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6)
―오올… 양심은 있는데?
“그동안 너희 집안에서 챙겨 준 우리 집안의 체면이 있는데, 지금부터는 나라도 미래금융 장손녀의 체면을 챙겨 줘야 하지 않겠어?”
그러고 있을 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하늘이와의 통화가 거의 다 정리되어 갈 때였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며 편 사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전날에 비해 한결 가벼워진 모습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3시 20분.
많이 늦긴 했지만, 어쨌거나 조 전무가 내가 식품으로 데리고 오며 주문했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거 같다.
내가 소파 자리로 옮기는 동안, 편 사장이 먼저 소파에 도착했다.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랬기에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어제는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거든.
“앉으세요.”
내가 먼저 상석 자리에 앉아 자리를 권한 뒤에야 편 사장은 어제 내가 확인을 해 보라고 건넸던 기획안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제가 사장님을 찾아갈까 했습니다.”
난 테이블 위로 편 사장이 내려놓은 기획안을 쳐다보며 말했고, 그에 편 사장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저는 괜찮게 확인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들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오전부터 편 사장은 바빴다.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 오전 근무 시간 내내 사장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내 방으로 다 들어왔었다.
많은 임원들을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내가 건넨 기획안을 따져 보고 있을 거라는 예상 정도는 나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그것보다 우선 어제 일은….”
“유감입니다.”
내가 먼저 자르고 들어갔다.
“저도 손정태 사장이 그 문을 열 줄은 몰랐어요.”
“고성표 본부장 방을 그렇게 배정시킨 부분에 있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상무님도 새로 오셨는데, 빠른 시일 내로 임원들 다 같이 식사 자리를 한번 마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자리는 성과로 관계가 만들어진 다음에 차근차근 마련해 봅시다. 조 전무. 그런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는 사람 아닙니까.”
“…….”
“관계로 성과를 만드는 거보단 성과로 관계를 만드는 게 회사에 더 큰 도움이 됩니다.”
편 사장의 고개가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사장 자리에 앉아 계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저도 그러겠다고 조 전무와 함께 식품으로 넘어온 거고요. 자, 어제까지 있었던 우리 관계는 이걸로 정리하고 이제 사업 이야기합시다. 다른 사람들은 그 기획안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고개를 살짝 들어 내 눈치를 살피며 편 사장이 물었다.
“그게… 끝이십니까?”
“왜요? 뭐가 더 있어야 됩니까?”
그냥 넘어가 준다고 할때, 조용히 넘어가자, 이 친구야.
앞으로 날 도와 해 나가야 할 일이 태산인데, 태산 같은 일을 해 나가야 할 친구가 무슨 그런 먼지 같은 일에 발목이 잡혀 있나.
난 이 친구가 지금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거 같아,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 줬다.
“사장님. 우리 성과로 관계를 만들어 봅시다. 저는 제 편 만들겠다고 식품 생활 시작한 게 아닙니다. 그건 사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앞으로 사장님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저와의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면, 좋은 성과를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저도 그렇게 노력을 할 거고요. 저는 진짜 이게 끝인데, 다른 게 더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그제야 편 사장의 두 눈에 안심이라는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 전무가 그랬다.
편 사장.
실력 하나만큼은 괜찮은 친구라고.
나는 아직 그 실력을 보지도 못했는데, 잠시 내 편 안 들어 줬다고 홀대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우리 재경이나 그간 자기 동아줄인 줄 알았던 정태 놈을 배신했다면 또 모를까.
나는 오히려 어떻게든 정태 편에 남겠다고, 그 엉뚱한 짓, 경솔한 행동을 한 게 조금은 예뻐 보이는데?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니, 마땅히 그렇게 해야 맞는 거지.
그러니 피아 식별도 제대로 못 해 이런 친구를 그렇게 몰아붙이고, 낭떠러지 앞으로 밀어 버린 정태 놈이 내 눈엔 불안해 보일 수밖에.
“자, 그럼 이제 서로 불편할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진짜 일 이야기합시다. 사장님은 좋게 보셨다고 말씀을 주셨고… 다른 분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질문만 받았습니다.”
“어떤 질문이요?”
“직접 맛을 보지 않고 콘셉트만으로 상품성을 말하기는 사실 곤란합니다.”
“그렇겠죠.”
“중앙개발연구소 비스킷․파이팀의 연구원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시켜서 소비자 조사부터 해 보는 게 순서 같습니다.”
당연한 소리.
“내일 아침에 도착을 할 겁니다.”
“도착을 한다면…?”
