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3)
“네.”
“객실 이용객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삶의 여유를 만들어 내는 자신들만의 확신한 루틴이 잡힌 사람들입니다. 새벽 5시, 그 이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
“그런 사람들이 아침 식사의 중요성을 모를까요? 그런데 왜 우리 수영장, 피트니스 회원들은 여기에서 운동은 하면서 아침 식사는 여기에서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의 수준만 이곳 조식 레스토랑이 맞춰 낼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이곳 스파 이용을 안 하겠습니까, 와인 바, 연회장 이용을 안 하겠습니까?”
그 말에 알폰트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식사 중인 고객들의 테이블을 확인했다.
“너무 한국이라는 나라의 로컬 스타일에 조식 메뉴가 맞춰져 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 부분에 신경을 썼던 게 사실이다.
JK 드 누락이 부경호텔이었을 시절, 그 당시 사업 총괄이 주문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메뉴는 많은데, 제 기준에선 먹을 게 없네요. 계란 요리 하나 정도? 그나마도 저니까 특별히 신경을 써서 준비를 해 준 요리였겠죠?”
손정엽 대표의 지적은 정확했다.
“조식에 핫 테이블(뜨거운 요리)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계란 요리 쪽에만 주방 직원이 두 명이나 붙어 있어요. 소시지, 베이컨 쪽으로도 한 명, 베이커리 쪽에 한 명, 면 요리 쪽으로도 한 명. 그런데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이 즐기는 콜드 테이블엔 아무도 없어요. 그냥 샐러드만 깔려 있고. 전형적인 코리안 스타일이죠.”
“네, 저도 처음 한국에 와서 다른 호텔들을 방문하는 동안 참 특이한 문화라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다른 지점과 달리, 이곳 강남점은 객실 이용객이 아닌 부대시설 이용객들로 더 많은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그걸 한 끗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 한 끗으로 정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강남점이란 말이죠.”
“…….”
“저렇게 뷔페 테이블에 주방 직원을 네 명, 다섯 명씩 스탠바이를 시킬 거라면, 차라리 콜드 테이블에 좀 더 신경을 쓰고 핫 테이블은 부분 알라카르테로 바꿔 보세요.”
“부분 알라카르테요?”
“뷔페의 장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알라카르테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기분. 저 같은 경우는 아침 식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먹지 않아요. 그건 아침, 새벽에 강남점의 수영장, 피트니스를 이용하는 고객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신다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우선 저는 아침에 오트밀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곳 뮤즐리는 그릭 요거트가 아니라 한국식 단 요거트로 맛을 내어서 저는 못 먹겠어요.”
알폰트는 손정엽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폰을 꺼냈다.
그리고 폰의 메모 기능으로 손정엽 대표가 해 주는 의견을 빠르게 옮겨 나갔다.
“퀄리티 좋은 올리브오일. 이만한 컵에 반잔씩 준비해 줄 수 있잖아요. 거기에 베리류 아무거나. 특히 저는 아침에 꼭 블루베리를 먹습니다. 그것도 냉동을 먹어요.”
“블루베리는 냉동이 프레쉬한 것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죠.”
“가격은 훨씬 싸고. 퀄리티 있는 올리브오일, 그릭 요거트에 탄 오트밀 뮤즐리, 거기에 블루베리와 아몬드 몇 알, 부드러운 계란 요리. 그런 식으로 식단 관리를 하는 고객들을 위한 알라카르테 메뉴를 만들어 보시라고요. 콜드 테이블은 샐러드 바 이용하듯 편하게 이용하면 되는 거고.”
“…….”
“지금 여기 조식은 시티 호텔 조식이 아니라 완전 휴양지 리조트 호텔 조식이에요. 강남점은 호텔 이용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찾는 지점이란 말이죠. 특별한 날에 찾는 고객들이 아니라. 뷔페라고 해서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그날 하루를 더부룩한 속으로 지내겠다는 고객들이 거의 없단 말이에요.”
확실한 피드백을 받은 알폰트의 얼굴에 명쾌한 표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로컬 스타일에 맞추는 것도 참 중요한 부분인데, 로컬 스타일이 스탠다드가 되어 버리면 그 호텔은 로컬용밖에 안 되는 거예요. 현지화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알폰트가 경험한 호텔의 모든 고급스러움을 이곳 조식 레스토랑에 다 적용을 시켜 보세요. 계약 7월에 끝나죠?”
“네.”
“다음 달까지 조식 레스토랑 업그레이드 가능하겠습니까?”
“다음 달까지요?”
“업그레이드시켜 놓고 재계약 관해서 알폰트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미안해요, 잠깐만요.”
뜬금없이 식탁 위로 올려져 있던 손정엽 대표의 폰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훈이>
폰 액정에 정훈이의 이름이 떴다.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출근했어?
