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85)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아?
이걸 정태 이놈이 똑 부러지는 거라고 봐야 하는 건가, 아님 정엽이 이놈이 객기를 부리는 거라고 봐야 하는 건가?
객기가 아닌 자신감이라고 봐 주기엔 정엽이 이놈이 너무 큰 걸 걸었는데?
“글로벌 체인화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태가 제안한 대로 정엽이까지 함께 불러서 가족회의 비슷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자리에도 원수경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
정엽이는 정엽이 나름대로 그간 부경호텔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많은 계획을 세웠을 거다.
그걸 의심할 필요는 없는 거지.
그리고 그 계획 속엔 경영권을 가져온 뒤 사업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한 연구도 많이 들어가 있었을 테고.
글로벌 체인화?
당연히 해야지.
이미 ‘드 누락’이라는 브랜드를 쓰고 있는 호텔이 프랑스에 6개가 있지 않나.
속된 말로 부경호텔 경영권만 가져가서 거기에 ‘드 누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그 자체가 이미 글로벌 체인 브랜드가 되는 거 아닌가.
다른 해외 지점은 순차적으로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고.
그런데 문제는 정태 이놈이 옆에서 아주 지능적으로 정엽이를 긁어 대기 시작했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이놈들이 어렸을 때 재롱을 떠는 걸 보는 것만큼 꽤 쏠쏠했다.
“당연히 가능은 하겠지. 돈만 있으면 못 할 게 어디에 있어?”
적당한 선을 지켜 가며, 정엽이 놈이 보이고 있는 자신에 오류를 지적해 나가는 정태 놈의 실력은 내가 봐도 수준급이었다.
결코 유치해 보이지가 않았다.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실제 그 지적은 사업적 결정이라는 걸 해야 하는 홍준이 놈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으리라.
한발 뒤로 물러나, 이 세 놈이 만들어 나가는 자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할까?
확실히 우리 세대와 비교해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똑똑하다.
똑똑하고 과감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집안의 최고 어른 홍준이가 지켜보고 있는데 저런 말들을 서슴없이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재경을 이끌 당시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
어디 감히 내가 있는 앞에서 저렇게까지 가감 없이 서로의 목적을 상대에게 보여 주고, 서로의 전투력을 노골적으로 체크해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방법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고 있단 말이지, 지금 내가.
그래서 홍준이 놈까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걸지도.
이렇게 정엽이, 정태, 그리고 내가 재경의 미래를 서로의 가치관대로 그려 보고, 그걸 이야기해 나갈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다는 것 자체, 그리고 자신의 잣대로 정답, 오답을 나누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봐 주는 홍준이 놈이 지금 내 눈엔 참 대단해 보였다.
내가 이놈들한테 배울 게 다 있네.
참 오래 살고… 아니지, 다시 태어나고 볼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궁금한 건….”
단어를 선택하는 센스 역시 나쁘지 않았다.
‘우리’라는 표현 대신 ‘나’라는 표현을 써서 지금 자신이 퍼붓고 있는 질문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홍준이의 의심이 아닌 정태 본인의 개인적 의심임을 확실히 짚어 주고 있었다.
“그 호텔이 글로벌 체인화가 되었을 때 우리 재경 쪽으로 어떠한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느냐는 거야. 결국 우리 재경이 가지고 있는 12퍼센트 지분은 부경호텔 지분이야. 그런데 형은 지금 부경호텔 경영권을 가져가서 호텔 이름을 바꾸고 100퍼센트 드모어 지분인 ‘드 누락’에 흡수를 시키겠다고 하고 있어.”
예리한 지적.
“그런 지배 구조 속에서 글로벌화가 되어 본들 우리 재경이 볼 수 있는 재미에는 한계라는 게 있는데, 부경호텔이라는 우리 큰이모 집안과 관계가 어색해질 것까지 감수해 가며 형을 지원해 줘야 할 이유가 없잖아.”
“아니지, 네가 지금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한 거 같은데, 나는 지금의 부경호텔을 ‘드 누락’에 흡수시키겠다고 말한 게 아니야. 이걸 어떻게 흡수를 시켜? 부경호텔 사업 규모나 브랜드 가치가 4성급 위주의 ‘드 누락’보다 최소 세네 배 이상은 크게 잡히는데. 거기다 지배 구조도 아예 다르고. 할 수 있다고 해도 주주들이 가만히 있겠어? 이건 국제 소송감이야.”
“그럼?”
“이름을 같이 쓰겠다는 거야. ‘드 누락’ 앞으로 재경의 약자를 붙여서 ‘JK 드 누락’으로.”
“그럼 현재 프랑스에서 돌아가고 있는 호텔들의 이름은?”
