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9)
“왜 아까부터 정 대리가 계속 망 과장 편을 드는 거 같지? 이거 내 기분 탓인 거야? 그런 거야?”
결국 정 대리는 피식하고 웃으며 장난스레 김원호 차장에게 물었다.
“제가 과장님 편 좀 들면 안됩니까?”
“어? 어? 이거 봐, 이거 봐. 맞네, 편드는 거 맞네.”
“저희 팀 과장입니다. 대리가 과장 편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와… 또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뭐가 또 이렇게 나온다는 겁니까? 저도 좀 의외라서 그런 겁니다.”
“의외? 무슨 의외?”
“저도 과장님이 준영 씨 건을 이렇게 손쉽게 해결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저는 우리가 준영 씨를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 했거든요. 오 과장님이랑 통화하는 순간 직감적으로 이건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과장님이 정말 별거 아닌 거처럼, 차장님 말씀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배경의 힘을 썼더라도 손쉽게 해결을 했잖아요.”
김원호 차장은 손가락으로 지적을 하듯 정 대리를 몇 번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이거… 정 대리 똑똑한 줄 알았는데 영 헛물이네.”
“뭐가요?”
“그쪽 아니야.”
“그쪽이라니요?”
“망 과장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뭐가요?”
“지난 6개월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도 답이 안 나오냐? 망 과장 라인 타지 말란 말이야.”
그 말에 정 대리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빨았다.
“망 과장 눈 밖에 나서 좋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망 과장한테 비비는 건 더 위험해. 회사에 보는 눈 많다. 더군다나 망 과장은 앞으로 6개월 정도만 더 하다가 다른 데로 옮길 거야.”
“그런데 그때부터 왜 자꾸 과장님의 인사부 생활을 1년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라도 있으세요?”
“드, 듣긴 내가 뭘 들어? 보통 다 그렇게 하니까 망 과장도 그럴 거라는 말이지, 내 말은.”
“보통이요? 본사 상무님 같은 경우는 그룹 본사 전략기획팀 과장으로 2년 넘게 있지 않았었나요? 저는 그렇다고 들었는데?”
재빨리 화제를 바꾸며 김원호 차장이 말했다.
“그런 게 지금 중요하냐? 아무튼 앞으로 정 대리 네가 옆에서 잘 좀 지켜봐. 내가 봤을 땐 이거 지금 신종 꼬장이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뭐?”
정 대리는 손 과장과 개인적으로 한 약속이 있었기에, 예전처럼 김 차장 앞에서 무조건 솔직할 수만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며칠만 더 지켜보시죠. 제가 옆에서 잘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차장님께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가 참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고생은요, 무슨. 괜찮습니다.”
“괜찮긴. 그냥 옆에서 지켜만 보는 나도 피가 거꾸로 솟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어쨌든 회장님 아들이야. 밉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최대한 말랑말랑하게… 알지?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네, 그럼요.”
“조금만 더 참자. 곧 딴 데로 갈 거니까.”
* * *
저한테 무슨 감정 있습니까?
역시 오늘도 난 정훈이 놈의 몸에서 눈을 떴다.
오늘도 알람 시계의 도움 없이 혼자 눈을 떴지만, 어제, 그제와는 달리 중간에 깨는 것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정 대리의 도움으로 오늘부턴 아침에 신문을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각기 다른 신문사의 종이 신문 세 부가 흰 비닐에 씌워져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정 대리에게 배운 대로 커피를 한 잔 내려서 거기에 뜨거운 물을 섞어 최대한 묽게 만든 후, 그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신문으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시끄러운 세상이다.
그 흔해 빠진 광고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문 속엔 이 나라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뉴스로 가득 차 있었다.
30년 이상 뒤처져 있었던 대한민국의 개인 국민 소득이 일본을 따라잡기 시작했다는 뉴스.
그 뉴스를 보면서 내가 지금 내 손주, 정훈이 놈의 몸을 빌려 구경하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현실인가 싶었다.
