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88)
지금 모 전무가 손정훈 본부장을 상대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 딱 그랬기 때문에.
쁘띠 기뿔리 측과의 미팅.
사장님이나 자신에게 미리 승인을 구한 내용이 아니었다.
물론 왜 승인도 받지 않고 당신 마음대로 그런 미팅을 잡았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리고 미팅은 그저 형식이었을 뿐이라는 듯, 단 한 번에 끝나 버린 계약.
이건 분명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쁘띠 기뿔리 쪽으로 반드시 계약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손 본부장이 만들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그런 내용들을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편승일 사장에게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집안 회사이니까. 그런데 조금만 더 같이 지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독선적인 부분도 분명히 어느 정도 있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한데… 결국은 내가 손 본부장의 생각과 추진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걸요.”
“…….”
“손 상무님은 자기 기준에선 충분히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실 겁니다.”
모 전무의 눈썹 끝이 꿈틀거렸다.
고 본부장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본인도 답답하겠죠. 내가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고, 이렇게까지 방향을 말하고 있는데, 왜 다 알아들은 척을 해 놓고 뒤에 가서 엉뚱한 짓들을 하고 있느냐는 식으로요. 왜 나중에 가서 전혀 몰랐던 내용인 것처럼 말을 하느냐는 식으로 말이죠.”
“그럼 그건 문제 아닙니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죠. 재경 그룹 안에서 손정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조직 체계 안에서 그 사람이 자기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 아닌지를 보는 사람에겐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모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모직에서도 초반에 손 상무님의 스타일을 몰랐던 몇몇이 그런 부분 때문에 마찰을 일으킨 적이 몇 번 있었고요. 하지만 곧 얼마 안 가 다들 수긍을 하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수긍이라면….”
“그냥 인정을 하는 거죠. 우리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걸.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 보려고 애를 쓰게 되고, 결국은 애를 쓴 덕에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됐습니다.”
“다른 세상? 무슨 세상?”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도대체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무엇 때문에 저렇게 하려고 하지?’로 바꾸기만 했는데도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그 시야가 현재 제가 그간 아무런 경험도 없었던 식품에서 큰 문제 없이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미 전무님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시겠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뛰어나요. 그것도 상당히. 가끔씩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떤 생각이요?”
“중간이 비어 있다는 생각이요.”
“중간이 비어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어….”
짧은 음성을 흘리며 생각을 정리한 뒤 고 본부장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저도 많이 익숙해졌는데, 초반엔 마치 제가 어느 한 기업의 회장님을 직접 모시고 일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어요.”
“……?”
“갭이 크잖아요. 제 위로 사장님, 전무님, 다른 임원분들… 그런 과정이 다 생략이 되고 회장님이 당시 부장이었던 저한테 다이렉트로 업무 지시를 툭 하고 던져 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한 가지 사업을 놓고 생각이 뻗어 나갈 수 있는 방향성 자체가 아예 다른 거예요. 그러니 저희랑은 소통을 안 하려고 하신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요. 본인은 본인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을 다 해 준 건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수준에서 쉽게 설명을 해 준 거지, 제 수준에선 절대 쉬운 설명이 아니었던 거죠.”
“대학교수가 유치원에 가서 미분, 적분을 이야기했다, 그런 게 되는 겁니까?”
“저는 그 대학교수도 그냥 대학교수가 아닌 아주 뛰어난 교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범태 전무는 길게 숨을 뽑아내 놓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물었다.
“결국 모직에서 넘어온 손정훈 본부장님의 평판이 과장이 된 게 아니란 말이네요?”
“과장이요? 음… 저도 식품으로 넘어와서 다른 분들한테 지금처럼 손 상무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모직에서 넘어온 평판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과장이 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방돔 지사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아는 분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거기에서 해낸 사업들이 진짜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인데 말이죠.”
왜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모범태 전무의 가슴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불길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손정태 스너프 사장이 식품의 본부장으로 있던 시절, 자신과 편승일 사장을 따로 불러 외식 사업 쪽으로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보자며, 재경 그룹 안에서 편 사장과 자신의 앞길을 약속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오히려 식품에 입사를 해 사원, 대리 시절 맡았던 냄새가 코끝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에 와 생각을 해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프로젝트 하나에 사흘 밤낮을 새워 가며 사활을 걸어야 했던 당시 그 사무실의 냄새가.
젊음을 추억해 보게 만드는 냄새.
그간 너무 만연해져 있었던 전무라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쩌면 다시금 열정을 불태워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느낌.
“저한테 외식사업부를 재경식품에서 따로 분사시킬 준비를 하라고 하시네요.”