“출근은 진작에 했지.”
―벌써?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게 호텔이야.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네가 전화를 다 하고.”
―혹시 내일 저녁에 약속 있어?
“내일? 아니? 아마 없을걸?”
―확실히 해야 해. 있어, 없어?
“뭐길래 이렇게 터프하게 물어?”
―태영백화점 알지?
“당연히 알지.”
―거기 부사장이 태영쇼핑 막내 아들이야.
“구정진 부사장? 그 위로 아들이 더 있어? 거긴 위로 다 딸이고, 아들은 구정진 부사장 하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어?
“인터넷. 태영쇼핑 그쪽은 연탄 봉사 같은 거 하면서 언론 플레이 꽤 하는 거 같던데? 근데 그 사람이 왜?”
―내일 시간 되면 같이 보자고. 내가 자리 만들기로 했어.
어쩔 수 없이 걸리는 존재.
“그런 자리라면 나 말고 정태한테 같이 가자고 해야지.”
―나올 거야.
“정태도?”
―어.
“나 부르는 거도 알아?”
―알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부르라고 했어. 그래서 전화하는 거고.
“정태가… 나도 부르라고 했다고?”
―손정엽 대표.
“왜?”
―왜 이렇게 시시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가?
“…….”
―방금 한 게 배려였어, 아님 눈치를 보는 거였어? 배려를 할 거면 뒤가 아닌 앞에서 하고, 눈치를 볼 거면 남한테 들키지 말고 혼자서 봐. 내일 시간 돼, 안 돼?
―너는 이 시키야, 맨날 그렇게 형을 가르치지? 어? 알았다. 나중에 시간하고 장소 정해지면 연락 줘.
“내일 7시, 소공동점.”
* * *
넌 지금 이 순간부로 나의 개다
지난주부터 부경물산 쪽에서 계속 말 같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연락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중국산 명이에 관심이 있냐는 내용인 거 같은데, 명이나물로 뭘 어쩌자는 건지, 참….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명이는 그저 명분 깔기일 뿐이고, 그 명이를 가지고 우리 재경식품, 더 나아가 재경 그룹을 상대로 장선동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지금까지 부경물산에서 우리 쪽으로 이런 제안을 넣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아뇨,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고 하니까 나도 거절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부경유통을 시작으로, 올해는 부경호텔을 가져왔다.
그다음 타깃은 당연히 화학의 장선동이 차례.
그걸 눈치를 챘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하긴 아직 눈치를 못 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건가?
그래서 해 오는 접근이다 이거지?
공포스러울 거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내 사업에 찾아온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직접적으로 찾아왔을 땐 마음이 차분해진다.
위기가 눈앞에 왔다는 건 이미 늦었다는 말이니까.
반면에 내 사업에도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게 사업하는 사람들이 항상 싸 들어 메고 사는 가장 큰 공포다.
그런 공포를 내가 지금 선물해 주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몇 개 안 남았지?
물산, 화재, 건설.
그런데 이자라는 게 있으니까.
20년 세월이 훌쩍 넘었는데, 거기에 쌓인 이자가 얼마나 되겠나?
그 이자는 홍준이 놈을 대신해서 내가 받아 줘야지.
복수?
아니.
난 그런 거 안 한다.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그냥 부경의 모든 것을 다 가져와서, 우리 재경을 살찌우는 거름 정도로만 쓸 생각이다.
구매부를 통해 해당 내용을 보고 받아 나에게 전달한 재무이사에게 부경물산 쪽으로 전화를 넣어 보라고 했다.
내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어 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장민석이로부터 직접 전화가 걸려 왔다.
귀여운 놈.
내 그럴 줄 알았다.
명이나물은 뭔 놈의 명이나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지.
* * *
“그냥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니까. 별 내용 아니야.”
결국 장민석이가 식품 본사로 찾아왔다.
저녁에 같이 술을 한잔하자길래, 저녁엔 정엽이, 정태와 선약이 있다고 했더니 그럼 점심을 같이하자고 하는 거다.
그런데 점심 역시 모범태 전무와 선약이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비싼 척 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장민석이 이놈이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니까,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비싸게 굴어 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에 보자고 했잖아. 자기가 찾아와 놓고, 왜 나한테 그래? 그리고 대충 들어만 봐도 말 같잖은 내용이더니만, 뭐 한다고 말 같지도 않은 걸 사업이랍시고 우리 쪽에 제안을 넣고 그래? 제안 넣고, 받는 사람들만 중간에서 피곤하게.”
“설마 내가 오피셜하게 진행을 하라고 시켰겠냐? 식품 관련된 내용이니까, 너네 쪽으로 말이나 한번 넣어 보라고 했던 거지. 나도 자세하게는 잘 모르는 내용이야.”
