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53)
“……!”
자신이 보인 반응에 정훈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광대까지 볼록하게 만들어 내며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먹을 만해?”
“이거 맛이 왜 이래?”
하늘이는 조금 전 자신이 느꼈던 맛이 정상인지를 다시금 확인해 보기 위해 다시 티스푼으로 살짝 떠서 입에 넣어 보았다.
“헐… 대박.”
“네가 단 걸 아무리 싫어해도 이건 싫어할 자신이 없지?”
“아니, 잠깐만. 이거 왜 맛있어? 나 단 건 진짜 딱 질색인데.”
산지 직송된 티라미수 맛을 본 커피숍 종업원들의 반응도 하늘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 역시 기본적인 쿠키나, 크루아상, 티라미수, 마카롱, 샌드위치, 파니니 같은 건 다 파는 곳이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정훈이도 진상 소리를 듣기 싫어, 함께 나눠 먹자고 한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곳 종업원들은 지금 전혀 클라스가 다른, 비교가 불가능한 차원의 티라미수를 경험하게 됐다.
오죽했으면 그 커피숍 사장이 직접 테이블까지 찾아와서 이 티라미수를 설마 직접 만든 것인지, 산 거라면 어디에서 산 것인지 그 가게의 이름을 물어볼 정도였다.
“파리에서 사 온 거예요.”
“그런데 이런 걸 저희한테 나눠 주셔도 되는 거예요?”
“무슨 음식이든, 제일 맛이 있을 때 먹어야지요. 맛 괜찮아요?”
“이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구할 수만 있으면 받아다가 내일 당장이라도 여기에서 팔아 보고 싶을 정도예요.”
커피숍 사장의 말에 정훈이는 곧바로 손가락을 튕기며 기뻐했다.
“바로 이거거든. 다른 분들도 다 맛있다고 그러죠?”
“네. 혹시 에이드 좋아하세요? 이렇게 귀한 걸 공짜로 얻어먹을 순 없고, 제가 에이드 두 잔 서비스로 준비해 드릴게요.”
커피숍 사장이 돌아간 뒤였다.
“마카롱 이거도 딱 하나만 먹어 봐. 아니, 맛만 봐.”
마카롱 박스까지 그 자리에서 뜯으려고 하는 정훈이를 하늘이는 애써 말렸다.
혹여나 저 박스 역시 뜯어서 이곳 종업원들과 나눠 먹자고 할까 봐.
마카롱 박스를 뜯으려는 정훈이를 여우처럼 말리며 하늘이가 말했다.
“그냥 줘. 집에 가서 할아버지랑 나눠 먹을게.”
“그럼 이건 집에 가지고 가. 내가 이 가게를 처음 알고 그 후로 한국에 들어와서도 꾸준히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마카롱, 티라미수를 찾아다니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퀄리티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가게조차 못 찾겠는 거야.”
“음… 일단 맛이… 압도적이긴 하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이 가게 마카롱하고 티라미수 레시피를 사기로 했어.”
“뭐?”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나 보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불러다 티라미수를 먹이더니, 이젠 그 레시피를 아예 사 버렸다는 소릴 하고 있다.
“레시피 말이야.”
제정신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늘이는 그간 정훈이가 보여 줬던 결과물들이 떠오르며 이번에도 역시나 자기만의 계산이 있겠지… 하며 듣기만 했다.
“재경식품 쪽에서 이걸 공장화시킬 수만 있으면, 방금 여기 사장이 한 말처럼 경쟁력 있는 디저트 숍 브랜드를 만들 수가 있겠는 거야. 콘셉트가 아닌 퀄리티로 승부하는 디저트 숍 브랜드 말이야.”
“벌써 식품 쪽 관련된 업무를 보기 시작한 거야?”
“그런 게 중요하나, 어디.”
“중요한 거 아냐? 중요할 거 같은데? 레시피는 얼마 주고 샀는데?”
“일 점 오 밀리언.”
“유로?”
“어.”
“우리 돈으로 20억? 미쳤구나, 진짜.”
“아니, 이걸 직접 먹어 보고도 그래?”
하늘이는 할 말이 없었다.
그 브랜드를 통째 매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허받은 독점 레시피를 산 것도 아닌, 그저 레시피만 사 오는 데 20억을 쓴다니.
