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30)
“네.”
“이야, 이젠 예능팀까지 시야를 넓히시네?”
“퍼스펙티브 광고 모델로 송유라 선수 쪽이랑 이야기 중이죠?”
팀장은 PPL 관련 서류를 대충 넘겨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을 심산인지, 꽤 까다롭게 구네요.”
“그 프로 1대 진행자로 송유라 선수를 추천해 놨어요. 조건은 해당 프로에 나오는 전 출연진에게 퍼스펙티브를 입히는 걸로.”
“……!”
“JBS 예능국에서도 관심을 크게 보이고 있어요. 자기들도 애매하지. 골프 브랜드라고 해 봤자 70퍼센트, 80퍼센트 이상이 다 일본 브랜드들인데, 공중파도 아닌 종편 채널에서 PPL 없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겠어요? 그렇다고 대놓고 일본 브랜드들 노출시켜서 시청자들 상대로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없을 것이고.”
“…….”
“닭이 먼저다, 알이 먼저다… 그거 고민할 시간에 우린 그냥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불 켜서 프라이를 만들자고요. 그 PPL 건만 성공시키면 송유라 쪽에서 더 이상 우릴 상대로는 노 젓겠다고 못 할 거 아니에요.”
* * *
스너프 사장 손정태는 마치 체한 것처럼 명치가 답답했다.
그룹 본사에서 함께 스너프 쪽으로 옮겨 온 부사장 윤종길 때문이었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며, 윤종길 부사장이 가져온 기사 내용.
그 기사 내용을 전달하고 윤종길 부사장이 사장실을 나가기까지, 정태는 불편한 심기를 간신히 들키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이후 부들거리며 떨려오는 자신의 몸을 정태는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부경백화점을 상대로 재경모직이 던진 보이콧 강수.
해당 보이콧은 재경모직에서만 그치지 않고, 부경마트를 상대로 하는 재경식품의 보이콧으로까지 점차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기사였다.
정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2주 전이었나?
재경항공이 부경백화점을 등지고 태영유통 쪽과 손을 잡는다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부경유통을 상대로 지나친 도발을 하게 되면, 그 도발의 수위가 여기에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면 이는 곧 재경 그룹 전체에 손실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진심으로 만류를 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걱정과 만류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마치 지금 이때를 기다려 오셨던 것처럼 태영이 가진 언론을 통해 부경유통, 어쩌면 부경 그룹 전체를 상대로 공격을 강행하고 계신다.
아직은 시기상조.
지금의 재경은 국내 재계 순위 7위, 8위를 왔다 갔다 하는 부경을 상대로 이런 무모한 전면전을 펼칠 이유가 전혀 없다.
“아버지, 저 정태예요.”
정태는 결국 아버지, 손홍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위해 귀에 붙이고 있는 스마트폰이 덜덜 떨릴 정도로 정태는 애써 자신이 느끼고 있는 답답함과 아버지가 하고 계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화가 극으로 치달아 있었다.
“방금 기사 난 거 이거 혹시 태영 쪽에서 일방적으로 내보낸 기사예요, 아님 아버지도 알고 계신 내용이에요?”
―이 정도 파장을 가져올 기사를 우리 쪽 동의 없이 내보낼 만큼, 태영은 형편없는 파트너가 아니다.
“아버지!”
초조해진 마음에 사장실 안을 빠르게 걸어 다니며, 정태는 자신의 흥분을 삭이기에 급급했다.
“이거 아니라고요. 제가 그날 본가 찾아가서 몇 번이나 아직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네?”
―뭐 하는 거냐고, 지금!
수화기 너머에서 떨어진 불호령.
그 불호령에 정태는 명치 끝에 걸린 숨에 질식을 할 것만 같았다.
―어디 감히 버릇없이 전화질로 이 애비를 가르치려 들어!
“아, 아뇨, 아버지. 제가 설마 그런 의도로….”
―내가 네 의도까지 알아서 파악을 해 줘야 하는 사람이냐.
“…….”
―왜? 그럴 거면 거기 그러고 있지 말고, 네가 여기 와서 회장 자리에 앉든가!
억지로 숨을 뽑아 놓고 정태가 말했다.
“아뇨, 아버지. 제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니잖아요.”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새끼. 이젠 내가 하다 하다 내 자식 놈 눈치까지 봐야 하냐!
“아버지….”
―사업체 하나 맡아 나가서 성과 좀 올려 보니까, 너 혼자 잘난 거 같고, 다른 사람들 하는 거, 이 애비 하는 꼴이 성에 안 차고 못 미덥고 그러냐?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지금 올라온 이 기사는 어떻게든 정정기사를 내든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크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는데, 왜 굳이 작은 외삼촌네와 척을 지려고 그러세요?”
