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10)
“정확한 앞뒤 정황도 안 따져 보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수사를 진행해서 일을 이렇게까지 키워 놓는다고? 기자 회견 하는 거 보니까 미래금융에서도 가만히 안 있을 거 같은데,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운전기사도, 그 옆 조수석에 앉아 있는 비서실장도 장선길 회장의 태세 전환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저한테 그렇게 물으시면 제가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하는 건지….
“말을 왜 그렇게 합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 생기겠네.”
―네?
“그러게, 뭔가 수사를 할 거면 확실한 정황을 잡고 했어야지. 제대로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명색이 배운 거 많은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그렇게 무작스럽게 해요?”
―회장님. 지금 이건 저희 쪽에서 무리를 한 게 아니라, 저희는 순차적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언론에서 깜빡이도 안 켜고 밀고 들어와서 꼬인 거예요.
“그런 부분을 잘 이용해서 수습하는 데 활용을 하는 수밖에 더 있어요? 나한테 그런 말 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옵니까?”
―하아, 회장님.
“한숨을 쉬더라도 딴 데 가서 쉬어요. 왜 내 앞에서 한숨을 쉬는 거지? 한숨은 지금 내가 쉬어야 해, 이 사람아.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말이야. 내가 그간 이리저리 챙겨 준 밥값이 얼만데, 그 밥값도 못 하면 어쩌자는 거야?”
통화 중이던 장선길 회장의 폰으로 새로운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부경화학 장선동 회장의 전화였다.
“전화 들어오고 있으니까, 일단 통화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로 통화를 하는 건 당분간 서로 삼가를 합시다. 곧 좋은 날 오겠지. 날 좋을 때 같이 공을 치든, 밥을 먹든 하는 걸로 하고, 어쩌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 적당히 잘 주워 담아서 수습을 하는 수밖에 더 있겠냐고.”
―알겠습니다.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회장님 입장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전화 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
“이런 버러지 같은 새끼가….”
장선길은 감히 자신을 상대로 고작 법쟁이 나부랭이가 먼저, 그것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가 들어왔다고 계속해서 깜빡거리고 있는 스마트폰 때문에 애써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왜요? 요즘 많이 외로워요? 왜 자꾸 남 일하는 시간에 전화를 하고 그래요?”
―너 금방 장태산 그 노인네 기자 회견 하는 거 봤지?
장선동의 다급한 음성에 장선길은 피곤한 통화가 시작될 거 같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왜. 뭐 어쩌라고요?”
―분명히 그때 전화로 너한테 이야기했다. 이건 네가 한 거지,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야.
“불난 집에 부채질하겠다고 전화한 거요?”
―그러게 왜 그 나이 먹고 불장난을 해? 네가 한 불장난에 타는 건 네 집 하나면 족하다는 말을 하는 거야. 괜히 엄한 우리 집으로 그 불길 옮겨붙지 못하게 만들라고.
“이젠 하다 하다 형님까지 이러는 거요? 원래부터 이런 분인 거 알고는 있었지만, 이 와중에 전화를 걸어서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그건 네 생각이고. 그러게 왜 걱정해서 해 주는 말을 안 들어 처먹어?
“뭐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처먹어? 지금 나한테 처먹어라고 한 거요?”
―내가 지금 너한테 더한 말인들 못 할까. 장태산 그 영감 지금 바싹 독이 올라 있어. 못 느꼈어? 그 독을 누가 올렸는데? 아버지가 만호라고까지 말씀하시면서 조심하라고 했던 인간이야. 그런 인간이 저렇게 독이 올라서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돌아다니는데, 너 같으면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겠어?
“들쑤시고 다닌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어딜 어떻게 들쑤시고 다닌다는 건데?”
―네가 한 걸 그 양반이라고 못 할 줄 알았어? 오히려 기자 회견 통해서 자기 쪽으로 유리한 명분까지 다 만들어 놨겠다, 벌써부터 여론까지 돌아서고 있는데 그 양반이 지금 못 할 게 뭐가 있겠냐고.
“…….”