“당분간 테스트용으로 삐에르 에슈메 쪽에서 매일 한 렉(마카롱 120구, 티라미수 80컵)씩 당일 만든 마카롱과 티라미수를 보내 주기로 했어요. 재경항공 쪽에서 딜리버리 지원을 해 줄 겁니다. 다른 질문은요?”
“만약 내일 아침에 도착을 해서 우리가 그걸 받을 수 있다면, 다 같이 테스트를 하면서 회의를 하는 게 훨씬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가 받은 질문 중에 맛이 대답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거니까요.”
“그럼 내일 회의는 그냥 바로 연구소에서 하는 걸로 할까요?”
“연구소에서요?”
* * *
역사를 산 겁니다
재경식품 중앙개발연구소(재경 R&D CENTER).
1982년에 제과 쪽으로는 독일 ‘그리델’, 음료 쪽으로는 일본 ‘혼쯔’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설립했던 당시엔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개발연구소였다.
연구실의 규모만 놓고 보면 아직도 국내 최대 규모 수준인 걸로 알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라면과 유제품 쪽 개발에 큰 투자를 일으켜 빠르게 업계 순위를 장악해 나갔고, 내가 손중길이의 몸에서 눈을 감기 바로 전까지는 가공 커피 부문이 효자 종목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열 손가락을 다 펼쳐도 내가 이뤄 낸 사업들을 다 꼽을 순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은 어쩔 수 없이 식품이다.
식품 쪽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다 열어 줘 놓고 눈을 감았건만, 그 많은 가능성을 중에 왜 하필이면 외식사업 부문이라는 한계가 명확한 길을 선택해서 집중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일까.
결국 외식사업 부문은 잘해 봤자 국내용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라면에 좀 더 집중을 해서 불닭볶음면 같은 제품을 개발해 냈더라면, 남들보다 한발만 더 먼저 앞서 즉석밥 같은 걸 개발해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연구소 안을 둘러보는 내내 날 분하게 만들었다.
분함.
그랬다.
난 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16개 연구실 중에 외식사업부 신메뉴 개발을 위한 연구실이 7개나 된다는 말이네요?”
날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조 전무가, 왼쪽으로는 편 사장이 나란히 걸으며 연구실 상황을 함께 확인했다.
나와 편 사장 사이에 끼어 한 발 정도 뒤에서 걸으며 연구소장(상무) 김익철이 대답했다.
“네, 그런데 단순히 업장 신메뉴 개발만 하는 게 아니라 밀키트 제품 개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야 당연한 거고요. 전체 연구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외식사업부 쪽으로 잡혀 있는데 당연히 그 안에서 밀키트 제품 개발도 함께해야죠. 그런데….”
조금만 더 걸어가면 관능평가실이었다.
그 앞으로는 자신이 평가를 할 순서를 기다리는 흰색 연구원 복장의 사람들이 복도 의자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편승일 사장과 김익철 소장을 발견한 그들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앞에 도착을 해서 난 고개만 살짝 돌려 김 소장에게 물었다.
“우리 재경식품의 외식사업부 프랜차이즈 매장이 전국에 총 몇 개나 됩니까?”
“제가 거기까지는….”
김 소장이 우물쭈물하자, 얼른 그 옆에서 모범태 전무가 그를 도왔다.
일반 연구원들이 다 보는 앞이라 용기를 내어 김익철 소장을 구해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소장님은 이 안에서 식품 연구 개발이나 식품 안전 관리에 관한 책임을….”
하지만 난 망설이지 않았다.
“브랜드별 매장 수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고작 우리 회사 브랜드 프랜차이즈들의 총매장 수를 확인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립니까, 아님 하루가 걸립니까?”
나의 따끔한 지적에 모 전무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영문을 모르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들은 애써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모르는 척을 시작했고, 김 소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대략 1,300곳 정도가 된다고 알고는 있는데, 정확한 매장 수까지는… 확인해서 앞으로는 반드시 숙지하고 있겠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1,352개 업장이 있습니다. 그중 본사 직영 매장은 14곳.”
이번엔 다른 임원들 전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반면에 전국에 우리 재경식품의 기성 가공품을 판매하는 대형 마트, 백화점, 편의점, 도매 마트… 그런 유통 채널은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한국 식자재를 판매하는 해외의 유통 채널은요?”
“…….”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런 유통 채널은 우리의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알아서 계속 증가가 될 거라는 겁니다. 우리가 직접적인 투자를 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매장에 우리 재경의 상품을 깔아서 재경이라는 기업 홍보를 알아서 해 줄 매장들 말입니다.”
“…….”