그 말에 고 본부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모 전무를 쳐다봤다.
그런 고 본부장의 반응에 이 내용 역시 손 본부장이 고 본부장에 따로 이야기를 한 내용은 아니었다는 걸 눈치챘다.
“인스파이어 브랜즈를 롤 모델로 삼아 보라고 하시네요.”
“인스파이어 브랜즈라면….”
“네, 던킨도너츠, 서브웨이, 베스킨라빈스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초대형 공룡 외식 기업이죠. 현재 우리 재경식품이 만들어 낸 외식 브랜드들을 정리하자고 하셨을 땐 이렇게까지 큰판을 머릿속에 그리고 계실지 몰랐죠. 고 본부장 말이 맞아.”
“……?”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손 본부장님 생각을 못 따라갔던 거예요. 현재의 외식 사업을 정리하라는 게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수출이 불가능한 종목들을 정리하라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국내 시장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 먹힐 종목들을 추려 내라, 그 말이었어.”
“걱정이 되십니까?”
“걱정이 될 게 뭐가 있겠어요? 목표라는 게 그렇잖아요.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어야 긴장도 하고, 기대도 하는 건데 던져 준 목표가 너무 크잖아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표정에 자신감이 보이는데요?”
“사실 그래요. 재경식품을 등에 업고 그간 외식 사업 쪽으로 집중을 하면서 그정도 큰 목표도 안 세워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간 해 오면서 그게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는지를 충분히 체감하기도 했고.”
“전무님께서 상상해 봤던 걸 콕 집어 롤 모델로 정해 주신 거네요.”
“그러니까요. 그게 좀… 놀랍긴 했어요.”
고성표 본부장이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었다.
“제가 프랑스로 지사 생활을 하러 가기 전, 그러니까 모직 본사에서 손 본부장님과 인사부에서 함께 일할 때 있었던 일인데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손 본부장님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었던 아주 인상적이었던 상황이 있었어요.”
“어떤 상황이요?”
“IT 전산팀 대리 한 명이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더는 회사 생활을 못 하겠다고 사직서를 준비해서 인사부로 내려온 적이 있었어요. 그 팀에 직장 내 왕따 그런 게 좀 있었던 모양이에요. 일을 참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던 거 같은데, 아마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다른 동료들 눈엔 부담스럽게 보였겠죠. 그런 경우 많잖아요.”
“허다하지.”
“정황을 다 확인한 다음에 손 상무님, 당시엔 손 과장이었죠. 그 직원을 따로 인사부로 부른 거예요. 보통은 면담실이 따로 있으니까, 그 안에서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그런데 면담실로 데리고 가지 않고 인사부 직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시 그 모습은 고성표 본부장에게 손정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눈치채게 만들어 준 아주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이유 때문에 매일 아침 눈을 떠 회사에 출근하는 게 스트레스라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오고, 불면증에까지 시달리고 있다면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는 게 맞는다. 이 사표는 수리를 하겠다. 그런데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다. 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다른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일 테니. 누군가가 이유 없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그래서 당신을 왕따를 시킨다면 최소한 당신은 그 사람들에게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에 모 전무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최소한 그 사람들이 당신을 따돌리는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고, 당신을 응원하며 좋게 보고 있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도 당신은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응원을 해 주는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이유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배짱과 당연함으로 조직 생활을 한다면 반드시 언젠가 당신 주위엔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응원을 하는 사람들만이 남을 것이다.”
“…….”
“그때 알았죠. 아, 저 사람은 마이 웨이구나. 함부로 적이 되어선 안되겠구나. 그리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넘어가는 상황 자체는 유배를 가는 것처럼 프랑스 지사로 넘어갔지만, 본사로 다시 부를 땐 귀하게 모시겠다는 약속을 저한테 하더라고요. 흔하디흔한 빈말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그 약속에 제가 믿음을 주면 그 사람은 제가 믿는 이유를 저한테 만들어 줄 거 같은 거예요.”
“…….”
“저 식품에 처음 출근한 날 말입니다. 사실 긴장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식품 여긴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전무님까지 손정태 사장님 사람 아닙니까.”
“누, 누가 그럽니까?”
“아…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룹 안에서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아무튼 그래서요?”
“임원 승진이라는 부분은 기대할 만했지만, 괜히 손정훈 본부장님 라인 타서 단물 빨아 보지도 못하고 나가리 나는 건 아닐까, 당연히 걱정을 할 수밖에요. 거기다 원래 회사에서 배정한 제 사무실 위치가 화장실 앞이었다면서요? 안에 가구 집기류도 문제가 많았고. 그 내용을 식품 출근 첫날 사장님께 바로 불편함을 전달해서 바꿔 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맞아요.”
