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1)
신 이사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조 전무 곁에 섰고, 나와 조 전무는 그저 눈빛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본부장님이 눈치가 빠르시네. 우리 신 대장이 식품의 실세라는 걸 벌써 눈치채셨나 봅니다.”
“언제 적 신 대장이에요, 전무님.”
“내가 방금 신 대장이라고 했어? 입이 말썽이다. 하하.”
조 전무가 신 이사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난 다시 한번 신 이사의 사무실 안을 둘러본 뒤 밖으로 나갔다.
* * *
조 전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내 사무실이었는데, 고 이사의 사무실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더니 얼굴의 모든 근육이 다 일그러지는 조 전무였다.
내가 느꼈던 불쾌함보다 더한 걸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내 앞이라 그런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에 착오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고 이사는 다음 주 출근이라 그 전에 따로 정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나중에 저하고 같이 가서 한번 보시죠.”
그때 들려오는 노크 소리.
나와 조 전무가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열렸다.
편승일 사장.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던데, 과연 저 인사가 나에 대한 인사인 것인지 아님 조동희 전무에 대한 인사인 것인지 살짝 헷갈리고 있었다.
“출근을 일찍 하셨네요.”
얼굴에 반가운 표정을 걸어 놓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편 사장을 향해, 조 전무가 함께 미소를 보내며 물었다.
“커피 했어요?”
하지만 조 전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서지는 않았다.
“이제 해야죠. 두 분은….”
“우린 사장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죠.”
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조 전무가 편 사장을 앞으로 얼마나 잘 구워삶을 수 있을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럼 제 방으로 옮기실까요?”
편 사장의 물음에 조 전무는 날 쳐다봤고, 난 말없이 그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까지도 편승일이는 모직 다음으로 내가 식품을 선택한 것이 자기 입장에선 똥인지 된장인지 정확하게 분간을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와 조 전무의 이동을 불편하게 느끼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이 요령껏 처세를 한다면 자신의 사장 임기 기간 동안은 무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눈치였다고 할까?
우린 다 같이 사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소파 자리로 나와 조 전무를 안내한 편승일은 상석 소파 자리 앞으로 서서 직접 손짓을 해 가며 나와 조 전무에게 자신의 양쪽 소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전무님. 앉으세요, 본부장님. 편하게 하세요, 하하.”
내가 고개를 살짝 숙여 어이없는 웃음을 고의로 흘렸더니, 그 웃음을 확인한 조 전무는 편 사장이 정해 준 자리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으려다 말고 다시 섰다.
그 모습에 편승일 사장은 잠시 고개를 돌려 가며 나와 조 전무를 번갈아 쳐다봤고, 이번엔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웃음을 흘린 후 다시 조 전무를 쳐다보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하는 눈치였다.
“아, 이쪽으로 앉으시죠, 본부장님.”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 발 옆으로 물러나 상석 소파 자리를 내게 양보한 편 사장.
그 순간 고 이사의 사무실을 저따위로 준비해 놓은 게 실수가 아닌 고의였음을 난 속으로 확신했다.
“사장님, 간 보는 거 좋아하시는구나.”
난 편 사장이 양보한 상석 자리로 옮긴 후 말했다.
“네?”
난 대답을 잠시 미뤘고, 조 전무는 내가 상석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야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편 사장이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한 후, 다리를 꼬아 놓고 대답을 해 줬다.
“지금 저 상대로 간 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같은데?”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하….”
난 싱긋이 웃으며 조 전무를 향해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룹 본사 전무 출신인 조 전무님과 제가 출근 첫날부터 사장님이 불러 주실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마냥 기다리는 게 당연한 거였네요?”
그 순간 조 전무는 양 무릎 위로 두 팔꿈치를 올려 깍지를 낀 다음 고개를 숙여 버렸고, 자신의 시선이 숨을 곳을 잃어버린 편 사장은 크게 당황했다.
“아주 재밌네요, 출근 첫날부터.”
* * *
이런 걸로는 장난을 치면 안 되는 거겠죠?
조동희 전무는 혼란스러웠다.
손정훈.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동안 남 사장과 자신을 상대로 모직에서 보여 줬던 모습은 극도로 절제된 순한 맛이었단 말인가?
