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3)
하는 짓이 귀여워서 전화로 강 차장을 잠시 안으로 불렀다.
문이 열렸고, 문밖에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는 강 차장을 향해 정태는 허물없이 손짓을 하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이쪽으로 앉아요.”
“밖에서….”
“식사는 밖에서 하더라도, 나랑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요.”
“저는 운전을 해야 해서….”
머뭇거리는 강 차장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받아요. 설마 사케 한 잔에 취할까. 상황 봐서 대리 기사 부르면 되니까, 한 잔 받아요.”
강 차장은 못 이긴 척 볼이 넓은 사케 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그 안으로 술을 적당히 채워 줘 놓고, 정태가 말했다.
“앞으로 강 차장님이 옆에서 우리 정훈이 잘 좀 챙겨 줘요.”
“네.”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직은 혼자라 이것저것 옆에서 신경 써 줘야 할 게 많을 거예요. 더군다나 요즘 하는 일이 많아서 바쁘잖아요. 자, 나랑 한잔합시다.”
고개를 돌려 술잔을 비우는 강 차장의 모습을 웃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다가, 잔을 말끔히 다 비운 걸 확인하고는 자기 잔도 시원하게 비워 버렸다.
“안주도 좀 먹고 해요. 여기 이거. 이 집은 우니 이게 참 괜찮아요. 냉동이 아니야. 간도 딱 좋고.”
직접 젓가락으로 우니 한 점을 조심히 집어 강 차장 앞접시 위로 덜어 준 뒤, 그 위로 무순까지 올려 주는 정태였다.
강 차장이 그걸 손으로 가려 가며 입으로 넣는 동안 정태는 테이블 위로 흰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제법 두께감이 느껴지는 봉투였다.
“한 잔 더 하시죠?”
“아닙니다, 사장님. 괜찮습니다.”
“내가 술을 억지로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쉽기는 해도 더는 못 권하겠네. 이거 강 차장님 드리려고 좀 챙겨 왔어요.”
강 차장은 그걸 받지도 못하고 거절도 못 하는 상태로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정태는 그런 강 차장의 손에 거의 반강제로 그 봉투를 쥐여 주었다.
뭐가 들었을까, 저 안에.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들, 가끔씩 따로 용돈을 챙겨 주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긴 해도 강 차장에게 설마 용돈을 챙겨 주는 건 아닐 테고….
별거 아니라는 듯 정태가 내게 말했다.
“이번에 오프라인 유통판 이름을 싹 다 스너프로 바꿨잖아. 그거 바꾸면서 백화점 상품권도 디자인을 다 새로 했거든.”
그렇게 말하고 나서 긴장을 하고 있는 강 차장을 상대로 정태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돈 아니에요. 상품권. 그냥 받아도 돼.”
“…….”
“상품권 안에 TMG 번호가 들어있어요. 스너프 가입돼 있죠? 백화점, 아웃렛에서도 쓸 수 있고, 스너프 앱에 TMG 번호 넣으면 앱 쇼핑도 할 수 있게끔 그렇게 만든 거예요.”
어쩔 줄 몰라 하는 강 차장에게 “좋은 걸로 정장 한 벌 새로 맞추면 되겠네.”라며, 받아도 되는 거라고 눈치를 줬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하. 전략기획실 출신이라 그런가? 편한 자리에서까지 너무 딱딱하시다. 그래요, 근데 진짜 한 잔 더 안 하실래요? 강 차장님도 같이 드실 거라고 음식을 일부러 좀 많이 시켰는데.”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두 분이서 편하게 시간 가지십시오.”
강 차장이 나가고 난 뒤, 내 잔을 채워 주며 정태가 말했다.
“사람 괜찮다. 눈치도 있고, 입도 무거워 뵈고.”
뭐 얼마나 봤다고, 꼴랑 술잔 한 번 나눠 놓고 사람이 괜찮다, 안 괜찮다 판단이냐, 이놈아.
물론 강 차장이 괜찮은 친구인 건 맞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이런 자리를 가지며 옆에 사람 칭찬을 해 줄 땐, 그 템포를 한 박자 정도 늦춰야 한다.
안 그럼 속이 보여.
난 정태가 들고 있는 잔을 건네받아 손주 놈의 잔을 채워 줬다.
이것도 참 재밌네.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정엽이 놈까지 함께, 홍준이 놈, 남 사장 다 불러다 다 같이 이렇게 한잔할 수 있는 날.
강 차장에 해 줬던 것처럼 성게알을 내 앞접시 위로 덜어 줘 놓고, 무순을 올려 준 뒤 손짓을 하는 정태였다.