“이러니 믿을 수밖에요. 믿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 주시잖아요. 틀림없이 전무님께도 그렇게 하실 겁니다. 전무님뿐 아니라 어느 누구를 상대로도 똑같이 하실 분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의심하고 걱정을 하시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만을 계속 만들어 주실 분입니다.”
꽤 한참 동안 모범태 전무는 침묵을 지키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그 침묵을 깨뜨리며 모 전무가 물었다.
“그래서 그 직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직장 내 왕따를 당했다는 직원이요. 회사를 그만뒀습니까?”
“아뇨, 아직 잘 다니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관심 있게 지켜봤거든요. 지금은 과장까지 달았고, 그 친구를 따돌렸던 몇몇은 알아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더군요.”
“흠… 하, 씨. 모르겠다, 나도. 본부장님.”
“네.”
“우리 미팅 준비 좀 합시다.”
“미팅이요?”
“네. 내가 지금 말해서 외식사업부 부서장 다 호출할 테니까, 본부장님은 삐에르 에슈메 레시피 관련해서 우리 쪽에서 보낼 연구원들 비자 내용 좀 정리해 주세요.”
“그건 이미 정리 다 끝났습니다.”
“쁘띠 기뿔리 관련해서도 서비스 스탠다드부터 시작해 기술제휴 관련으로 연수 보낼 인원을 뽑아야 할 거 같은데, 미팅 때 내가 깜빡하고 그 부분 말 안 하고 그냥 넘어가면 본부장님이 한번 짚어 주시고요.”
“물론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잠자고 있는 사자의 코털
그렇게 정엽이는 10일간의 한국 일정을 끝내 놓고 잠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곧 열리게 될 부경호텔의 주주 총회 일자에 맞춰 다시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사흘.
마침내 모범태 전무가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방향만 잡히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갈 친구가 분명했다.
시골통닭을 시작으로, 현 재경식품 외식사업부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브랜드 위주로 매각을 진행시켰다.
그에 해당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던 일선 팀에서 적지 않은 반발, 불만들이 터져 나왔지만, 한번 방향을 잡은 모 전무의 움직임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본부장님!”
물론 여전히 날 귀찮게 만들고 있다.
이틀 건너, 사흘 건너 내 방을 찾아오던 발걸음이 이젠 하루에도 두 번, 세 번씩 자기 사무실 문을 열듯 하고 있고, 모 전무가 날 찾을 때마다 내 입에선 단내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 그냥 사무실을 바꾸는 게 어떨까요? 내일부턴 제가 그냥 전무님 사무실을 쓸게요. 여기가 그렇게 좋으시면 내일부터 이 사무실 전무님이 쓰세요. 그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니, 아니. 이번엔 진짜 빨리 끝나요. 나도 조금 이따가 미팅 들어가 봐야 돼요.”
“그럼 미팅을 하고 나서 오시던가 안 하고.”
“그 미팅에 필요한 내용이니까 그렇죠.”
자기 멋대로 소파에 앉아, 나는 같이 봐 줄 생각이 없는데 막무가내로 회의 자료를 펼쳐 놓는 모 전무였다.
“샘스핫도그 이놈들이 지금 블러핑에 들어갔어요. 아, 쫌 이쪽으로 와 보세요. 지금 이거 중요한 거라니까 그러네, 진짜.”
내가 봤을 때 모범태 이놈 이거는 내가 손정훈이 아니라 손중길이었어도 똑같이 할 놈이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지.
이놈 이건 지금 완전 앞만 보고 달리게끔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경주마다.
“그 전까지는 중국 진출을 망설이고 있었던 게 분명해요.”
“망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예 큰 기대 자체를 안 하고 있었을 거예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브랜드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브랜드 자존심이요?”
“거기다 서브웨이가 한발 앞서 들어가 시장을 장악해 버렸고, 후발 주자로 들어갈 타이밍에 미중 관계가 최악을 치달았잖아요.”
“그런데 이놈들이 중국 브랜드 ‘유퐁(U-Fun)’ 측하고 브랜드 라이선스에 대한 협의 중이었다고 블러핑을 넣고 있어요. 우리 쪽에서 제안한 브랜드 로열티 10퍼센트가 적다는 걸 그렇게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하고 있는 거죠.”
“그럼 유퐁하고 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되죠. 블러핑인 걸 뻔히 다 아는데, 뭐 하러 끌려갑니까?”