“그것들은 그냥 그대로 써야지. 대신 앞으로 ‘드 누락’의 이름으로 만들어질 호텔들은 앞에 ‘JK’를 붙여서 ‘드 누락’의 지분 100퍼센트를 가지고 있는 드모어의 호텔 사업과는 별개라는 걸 구분 짓겠다는 거야.”
정엽이 이놈도 주장이 꽤 강하다.
결국엔 정태의 고개까지 끄덕여지게 만들어 냈다.
“부경의 이름을 계속 걸어 놓고 장사를 할 수는 없는 거 아냐. 그렇다고 재경의 이름을 다시 걸어? 작은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그것도 조금 아닌 거 같거든요. 사업이 전쟁도 아니고, 부경이 가져갔을 땐 부경의 이름으로 바꿨다가 그걸 다시 우리가 가져왔다고 재경의 이름으로 바꾼다? 유통은 안 그러셨잖아요. 부경유통에서 가져온 사업들은 다들 스너프로 이름을 변경시키셨잖아요. 하지만 뿌리만큼은 재경의 것이니까, 그걸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게끔 앞에 ‘JK’ 약자를 붙여서 새 출발을 시키겠다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는 달리, 확인은 확인이라는 듯 재차 정태가 물었다.
“그 말은 앞으로 드모어는 호텔 사업 쪽으로는 프랑스에 있는 호텔들을 제외하고는 100퍼센트 이쪽에서 집중을 하겠다는 뜻이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여기에서 정엽이는 자신이 준비해 온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현재 운영 중인 ‘드 누락’ 호텔들도 부경호텔의 경영권을 가져가서 사업이 어느 정도 내가 기대한 궤도에 오르면 ‘JK 드 누락’으로 흡수시킬 생각이고.”
“아깝지 않겠어? 그건 아까울 거 같은데? 아니지, 아깝다고 하기보단 위험하지 않겠냐고 묻는 게 맞는 걸까?”
“11퍼센트 지분만 가지고 있는 지금 상태에선 당연히 위험하지. 하지만 경영권이 바뀌는 순간 현재 부경호텔 쪽 우호 지분으로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크게 일어날 거고, 동시에 소액 주주들의 움직임은 요동을 칠 거야.”
“그때 지분 공개 매수에 나서겠다?”
“일반적인 수순 아닌가?”
“그 수순에 우리 쪽 12퍼센트, 드모어의 11퍼센트 지분 확보 비율을 5년간 계속 유지를 해 나가겠다?”
그 물음에 정엽이는 고개를 단단하게 끄덕여 놓고, 정태가 아닌 홍준이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 5년 안에 현재 재경 그룹이 가지고 있는 부경호텔 지분 12퍼센트가 15퍼센트까지 잡힐 수 있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
정엽이가 보이고 있는 자신에 홍준이 놈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 나와 같겠지?
끼어들고 싶지가 않았다.
정엽이, 정태 이 두 놈이 장군, 멍군을 외쳐 가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보고 있는 것만 해도 재미가 있었다.
이 두 놈이 앞으로 서로 불편함 없이 가깝게만 지낼 수 있다면, 서로 함께할 수 있게만 만들 수 있다면 이미 그 자체만으로 재경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
그런 확신을 홍준이 놈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형. 정엽이 형. 우리가 지금 그렇게 두루뭉술한 형 목표나 듣자고 이런 자리를 만든 게 아니잖아. 어차피 이번 레이스에 캐스팅 보트는 우리 재경이야. 형 말대로 우리가 형을 밀어서 드모어 인베스트먼트가 부경호텔의 경영권을 가져가게 되면 현재 그쪽 우호 지분들부터 시작해서 소액 주주들 이탈을 무조건 일어나. 여기에서 12퍼센트를 15퍼센트까지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는 게 우리 입장에서 무슨 매력적인 공약이 될 수 있겠냐고. 아닌 말로 3퍼센트 지분 더 가져오는 데 우리 돈이 안 들 것도 아니고, 결국은 우리가 우리 총알로 지분을 더 확보하는 거밖에 더 돼? 그렇잖아.”
정엽이를 쳐다보는 홍준이 놈의 눈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대답을 내놓을 거냐는 듯, 기대를 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5년 안에 인터내셔널 브랜드 제외, 한국 로컬 브랜드 안에선 호텔업계 1위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마치 그런 구체적인 공약을 기다려 왔다는 듯 정태의 한쪽 입꼬리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쉽지 않을 건데? 아무리 현재 부산에 미래금융, 동명물산 끼고 큰 프로젝트를 계획 중에 있다고 해도, 5년 안에 국내 호텔업계 1위라… 이건 내가 형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야. 오해는 하지 마. 그런데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도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아?”
