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41)
“왜?”
“하면 이렇게 잘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도대체 뭐 때문에 얼 빠진 놈 마냥 정신 못차리고 돌아다녔던 거랍니까?“
그와 동시에 자심감까지 드러냈다.
“제대로 한 번 키워볼게요. 그래서 현재 아버지가 저랑 정훈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계시는 고민, 더는 안 하실 수 있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거요.”
“조금 전? 뭐?”
“세상에 없는 걸 붙들고 애쓰는 것 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잠시 입을 곧게 다문채, 단단한 표정을 아버지에게 보여준 뒤 정태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정훈이까지 끌어안아서 데리고 가려고 한다는 걸 꼬집어서 하신 말씀이겠죠?”
“…”
“저도 그게 힘들 거 같다는 건 진작에 눈치를 챘어요. 조동희 전무. 저한테는 회사 경영에 관해선 선생님같은 분이시잖아요.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사람 아닙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정태가 말을 이었다.
“이제야 말씀 드리는 건데, 저 처음 스너프 넘어갔을 때 밖에서 조 전무 따로 만나서 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손 회장 역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저 들어주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연륜이 있는 인물을 한 명 정도는 곁에 두고 있어야 할 거 같은 거예요. 그런데 당분간은 모직에서 움직이기가 힘들 거 같다고 하더군요.”
“…”
“남 사장님이 든든하게 버티고 계신데, 그 작은 모직에 굳이 조 전무님까지 계셔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제가 기회 봐서 회장님께 말씀을 드려볼테니까 그냥 못 이긴 척 와주십사 했거든요. 근데도 웃기만 하지, 대답을 미루는 거예요.”
이미 지나간 일들.
정태는 더이상 지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결국엔 정훈이, 남 사장님이랑 같이 모직을 업계 1위 자리로 올려놓았네요.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게 정훈이인데, 제가 무슨 수로 끌어안아서 데리고 다니겠습니까? 같이 가자고 해야죠, 지금부터는.”
“역시 너 답다. 내 아들이지만, 나랑은 달리 마음이 넓어.”
하지만 손 회장이 눈치채지 못한 게 있었다.
그 말 속에 담긴 정태의 조소가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지…
“그럼 정훈이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디로 옮겨가보고 싶다 그런 말이 있던가요? 내년 3월이면 벌써 모직 생활 2년이잖아요.”
그 질문에 손 회장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이 왜 정태 앞에서 솔직해질 수 없었던 것인지 미련이 남는 손 회장이었다.
“하긴. 어디든, 그간 해온 게 있는데 알아서 잘 하겠죠. 그럼 백화점, 면세, 아웃렛 건은 제가 정리를 해봐도 되는 겁니까?”
“내가 조만간 자리를 한 번 만들게. 그쪽에서 넘어온 인물들도 우리쪽 사장단들과 인사 정도는 정식으로 시켜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죠.”
“그 자리에서 다같이 식사 한 번 하고, 내가 이야기를 꺼내보는 걸로 하면 되지 싶어.”
* * *
“이런 얼 빠진!”
같은 시각 장태산 회장의 집.
안방에서 함께 장기를 두고 있던 장태산 회장과 정훈이.
장 회장은 정훈이가 부경에서 다시 가져온 백화점, 면세점, 아웃렛을 스너프와 함께 묶어 그룹 내 유통으로 분류를 해보자는 건의를 손 회장에게 직접 했단 소릴 듣자말자 불 같이 화를 냈다.
“아. 놀래라!”
“뭐, 뭐?”
“아, 아니. 놀랬다고요.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내가 지금 소리를 안 지르게 생겼어? 바보냐, 천치야? 어떻게 지난 몇 달 네 손으로 건드려 다시 가져온 쇼핑 쪽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네 손으로 정태가 가져갈 수 있게 만들어!”
그런 장 회장을 상대로 정훈이는 장기판 위의 장기말 하나를 가볍게 옮겨놓고 말했다.
“장이요.”
* * *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요?
태산이가 만들어 낸 큰소리 때문이었을까.
방문이 살짝 열리며, 안의 상황을 확인하려는 태양이의 얼굴이 보였다.
장태양.
하늘이의 남동생이다.
얼마 전에 전역을 했다.
그리고 나는 태양이 녀석의 존재로 하여금 하늘이가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잘하는 녀석인지도 알게 됐고.