“로열티에 펌프질을 하겠다는 수작인 건 맞지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퐁 측이랑 수차례 접촉을 했던 건 사실입니다. 한국 라이선스만 필요한 거면 10퍼센트에 맞춰 주겠지만, 아시아권 전역 라이선스를 가져갈 거면 현재 중국에서 서브웨이를 핸들링하고 있는 ‘인타이 (Imtaire)’가 내고 있는 것처럼 13퍼센트로 맞춰 달라는 거죠. 자기들은 충분히 서브웨이 정도의 가치는 되는 브랜드라고.”
“인타이가 서브웨이의 로열티를 13퍼센트까지 맞춰 준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보세요. 모른다고 하면, 그것 때문에 유퐁 측이랑 협상이 안 되고 있는 게 아니냐고도 다시 물어보시고요.”
“그게 무슨….”
샘스핫도그는 우리가 아니면 중국 시장에 들어가지 못한다.
샘스핫도그뿐 아니라 아이스크림 브랜드 ‘고비드’ 역시 그러한 이유로 내가 선택을 한 것이고.
“스타벅스의 이름이 뭡니까?”
“스타벅스가 스타벅스지, 스타벅스의 이름이 뭐냐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린 스타벅스를 스타벅스라고 부릅니다. 왜? 스타벅스가 맞으니까. 그리고 스타벅스는 어디에서든 스타벅스로 불려야죠. 브랜드, 즉 이름이 그 기업의 가치이니까.”
“……?”
“그런데 중국에선 스타벅스를 ‘신바크’라고 부릅니다. KFC를 KFC라고 하지 않고 ‘컨덕지’라고 부르죠. 심지어 간판에 KFC를 달지 않고 한자로 ‘컨덕지’라고만 쓰고 있는 매장이 절반 이상이라고 합니다.”
“……!”
“유퐁이 왜 유퐁입니까? 영어 표기대로 읽으면 유펀이어야 맞는 거 아니에요? 인타이는요? 임타일러가 되어야 합니다. 유퐁은 엄밀히 말해서 중국 브랜드가 아닙니다. 대만 브랜드죠. 대만에선 유펀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중국에 넣기 위해 아예 대만에서조차 자기네 기업 이름을 유퐁으로 바꾼 겁니다. 인타이 역시 대만계 일본 브랜드죠.”
난 소파에 앉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사무실 안을 걸어 다니다가, 창가 앞으로 서서 창틀에 엉덩이를 살짝 걸터앉았다.
“같은 핫도그 브랜드 중에 닥슨소시지라고 있죠?”
“네. 몇 년 전에 한국에도 잠시 들어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철수를 했었죠.”
“왜 철수를 했습니까?”
“그게… 아마 국내 핸들링 기업이 영업 쪽으로 실력이 부족했을 겁니다.”
“아닙니다. 닥슨소시지가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도 들어갔습니다. 중국에선 ‘더구어맨빠오’라는 이름으로 들어갔죠. 브랜드는 미국 브랜드인데, 중국에서 그 이름을 자기네 기준에서 중국식으로 바꾸다 보니 독일 빵이 되어 버린 거예요. 거기에 닥슨소시지 오너가 눈이 돌아갔던 거예요. 아시아 라이선스를 다 빼 버린 거죠.”
“아….”
“샘스핫도그 측에게 말해 주세요. 우리 재경은 비즈니스를 숫자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고. 우린 숫자가 아닌 기업의 가치, 브랜드의 가치를 위해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라고요. 샘스핫도그의 브랜드 가치를 지켜 내기 위해선 우리 쪽으로도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세요.”
“하… 쩝. 결국 샘스핫도그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지켜 줄 파트너를 찾지 못해서 아직 중국에 못 들어가고 있었다, 이겁니까? 이 새끼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블러핑을 넣었던 거네….”
“하지만 우린 달라야겠죠. 비록 언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브랜드를 읽는 약간의 발음 차이 정도야 생길 수도 있겠지만, 고작 중국 시장 하나 비집고 들어가겠다고 우리 파트너가 힘들게 만든 브랜드 자체를 바꾸는 무식한 짓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린 그렇게 미개하지 않다는 걸 말해 주세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권 그 어디에서도 샘스핫도그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 주라고요. 10퍼센트. 무조건 줄 겁니다.”
* * *
도대체 이놈들이 왜 이래, 오늘따라?
오늘 무슨 날인가?
본격적으로 일을 좀 볼 만하면 누가 찾아오고, 다시 좀 집중을 할 만하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 전무가 다녀간 뒤, 고 본부장이 잠시 찾아왔다가 나갔는데, 이번엔 조동희 전무가 문을 두드렸다.
“네, 전무님.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