손정훈이 보여 주고 있는 강력한 입장에 맞장구를 쳐 주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조 전무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자신이 쪽팔렸던 거다.
이젠 정말 은퇴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순발력은 둘째 치고, 흐름을 읽는 감마저 떨어진 기분이다.
자신은 재경이란 간판 아래, 손홍준 회장님 다음으로 가장 재경 생활을 오래 한 인물이고, 모직으로 옮겨 가기 전까지 그룹 본사에서 전무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모직을 거쳐, 지금은 손정훈 본부장을 지원하기 위해 식품으로 옮겨 왔지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이동은 강등이 아닌 것이기에 당연히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 부분에 대한 지적을 조금 전 손정훈 본부장이 했던 것이고, 그 지적이 있기 전까지 조 전무는 상황 자체를 지나치게 너그럽게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물며 손정훈 본부장은 회장님의 차남이다.
손정태 사장과 함께 후계자 경합을 시작한 재경가의 차남.
융단을 깔아 놓고 그의 식품 첫 출근을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그가 한 지적처럼 정확한 면담 시간도 정해 놓지 않고 회장 차남의 첫 임원 출근을 맞이했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정작 조 전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내용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웃고 있다.
바로 조금 전 사장실 안의 분위기를 옭아맸다가 터뜨릴 것처럼 굴었던 사람이 지금은 웃고 있다.
이건, 편 사장을 압박할 때 보였던 의도적인 비웃음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저 사람에겐 무척 편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인데,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럴 수 있는 거지?
지난 2년간 모직에서 함께 있었음에도, 손정훈의 내공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 나이에 이 정도 내공이라는 건, 타고나야만 가능한 것.
그런데 이런 모습이 과연 타고난다고 가능한 것일까?
관록이다.
탤런트가 아닌 관록.
엄청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위엄.
시총 2조 4천억.
총직원 수 6,500명을 넘긴 이 큰 조직의 사장 자리를 3년째 맡아 나가고 있는 인물을 마치 생각이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하고 있다.
여기엔 회장님의 차남이라는 배경이 절대적일 수가 없다.
자신이 직접 손정태를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쳐 보지 않았나.
도대체 날 왜 이곳으로 함께 오게 만든 것일까?
조 전무는 속으로 궁금증을 키워 나갔다.
편 사장을 이렇게 손쉽게, 그것도 단숨에 제압을 해 버릴 거면서, 도대체 왜 내가 필요하다고, 함께 식품으로 가서 자길 도와 달라고 했던 걸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 전무의 생각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을 때였다.
이미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 편승일 사장을 상대로 정훈이가 물었다.
“간 보는 걸 할 줄 아는 사람도 한 명 정도는 있어야죠. 앞으로 더는 저를 상대로 안 그러실 거라고 믿고, 제가 사장님한테 궁금한 게 있어요.”
간신히 입가를 끌어 올려 놓고 편승일 사장이 대답했다.
“네.”
“재경식품 외식사업부. 돈이 됩니까?”
조 전무가 고개를 들었다.
편 사장 역시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듯, 입을 열기 전 조 전무의 표정을 읽었다.
“물론이죠. 재경식품은 가공과 외식사업부로 나뉘는데 외식사업부가 돈이 되냐니요.”
“나뉘는 거야, 나뉘는 거고 진짜 돈이 됩니까?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로열티 이익이 상당히 들쑥날쑥하던데요? 내려갈 때는 바닥이 없는 것처럼, 올라갈 땐 천장만 있는 것처럼.”
“지난 몇 년 동안 매출이 부진했던 이유는 항공과 같습니다. 코로나 타격이 컸죠. 특히 집합 금지가 강화되고, 10시 이후로는 영업을 못 하게 하면서 24시간 영업 업장들부터 낭만포차까지, 10시 이후로 본격적인 매출이 잡히는 매장들의 타격이 엄청 컸습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고 있는 중이고요.”
“잡히는 매출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 본사로 들어오는 로열티 이익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영업 이익이요.”
정훈이 물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고 있다는 건 어디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조금 전 말씀하셨던 감자탕 브랜드 해장골을 말하는 겁니까, 아님 낭만포차 브랜드를 말하는 겁니까?”
“…….”