―너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너도 보기와는 다르게 자리를 많이 타는 놈이었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스너프. 그룹 본사 생활은 그만하면 됐으니까, 앞으로 다시 본사로 부르기 전까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너프 운영에만 매달리라고 내가 몇 번이나 강조했을 텐데?
“…….”
―벌써 네가 거기에서 본사 일에 관여를 다 할 만큼, 이 애비가 내린 결정에 평가질을 할 만큼 네가 말한 궤도 위로 스너프를 올려놓은 거냐?
“…….”
―손정태 사장.
“…네.”
―겉넘지 마라. 이제 고작 사장 자리 앉은 네가 겉넘어도 될 정도로 이 애비, 그렇게 물렁한 사람 아니다. 내 아들만 아니었음 지금 이 전화 한 통으로 재경 안에서 네 자리는 없어진 거다.
정태는 피 맛이 올라올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죄송하단 말 한마디로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네가 내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더는 말 안 한다.
하지만 정태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혹시 정훈이 생각인 겁니까?”
―뭐?
“일을 이렇게까지 불필요하게 키우는 거. 이것도 스너프 인수 때처럼 정훈이 생각인 거냐고 여쭙는 겁니다.”
* * *
재고가 없다고 합니다
남 사장 특유의 신중함과 조 전무의 정치력이 합쳐져, 썩 봐 줄 만한 리더십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내 눈엔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
두 놈 다 홍준이 놈이 부경백화점을 상대로 던진 도발, 그 도발이 만들어 내고 있는 파장 앞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럴 때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 이빨이 나갈 정도로 상대를 물어뜯을 만큼의 근성을 가진 놈이 많지 않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 재경 그룹의 가장 큰 약점이고 한계였으며, 다른 놈들 눈엔 아직 안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위기였다.
이럴 때 홍준이 놈에게 정태 같은 자식 놈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정엽이라도 품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장혜란이가 지분 12퍼센트나 틀어쥐고 있는 부경백화점 하나 구워삶는 데 이렇게까지 준비 운동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나 손중길이 입장에선 퍽이나 피곤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부경백화점을 압박할 무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 지금 이 상황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난 손중길이 아니고, 부경도 그 시절의 부경이 아니기에….
“KS 인터내셔널에서 해외 지사 근무 경력이 4년이나 있으시네요?”
때를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남 사장의 신중함과 조 전무의 정치력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그 친구들에게 부족한 과감함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업계 전문가들 스카우트 면접.
업계 평균 연봉 테이블에서 10퍼센트 수준의 연봉 인상을 약속하고 한 직급씩 승진을 시켜 데리고 온 HRO 직원들.
그들의 추천을 받아 브랜드 영업 쪽으로 해외 지사 근무가 가능한 인재들, 유통판 매장 직원 관리와 재고 처리 능력에 뛰어난 인재들을 끊임없이 만나며 내 손으로 직접 외부 인력을 충원해 나갔다.
“네, 작년까지 밀라노에서 4년간 근무를 했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신 이유는요?”
“해외 지사 생활이라는 게, 주재원 메리트도 분명 있긴 하지만 너무 길어져 버리면 본사와의 인맥이 약해진다는 단점도 있거든요.”
맞는 말이지.
“적당히 하고 들어와야죠. 그래야 한국 들어와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4년이면 사실상 지사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고 돌아온 거라고 보셔야 합니다. 재경모직의 지사 근무 시스템에 대해선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한 게 사실인데, KS 인터내셔널에서는 추가 연장이 두 번 이상은 힘듭니다.”
“그 추가 연장이라는 건 한 번 할 때마다 1년씩 늘어나는 겁니까?”
“네. 저는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요?”
“원래라면 3년 차에 한국으로 들어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시겠지만, 2년 전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코로나 비상이 걸렸지 않습니까.”
그랬다는 내용은 그간 지난 신문 기사들로 충분히 공부를 해서 알고 있는 내용.
“본사에서도 가급적 지사 직원들을 한국으로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지사를 지켜야 할 최소한의 직원들은 남겨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네.”
“가족이 있는 직원들부터 한국으로 복귀를 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처럼 대리, 과장급 중 미혼인 직원들 위주로 지사에 남아서 연장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요. 저 역시 원래부터 할 수만 있다면 1년 정도 더 연장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본사에서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먼저 제안을 해 주셔서 그러겠다고 했죠.”
“그럼 과장 승진은 거기에서 하고 들어오신 거겠네요?”
“네.”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은 상대는 대체로 내 선에서 합격을 시켰다.
