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33)
“손 서방이 아니라 정훈이 계산이다? 그래, 그래야 말이 되지. 설마하니 손 서방이 이렇게 대책 없는 계산을 뽑아낼 리가 있나.”
놀고들 자빠졌다.
계산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야, 정훈아.”
“네.”
“삼촌이 기특해서 해 주는 말이야. 삼촌 순간 뭘 들었나 했다. 하, 하하. 아, 이걸 어떻게 이야기를 해 줘야 되지? 난감하네.”
최소한 자네 아버지 되시는 분은 가진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하긴 하셨어도 그 욕심 앞에 솔직은 하셨던 분이었네.
지금 자네처럼 흥정을 위해 쓸데없이 혓바닥을 길게 놀리는 분은 아니셨어.
“보통 지금 너처럼 지분을 가지고 뭔가 거래를 하려면 상대에게 그 지분이 왜 필요한지, 꼭 필요한 건지, 필요한 이유가 뭔지 정도는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있어야 돼.”
“그렇게 둘러 가실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뭐?”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 주셔도 됩니다. 큰외삼촌이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 어머니가 들고 있는 건설 지분을 들고 둘째 외삼촌을 만나보면 됩니다.”
“……!”
“어차피 어머니가 들고 계신 부경 계열사들 지분 중 하나만 내놓을 거거든요. 저희가 화재나 물산, 건설처럼 구찌가 큰 걸 다시 가져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백화점 하나 다시 가져오겠다는 건데 여러 개 내놓을 필요는 없잖아요. 지금 당장 백화점 가져오는 데 필요한 자금 정도만 준비하겠다는 건데.”
“…….”
“외삼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저희 회장님께서 부경유통 회장님과 같은 건으로 자리를 하고 계십니다. 저희 쪽에선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관심이 없다고 하시면, 저랑 어머니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둘째 외삼촌이라도 만나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선동이 물었다.
“네 둘째 외삼촌도 관심이 없다고 하면?”
“부경물산, 부경화재, 부경건설… 부경의 화학과 통신에는 못 미치지만 확보하고 싶어 하는 세력은 얼마든지 나올 겁니다. 제가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서 외삼촌을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는 앞으로는 형식적인 가족의 관계가 아닌 사업적 파트너의 관계로 외삼촌과 우리 재경이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업적 파트너의 관계?”
“지금은 그보다도 못한 관계인 게 사실 아닙니까. 어쩌면 한 다리가 멀다고, 저희 재경 입장에선 친가도 아닌 외가 쪽 삼촌과 가족보다는 사업적 파트너 관계가 훨씬 더 효율적일 수도 있는 거고요.”
겁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여기에서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면 부경통신 쪽 사돈 총각을 만나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현금 흐름은 그쪽이 훨씬 더 원활할 테니.
“12퍼센트를 다 내놓겠다는 거야?”
“찔끔 내놓고 나머지 어설프게 들고 있느니, 차라리 미련 없이 다 내놓는 게 관계 발전에 훨씬 더 도움이 되겠죠.”
침을 삼키는 장선동이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사실 이 지분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상대 찾아가서 살래, 말래 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그냥 던지면 되는 건데.”
“그런데 왜 찾아왔어?”
“상속세. 어차피 민석이 형이랑 자영이 누나한테 때 되면 다 물려주셔야 되잖아요. 화재를 누구한테 물려주실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통해서 12퍼센트 지분을 민석이 형이나 자영이 누나 이름으로 받으시면 그만큼의 상속세 폭탄은 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뭐 그리고 그런 복잡한 계산 다 떠나서라도 삼촌 계열사 지분인데 현금이 허락만 한다면 확보를 해 놓고 싶어 하실 것도 같았고요.”
검지로 인중 주위를 긁적이다가 장선동이 장혜란에게 말했다.
“정태가 똑똑하고 다부진 건 이번에 스너프 성공시키기 전부터도 재계 안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유명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장선동은 마치 노크를 하듯 주먹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정훈이까지 이렇게 단단할 줄은 몰랐네. 손 서방이 참 든든하겠어.”
“민석이만 할까 봐요.”
“아냐. 기분 좋으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부럽네.”
날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어느 정도 진심이 느껴져서, 어디 감히 날 평가하느냔 생각을 지워 내고 나이에 맞을 만한 겸손을 만들어 보여 줬다.
“손 서방은 선열이 만나러 언제 갔어? 서로 불편한 대화 나누고 식사까지 함께하지는 않을 거 아냐.”
장혜란이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대답했다.
“거기도 이야기가 길어질 건 없을 거예요. 얼추 지금쯤 이야기 다 끝났겠네.”