그것도 고작 마카롱, 티라미수의 레시피에.
디저트 숍 브랜드?
과연 그게 얼마나 큰돈이 된다고….
그럼에도 하늘이는 여전히 정훈이라면 그만한 돈을 투자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을 거라 믿으며 표정 관리를 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다시 신이 난다는 표정으로 정훈이가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식품 관련 다른 기업들을 보면 베이커리, 아이스크림, 커피 전문 브랜드, 디저트 숍 브랜드… 이런 쪽에 공격적인 투자를 넣어서 그걸 묶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크게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하늘이는 자신에게 이 맛을 직접 보여 주겠다고 힘들게 마카롱과 티라미수를 공수해 온 정훈이의 성의를 봐서 최대한 애를 써 이야기에 집중을 해 주었다.
“자기들끼리 포인트 카드로 적립도 시켜 주고, 그걸 다른 기업 쪽, 금융사 쪽과 연계도 시켜 가면서. 근데 재경식품은 오로지 공장제 기성품. 마트용 식자재, 스낵, 라면, 커피, 음료, 그리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이거 말고는 확장을 못 시키고 있고.”
“…….”
“나는 앞으로 우리 재경식품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이런 독보적인 아이템을 무기로 한 베이커리, 커피 전문 브랜드, 아이스크림 숍, 디저트 전문 브랜드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만들어 가야 된다고 보거든. 그 1번 타자로 나는 이 마카롱과 티라미수를 무기로 하는 디저트 숍 브랜드? 아님 커피 전문 브랜드도 괜찮고. 아무튼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도대체 저 근거 없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늘이의 눈에 벌써부터 식품 관련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며 저렇게 눈을 빛내고 있는 정훈이의 모습은 살짝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자, 생각을 한번 해 봐.”
“아니, 잠깐만. 잠깐만, 오빠.”
하늘이는 정훈이의 흥분을 살짝 눌러 주며 말을 막았다.
“왜?”
“이런 걸 왜 나한테 설명을 해?”
“뭐가?”
“이게 정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일 거 같단 판단이 섰다면,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식품 쪽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거 아냐.”
“그 사람들은 이미 업계 전문가들이잖아.”
“그니까,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훨씬 더 빠르지.”
“아니지. 우리가 이런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 직접 자기 돈 투자해서 그 브랜드를 받아다가 영업을 해 보겠다고 나설 가맹점주들은 업계 전문가들이 아니잖아.”
하늘이는 정훈이가 한 말을 번뜩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왜 우리 회사, 재경 그룹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해? 할 거니까 준비를 하라고 지시만 떨어지게 만들면 끝날 일을.”
“…….”
“이 기획은 다른 사람이 아닌 너처럼 업계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돼.”
“…왜?”
“그런 사람들이 이게 상품화가 됐을 때, 소자본이라도 자기 돈을 들고 가맹점을 운영해 보겠다고 찾아올 테니까.”
얼핏 정훈이가 왜 자신을 붙들고 이런 사업 설명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은 하늘이었다.
그랬기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정훈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오키, 무슨 말인지 접수했어. 그럼 이제 내 생각을 말해 줘야 하는 거지?”
“어때? 괜찮을 거 같아?”
“좋은… 기획이네. 내가 만약 소자본으로 커피 전문점을 창업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될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
“이미 커피 맛은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시장에서 이런 마카롱, 티라미수 같은 필살기를 가지고 있고, 그걸 안정적으로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 쪽으로 투자를 해 보고 싶을 거 같긴 해. 거기다 그 배경에 재경 그룹이 버티고 있다면 투자에 안정성도 느껴질 거 같고.”
자신의 대답을 듣자마자 정훈이가 물었다.
“너 혹시 나한테 20억 투자해 줄 수 있냐?”
“뭐?”
“이 레시피 사 오는 데 투자를 해 달라고 하면 해 줄 수 있겠냐고.”
“샀다며?”
“아직 계약서를 쓴 건 아냐.”
하늘이는 잠시 고민을 해 봤다.
20억?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굴릴 수 있는 액수.
거기다 자신에게 투자를 제안하는 상대가 정훈이다.
사람과 아이템 모두 자신에게 손해를 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하늘이는 정훈이가 자신을 떠보는 이유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설마하니 재경가 차남이 현찰 20억을 못 굴릴까.
