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99)
“하늘 씨한테 오늘 자리에 참석을 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많이 당황을 했어요.”
“그러셨어요?”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참석을 해야죠. 하늘 씨가 제 결혼식에도 왔었거든요.”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하늘 씨 가까운 지인들을 모셔 놓고 가지는 파티 자리에 절 초대할 줄은 몰랐죠.”
“제가 부탁을 한번 드려 보라고 말했어요.”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결혼 전에 지인들과 인사 나누는 자리는 이게 끝이에요. 저는 딱히 부를 사람들도 없고 해서요. 그래서 오늘 이걸로 같이하자 그렇게 이야기가 됐는데, 마침 제가 부사장님 이야기를 하니까, 많이 가까운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저를 초대해 주신 이유라도 있을까요?”
“이유야 많죠. 앞으로 더 많은 이유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되기도 하고요.”
“……?”
마침 그 앞으로 웨이터가 지나가길래, 비어 있는 잔을 건네주고 새 샴페인 잔을 받았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런 기대로 작년에 제가 재경모직에 있었을 당시, 부경유통과 마찰을 일으켰을 때 저희 모직이 컨트롤 중이던 브랜드를 태영백화점이 좋은 매장 조건으로 받아 주셨던 거 아니었어요?”
“글쎄요? 그걸 손 상무님이 그렇게까지 좋게 해석을 해 주시면 저야 좋죠. 하지만 재경 쪽에서 던진 조건들이 우선적으로 너무 좋았죠.”
“그랬나요?”
“재경항공 관련해서 저희 면세점 쪽으로 그간 부경면세점에 줘 오던 마일리지 연계 포인트 혜택이라는 카드를 던졌잖아요. 그게 면세점 사업에선 무엇보다 큰 거였거든요.”
“그 정도 카드 때문에 20년 넘게 국내 백화점, 면세점, 아웃렛 시장을 양등분하고 있던 부경유통과 적대 관계에 설 결심을 할 수는 없었을 거 같은데요?”
곧바로 이어서 말했다.
“저희가 부경유통을 반으로 쪼개지 못했으면, 아주 불편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사업에는 리스크라는 게 항상 따를 수밖에 없는 거고, 때에 따라선 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해야 하는 결정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요.”
“태영쇼핑이 해 주신 과감한 결정 덕에 스너프가 지금의 오프라인 유통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데, 당연히 제가 부사장님이라도 오늘 자리에 초대를 했어야죠. 혹시 저희 재경과 태영이 꼭 부경유통 건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오래전부터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다는 거 알고 계세요?”
구정진 부사장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저는 저희 회장님 통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그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실제 있었던 일들이고, 또 어디까지가 저희 회장님의 지나간 세월 로망이었는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손중길 회장님이라고 하면, 사실 대한민국에선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 경영인 아닙니까. 거인이죠. 기업 경영 쪽으로 한 획을 그으셨던 분이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제 아버지와 친구 같은 막역한 사이였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선 제 아버지이고, 저희 회장님이시지만 사실 백 퍼센트 믿음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그저 개인적인 친분 정도는 있으셨겠죠. 모피 게이트로 제 할아버지가 검찰에 불려 다니고 하실 때, 손중길 회장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던 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요?”
“친구 같은 막역한 사이셨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할아버지가 구봉학 회장님의 사업 능력을 아주 높게 보셨고, 그래서 나이를 떠나 사업적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셨단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손중길 회장님께서 먼저 제 아버지한테 그런 호감을 가지셨단 말씀이세요?”
“저는 그렇게 들었는데요?”
“…누구한테요?”
“미래금융의 장태산 회장님이 그 당시 제 할아버지의 최측근이었지 않습니까.”
“…….”
“그리고 나이가 좀 어리면 어떻습니까? 사람 사귀는 데 사람이 중요하지, 나이가 중요합니까?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면… 저는 부사장님과 나이 때문에 아예 친해질 기회조차 없는 거겠네요?”
* * *
재경 옆에 붙어라
부경화학 장선동의 집으로 그의 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임에 자동 제외가 되어 버린 장혜란을 제외한 4남매가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했다.
그 집의 거실은 현관문 기준으로 반층 지하였다.
현관문을 들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목, 그리고 주방으로 빠지는 공간을 제외하면 소파 자리가 마련된 거실로는 여덟 계단이나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소파 자리에서 거실 전체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세상은 그 공간이 지하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탁 트인 정원이 넓게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서울 시내가 멋지게 그려지고 있었다.
층간이 일반 주택 두 배 가까이나 되는 높은 거실.