“한번 먹어 봐. 먹을 만할 거야.”
확실히 괜찮네.
지난 1년 반 동안 내가 경험해 본 식당 중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곳이다.
“괜찮지?”
“맛있네. 같이 먹어. 왜 안 먹어?”
“그… 아까 같이 한잔하자고 전화 걸기 전에, 편 사장한테 전화를 받았어.”
그랬겠지.
그런데 그걸 또 왜 나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야.”
“뭐가?”
“네가 편 사장한테 그런 말을 했다며?”
“무슨 말?”
“편 사장이 내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이 정도로 끝내는 거다… 뭐 그런 말?”
어디 보자….
기회가 좋네.
그래, 이참에 우리 손주 놈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확인을 좀 해 보자.
“진짜 그런 말을 편 사장한테 했어?”
“했지. 했어.”
“첫날부터 너무 세게 나간 거 아냐? 그것도 내 사람인 줄 뻔히 다 알면서?”
“내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기회를 한 번 더 줬다는 이야기는 안 했던 모양이네.”
“그런 말도 했어?”
“했는데, 분명 알아듣기 쉽게 해 준다고 해 줬는데, 그 말이 어려웠나? 그 기회를 잡지를 못하네, 그 사람이.”
“내 사람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위치에 맞는 일이 뭔지를 몰라. 자리만큼의 실력은 없으니 그런 거겠지?”
코로 숨을 내쉰 뒤 사케 잔을 든 정태.
녀석은 입술에 사케 잔을 붙여 놓고 날 쳐다봤다.
* * *
상상도 하기 싫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사람만큼 어려운 대상이 어디에 있겠나.
이런 걸로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정태 놈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있을 땐 편 사장이 정태 마음에 들도록 일을 썩 잘 해냈겠지.
그런데 아직 정태 놈이 스너프에서 식품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정도의 경험은 없는 것일 테고.
그래도 얼마나 기특한가.
자길 위해, 직장 목숨 줄을 걸고 경쟁자를 대신 견제해 줄 사람을 두고 있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정태 녀석의 나이와 경험에 그런 일들을 벌써부터 해낸다는 건.
이걸 어떻게 내가 안 좋게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사람을 만든다는 거, 그 사람을 심는다는 거, 그리고 그렇게 심은 사람들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거.
결국은 그게 경영이고, 조직 관리인 것을.
그렇게 놓고 보면, 정태 놈이 홍명이 놈이나 제 애비 홍준이 놈보다 나은 것도 같다.
아닌가?
홍명이, 홍준이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재경의 모든 인물이 나의 사람이었기에 그럴 엄두를 애초에 내질 못했던 걸 수도.
생각이 많아진다.
그와 동시에 어쨌거나 정태 이놈이 최소한 사람을 다루는 자질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타고난 거 같아 웃음이 나오고.
술잔을 비워 놓고 정태가 말했다.
“나나 고모부, 우리 재경가를 제외하고 사장 승진을 가장 빨리한 사람이 편 사장인 건 알아?”
“그렇다고 하는 거 같더라. 서울대 출신이더니만. 머리가 좋은 모양이야. 그 좋은 머리, 좀 회사에 도움이 되는 데 쓰든가 안 하고….”
“그런 사람을 하루 경험해 보고 자리만큼의 실력이 없는 거 같다고 평가를 하는 건 너무 성급한 거 아냐?”
“하루까지도 필요 없었어. 30분. 아니, 그냥 보자마자 바로 알겠더라.”
“뭘?”
“이 사람은 성과가 아닌, 실력, 능력이 아닌 줄로 살아남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구나… 하는걸.”
“줄을 잘 잡는 것도 능력이야.”
“줄만 잡는다고 되나. 그걸 잡고 올라갈 줄 알아야지. 아님 요령껏 버티기라도 하든지. 맞는 줄을 잡고도 올라갈 힘, 버티는 힘이 없으면 결국 떨어지는 거야. 바닥엔 맞는 줄을 잡았든, 틀린 줄을 잡았든 결국 다 똑같이 떨어진 사람들 뿐이고.”
“외식사업부를 정리하자고 했다며?”
녀석의 잔을 채워 주었다.
정태 놈이 식품 쪽에 애정이 많다.
특히 외식사업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 눈엔 아무리 봐도 가능성이 없는 분야 같은데, 정태 놈의 눈엔 뭔가 보였던 게 있겠지.
결국은 잘못 본 거였겠지만.
“내가 외식사업부를 정리하자고 했다는 식으로 말을 했나 보네.”
“아니야?”
“다행이다.”