“내가 상황 봐서 같이 점심이나 했음 한다고 문자 한 통 보내 놔 봐.”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마 오늘은 시간이 된다고 해도 사양을 하실 겁니다.”
장혜란까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왜?”
난 장선동의 물음에 홍준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는 뉘앙스를 심어 대답했다.
“저한테 이야기 잘 나누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응?”
“제 생각엔 아마도 지금 이 자리는 회장님이 절 상대로 하고 계시는 첫 테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테스트?”
“네. 큰외삼촌 상대로 화재 지분을 제값 받고 팔아 올 수 있을지, 없을지 상당히 궁금해하고 계실 겁니다.”
이번엔 아예 대놓고 기가 빨린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장선동이었다.
“선열이는 그 뭐 한다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사람 중간에 끼어서 난처하게 만들었다니?”
“걔가 종종 그래요. 한두 번이 아니었어.”
“하… 참, 입장 난처하네.”
난처할 게 뭐 있나.
사업하는 사람이 제 발로 굴러들어 온 복 앞에서 그렇게 체면을 차리는 것도 격 떨어져 보인다는 걸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걸까?
“그럼 우리끼리라도 점심하러 나가지?”
“식사를 하러 나가더라도 하던 이야기는 마무리를 짓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무리 짓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 기간만 말해. 준비해 놓을 테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친구가 지금.
“외삼촌.”
“왜?”
“저희가 지금 꼭 돈이 필요해서 화재 지분 내놓고 여길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죠?”
“…….”
“필요한 만큼의 돈이야 공용 지분 던져서 만들어도 충분한 것이고, 꼭 화재 지분을 안 내놓더라도 미래금융 통해서 얼마든지 준비를 할 수가 있습니다. 다 알고 계시면서 떠보겠다고 이러시는 거면, 제가 좀 불편한데요?”
그렇게 난 소파에서 엉덩이를 반쯤 뗀 장선동이를 다시 흥정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 * *
미팅 괜히 하자고 했네
“오빠.”
이 자리에서는 처음으로 장혜란이가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고 있는 거였다.
실망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며 장혜란이 말했다.
“내 미리 말했잖수, 정훈이 애 취급하지 말라고.”
손윗사람의 입장에서 겪어 봤던 장선동이는 무척 처세가 바른 친구였는데, 손윗사람으로서의 장선동이는 꽤나 피곤하고 능글맞은 구석이 많은 사람이네.
“누가 애 취급을 했다고 그래? 이 방에 지금 애가 어디에 있다고….”
나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그제야 심술 난 아이 손에 사탕 하나 쥐여 주며 선심이라도 쓴다는 식으로 장선동이가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정훈이가 이제 봤더니 손 서방 기질을 많이 물려받았네. 든든하긴 하겠다만, 앞으로 손 서방이 생각이 많아지겠어.”
이거 지금 칭찬이야, 욕이야?
협탁 위로 올려져 있던 내선 전화.
장선동은 그 내선 전화기의 호출 버튼을 눌러 놓고 그쪽으로 상체를 틀었다.
“고모 왔다고, 부사장 잠시 내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
이 자리에 장민석이를 부르겠다?
구색 정도는 갖춰 놓고 본격적인 흥정을 해 보자 이건가?
아님 우리 쪽에서도 홍준이가 직접 나온 게 아니기에 막내 조카를 자기가 직접 상대하는 그림은 최대한 피해 보겠단 심산인가?
“기회가 좋잖아. 한두 푼짜리 거래도 아니고, 어쩌면 앞으로 그간 소원했던 관계를 이놈들이 함께 회복해 나갈지도 모르는 판인데, 대세에 큰 지장이 없다면 시작부터 같이하는 게 좋지. 안 그래?”
마치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5분도 지나지 않아 장민석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경가의 장손.
그래도 회사 안이다 이건가?
결혼식 날 그 촐싹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른들 앞이라 그런지 꽤나 의젓한 모습을 유지하며 나와 장혜란이 앉은 맞은편 소파 자리에 앉았다.
“자, 내가 짧게 요악을 해 줄게.”
장선동이가 이 자리의 성격을 아들에게 간략히 전달했다.
“네 고모가 부경백화점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그걸 앞으로는 재경 쪽에서 직접 한번 해 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데, 화재 지분 12퍼센트를 받을지를 물어보네. 네 생각은 어떠냐?”
장민석은 허리를 곧게 폈다.
그리고 깍지 낀 두 손을 탁상 아래로 숨기며 나와 장혜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화재 지분 이야기는 상당히 의외인데, 현재 재경모직이 진행 중인 보이콧을 보고 어쩌면 고모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저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뜨리며 장선동이 장민석에게 다시 물었다.
“그게 끝이야?”
“네.”
“화재 지분 12퍼센트를 받는 게 좋을지를 물어본 거였다.”