그 말에 정엽이 역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만년 업계 3위 자리만 지켜 왔던 재경모직을 정훈이는 단 1년 반 만에 업계 1위로 올려놨어. 해내기 전엔 다들 불가능이라고 했을 거야. 해내고 나니까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걸 테고.”
“나도 형이 정훈이가 모직을 1년 반 만에 업계 1위 자리로 올려놓은 것처럼 호텔을 그렇게 만들어 냈음 좋겠어. 비록 약자로 들어가는 거지만, 바꾸겠다는 이름 앞에 우리 재경의 이니셜이 들어간다는 것도 나름 설레고. 하지만 형이랑 정훈이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 우리 입장에선.”
“……?”
“정훈이는 어차피 나랑 같이 앞으로 재경을 이끌고 가야 하는 사람이고, 형은 우리가 부경호텔 지분을 지원 형식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 사람이잖아. 투자라는 게 잘되면 좋지만, 항상 기대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는 없는 거니까. 거기다 우린 큰이모 집과 척을 져 가며 드모어 쪽으로 투자라는 모험을 해야 하는 거야. 만약 우리가 드모어 쪽으로 우리 지분 12퍼센트를 지원한다면.”
“그래서?”
“형이 5년 안에 호텔 사업을 업계 1위로 만들어 내든 못 만들어 내든 우린 큰이모 집이라는 관계를 무조건 포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하는 거야.”
이 부분이 정태 놈에겐 가장 큰 무기인 것이겠지.
“작년에 부경유통이랑 그렇게 한바탕 하고, 이번엔 호텔이랑? 이건 단순히 큰이모 집하고의 관계만 어색해지는 게 아니라 부경 전체와 껄끄러워질 걸 감수해야 하는 거야.”
신기하게도 그런 말을 하는 정태의 모습에서 앞으로 껄끄러워질 부경과의 관계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5년을 믿고 기다려 줬는데 업계 1위까지 못 만들어 냈어. 지금의 부경호텔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거야. 그럼 우린 큰 재미도 못 보는 투자에 큰이모 집이라는 관계까지 잃어 가며 형, 그리고 미래금융 좋은 일만 시켜 준 꼴이 되는 거잖아. 그건 호구 잡혀 주는 거지, 투자라고 할 수 없는 거 아닐까?”
“담보를 잡아 달라, 그런 뜻으로 내가 해석을 하면 되는 건가?”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고 하는 내 말에 형이 그렇게 담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면, 내 입장이 뭐가 돼?”
“그럼 담보 말고 뭐가 필요한 건데?”
확실히 정태 이놈이 악착같은 구석은 있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 5년이란 시간 동안 형이 그걸 못 해내면, 그다음 기회는 우리 재경이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닐까?”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동안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던 홍준이가 결국은 끼어들었다.
“그만. 정태는 그만하고, 정엽이도….”
“그렇게 하자.”
정엽이 입에서 그렇게 하자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홍준이가 말릴 새도 없이, 정엽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작은아버지. 정태 말에 일리가 있어요. 작은아버지, 숙모님 입장에선 절 도와줌으로 인해 잃어야 할 게 적지가 않겠습니다. 특히 숙모님은….”
차마 뒷말은 잇지 못하고 있다가, 표정을 바로 고친 뒤 계속 말을 이어 가는 정엽이었다.
“제가 5년 동안 경영을 해 보고, 말씀드린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정태가 말한 것처럼 호텔 경영권은 작은아버지께… 이걸 한국말로 뭐라고 해야 하는 거죠? 돌려드린다는 아닌 거 같고, 넘겨드린다? 아무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홍준이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쓸데없는 소리. 네 의지가 그 정도로 단단하다는 걸 확인한 것만 해도 충분하다.”
“아버지….”
정태가 보이고 있는 답답함에 홍준이는 엄한 눈길로 입을 닫게 만들어 놓고 정엽이에게 말했다.
“대신 정엽이.”
“…네, 작은아버지.”
“앞으로 네 아버지 산소는 네가 직접 챙겨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이젠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이젠 명절 되고 하면 여기 정태, 정훈이한테 네가 날짜, 시간 정해 줘서 데리고 직접 다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업과 집안일은 별개다. 사업을 할 땐 모르겠지만, 집안 어르신들 산소 찾아가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정엽이 네가 앞으로는 그간 못 했던 장손 역할을 똑바로 해라. 정태, 정훈이도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정엽이 말 잘 따르고.”
“…네.”
“정훈이는 안에 들어가서 식사 준비 다 끝났는지 확인하고, 올라가서 식사하게 엄마 내려오시라고 해.”