분명 내게 태양이를 설명할 땐 자진해서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하던 공부를 잠시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입대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태양이는 어떻게든 군대를 빼고 싶어 했는데, 하늘이 이 녀석이 태양이의 모든 카드를 다 막아 놓고 반강제로 입대를 시켜 버렸던 거다.
아마 내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을 땐, 지금처럼 얽히게 될지 몰랐겠지?
하긴 그건 나도 몰랐지.
태양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과연 정훈이 놈이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철딱서니가 없는 녀석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를 참 잘 따른다.
딱히 해 준 것도 없는데, 나한테 왜 그러는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냥 잘 따른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몇 번 본 적도 없는데 만날 때마다 아주 깍듯하다.
자기 누나 하늘이를 대할 때와는 아주 딴판.
“왜?”
문밖에서 안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큰소리가 나는 거 같아서요.”
“아냐, 별일 아냐. 그냥 나가 있어.”
“형.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면 바로 저 부르세요. 저 바로 밖에 있으니까.”
그 말에 태산이는 한숨을 내쉬었고, 난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뜨렸다.
태양이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장기 알을 어질러 그만두자는 뜻을 내비친 후 태산이가 물었다.
”네가 지금 벌써부터 여유를 부리는 거냐?”
“여유요? 무슨 여유요?”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게 힘들게 다시 받아 온 사업들을 어떻게 곧바로 정태가 가져갈 수 있게 만들어? 손 회장이 그렇게 하자고 해도 서운한 내색을 해야 할 놈이, 손 회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네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내?”
그래서 장기판 위의 장기 알들을 갈라내며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테레사’ 아시죠?”
현 대한민국 트래픽 비즈니스 업계 1위 기업 테레사.
“그게 왜?”
“테레사가 출범된 지가 15년밖에 안 된대요. 처음에는 SNS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광고료로 기업을 운영하다가, 이게 좀 커지기 시작하니까 쇼핑 쪽으로 사업을 확장시켰죠. 거기에서 소위 말하는 진짜 대박이 터진 거예요. 그러다가 이것저것 다 건드리기 시작한 거죠. 택시 사업도 하고 금융 사업도 하고, 심지어 연예 엔터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시켰어요.”
“…….”
“테레사 총수 개인 재산이 국내 서열 3위라고 합니다. 업력이 15년밖에 안 된 테레사가 국내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들어와 있어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굴뚝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트래픽 비즈니스로만 거기 총수의 개인 재산은 국내 서열 3위이고 테레사의 국내 재계 순위는 9위, 10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우리 재경을 다 합친 것보다 매출 턴 오버가 훨씬 더 많이 잡힌다는 거죠.”
그제야 태산이는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래, 이게 내 친구 태산이다.
비록 지금은 내가 손중길이가 아닌 손정훈이지만, 언제나 지금처럼 내 곁에서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던 친구가 바로 태산이었다.
“스너프에게 그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
“만약 손정태 사장에게 그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면요.”
“그걸 네가 확인을 해 보고 싶다 그 말이야?”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뭘?”
“손정태 사장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상당히 후한 이유를요. 그게 어느 정도라면 예의상 치켜세워 주는 거라고 이해를 하겠는데, 그게 좀 과한 거 같더란 말이죠. 그와 동시에 저는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무슨 의심?”
“제가 손정태 사장에 대한 평가를 가족이라고 너무 박하게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요.”
염려가 된다는 듯 태산이가 조심히 물었다.
“혹시 손 회장도 네가 이렇게 집안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서 정태에 대한 평가질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난 짧게 고개를 흔들었다.
“평가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거예요. 박하게 주고 있는 제 평가가 틀렸기를요. 이제 겨우 백화점 하나 다시 가져왔습니다.”
태산이는 혀끝으로 말라 있는 입술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런 태산이에게 말했다.
“이제 아실 거 아닙니까. 그때 제가 할아버지 앞에서 했던 다짐이 그냥 말로만 했던 다짐이 아니었다는걸. 진짜 다 다시 가져올 겁니다. 가져와서 딱히 쓸데가 없다손 치더라도, 설혹 가져와서 버리게 되더라도 일단은 다 다시 가져와서 우리 손으로 직접 버리게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해야….”
갈라낸 초록색 장기 알과 빨간색 장기 알을 통에 각각 쓸어 넣은 후 태산이에게 말했다.