내가 봤을 때 너는 그거뿐 아니라, 자세하게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우리 쪽 건설 중장비가 현재 중국에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몐양이라고 서부 개척 프로젝트 딱 중간에 물려 있는 사천 도시가 하나 있는데 작년부터 중장비를 그쪽으로 다 옮겨 놨거든.”
“그런 거 보면 참 용해.”
“용해? 뭐가?”
“요즘 뭐 한국 기업들 다 철수하는 분위기 아닌가? 그 와중에도 계속 그렇게 버티고 있는 거 보면 용하다는 뜻이야.”
“우리 쪽 중장비는 대체가 불가능하니까. 그쪽이라고 어쩔 수 있겠어?”
“그런데? 중장비 본진을 옮겼는데 거기에 뭐가 있어?”
“몐양 그 동네가 진짜 아예 다 산이야. 예전에 15년? 16년? 아무튼, 그 전쯤에 사천에 지진 한번 크게 났잖아.”
그건… 몰랐던 내용이네.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제일 피해가 심했던 동네가 그 동네였어. 도로, 주거 위주로는 복구를 빨리했는데, 나머지 산 쪽은 아예 손을 못 대고 있었던 곳이 많았나 봐. 그런 곳 중 한 곳을 우리가 찾아서 중장비 가라지(일종의 창고, 혹은 센터판)로 쓰고 있거든. 그런데 그 산이 진짜 웃긴다? 온 산이 다 명이야. 너 명이가 뭔지는 알지? 왜 고기 먹을 때 장아찌처럼 싸 먹는 거.”
“그것도 모르고 보자고 했을까.”
“아무튼 그게 지천에 깔려 있어. 근데 진짜 웃긴 게 이 명이나물을 먹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없는 거야. 다리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고, 하늘을 나는 건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 사람들도 명이나물은 안 먹는대. 그걸 사람들을 써서 다 쳐 낸다? 그냥 한국 벌초하는 식으로. 그걸 다 쳐 가지고 버리는 거야. 명이 그건 돼지 사료로도 못 쓴대.”
“그니까 그걸로 뭘 어떻게 하라고?”
“시설 크게 할 필요도 없어. 그냥 장아찌 담을 수 있는 공장 사이즈 정도? 어차피 우린 사람을 써서 그걸 다 쳐 내야 하고, 또 그걸 버리는 비용도 들거든. 너네 식품에서 거기에 작은 공장만 하나 차려서 바로 장아찌 처리를 해 버리면 되잖아. 그럼 너희는 돈 한 푼 안 들고 원재료 확보하는 거고, 우린 처리 비용 세이브가 가능하고.”
“그렇게 장아찌 처리를 해서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라?”
“너네는 그쪽 채널이 다양할 거 아냐. 직접 외식사업부도 돌리고 있으니까. 국내 삼겹살, 소고깃집에만 다 풀어도 그게 돈이 얼마겠어?”
말없이 한참을 쳐다봤다.
자기도 민망했겠지.
“왜? 별로야?”
갑자기 올라오는 호기심.
이걸 장민석이는 진짜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님 저 표정이 능청인 것일까?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예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마 진짜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라 애써 믿어 주고 있는 중이다.
난 일부러 녀석의 관심을 고맙게 받아 주는 모습을 보였다.
“돈 안 돼.”
“그렇겠지? 그럴 거야. 큰돈은 안 될 거야.”
“돈이 된다고 해도 우리 재경식품이 할 사업은 아닌 거 같고.”
“사이즈가 작긴 작지?”
“사이즈를 떠나서, 돼지 사료로도 못 쓰는 걸 돈 된다고 우리 재경이 사람들 먹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야, 그렇게 따지면 골뱅이는? 골뱅이, 홍어, 깻잎… 그거 다 한국 사람들만 먹지, 다른 나라에서 음식 취급이나 해 주냐?”
“그래도 우리가 할 사업은 아닌 거 같다. 암만 우리가 이것저것 다 만들어 팔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명이나물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니고, 돼지 사료로도 안 쓰는 걸로 돈 좀 만들어 보겠다고 그걸로 시장 개척하고, 기존에 먼저 들어가서 사업 하고 있는 자영업자들 짓누르는 거. 보기 안 좋아.”
“그러냐? 네가 별로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도 식품 쪽으로는 잘 모르니까. 근데 또 거기에 그런 소스가 천지에 널려 있다고 하고. 그 이야기 듣는 순간 바로 네가 식품에 와 있다는 게 떠오르는 거야. 그래서, 겸사겸사 물어나 보라고 했던 거지.”
멍석은 깔아 줄 수 있는 만큼 다 깔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