“네.”
* * *
살살 해
본가 대문 앞이었다.
차고 앞으로 먼저 나와서 대기 중인 차가 세 대.
차례대로 정태, 나 그리고 정엽이가 타고 갈 차였다.
“다들 많이 피곤한가?”
정엽이 놈이 가끔씩 이렇게 허허실실 허술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데, 이런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리게도 홍명이 놈의 모습이 정엽이 얼굴에서 겹쳐 보였다.
나와 정태 곁으로 다가와 정엽이가 물었다.
“괜찮으면 간단하게 우리끼리 맥주 한잔 어때?”
그에 정태는 또 정태 놈 특유의 단단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늘만 날이야? 앞으로 시간 많으니까 맥주는 다음에 하자. 어제 정훈이한테 듣자 하니 부산 내려갈 때 가족들은 서울에 놔두고 갔다 왔다며? 아무리 붙여 놓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말 안 통하는 나라에 애랑 같이 있는 거 불편할 거야. 얼른 들어가서 같이 있어 주는 게 좋지 않겠어? 나도 어제, 오늘 퇴근하자마자 호텔 건으로 본가에 오는 거라 좀 피곤하네.”
그리고는 내 표정을 확인 후 이렇게 덧붙였다.
“정훈이 넌 괜찮으면 정엽이 형이랑 따로 한잔 같이하든지.”
난 정태 놈의 이런 날 선 반응, 정엽이를 상대로 선을 그으려고 하는 속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 아까 그거 진심이었어?”
“뭐?”
“유의미한 결과를 못 만들어 내면 호텔 경영권 우리 쪽으로 넘기겠다는 말.”
“아, 그거?”
“아버지가 중간에 끊으셔서 내가 더는 말을 못 했는데, 우리끼린데 뭐 어때. 안 그래? 나는 그 정도 조건은 붙어야 우리가 형을 일방적으로 도와준다는 생각이 덜 들 거 같거든. 돕는 거 자체가 싫은 건 아냐. 하지만 형은 지금 구걸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거잖아.”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형을 진지하게 비즈니스 상대로 생각하고, 또 그 5년이란 시간 동안 형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진심으로 지원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는 서로 거는 판돈의 규모가 비슷해야 할 거 아냐. 우리만 일방적으로 걸고, 형은 깍두기처럼 판돈도 안 걸고 이기면 가져만 가는… 과연 그런 조건에서 형이 얼마큼 긴장을 하고 절실할지 난 회의적이거든.”
오늘 정태 놈이 내게 보여 준 악착같은 모습은 사실상 백 점 만점에 백 점이다.
정석이라고 봐야지.
잘하고 있다는 생각.
몰아붙이고 있는 상대가 정엽이라는 부분이 마음이 안 좋긴 했지만, 사업이라는 게 어디 상대를 가릴 수가 있는 것일까.
현 재경가의 장남으로서 정태가 보여 주고 있는 악착같은 모습은 내 눈에 기특해 보일 정도로 정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엽이 놈까지 날 놀라게 만든다.
“나도 아까 안에서 작은아버지가 중간에 이야기 끊으실 때 많이 아쉬웠어.”
“……?”
“나도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가는 게 맞는 거 같았거든. 네 말대로 내가 그 정도도 안 걸고 지분 지원만 바라면 그건 구걸이잖아.”
그렇게 말한 다음 날 쳐다보며 정엽이가 말을 이었다.
“작은아버지 찾아가서 구걸이나 하겠다고 지난 세월을 한국에도 못 들어오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게 아니야. 그리고 그 구걸을 나만 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젠 둘 다 알겠지만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엔 미래금융의 지분이 꽤 돼. 이번 건 때문에 미래금융이 사돈가에 구걸까지 하는 모습을 내가 만들 순 없지.”
“아무리 그럴싸한 서사가 있다고 해도, 상식 밖의 행동이 이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서로 경계를 하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니까 오해 없었음 좋겠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내가 해 온 노력이 누군가의 눈에 상식 밖의 행동으로 비치는 건 나도 싫거든. 어떻게 해 줄까?”
“뭘?”
“따로 계약서 같은 걸 써서 문서로 남겨 줄까?”
“우린 또 그런 걸 자발적으로 해 주겠다고 하면 굳이 사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렇게 하자. 해당 내용은 누구한테 보내면 되지? 너? 아님 작은아버지? 아, 그냥 정태 너한테 보내는 게 맞겠다. 안에서 작은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만 봐선 내가 보내 드려도 안 받겠다 하실 거고.”
“그럼 나한테 보내. 보관만 내가 하고 있으면 되는 거지. 설마 그걸 쓸 일이야 있겠어?”
그때까지도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