“회복이라는 건 안 좋아졌던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두고 회복이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해장골, 낭만포차는 제가 확인해 본 바로 코로나 기간 동안 가맹점 수가 엄청나게 빠졌던데요? 계약 기간을 다 못 지키고 철수한 업장도 마흔 곳이 넘고. 신규로 론칭한 브랜드 쪽에서 새로 잡히고 있는 매출을 포함해서 회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네, 결국 외식사업부 전체 매출로 잡히는 부분이라….”
“에이. 기존 가맹점에서 올라오는 영업 이익과, 아직 투자비도 다 뽑지 못한 신규 브랜드 가맹점에서 올라오는 업장 매출이 어떻게 같습니까?”
조 전무의 눈에 손정훈 본부장은 이미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였다.
그저 우악을 질러 상대를 압박하는 게 아니다.
편 사장 역시 단순히 손정훈 본부장의 압박 때문에 기가 밀리고 있는 게 아니다.
팩트.
이 팩트를 중간에 둔 시소가 손정훈 본부장 쪽의 무게를 더 크게 잡아 주고 있는 까닭이다.
“가공 부문에 비해서 외식사업 부문은 들어가는 품에 비해 거둬들이는 수확량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그 많은 가맹점을 두고 있는 외식사업부를 지금 당장 줄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돈가스 대표 메뉴가 뭡니까?”
편 사장은 곧바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설마 모르세요?”
“그게….”
“그럼 하나 정식 세트는 가격이 얼마입니까?”
“…….”
이건 압박이 아니다.
이건 압살이다.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조 전무 본인이 이렇게 질식을 할 듯 숨이 차오르는데, 편 사장은 어떨까.
하지만 편 사장 쪽으로 그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었다.
“해신설농탕 수육 소자는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
“와, 심한데?”
다시 한번 손정훈 본부장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흐르는 순간이었다.
“시골통닭 기본 후라이드 한 마리 가격은요?”
“…….”
“하하, 하하하하… 아니, 잠깐만. 혹시 기분 나쁘셔서 일부러 대답을 안 하시는 거예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진짜 우리 회사 메뉴 가격을 그것도 사장님이 몰라서 대답을 못 하시는 거네요? 제가 일부러 잘 안 나가는 메뉴 가격을 물어본 것도 아니고, 매장 별로 많이 나가는 메뉴 중 하나씩을 물어본 건데 우리 인간적으로 하나도 대답을 못 하신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
“아이고, 두야. 실은 제가 메뉴 가격을 알고 계신지, 아닌지 그걸 확인하겠다고 물었던 게 아니에요. 그건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어요. 그 가격을 놓고 단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물었던 거라고요. 그런데 단가까지 가기도 전에 기본 메뉴 가격에서부터 막혀 버리면 무슨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사장님.”
“…….”
“사장님?”
“…네.”
“우리 지금 외식 사업 이거 왜 하는 겁니까? 그 많은 브랜드, 그 많은 가맹점에서 올라오고 있는 영업 이익이 재경항공만을 상대로 하는 기내식 납품 영업 이익보다 낮게 잡히고 있잖아요. 가공 부문 전체도 아닌 그냥 기내식 납품으로 올리는 영업 이익보다 낮게 잡히고 있다는 건 알고 계세요?”
“…네.”
“내가 사장님이라면, 아니 사장님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어느 정도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부문장급 임원이라면 품만 많이 들어가는 외식사업부에 쏟을 집중력으로 다른 항공사를 하나 정도 더 뚫어서 기내식 납품으로 영업 이익을 확대시켜 보자거나, 아님 다른 가공 쪽 장르를 넓혀 보자는 등… 그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심각한데?”
손정훈 본부장은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강인성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본부장님.
“저 지금 사장실인데, 뽑아 놓은 자료 있잖아요.”
-네.
“그거 좀 갖다주세요.”
침묵이 흘렀다.
흐르는 침묵 속에서 편승일 사장은 생각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흘러가게 된 거지?
그리고 저 압박감은 또 무엇이고.
조동희 전무의 비위만 적당히 잘 맞추면 되는 거 아니었나?
결국은 조 전무가 앞으로 나올 게 아니었나?
물론 손정훈 본부장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여기저기에서 들었기에 직접 만나 보고 성향을 파악해 본 뒤 제대로 대비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타협이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관계를 풀어 갈 상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