거실 천장에 달려 있는 화려한 샹들리에는 그 집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작은아버지. 고모는 코트 저한테 주시고요.”
사촌 형제들 중에선 유일하게 장민석만이 참석한 자리였다.
아버지의 호출로 회사 일을 보다가 급하게 본가로 들어온 터라, 장민석의 복장은 딱딱한 정장이었다.
“우리끼리 보자니까, 왜 회사 일 보는 민석이까지 불렀어요?”
통신의 장선길이 말 같지도 않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정작 이 집의 손님은 자신이면서, 집주인에게 아들을 왜 불렀느냐고 묻는 그의 모습에 장민석은 속으로 같잖음을 삼키고만 있었다.
천하의 장선길 회장, 작은아버지가 그동안 조카 취급도 안 해 줬던 외조카한테 크게 털렸다지?
해당 내용은 장민석에게 부경 그룹에 찾아온 심각한 위기 이전에 남몰래 크게 웃음을 터뜨릴 만한 통쾌함이었다.
가족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잘난 척을 해 대는 양반이었던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기가 부경가의 장남인 줄 알 것이다.
그만큼 독선적이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꼰대 그 자체.
하지만 장민석은 자신의 아버지를 상대로 겉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 왔던 작은아버지를 결코 안 좋게 보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장민석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 장선동 회장이 겉으로 보이기엔 우유부단하고 동생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그 내실은 훨씬 고단수라는 걸.
지난 1년 사이 재경 그룹이 퍼부어 온 공격.
그 공격에 만들어진 결과물만 봐도 자신의 아버지 장선동 회장이 가장 실력자였다.
부경 화학은 재경 쪽으로 그 어떤 것도 빼앗긴 것이 없다.
오히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던 부경유통의 지분을 넘기고 작은고모로부터 화재 지분 12퍼센트를 받아 냄으로 그간 아슬아슬했던 화재의 경영권 방어에 철옹성을 쌓아 냈다.
물론 그로 인해 막내 아버지네, 유통 쪽과의 관계가 크게 틀어졌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백화점과 면세점, 아웃렛을 모두 빼앗기고 간신히 마트 사업권만 유지시킨 부경유통은 사실상 떨거지가 된 것이나 진배없는데.
지금 장민석의 눈에 작은아버지 둘과 고모의 모습은 마치 거지새끼 둘과, 패잔병 주제에 거지새끼들을 이끌고 자신의 집에 구걸을 하러 와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는 바보들의 조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민석은 언제나 그랬 듯 진중한 모습으로 어른들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요즘 귀가 어둡다. 그래서 누굴 만날 때마다 민석이를 옆에 앉힌다. 왜? 이젠 그런 거까지 다 참견을 하겠다고?”
“형님은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요? 참견이라니?”
“쓸 말 외에는 다 참견이고 오지랖이다, 선길아. 오지랖 한번 잘못 부려서 조카 상대로 그 우사를 당해 놓고, 그 화풀이를 지금 내 아들한테 하는 거야?”
“형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따끔한 일침을 가해 놓고 유통의 장선열을 쳐다보는 장선동이었다.
“선열이 너는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내 얼굴 안 볼 것처럼 하더니, 여긴 어쩐 일이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참 나도 속도 없지. 여기 찾아온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긴다고….”
아예 눈조차 맞추려 하지 않는 막냇동생의 모습에 장선동은 한심하다는 듯 입맛을 다심과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장혜선을 쳐다보며 물었다.
“현민이는 요즘 어떻게 하고 있어?”
“뭘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런 걸 물어요? 맨날 술이지 뭐.”
“뭐 잘한 게 있다고 술을 마셔, 술을 마시긴. 지가 조금만 간수를 잘했어 봐라, 그렇게 어이없이 통째 다 빼앗길 일이 있었나. 너는 그동안 호텔 일에 관심이 있긴 했어? 그냥 현민이한테 사업총괄 자리 맡겨 놓고 아예 신경을 안 썼던 거 아니냐고. 어떻게 26퍼센트를 들고 있으면서 11, 12. 그 23퍼센트한테 경영권을 홀라당 빼앗길 수가 있어?”
“재밌수? 남 다친 데 그렇게 걱정해 주는 척 생소금 뿌려 대면 재밌어요?”
“너희 셋 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짜고 왔어? 왜 이렇게 사람이 진심으로 해 주는 말을 삐딱하게 받아? 현민이한테 당분간 물산에 와 있으라고 해라.”
“거길 현민이가 가서 뭐 해요?”