잠재력은 충분했지만, 중국은 벌써 미국 다음가는 세계 경제 강국이 되어 있었고, 어느 곳에서 일어난 전쟁이 전 세계 생활 물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나라의 정치는 불안하고, 경제는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뉴스들을 보며 난 세간에 받아 온 평판에 비해 무척 작은 사람, 부족한 경영인이었단 아쉬움을 지워 낼 수가 없었다.
정권과 연이 닿았던 당시, 난 항공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정보 통신을 선택해야 했었다.
건설이 아니라 반도체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했고.
내겐 바로 어제의 일이지만, 이곳의 세월로는 30년 전의 그때.
그때의 난 한국이 이렇게까지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문화 강국, 반도체 강국, 정보 통신 강국이 될 거란 생각을 못 한 채 눈을 감았다.
나의 부족함이다.
역시 내가 아닌 이 회장의 선택과 도박이 맞았던 거다.
어쩌면 재경이 현재 이렇게까지 가라앉아 있는 데에는 홍준이 놈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 훨씬 더 클지도 모르겠다.
미래 사업을 내다보는 나의 선구안이 부족했고, 자식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나의 잘못.
지난 며칠 동안 정 대리를 통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열심히 배웠다.
이젠 기본적인 건 얼추 다 할 줄 안다.
SNS, 카톡을 통해 평소 정훈이 놈이 고만고만한 망나니들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다 확인했고, 하등 도움이 안 될 거 같은 녀석들의 연락처는 모두 등록된 걸 삭제,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정태 놈과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평소 정훈이와 정태 놈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형제간의 관계는 크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싱거운 농담이 주를 이루는 대화 속에서 정태 놈이 정훈이를 의외로 꽤 잘 챙기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정태뿐 아니라, 제 부모도 함께 속해 있는 단톡방은 읽을거리가 훨씬 더 많았다.
한 달에 두 번.
둘째, 넷째 주 화요일 저녁은 온 가족이 다 같이 본가에서 식사를 하는 것 같다.
그 화요일 저녁은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이 집에 누군가가 청소만 해 주러 오는 시간대이기도 했는데, 이 집으로 청소를 하는 사람을 보내 주는 것 역시 이놈, 정훈이의 어미인 장혜란이었다.
홍준이 놈은 그 대화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지만, 장혜란이는 예쁜 음식, 꽃, 좋은 배경의 사진들을 틈만 나면 그 단톡방에 올렸다.
그 사진에 대한 감상 답장은 정태 놈의 배우자인 원수경과 정훈이 이놈이 주로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정훈이 놈이 제 아비인 홍준이 놈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에겐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반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거, 형수인 원수경과 아주 가까운 사이인 거 같다는 것 등은 지금 내게 아주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주변에 관한 공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정훈이 이놈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존재, 내가 눈을 감을 당시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정훈이 놈에 대한 공부.
그게 어려웠다.
분명 정 대리만 통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정 대리에 의하면 내가 정훈이 놈의 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정 대리뿐 아니라, 회사 모든 사람과 대화를 거의 안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인사조차 안 받았다고 한다.
무리도 아니지.
직장 동료를 노예라고 폰에 저장을 해 놓을 정도인데, 크게 놀라울 것도 없다.
그렇다고 정훈이 놈이 어떤 놈이었는지를 정태 놈이나 홍준이 놈, 장혜란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른 좋은 방법이.
우선은 출근부터 하자.
“오셨습니까, 과장님.”
“네, 좋은 아침입니다. 정 대리, 어제 내가 부탁했던 거….”
“과장님 책상 위에 올려놨습니다. 혹시 몰라서 원본 파일도 메신저로 보내 놨는데, 메신저 확인하는 거 이젠 할 줄 아시죠?”
“네, 하다가 혹시 막히면 그때 가서 물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미팅할 때 나도 부르고요.”
“네!”
현재 인사부로 접수된 퇴사 희망 신청서와 그 신청자들의 이력서를 하나하나 대조해 봤다.
놀랍게도 영업부 쪽에서 퇴사를 희망하는 직원들의 평균 학력이 서울 4년제였다.
그중엔 연세대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한 인재도 있었다.
다른 지원 부서들의 상황은 더 했다.
“정 대리.”