“뭐가?”
“그런 엉뚱한 소리에 나한테 직접 확인도 안 해 보고 혼자 오해를 하는 게 아니라서.”
“아니야?”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인데, 그래도 내가 한 말의 뉘앙스는 그런 게 아니었지.”
“그럼?”
정태 놈 역시 내가 잔을 비우기가 무섭게 내 잔을 채워 주었다.
“우리 외식사업부 매장들의 메뉴 가격을 하나도 모르더라.”
“…누가? 편 사장이?”
“하나돈가스 대표 메뉴가 뭔지, 해신설농탕 수육 가격, 심지어 시골통닭 기본 프라이드 한 마리 가격이 얼마인지도 몰라.”
“…….”
“그래서 내가 물어봤지. 우리 브랜드 매장에 한 번씩 가 보기는 하냐고. 가서 먹어 보기는 하냐고. 대답을 못 해. 그래서 그랬지? 사장도 직접 가서 안 먹는 우리 브랜드, 지금 우리가 외식 사업을 도대체 왜 하는 거냐고. 그런데 설마 그게 끝이었어?”
정태 녀석의 이마 위로 힘줄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뭐가 더 있어?”
“재밌는 사람이네, 편 사장.”
“왜?”
“내가 분명히 검토를 한번 해 보라고 어렵게 정리를 한 자료까지 다 주고 왔는데, 내가 왜 자기한테 그런 말을 한 건지 제대로 파악도 안 해 보고 형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런 소릴 했나 보네.”
“자료? 무슨 자료?”
“그걸 봤으면, 글쎄… 내 상식에선 전화로 그런 소릴 할 수가 없었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무슨 자료?”
이해를 시켜 주고 싶었다.
사람이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아닌 길에 이상하게 꽂혀서 그 길을 포기하지 못하는 순간.
정태에게 재경식품 외식사업부가 그런 것일 수도 있지.
홍준이 놈이 그룹 본사로 불러들일 때에도 식품 쪽에서 자신이 뜻한 바가 있어 2년 정도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지 않나.
“사람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제라고 생각해?”
“왜 갑자기 주제를 바꿔?”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내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도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때. 그런데 여기에서 더 불행한 건 내게 힘이 있을 때야. 힘이 없을 땐 그냥 혼자 미련을 못 버리고 끝까지 집중을 하다가 포기를 하면 되지만, 힘이 있어서 그 미련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를 할 수 있게 되면, 여러 사람이 함께 피곤해지는 거거든.”
“그게 외식 사업이다?”
“뭐가 목적인데? 돈이야, 아님 재경의 가치야?”
“…….”
“둘 다 못 건지는 사업이야, 외식 사업은. 우리가 가진 브랜드로 해외 수출이 가능해? 안 돼, 힘들어. 왜? 우리에겐 외식 사업만 있는 게 아니거든. 우리 재경에는 똑같은 에너지를 쏟았을 때 더 많은 걸 건져 올릴 수 있는 사업들이 분명 있어. 항공, 스너프. 그리고 모직. 다 수출이 외식 브랜드보다는 수월한 것들이잖아. 우리 외식 사업을 수출하는 건 백종원 같은 애들, 작게 그 분야에만 올인하고 있는 애들이 하게 양보를 해 주자. 걔네들은 그게 전부잖아. 거기에 미쳐 있는 애들이고.”
“…….”
“그런데 우리한테 백종원 같은 사람이 있어? 완전히 그쪽으로 미쳐 가지고, 어떻게든 그걸로 큰 성공을 만들어 내겠다… 하는 사람이 있냐고. 없잖아. 형이 진짜 그쪽으로 진심이라서 나는 이 길만 판다… 하면 또 모르겠어.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지? 그냥 돈으로 괜찮은 아이템 시장에 나오면 사들여서 프랜차이즈화시켜서 가맹점 수 확장하고, 유행 끝나면 사그라지는… 지금 재경식품의 외식사업부가 딱 그렇잖아.”
왜일까.
정태의 얼굴에 웃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의미가 있는 웃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미소였다.
“그래도 외식사업부는 유지가 되어야 해. 가맹점이 몇 갠데, 그걸 하루아침에 없애? 말이 안 돼. 아버지도 크게 화를 내실 거고.”
“방법을 찾았어. 그리고 그 방법을 편 사장한테 줬고. 그런데 그걸 안 본 모양이야. 내용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그랬으니 그런 전화를 한 거겠지.”
“그래도 출근 첫날부터 마지막 기회니, 그 기회를 소중히 지켜야 할 거라느니… 그런 말을 한 건 좀 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