“그럼 계속 술만 마시면서 퍼질러 있게 만들래? 뭘 다시 해 보더라도 중간에 뜨는 시간은 없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아무것도 정해진 거 없이 그냥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사람을 더 가라앉게 만들 수가 있다. 이건 오빠 말 들어라. 현민이한테 말해서, 와신상담한다는 기분으로 물산에서 일 배우라고 해. 물산 일 배워 놓으면 어디서든 써먹을 일이 생긴다. 다시 호텔을 준비하더라도, 물산 관련 일을 좀 해 보고 덤비면 쉽게 풀리는 게 많을 거야.”
사실 장혜선은 오빠, 장선동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도움이 절실한 입장이었다.
장혜선의 원망은 현재 오빠, 장선동에게 향해 있는 게 아닌 동생, 장선길에게 향해 있었다.
스너프를 상대로 부경통신이 제휴 해지에 관한 내용을 조금만 더 버텨 줬더라면, 그래서 임시 주총 전까지 부경호텔 우호 지분들을 단단하게 묶어 주기만 했더라면 호텔의 경영권을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실력자인 양 목에 힘을 빳빳하게 넣어 놓고 자기만 믿으라고 할 때엔 언제고, 부경통신의 웹 콘텐츠 사업까지 외조카에게 빼앗기며 그나마 버티고 있던 우호 지분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켜 냈다.
“형님.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둘이 따로 있을 때 하거나, 아님 통화로 해요, 통화로. 지금 우리 부경이 재경을 상대로 피떡이 되고, 그래서 똥개 새끼 취급까지 당하고 있는데 현민이가 술독에 빠져 있건, 계집질에 빠져 있건 그게 중요해요? 술독에 술 다 떨어지면 어련히 알아서 안 기어 나올까.”
통신의 장선길에게는 형님, 누님, 동생들 모두가 다 원망의 대상이었다.
막내 선열이는 뭐 하러 작년에 이유 없이 재경모직을 건드려서 유통을 반토막 냈고, 형님은 재경에서 선열이 목에 칼을 겨누는데 고작 화재 지분 챙기겠다고 재경에게 유통 지분을 넘겼다.
그리고 누님은 왜 하필이면 호텔 경영권 방어에 대한 도움을 자신에게 부탁해서 이 사달이 나게 만들었단 말인가.
장선길 회장에겐 이 자리엔 없지만 완전히 재경 사람이 되어 버린 장혜란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함께 모인 다른 형제들 모두 치가 떨릴 정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에도 뭉쳐야만 했다.
그러자고 오늘 이 자리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거니까.
“혜란이, 손 서방. 저렇게 애새끼들 앞세워서 우리 부경 향해 망나니 칼춤 추는 거 계속 내버려 둘 거요?”
“안 내버려 두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형님!”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아아아… 형님은 손해를 본 게 아무것도 없으시다?”
동생의 선 넘는 도발에도 장선동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가만히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앞으로도 쭉 없을 거 같아요? 지금 손 서방 그 새끼 하는 짓을 봐요. 아예 작정을 한 거 아니에요? 우리 쪽으로 넘겼던 거 다 되찾아 가겠다고 하는 걸로 안 보이시냐고.”
“왜 우리는 아무것도 빼앗기면 안 되는 건데?”
“뭐, 뭐요? 봄날에 더위를 자셨나, 무슨 그런 소리가 있어요?”
“왜, 네들이 손 서방 쪽으로 시비를 먼저 걸어 놓고, 엄한 곳에 칼을 휘두른 것처럼 손 서방을 몰아가? 선열이. 너 그 부분에 있어서 할 말 있어? 내가 왜 네 편만 들어야 되는 건데? 혜란이도 내 동생이야. 너보다 3년을 먼저 본 동생이야. 싸가지 없이 누나, 매형 상대로 군기 잡기 하다가 혼쭐이 나 놓고, 그걸 나한테 와서 편 안 들어 줬다고 남남을 하자고? 철딱서니 없는 놈. 네가 아쉽지, 내가 아쉽겠어? 너 민수 보기 쪽팔리지도 않냐?”
장선동은 곧바로 장선길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렇게 잘난 너는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여기 찾아와 그런 소릴 주렁주렁 늘어놔? 그렇게 잘났음 네가 알아서 뭘 해 보든지. 너 사돈어르신 세상 버리기 전까지는 손 서방한테 맞존대했었다. 사실상 네가 조금이라도 경우가 있는 사람 같았음 지금까지 손 서방한테 그렇게 했어야 돼. 혜란이 재경에 들어가기 전에 너 손 서방한테 형님, 형님 하면서 받은 도움이 좀 많냐?”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우리끼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민석이 앞에서 그런 소릴 해요?”
