대한민국 패션 업계 안에서만큼은 기득권층이니까요. 결국은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닙니까? 해외 브랜드 쪽에선 우리 재경이나 KS, 한일. 이렇게 대표 삼사를 통해 브랜드 컨트롤을 맡기고 싶어 하고, 우리 브랜드 컨트롤 업체들도 결국은 그렇게 확보된 브랜드들을 무기로 개인 사업자, 영세 업체들과 비교해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서 유통판과 좋은 마진 협상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유통판 입장에선 이 대표 삼사만 확실히 구워삶을 수 있으면, 적당한 수준의 경쟁을 붙일 수만 있으면 자기들 쪽으로 알아서 기어 줄 것이기에 굳이 귀찮게 여러 업체를 상대해 가며 브랜드 조율, 포지셔닝이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
“그런데 어딜 가나 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하는 멍청한 존재는 있습니다. 꼭 보면 조금씩만 양보하면 다 같이 좋을 수 있는데, 나 혼자만 잘되길 바라는 존재가 있단 말이죠. 그게 지금의 부경쇼핑입니다. 지금 부경은 아마도 자기들이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방돔 지사를 통해 브랜드 캐스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게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
“분명 우리가 앞으로 치고 나가줌으로 인해 KS 인터내셔널, 한일 어패럴을 상대로 유통판의 영향력, 입지가 훨씬 더 넓어질 거라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더불어 우리 재경모직을 상대로도 부경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쪽의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바뀔 거라고 오해를 하는 거 같고요. 네, 연 부장님.”
영업부 연규호 부장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중간에 끊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과장님은 지금 부경쇼핑 쪽에서 착각을 하고 있다, 오해를 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고 계신데, 따지고 보면 그게 사실 아닙니까?”
난 인정을 했다.
“그렇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기존의 유통 구조 속에서 브랜드 수 확보만 계속해 나간다면 당연히 부경뿐 아니라 태영을 상대로도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유통판들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더 올라가겠죠. 그런데 부장님.”
“네.”
“그런 게 무서워서, 시장의 구조가 유통판 위주로 돌아가는 걸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영원히 KS 인터내셔널, 한일 어패럴 다음의 업계 3위 기업으로 남아야 하는 겁니까?”
“그건···.”
“만년 업계 3위 자리에서 탈출을 해 보자고, 지금 방돔 지사를 이용해 브랜드들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중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겁니다. 바로 지금이 태영을 등에 업고 부경을 상대로 보이콧을 해서 태영 쪽에 들어가 있는 우리 브랜드들 매장 수수료를 크게 낮추고, 앞으로 우리가 새로 컨트롤해 나갈 브랜드 매장 수수료 조율까지 미리 해 버리자는 거죠.”
“······.”
“나중에 우리가 그 브랜드들을 모두 컨트롤하기 시작하고, 지금처럼 태영, 부경 쪽으로 모두 유통을 시킨 상태로 재고에 대한 부담이 한계치까지 올라간 뒤에는 이미 늦습니다.”
이번엔 재무리스크팀장이 침착하게 손을 들었다.
“네, 팀장님. 말씀하시죠.”
“재고에 대한 말씀을 금방 하셨는데요, 지금 우리가 부경이라는 유통판을 스스로 버리게 되면, 우리 의지로 재고에 대한 부담을 그만큼 안고 가겠다는 말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부서장의 염려가 재무리스크팀장의 소신 발언 앞에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재무리스크팀장이 말을 이었다.
“물론 현재 우리 재경에는 스너프라는 아주 든든한 온라인 유통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스너프는 우리가 브랜드 확보에 나서기 전부터도 있어 왔던 재경 그룹 유통판입니다. 스너프 쪽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집중력을 만들어 내서, 우리 쪽으로 많은 도움을 줄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제 막 플랫폼 비즈니스 3위로 올라간 스너프에겐 분명한 한계라는 것도 있지요.”
순간 재무리스크팀장이 내가 준비한 발표 자료를 미리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다음 이어질, 우리가 ‘지금’ 부경유통을 보이콧해야 하는 이유 두 번째가 스너프 관련 내용이었다.
어쩔 수 있나.
준비를 했으니, 대충이라도 훑어 줘야지.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스너프였습니다. 그리고 금방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현재의 스너프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을 좀 하려고 했는데, 팀장님 말씀을 들어 보니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현 스너프의 한계를 알고 계신 거 같아 건너뛰겠습니다. 대신.”
곧바로 스크린 위로 띄운 자료 화면을 몇 장 뒤로 넘겨 놓고 말을 이었다.
“이 부분은 다 같이 확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재 방돔 지사가 캐스팅해 낸 브랜드들, 캐스팅 중인 브랜드들, 그리고 기존에 우리가 컨트롤해 오고 있던 브랜드 측과 패턴 원단을 무기로 새로이 한 계약 조건을 화면 위로 띄웠다.
해당 계약 조건을 침착하게 확인해 나가던 영업부장과 재무리스크팀장, 그리고 전략기획팀장은 턱이 아래로 떨어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서 미동조차 못 하고 있었다.