올 한 해 재경모직 지분으로 들어온 영업 이익 배당금만 해도 그 몇 곱절은 될 텐데.
“설마 이거… 오빠네 할아버지를 따라하는 거야?”
그 말에 정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
“…뭐라고?”
“손중길 회장님. 뭔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을 때, 그걸 구체화시킨 다음엔 항상 가장 먼저 오빠네 할머니한테 설명을 해 주셨다고.”
“…….”
“사업에 대해선 전혀 모르시는 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회장님 앞에서 누구보다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오빠네 할머니의 반응에 따라서, 만약 한 번 만에 바로 그 사업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주신다면, 틀림없이 그 사업은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는 사업이라고 믿으셨던 분이라고 하던데?”
차분하게 다시 한번 티라미수 한 스푼을 떠 입에 넣은 다음, 맛을 음미한 뒤 하늘이가 말했다.
“일 점 오 밀리언이라는 레시피 가격이 살짝 NG 같긴 한데… 난 아주 좋은 사업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재밌어.”
“재밌어? 뭐가?”
“오빠가 하고 있는 사업 구상을 듣는 거. 뭔가 상상을 하게 돼. 평소엔 잘 안 쓰던 뇌 일부분이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재밌어. 앞으로도… 종종 해 줘. 그리고….”
하늘이는 그곳 종업원이 서비스라며 가져 준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빨아 먹은 뒤 말했다.
“떠보는 거라는 걸 알아서 일부러 대답을 안 한 건데, 이 정도 맛에, 그것도 손정훈이 기획한 사업이라면 20억, 충분히 투자하겠다고 했을 거야.”
“너 뭐 어디 아프냐? 코로나 걸렸어?”
“뭐?”
“왜 갑자기 나한테 친절해? 너 원래 이런 콘셉트 아니었잖아.”
“하루아침에 콘셉트가 바뀌어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건 내가 아니라 오빠지.”
* * *
제가 중간에서 잘해야죠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생각을 해 보니까, 하늘이의 말이 맞았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건 하늘이가 아니라 나지.
“만날 때마다 일부러 틱틱거렸을 땐 정말 싫지만, 평생을 아예 안 마주치고는 살 수는 없는 상대일 거라고 생각을 했어. 싫은 티를 팍팍 내줘야, 엮이는 일이 없을 줄 알았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잖아.”
“내가 너한테 그 정도였어? 평생을 아예 안 마주치고 살고 싶었을 만큼?”
“내가 말이 좀 심했나?”
“아니다. 그만큼 네가 지금 노력 중인 거라고 이해하는 게 속 편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같이 좀 노력을 해. 나만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 말고. 나는 오빠네 할머니가 아니잖아. 오빠가 오빠네 할아버지가 될 수 없는 거처럼. 내가 모든 걸 다 오빠한테 맞춰 줄 순 없어.”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다시 손중길이 되고 싶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당장 정엽이 놈 한국으로 불러들여서 정태 놈과 함께 교통정리를 시켜 주고, 태산이와 함께 태화장에 가서 얼큰하게 같이 한잔….
“이건 네가 뭘 잘 몰라서 하는 말이고.“
”뭘 내가 잘 몰라?“
“할머니는….“
안사람은 내게 모든 걸 다 맞췄던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재경을 키우는 것에만 오로지 집중을 할 수 있도록 내조에 큰 애를 쓴 건 맞지만,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진심으로 부아를 터트릴 때, 난 한 번도 그 사람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 할머니는 뭐?“
“아니다. 아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뭘 걱정하지 마?”
“너한테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거 묘하게 무시당하는 기분인데?”
“아니,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거야.”
“역할이 달라?”
“뒤에서 지원해 주기보단 넌 네가 직접 전쟁터에 나가서 이기고 싶은 사람이잖아. 전투력이 있는 사람한테 어떻게 보급 일을 맡기나. 같이 전쟁터로 나가서 승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자고 해야지. 아냐?”
“굳이 둘 중 어느 쪽이냐고 물으면… 그쪽이 맞는 거 같긴 하네.”
잠시 녀석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물어봤다.
“왜? 불안하냐?”
“불안하긴 뭐가 불안해?”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