“알고 오셨겠지만, 저희는 해외 지사가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 있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가깝다고 하면 가깝고, 또 거리가 있다고 하면 거리가 있는 건데 프랑스 생활에도 관심이 있으십니까?”
“기회만 주어진다고 하면 해 보고 싶습니다. 새로 옮긴 지사가 방돔 지사라고 들었습니다.”
“네.”
“파리 쪽은 저 역시 지사 생활을 하면서 출장차 자주 다녔던 곳입니다. 제가 컨트롤을 했던 브랜드 중 절반 이상이 프랑스 브랜드였거든요.”
“네.”
“주요 근무지만 바뀐다뿐이지, 제게는 활동 범위가 비슷한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오히려 밀라노 생활을 4년 정도 해 봤기 때문에, 이번에 재경모직 쪽에서 브랜드 라이선스를 확보한 이탈리아 브랜드들 관리 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해질 거라는 확신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뭐.
“첫 3개월은 현재 KS 인터내셔널에서 받고 계신 과장 직급으로 본사 근무를 해 주시고요, 그 기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고, 함께할 만한 기업이라는 확신이 들면 정식 계약을 통해 지사 근무 쪽으로 업무 방향을 잡아 보는 것으로 했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 많이도 뽑았다.
거진 2주 사이에 30명이 넘는 경력직 인재들을 스카우트해 냈으니, 주말 빼고 평균적으로 하루 서너 명씩은 직접 면접을 보고, 그들 대부분을 뽑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나의 형식적인 면접, 대책 없는 채용에 김원호 부장의 우려 섞인 질문이 들어왔다.
“해외 지사 업무 범위도 많이 넓어졌고, 새로 받기 시작한 브랜드들도 갑자기 확 늘어서 앞으로 직원들이 많이 필요해질 거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거 너무 많이 받으시는 거 아닙니까?”
해당 걱정은 김원호 부장뿐 아니라, 박종근 차장, 새로 들어올 경력직들을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HRD의 민은석 과장도 함께 하고 있는 걱정이었다.
“소나기가 한 번 크게 오고 나면 바닥에 있던 돌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또 소나기 소리예요?”
“제 눈에는 곧 이 업계에 큰 소나기가 내리겠다는 게 보이는데, 부장님 눈엔 안 보이세요?”
“소나기요?”
부경백화점 쪽에서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면 태영백화점 쪽으로 매장 직원들 뿐 아니라 매장 관리, 재고 관리를 해야 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와 사고 모두 리스크 범위 안에 넣어 놓아야만 하는 상황.
그 리스크를 커버할 수 있는 인원을 충분히 확보해 놓지 못하면, 부경백화점 쪽으로 비웃음을 당할 수가 있다.
반대로 그 큰 브랜드 이동을 하면서도 아무 문제점들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그만큼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가진 역량과 배짱은 큰 소나기가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상대에게 보여 줄 수가 없는 법.
그리고 상대가 가진 불안과 약점 역시 그 소나기가 끝나기 전엔 우리 쪽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우리가 가진 불안과 약점은 최대한 숨기고 역량과 배짱만 드러낸 뒤, 시장 전체를 상대로 부경백화점의 불안과 약점을 노출시켜야만 했다.
그게 내가 지난 2주간 서른 명이 넘는 외부 인재를 흡수해 나가며 남 사장과 조 전무를 상대로 부담과 압박, 과감성을 함께 던져 준 이유였다.
* * *
쾅!
부경 유통 본사 회장실.
사무실 주인이 있는 힘껏 손바닥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그 앞으로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정책본부장은 회장의 노기 앞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지금 이걸 자랑이라고 가지고 와서 나한테 보여 주는 거야?”
본격적으로 브랜드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빠진 브랜드들과 여전히 남아 있는 브랜드들.
그 속에서 이미 빠진 브랜드들이야 어쩔 수 없는 내용이지만 남아 있는 브랜드 매장에서라도 데일리 매출을 방어해 내라고 지시를 내렸건만, 브랜드들이 빠지는 속도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매출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부경 유통의 장 회장이 정책본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지금 자네들한테 달나라 갈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어 오라고 했나?”
“…….”
“어디 가서 존재하지도 않는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했느냐고! 한 달. 딱 한 달. 매출을 올리라는 것도 아니었고 매출 방어에만 신경 쓰고 있으면 재경 쪽에서 먼저 숙이고 들어올 거라고 그렇게 말을 했잖아.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주문이었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놈의 팔아먹지도 못할 죄송하단 소린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올라올 때마다 입에 달고 들어와!”
“…….”
장 회장도 알고 있었다.
재경 그룹 쪽에서 작정을 하고 칼을 갈고 있는 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