“재고. 브랜드 상관없이 항상 이 재고가 문제죠. 반품도 불가능한, 그렇다고 재고 물량에 관해 브랜드들이 크레딧 노트(주문 물량, 혹은 재고 물량에 한해 브랜드 측이 유통사를 상대로 약간의 페이백을 해 주는 시스템)를 주는 것도 아니고. 실제 기존에 우리가 컨트롤해 왔던 브랜드들만 봐도 이 재고 물량에서 나오는 로스 때문에 총매출 대비 실제 영업 수익은 5퍼센트를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스크린 화면에 뜬 기적과도 같은 협상 결과를 눈으로 보고 있는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가기나 하는지, 목젖이 울렁거릴 정도로 침을 꿀꺽하고 삼키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브랜드 측이 주장하는 번들(상품 끼워팔기) 없이 우리가 원하는 상품을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대로만 주문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게 진짜 큰 거거든.
그런데 이런 협상을 이끌어 올 수 있는 브랜드 컨트롤 기업이 아직 한국엔 없는 게 사실이고.
“자, 잠시만요. 지금 이게 브랜드 측과 협의가 된 내용인 겁니까, 아님 이렇게 협상을 시도해 보겠단 뜻인 겁니까?”
“그간 이 내용을 기반으로 패턴 원단 단가 조율을 앞세워 브랜드 캐스팅을 진행해 왔던 겁니다.”
“······!”
영업부장은 끼고 있던 안경을 살짝 벗어서 자기 두 눈을 비비는가 하면, 재무리스크팀장은 전략기획팀장의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재무리스크팀장의 시선을 받은 전략기획팀장은 자기도 몰랐던 내용이라는 듯 회의 의자에 등을 깊게 묻어 고개만 약하게 흔들 뿐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컨트롤해 나갈 해외 수입 브랜드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미니멈 개런티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상품에 한해,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를 우리가 원하는 물량만큼 주문을 할 겁니다.”
가방, 스커프, 밸트··· 이런 원 사이즈 아이템은 재고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
그런 아이템들은 어떻게든 재고를 뺄 수가 있다.
백화점에서 못 팔면 마진을 어느 정도 포기를 하더라도 아웃렛으로 풀어 소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옷이라든지, 신발, 특히 옷과 신발 안에서도 유러피언 빅 사이즈가 항시 처치 곤란.
그런데 컨트롤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브랜드 쪽에서 강제 번들을 요청하면 해당 사이즈를 받아 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특정 브랜드는 아예 의류 자체가 경쟁력이 없기도 하다.
유독 여성 가방의 판매량이 높기 때문에 그 메리트만 보고 브랜드를 받아 유통을 시키지만, 가방에서 올린 매출을 경쟁력 없는 의류 재고를 커버하는 데 다 쏟아붓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 시장의 특성에 맞춰 우리가 원하는 아이템 위주, 원하는 사이즈 위주로만 주문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전혀 기대를 못 해 본 내용이었다는 듯, 재무리스크팀장이 두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그런 협상을···.”
“그러니까요. 불가능에 가까운 그 힘든 협상을 방돔 지사에서 패턴 원단을 무기로 해냈네요?”
“······.”
“그래도 우리가 모직 본사인데, 모든 활약을 방돔 지사에서만 다 하게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드디어 회의장에 모인 부서장들의 눈빛에 강한 의지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부경이라는 유통판을 포기하고, 태영이라는 절반의 국내 유통판만 잡고 들어가도 스너프에서 어느 정도 선방만 해 준다면 특정 아이템, 특정 상품에 집중하는 매장 콘셉트로 얼마든지 매출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절반의 유통판은 포기를 해야겠지만, 두 배로 늘려야 할 인건비 부담은 줄일 수가 있는 거죠. 현재 부경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쪽에 들어가 있는 재경모직의 컨트롤 브랜드 매장 직원들. 다 앞으로 새로 컨트롤하게 될 태영 쪽 매장으로 보내면 됩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우린 큰 예산을 세이브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과장님.”
영업부장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렇게 되면, 현재 KS 인터내셔널, 한일 어패럴 소속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대신 재경모직 소속의 매장 직원들은 앞으로 더 많은 판매 인센티브를 가져가게 될 겁니다.”
“······.”
“기업 윤리라는 게 있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직원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남의 회사 소속 직원들까지 다 끌어안아야 한다는 건 기업 윤리, 사회적 책임과는 별개의 오지랖 아닐까요?”
“······.”
“물론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선 책임감을 느낍니다. 죄송하죠. 마음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재경모직은 부경 유통을 상대로 보이콧을 준비하면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업 생사의 갈림길 위에 서 있는 거 아닙니까? 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선 자리에 모이신 부서장님 개개인의 소신과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부경유통을 보이콧해야 하는 이유, 세 번째.
“세 번째. 브랜드 트레이드.”
내가 화면에 띄운 세 번째 이유를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따라 읽고 있었다.
“브랜드 트레이드? 저게 뭐야?”
“맞교환한다는 내용이잖아요.”
“그니까 저게 무슨 뜻이냐고. 우리한테 무슨 교환할 브랜드가 있다고?”
“일단 들어 보죠.”
리모트 콘트롤에 달린 레이져 빔을 이용해 스크린을 집중시켰다.
“내수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제조는 무조건 수출을 끼고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외도 있을 수 있고, 조건도 달릴 수가 없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