“조건을 알아야 고민을 해 보죠. 미래금융이 바로 곁에 있는데, 돈줄이 필요해서 화재 지분 12퍼센트를 던지겠다는 건 아닐 테고, 돈줄이 필요한 거라도 한 종목 전량 매도보단 고모가 가지고 계신 부경 계열사 지분들을 몇 퍼센트씩 분할 매도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인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장선동이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부경화학이 들고 있는 부경유통 지분 2.9퍼센트. 그리고 큰외삼촌이 잡고 계신 부경유통 이사회 인맥. 저희 쪽 화재 지분 12퍼센트를 팔면서 동시에 그 두 가지를 사 가고 싶습니다.”
이번엔 장혜란이가 싱긋이 웃으며 장민석이를 쳐다봤다.
“조건이 좀… 많이 기우는 거 같은데?”
장민석이의 일보 전진으로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됐다.
“지금 우리 회장님더러 재경이 백화점 사업을 가져가는 데 가장 앞에 서서 대신 칼춤을 춰 달란 소리 아냐?”
“그 칼춤 한 번의 수고로 부경화학은 재경 그룹과 미래금융이라는, 부경유통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파트너를 만드는 건데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조건 아닌가?”
“관계는 돈이 안 돼.”
“그 돈 안 되는 관계로 만들어지는 게 돈이야.”
그 말에 장민석은 차마 고모 앞이라 솔직한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다 전달하기가 민망하다는 듯, 마치 일부러 한발 뒤로 물러나 주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내가 바로 따라가 뒷걸음질하려는 녀석의 입장을 잡아 세웠다.
“왜? 우리 재경이 부경화학 입장에서 그 정도 레벨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는 어른들 앞에서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나는 지금.”
“…….”
“그래야 나중에 다른 파트너를 찾더라도 이 자리에 대한 미련이 안 남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장민석이 물었다.
“다른 파트너?”
“4.2퍼센트. 부경통신이 가지고 있는 부경유통 지분. 만약 지금 이 거래가 불발로 끝나면 어쩔 수 없이 난 어머니 모시고 둘째 외삼촌을 만나 볼 수밖에 없어.”
“…….”
“물론 백화점 지분 12퍼센트가 전부인 우리 입장에서 지분 1퍼센트, 2퍼센트 더 확보하는 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 오히려 큰외삼촌이 잡고 계신 부경유통의 인맥이 더 귀하게 쓰이겠지.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우린 부탁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구걸을 하러 온 건 더더욱 아닌데.”
장민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곁눈질로 자신의 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반면에 장혜란은 태연했다.
“내 말은 가족들끼리 사업 이야기하면서 ‘레벨’이라는 표현을 입에 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어.”
장혜란의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살짝 곁눈질로 살폈더니 광대가 꽤나 높게 올라가 있었다.
“외삼촌.”
“어, 그래.”
“가족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우리끼린 원수처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들처럼 헐뜯고 싸우더라도, 밖에서 누가 내 가족 흉을 본다거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다니면 대신 싸워 줄 수 있는. 그런 게 가족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가족들끼리도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 하는 거죠?”
“…….”
“부경의 물산, 화재, 건설, 백화점, 호텔. 좀 불편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는 저희 재경 거였죠.”
“그건….”
장민석이 재빨리 말을 끊으려 했지만, 오히려 장선동이 그런 장민석을 막아 세우며 내게 계속 이야기를 해 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 덕에 제 어머니는 재경 사람도 아니고, 부경 사람도 아닌 상태로 30년 가까이 사셨어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분명 외로운 삶이었을 겁니다. 결국은 그 계열사 지분들이 제 어머니를 외롭게 만든 거겠죠. 삼촌들, 고모… 다들 어머니가 들고 있는 계열사 지분 때문에 각자 계열사 들고 분사해서 나가 기업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찝찝하셨을 테니까요.”
“흠….”
“외삼촌이 가장 어른이시니까 정리해 주시죠, 이 찝찝한 관계. 윗대에서 이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지 않으면, 이게 저희 대엔 얼마나 더 말 같지도 않게 이어져 내려오겠어요?”
장선동의 얼굴에선 더 이상 능글맞은 느끼한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백화점만 가지고 갈 거지?”
큰오빠가 던진 질문 앞에 장혜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워도 어쩌겠수? 우리한테나 집안 막내지, 제집에선 시집, 장가보내야 할 자식이 둘이나 있는 가장인데 속옷까지 탈탈 벗길 순 없는 노릇이잖아. 마트, 홈쇼핑 정도는 남겨 줘야 하지 않겠수? 따지고 보면 그 두 개는 선열이가 직접 키운 거기도 하고.”
“면세점, 아웃렛 다 가져갈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