“네, 과장님.”
“혹시 이 토익이라는 게 영어 시험인 겁니까? 토플 같은.”
“네, 그렇죠. 그런데 과장님이 토플은 또 어떻게 아십니까?”
“그냥저냥 어디에서 들은 거 같습니다.”
토익이라는 게 내가 예상한 대로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걸 알고 난 뒤, 900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다시 물어봤다.
“990점이 만점입니다.”
“그럼 900점이면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란 뜻이네요?”
“그렇죠.”
“이 시험이 공신력이 있는 시험입니까?”
“현재로서는 취준생들의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준인 건 분명합니다.”
“지금 이 이력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905점, 이건 920, 940점대도 있네요? 한국에 있는 영어 영재, 천재들은 죄다 재경모직으로 몰린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요. 아니죠.”
물론 나도 아니라는 건 안다.
설마 그 정도도 모를까.
하지만 정말 이상하지 않나.
내가 알고 있는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영업 직원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에도 총무나, 인사, 전략 기획과 같은 지원 부서는 기본 학력을 중요시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영어 평가 시험의 고득점자들을 많이 데리고 있을 이유도 없었고.
시대가 그만큼 변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과연 이렇듯 조기 퇴사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신입 직원들을 굳이 이러한 기준으로 뽑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받아 놓은 퇴사 희망 신청서에 들어 있는 퇴사 사유들도 난 솔직히 납득이 되지가 않았다.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부족한 거 같다.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량에 비해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허허….
정말 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다.
퇴사를 희망하는 직원들에게 굳이 퇴사 사유를 문서로 요청하는 지금의 기업 문화도 적응이 안 될뿐더러,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노골적이지만, 결국은 솔직하다고 봐야 할 직원들의 사고방식도 적응이 안 된다.
무엇보다 회사는 이렇게 퇴사 사유를 알려 주길 요청까지 하면서, 왜 그 사유를 취합해서 직원들이 느끼는 불만을 개선하지 않는 거지?
이런 걸 퇴사 희망자들에게 묻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묻는다는 거 자체가 퇴사자들이 근무하며 느낀 불만, 아쉬운 점들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을 하겠다는 의지일 것 아닌가.
정 대리가 챙겨 준 자료를 다 확인을 하고 나니까, 어느덧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 미팅이 없나?
정신을 차리고 옆을 쳐다보니, 정 대리가 자리에 없었다.
“정 대리 어디에 갔어요?”
“부장님 호출로 미팅 들어갔습니다.”
HRD팀 쪽을 보니, 역시나 박종근 과장도 자리에 없었다.
“그럼 홍 주임.”
“네, 과장님.”
“내가 부탁 하나만 합시다. 근속 연수 2년 이상 되는 직원들의 이력서를 좀 찾아봐 주세요.”
“모두요?”
“네, 모두. 전 부서.”
“…….”
“너무 많나요?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바로 그때 부장 미팅을 끝내고 정 대리가 자리로 돌아왔다.
“근속 연수 2년 이상 되는 직원들의 이력서는 뭐 때문에 찾으시는 겁니까?”
다행이다.
고작 며칠일 뿐인데, 확실히 정 대리가 돌아오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퇴사 희망 신청서, 그리고 그들이 입사할 때 이력서를 보니까, 공통점이 확실하네요. 그 말은 2년 이상 근속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서도 공통점이 분명 나올 거란 뜻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걸 말했을 뿐인데, 뭘 이렇게 놀라는 표정을 짓는 거지?
“왜요?”
“아, 아닙니다. 그렇… 네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
“에이, 한 기업의 인사, 그 안에서도 채용, 고용을 다루는 HRM팀 대리씩이나 되는 사람이 조기 퇴사자 수치가 높아진다고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그 정도 의심도 못 해 보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죄송합니다.”
뭘 또 죄송하단 말까지 하고 그러나.
내가 지금 정훈이 이놈의 몸으로 정 대리에게 업무에 관한 지적을 한다는 거 자체가 모순인데.
“근속 연수 3년 이하, 2년 이상 되는 직원들 위주로 그 사람들의 이력서를 좀 준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