“네가 진짜 네 입으로 떠들어 대는 것만큼 잘난 놈이었으면, 프랑스에 넘어가 있던 사돈총각이 한국 들어와서 호텔 사업에 야심을 드러냈을 때 말이다. 진심으로 네 누나를 도울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얕은수를 쓸 수가 없는 거지.”
“야, 얕은수라고 했소, 지금?”
“그거 핑계 삼아 재경항공, 스너프 상대로 결제 수수료 좀 올려 보겠다고 끼어든 거 아니냐고.”
“……!”
“너 빼고 세상 사람들 다 바보지? 네 욕심에 네가 묶여 놓고, 네가 지금 누굴 탓해? 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네 사업만 신경 써서 하고 있는데, 정태가 널 찾아가서 그렇게 우악을 질렀던 거냐고. 그놈 그것도 외삼촌 상대로 그런 우악을 지른 건 잘못한 거지만 그 빌미는 네가 제공을 한 게 맞지.”
“형님은 지금 누구 편이요?”
“내가 너, 그리고 혜란이 사이에서 꼭 누구 편을 들어야 되는 거냐? 굳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거라면 이번 건은 손 서방 편을 들란다.”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시네.”
“제정신은 네가 아닌 거 같다야. 정신 차려, 선길아. 너는 단 한 번도 너 혼자서는 손 서방 상대로 우위에 있었던 적이 없다. 너, 그리고 선열이. 너희 둘 빼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야.”
장선동과 장선길이 완벽하게 척을 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이게 우리 형님 스타일이지.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길 찾아온 내가 등신이네. 내가 등신이야.”
원망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장선길의 편에 서게 된 장혜선.
그녀 역시 자기 살길만 찾고 있는 오빠의 모습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 나는요? 부경호텔은?”
“…….”
“내가 지들한테 뭘 했는데?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런 거냐고. 때 되면 사람 시켜 김장 보내 줘, 같이 꽃놀이 가자고 찾아가 줘. 내가 선길이, 선열이처럼 손 서방을 내려다보길 했어, 아님 지 자식들을 무시하길 했어? 나는 도대체 뭘 어떻게 했다고 내 거만 아예 싹 다 털어 갔냐고!”
“그래서 금방 내가 말했잖아. 당장은 현민이부터 물산으로 보내 보라고. 너 저기, 사돈총각한테 지분 절반 넘기고 받아 놓은 돈 있잖아. 거기에 화학, 물산, 화재에서 각각 조금씩 추려서 지분 나누기로 보태 줄 테니까, 현민이 앞으로 리조트 하나 만들어서 맡아 나가게 해. 이미 벌어진 일 어쩔 거야? 원망을 할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지.”
“마음도 받기 싫네. 그래도 고맙수. 생각해 주는 척이라도 해 줘서. 선길아. 오빠는 생각이 없는 거 같으니까, 우리끼리 하자, 그냥.”
“뭘….”
장선동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으려고 할 때였다.
유통의 장선열이 정말로 선을 긋겠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내 뭐랬소, 형님. 큰형님은 큰형님 몸 사리기 바쁘지, 자기 배부르고 등 따시면 동생들이야 어떻게 되든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라니까?”
통신의 장선길이 말했다.
“형님이 이걸 아셔야 돼요. 지금 재경 재계 순위가 우리 코앞까지 올라왔어요. 스너프 하나 제대로 키워 놓고 우리 부경을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장선동은 그런 장선길이 어리석고, 답답해 보이기만 했다.
“사업이 무슨 올림픽이야? 재계 순위가 기업 순위냐고. 내 사업의 성적은 내 통장에 꽂히는 숫자로 결정 나는 거지, 그딴 순위가 아니야, 이 사람아.”
“참 말 안 통한다, 말 안 통해. 벌써부터 옛날 일 복수하겠답시고 저 지랄들인데, 여기에서 더 커지면 재경이 우릴 어떻게 할 거 같아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장선길이 말했다.
“사돈어르신 살아 계실 때, 재경에서 알짜 소릴 듣던 것들 지금 다 형님한테 가 있어요.”
“걱정해 줘서 고맙다.”
“갑시다, 누님. 선열이 너는 아까 형님한테 따로 할 말 있다고 안 했었냐?”
“안 해도 알 거 같아서 그냥 안 할랍니다. 가죠.”
동생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집 안.
그 넓은 공간 속에 남은 건 장선동 혼자뿐이었다.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를 현관 앞까지 배웅을 해 주고, 아버지 곁으로 다가간 장민석은 코로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런 아들에게 장선동이 말했다.
“내가 왜 오늘 이 자리에 자영이는 안 부르고 너만 불렀는지 알겠냐?”
“…아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