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34)
“그렇게까지 한 세트인데 어쩌우?”
“흠….”
“에이, 애들 있는 앞에서 그렇게 한숨을 쉬어 버리면 우리 그이가 너무 모진 사람 되는 거잖아요. 입장을 바꿔 놓고 오빠가 우리 그이였다고 생각을 해 봐요. 오빠는 속옷이 아니라 가죽까지 다 벗겨서 쫓아내 버렸을 거요. 어디 내 말이 틀려요?”
“내 입장이 손 서방이 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손 서방 입장에서 생각이 되겠나. 정훈이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만 어쨌거나 팔은 안으로 굽는 건데.”
그 말이 왜 이렇게 웃겼던 걸까?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을 들켜 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장민석이의 이마 위로 가는 힘줄이 꿈틀거렸다.
“아니, 제 어머니도 엄연히 동생인데, 왜 외삼촌 팔은 그쪽으로만 굽어야 하는 걸까 싶어서요.”
네놈들이 찢어서 가져간 내 재경의 계열사들 따윈 이제 크게 관심이 없다.
당연히 다 다시 가져오긴 하겠지만, 그 전에 난 네놈들 장가 형제들을 서로 헐뜯고 찢어지게 만들어 놔야겠다.
네놈들이 홍명이, 홍준이를 상대로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한참을 빤히 나와 제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장선동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 웃음을 적절히 갈무리해 놓고 장혜란에게 말해다.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근데 언제 다 같이 식사를 한번 하긴 해야 할 텐데… 손 서방한테 말해서 이번 건 잘 마무리해 놓고 애들이랑 다 같이 집에 한 번 와.”
“이야기는 한번 해 볼게요.”
“무슨 그런 대답이 있어? 정훈이 식 올리기 전에 조카며느리 소개도 안 시켜 주고 장가보낼 거야? 정태 식구들하고 다 같이 해서 날 한번 잡아 보자.”
“그럽시다, 그럼.”
* * *
재경모직 본사 안팎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종학 씨.”
“네, 대리님.”
“잠시 이리 좀 와 봐요.”
재경모직 본사 해외영업팀.
“이거 지금 뭐예요?”
“방돔 지사로 넘기는 시니어즈 수출 오퍼 시트입니다. 대리님께서 오늘 중으로 올려야 하는 거니까, 최대한 빨리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볼륨 레이트를 왜 이렇게 잡았어요? 1차 선적은 6밀리언이 아니에요. 4밀리언 먼저 띄우고, 2차 때 3밀리언을 추가로 보내기로 했잖아.”
“아닙니다. 잠시만요. 여기 이거 좀 보십시오. 6밀리언이라고 명시되어 있잖아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식으로 눈을 감아 버린 대리.
“아… 종학 씨 오늘 점심 못 먹겠다.”
“…왜요?”
“우리 입장에서 바이어는 방돔 지사예요. 시니어즈 유럽 라이선스를 가져간 엠뷔 트레이딩이 아니고.”
“아!”
“왜 밴더인 방돔 지사가 엠뷔 트레이딩이랑 주고받은 오퍼 시트를 가지고 볼륨 레이트를 만들었어요.”
“하, 씨… 죄송합니다, 대리님. 중간에 밴더 끼고 진행을 해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 아닌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가 잠시 미쳤나 보네요.”
“딱 보니 그렇네. 얼라리요? 대금까지 T/T로 잡아 놨데? 이거 L/C로 잡아야 한다는 거 알고 있죠.”
“점심만 못 먹는 게 아니라, 이거 계산 싹 다 다시 하려면 퇴근도 못 하겠네요.”
“우와, 양심 없다. 이거 못 올리면 나도 오늘 같이 퇴근 못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대리님. 최대한 빨리….”
“됐어. 어차피 제시간에 퇴근 못 하게 생긴 거, 괜히 급하게 한다고 다른 실수 만들어 내지 말고, 얼른 내려가서 머리 식히면서 커피 한잔하고, 올라와서 오늘은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오퍼 시트 작성에만 매달려요.”
“네!”
“유로 아니다. 방돔 지사랑은 달러예요.”
“그럼요! 잠시 내려가서 커피만 얼른 한잔하고 다시 올라오겠습니다!”
ATM(홍보, 마케팅) 합동 미팅 현장.
“지금 JBS에서 홀인원 편성 잡힌 거 확인들 하셨죠?”
“네.”
“이건 미래기획 쪽으로만 다 맡길 게 아니라, 송유라 선수 촬영 날은 무조건 촬영장에 사람 한 명 붙여야 해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을 VMD 쪽이랑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거기에서 붙박이 해 줄 인원을 한 명 보내겠답니다.”
“VMD팀에서? 매장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전문가들이 협찬, PPL 쪽으로 뭘 안다고?”
“야외 촬영, 실내 촬영 둘 다 섞여 있잖습니까. 골프장마다 배경도 다 조금씩 다르고 잔디 색깔도 차이가 나고. 어쨌거나 시각 노출 쪽으로는 우리보다는 그쪽이 더 전문가들이라고 봐야죠.”