“그런데 우리 외식 프랜차이즈 매장들은요? 해장골이 우리 재경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라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낭만포차는요? 4000짜장, 하나돈가스는요? 매출도 안 나와, 수출도 안 돼, 그렇다고 기업 이미지 홍보가 되는 것도 아니야. 도대체 이런 사업에 왜 이 비싼 연구실을 7개나 할당하고….”
관능평가실 앞으로 모여 있는 연구원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비싼 고급 인력들을 이렇게 많이 배치를 시키고 있는 겁니까?”
* * *
관능평가실 안은 신중했다.
평가실의 시설 상황을 확인해 보려고 잠시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 미세한 문 여는 소리에도 오감을 이용해 맛 평가를 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흐트러지는 집중력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안으로 들어선 인물이 사장과 소장, 그리고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에 신경질적이었던 표정을 급하게 숨기긴 했지만, 괜히 안의 상황을 살펴보겠다고 그들의 집중력을 방해한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관능평가실.
총 7개의 개별 칸막이 책상이 벽으로 붙어 있고, 반대 벽에서 책상에 난 작음 홈으로 평가할 상품을 넣어 주는 구조.
책상 위로는 모니터와 키보드가 올려져 있었는데, 한 번의 테스트가 끝이 나는 순간 연구원들은 자신의 평가를 여과 없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다시 몰두했다.
파리에서 공수되어 온 마카롱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국내 고급 전문점 마카롱 세 개와 함께 섞어 간단하게 A, B, C, D로 분류, 그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긴 뒤 개별 평가를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한 평가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내심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연구원들이 관능 평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 사장과 김 소장에게 나가자는 눈빛을 보낸 후, 우린 곧바로 회의실로 올라갔다.
회의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에는 내가 이번 회의에 참석을 요청했던 선임 연구원 두 명이 개인 앞접시 위로 파리에서 건너온 마카롱과 티라미수를 소분해서 각 회의 자리마다 내려놓고 있었는데, 조금 전까지 무슨 대화를 그렇게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갑자기 입을 꼭 다물고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물었다.
“관능 평가 먼저들 하셨죠?”
“네, 저희가 제일 먼저 끝내 놓고 회의 참석 준비 중이었습니다.”
단발의 연구원이 대답했다.
연구원 복에 수놓아진 그의 이름은 조가영.
비스킷‧파이팀의 선임 연구원이라고 한다.
그럼 당연히 함께 회의를 준비하고 있던 남자 연구원은 커피팀 선임 연구원이겠고.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에서 마카롱과 티라미수는 아무래도 커피와의 궁합을 안 따져 볼 수 없었기에 일부러 이 두 사람을 회의에 참석시키라고 요청을 했었다.
“이제 어떤 게 앞으로 우리가 개발해야 할 맛인지 아시겠네요?”
그 물음에 조가영 연구원은 싱긋이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는 평가를 하면서 바로 알았습니다.”
“어떻게요?”
“제가 신혼여행을 파리로 갔었거든요.”
“아….”
“하는 게 맛 테스트고 개발이다 보니 파리까지 가서 삐에르 에슈메를 안 들러 볼 수 없었죠. 티라미수는 이렇게 컵으로 나오는 게 삐에르 에슈메의 시그니처니까 맛도 볼 필요가 없었고, 마카롱 역시 질감이 다르거든요.”
“어떻게 다른데요?”
“베어 먹지 않고 손으로 잘라서 먹을 때 파이 표면에 균열이 거의 안 생긴다는 특징이 있죠. 그런데 식감이 무르지가 않아요.”
왜 그런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독특하게도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은 파이가 아닌 크림으로 질감의 점도를 잡습니다. 보통 크림의 점도를 높이려면 슈거 함량을 높여야 해서 당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잘 잡아 내어서 불편한 단맛을 없앴죠.”
“혹시 어떻게 없앴는지는 아세요?”
“아몬드 파우더죠. 비율까지는 제가 아직 실험을 안 해 봐서 어느 정도 비율로 혼합을 시켰겠다 바로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아마도 삐에르 에슈메의 마카롱엔 아몬드 파우더 함량이 높을 겁니다.”
옆에 있는 커피팀 선임 연구원에게 물어봤다.
“평가하시면서 여러 상품 중 어떤 게 제일 맛있다고 선택하셨어요?”
“저도 마카롱, 티라미수 둘 다 이 가게 상품에 제일 높은 평가 점수를 줬습니다.”
“다행이네요.”
내가 좋은 평가를 받아 기분이 좋다는 식으로 말을 했더니,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상대였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었다.
“조가영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