“부경도 그렇고, 그 어떤 기업이라도… 다시는 우리 재경을 업신여기지 못할 거 아닙니까.”
긴장을 하고 있는 태산이의 표정을 풀어 줄 요량으로 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걸 저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손정태 사장과 함께 해내야 의미가 있는 거죠. 반드시 우리 회장님, 그리고 손정태 사장과 함께 우리 재경을 다시 반열 위로 올려놓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될 수 있을 때까지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
* * *
혼자 먼저 거실로 나갔다.
내가 던진 각오 때문에 태산이는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다.
태산이는 내게 곧 따라 나갈 테니까, 먼저 나가서 애들이랑 같이 놀고 있으라고 했다.
거실엔 영석이와 하늘이, 그리고 태양이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쪼르르 태양이가 다가와 날 소파 쪽으로 안내했다.
“아까 할아버지 왜 그런 거예요?”
“별거 아냐.”
“형이 이해하세요. 형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 집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딱 둘이 있어요. 할아버지, 그리고 저기 저거.”
하늘이는 자신을 턱짓하는 태양이를 향해 베고 있던 쿠션을 던지려다 영석이의 엄한 눈길을 받고 애써 참았다.
“너 그러다 맞으면 진짜 아프다.”
마치 조금 전 하늘이가 한 말을 들었냐는 식으로 내게 태양이가 말했다.
“형이 있으니까 저렇게 말로 하는 거지, 형만 없었음 진짜 때려요.”
“그래도 누나한테 저기 저거는 좀 그렇지 않나?”
“그런가요?”
“좀 그래. 누나가 물건도 아니고, 그런 표현은 좀 별로다.”
“고칠게요.”
이 정도면 거의 날, 아니 정훈이를 신처럼 떠받드는 거 같은데?
나와 하늘이가 졸업한 대학을 다니는 중이라고 들었다.
그렇다고 정훈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닌 거 같고.
나 이상으로만 계산을 해 봐도 정훈이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 그 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결론인데, 도대체 정훈이에게 왜 이렇게까지 호의적인 걸까?
정훈이 놈이 살아온 흔적을 살펴보면 딱히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호감을 얻을 만큼 괜찮은 구석이 있었던 놈은 분명 아닌데 말이다.
“비켜. 좀 일어나. 집에 손님 불러 놓고 뭐 하냐, 지금? 아, 일어나라고. 형도 좀 앉으시게. 깡패야? 이 넓은 소파 혼자서 다 쓰고 앉아 있어.”
발끝으로 하늘이를 툭툭 건드리며, 태양이는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마지못해 일어난 하늘이는 결국 쿠션으로 태양이의 가슴팍을 때렸고, 누나에게 이런 구타를 당하는 게 얼마나 이골이 났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날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내 옆으로 딱 붙어서 앉네?
“형 보고 싶은 거 보세요.”
리모컨을 내게 건네며 태양이가 말했다.
그러자 하늘이는 눈에 칼을 달고서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둘 다 죽여 버릴 거라고 말했다.
“형 요즘도 스포츠카 수집하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스포츠카?”
“왜 학교 다닐 때, 요일별로 차 바꿔서 타고 다니셨잖아요.”
“내가?”
정훈이 이놈 이거….
이젠 화가 안 난다.
그저 웃길 뿐이다.
“에이, 왜 그러세요? 우리 학교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난 하늘이를 잠시 쳐다본 후, 이번엔 영석이의 표정을 살폈다.
진짜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아님 일부러 못 들은 척을 하는 건지 영석이는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사과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그게 얼마나 임팩트가 강했음, 저는 학교에서 형 보지도 못했는데 선배들이 틈만 나면 우리 학교에 손정훈이라는 레전드가 있었다는 소릴 다 하겠어요?”
“레전드?”
“그럼요. 레전드죠. 형은 우리 학교 한인 커뮤니티 안에선 레전드 오브 레전드예요. 형.”
“또 왜?”
“언제 기회 되면 저 형 집에 한번 놀러 가면 안 돼요?”
“집에?”
“네.”
“왜?”
“그냥요. 형이 가지고 있는 슈퍼 카들 구경도 좀 하고… 흐흐흐….”
대수롭지 않게 그러라고 했다.
“너 그러면 복학은 언제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