“음… 그건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신기한 팀장이 진짜 인원을 빼 준다고 해요?”
“자기가 직접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던데요?”
“하긴, 신 팀장님이 성격 특이한 거 빼놓고 일만 보면 넘사벽이긴 해. 오케이. 그럼 퍼스펙티브 PPL 건은 그냥 넘어가는 걸로 하고, 시니어즈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미팅실 안으로 모인 사람들의 눈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침을 한 번 꿀꺽하고 삼킨 뒤 말했다.
“다음 주 토요일 ‘악녀검사’ 첫방이잖아요. 스캔들 터지고 채서린이 작품으로는 첫 컴백작이라 벌써 화제성이 대단합니다. 시작 전 30초 플래시 광고랑 중간에 끊어갈 때 노출 광고 모두 미래기획 쪽에서 확보했다고 하니까, 우린 블로거들, SNS 쪽, 드라마 다시 보기 유튜브 채널들 쪽으로 적당한 바이럴 마케팅만 지원해 주면 될 거 같습니다.”
“그 부분도 미래기획 쪽이랑 홍보 콘셉트 맞추고 진행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그쪽에 맞춰 줘야죠.”
“뭔 소리 하는 거예요? 우리 브랜드야. 우리가 왜 돈 주고 고용하는 미래기획 쪽 의견에 맞춰?”
“중간 컨트롤을 그쪽 장하늘 팀장이 직접 한답니다.”
“아….”
“맞춰 줘야죠. 그냥 광고 기획 에이전트가 아니라, 우리 회사 대주주 중 한 명이 팀장으로 있는 미래기획인데.”
“그건… 그렇네. 그럼 뭐야? 우린 딱히 지금 할 게 없는 거예요?”
“…….”
“그럼 우리 지금 이 미팅 왜 하고 있는 거야?”
“커피나 한잔할까요?”
“그거라도 해야겠는데? 에이 씨… 다들 일어납시다, 커피나 한잔하게. 미팅 괜히 하자고 했네.”
* * *
봉투에 바람 들어가겠어요
창밖에선 소나기가 한바탕 시원하게 퍼붓고 있었다.
남 사장한테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시며, 사장실 창가 앞에서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쏴아···.
살짝 열어 놓은 틈 사이로 시원한 빗물이 튕겨 들어올 정도로 제법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언제 빗소리를 허락했냐는 듯, 마치 완전히 다른 차원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문을 닫기가 무섭게 사장실 안으로는 정적이 흘렀다.
“사장님, 낚시 좋아하세요?”
그 정도 목소리만으로도 소파에 앉아 있는 남 사장과 대화가 가능할 만큼 사무실 안은 무척 고요했다.
“낚시?”
“네.”
“음··· 언제 기회가 되면 정식으로 한번 배워 보고 싶긴 해.”
“안 하세요?”
“그럴 여유가 있는 팔자는 아니지, 내가.”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인인 나는 이 친구의 지난 세월을 알아주고 인정해 줘야 하지 않겠나.
얼마나 부족한 집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무런 배경 없는 상태에서 여정이를 만났고 그렇게 자기 집안을 일으킨 친구.
숨만 쉬며 따라와도 버거운 세월이었을 것이다.
내 지난 삶이 그러했기에, 그렇게 재경을 키웠기에, 비록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남 사장의 지난 삶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정도는 불 보듯 뻔했다.
“제가 좀 가르쳐 드려요?”
자리로 돌아와 곁으로 앉으며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글쎄, 네가 뜬금없이 물어봐서 별생각 없이 말은 배워 보고 싶다고 하긴 했는데, 막상 그럴 기회가 와도 그게 잘 될는지 모르겠다.”
“어째서요?”
“신세 좋게 낚싯대 던져 놓고 세월을 낚아 보겠다 할 만큼의 여유는 아직 안 나네.”
테이블 위로는 남 사장이 미래금융 쪽 사람을 통해 받아 놓은 서류 봉투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엔 이번에 미래금융이 투자하고 한신건설이 직접 올린 한남 유연 빌리지 팬트 하우스 두 채의 소유권 등기가 각각 들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걸 받는다는 핑계로 올라와 커피까지 얻어 마시며 눌러앉아 있는 중이다.
그냥.
실제로 밖에서도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고, 지금 이 소나기가 끝이 나면 바닥에 깔려 있던 돌들이 선명하게 다 드러나겠다 싶은 마음에 조금은 착 가라앉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
“너 근데 안 내려가냐?”
“아직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뭘 그렇게 재촉하세요?”
“무슨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
남 사장 이 친구도 참 멋과는 거리가 먼 친구다.
“너는 내가 편하냐?”
“불편할 게 뭐가 있습니까? 왜요? 사장님은 제가 불편하세요?”
“내가 널 왜 불편해해?”
“근데 왜 그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네가 불편할 게 없어도, 넌 내가 좀 불편해야 정상 아니냐? 그래도 명색이 내가 사장인데. 여긴 회사고.”
나와의 이런 자리가 아직은 어색한 모양이지.
“사장님, 제가 사적으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사적으로?”
“뭐··· 꼭 사적인 건 아닌데, 그래도 사장 대 인사부 과장 말고요, 그냥 남자 대 남자. 아님 뭐 조카 대 고모부? 암튼 조금은 사적인 관계라고 치고 제가 뭐 하나만 물어보고 싶어서요.”
“뭔데? 물어봐.”
만약 내가 손정훈이가 아니라 손중길이었다면,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조카 대 고모부가 마주 앉은 자리가 아니라 기특한 사위를 앉혀 놓고 장인이 선물을 해 주는 자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17년째 하고 계시는 거죠? 재경모직 사장 자리.”
“벌써 그 정도 되겠다. 노민식 사장님이 2006년도 봄에 은퇴를 하셨으니까, 맞네. 17년째네.”
“그 정도 세월이라면 충분히 사장님 개인 사업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어째서 사장님 앞으로는 지분 확장도 안 해 주는 자리를 계속 맡고 계시는 거예요?”
남 사장은 잠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 보려는 듯 빗방울이 붙어 있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려 놓고 커피 잔을 입술에 붙였다.
“그러니까. 잘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
“······.”
“네 고모 몸도 약한 사람인데, 그냥 진작에 모직 사장 자리 내려놓고 네 고모 도와서 갤러리 운영이나 함께하며 살 수도 있었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결국은 처가살이 아니냐, 남들 눈엔. 그런데···.”
그다음 이어지는 남 사장의 생각에 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너한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만, 조금은 곁에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다. 내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결국은 재경이란 지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데, 그 지붕이 아예 사라지는 건 지켜볼 수가 없었어. 너나 정태가 지금처럼 어느 정도 커서 회사 일 배워 맡아 나가기 전까지는 나라도 가족 감투 쓰고 회장님 곁에서 버텨 드리고 싶었어.”
“사장님은 원래 제 큰아버지랑 많이 가까우셨다면서요?”
“감사하게도 그분이 날 많이 좋게 봐 주셨던 거지, 내가 가까워지고 싶다고 해서 가까워질 수 있는 위치에 계셨던 분은 아니셨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말고는 딱히 보여 줄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일개 그룹 본사 기획 전략 본부 과장이랑 그룹 회장이 가까울 수가 있겠어? 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유없이 날 곁에 두고 많이 챙겨 주셨던 분이야.”
이유가 없긴 왜 없어.
난 자네가 여정이 짝이라는 걸 알고 직접 보자마자 첫눈에 바로 알겠던데.
홍명이 놈이 어째서 여정이 짝으로 자네를 선택했었는지를.
“올해 하반기쯤 되면, KS 인터내셔널도 잡을 수 있겠죠?”
“지금 추세라면 추석 전후로 추월하지 않겠어? 그리고···.”
테이블 위로 올려져 있는 서류 봉투를 눈짓하며 남 사장이 말을 이었다.
“부경백화점 건만 기대하는 대로 잘 마무리가 되면, 영업 이익으로도 크게 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고.”
“그럼 우리 재경모직의 다음 스텝은 뭡니까?”
“인사부 손정훈 과장을 잡는 거?”
“네?”
싱긋이 웃으며 남 사장이 물었다.
“앞으로 6개월 남았지? 내년 3월이면 딱 2년 되는 거 아냐.”
“네.”
이번엔 웃음기를 지워 놓고 말했다.
“전략기획팀장 자리 따로 빼놓을 테니까 모직에서 앞으로 2년 정도만 더 해.”
“역시 사장님 앞에선 틈을 보이면 안 되겠네요. 바로 치고 들어오시네. 재경모직의 다음 스텝이 뭐냐고 물었는데, 이걸 또 이렇게 주제를 바꿔 버리시네.”
“모직은 네가 가져갈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해 놓으란 뜻이다.”
“······.”
“어차피 정태는 모직 경험이 없어. 애당초 모직 쪽엔 관심도 없었고. 항공, 식품, 그다음에 바로 그룹 본사 생활 시작했잖아. 그리고 지금은 스너프 키우고 있는 중이고. 반면에 지금의 너는 하늘이가 가진 모직 지분까지 움직일 수 있게 됐어. 모직에서 한 2년 정도 더 있다가 이번에 백화점 사업 부경에서 다시 가져오게 되면, 넌 바로 백화점으로 가.”
“회장님 생각이세요?”
단단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남 사장이 말했다.
“그런 내용에 관해선 내 앞에서도 조심하시는 분이다. 그냥 내가 해 본 계산이 그렇다는 거야.”
“계산···.”
“정태가 항공, 식품에 스너프까지 맡아 나가고, 네가 나중에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기반으로 모직을 더 크게 키우면 누가 봐도 우리 재경은 완벽한 세대교체를 해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