―너 인마, 지금 벌집 쑤셔 놓은 거야, 그것도 독이 바짝 올라 있는 벌집. 너 이거 수습 제대로 못 하면 상황 이상하게 풀린다. 내가 네 걱정 해 주는 건 딱 여기까지야.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번 일에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 그 부분에서 네가 섭섭해할 이유 같은 건 없는 거야.
“섭섭함이라는 것도 기대가 있어야 생길 수 있는 거 아니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형님한테 기대라는 걸 해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장선동과 통화를 끝낸 장선길은 마음이 급해졌다.
“재경 본사로 가자. 손 서방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우선 차부터 돌리게 만든 뒤 장선길은 손홍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수석에 앉은 비서실장은 장선길 회장이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능숙하게 고개를 돌려 장 회장의 심기를 확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 그래 손 서방. 점심 식사는 했어?”
―이제 하러 나가는 중입니다.
“아, 그래? 그거 잘됐네. 나도 아직 점심 전인데, 손 서방 시간 괜찮으면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할까?”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뜬금없이 옆 차선에서 차 한 대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들었고, 그에 운전기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뒷좌석에서 통화 중이던 장선길 회장이 앞으로 쏠려 우스운 모양이 연출되어 버렸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장선길 회장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비서실장이 얼른 몸을 돌려 장선길 회장의 상태를 확인했고, 운전기사 역시 바짝 긴장을 한 상태로 백미러를 통해 거듭 고개까지 숙여 가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장선길 회장은 아직은 통화 중이라서 어쩔 수 없이 그 통화에만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했지? 미안해. 방금 내가 뭐라고 한지 못 들었어.”
―당분간은 서로 조심을 좀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어요.
“조심? 무슨 조심? 우리 사이에 조심할 게 뭐가 있을까?”
―바로 조금 전에 미래금융 장 회장님이 기자 회견 하셨는데, 혹시 못 보셨어요?
“그랬어? 몰랐네, 나는. 안 그래도 요즘 미래금융이 많이 시끄러운 거 같던데, 그거 때문에 하신 건가?”
―못 보셨구나. 하긴 형님이 한가하신 분도 아니고, 관심이 없었으면 못 보셨을 수도 있죠. 그런데 미래금융도 미래금융이지만, 스너프부터 시작해서, 모직까지 우리 재경이 미래금융하고 최근 2년 동안 연계된 사업이 많다 보니 저희도 타격이 작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안 그래도 요즘 그거 때문에 신경 쓸 일 많을 거 같아서 따로 연락을 못 했어, 내가. 그래서 겸사겸사 손 서방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점심이나 할까 해서 전화했지. 따로 약속 같은 거 없으면 같이 점심이나 하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좀 나눠 보고.”
―다음에 하는 걸로 하십시다, 형님. 따로 약속이 있는 건 아닌데, 제가 요즘 여유 있게 숟가락을 들 형편이 아니라서요.
“누가 밥만 먹자고 전화를 한 거겠어? 서로 도울 일은 없는지 그런 것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뾰족한 수도 생길 수가 있는 거고. 다 그런 거지, 안 그래? 여론이라는 게 그렇다, 손 서방. 아무리 요즘 시끄러운 게 미래금융 때문이라지만, 어쨌든 거기에 재경의 이름도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잖아.”
―허허허… 그러게요.
“시대가 많이 변했어. 옛날이랑은 달라. 이젠 우리 재벌들도 적당한 선에서 해명을 할 건 해명도 해 주고, 수습을 하려는 모습 정도는 보여 줘야지, 너무 예전 생각만 하고 알아서 무마가 되겠지…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거기에 괘씸죄라는 게 따로 붙는 시대라고.”
―괘씸죄… 표현이 참 그럴싸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그런 표현을 참 자주 쓴다고 하더라고. 나 지금 손 서방 있는 쪽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자.”
―죄송합니다, 형님. 오늘은 좀 힘들 거 같고요, 제가 조만간 따로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같이 밥 한 끼 하자고 전화 건 사람 무안하게 이럴 거야, 진짜?”
―우리 사이에 이런 걸로 무안해질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요, 형님. 안 그렇습니까?
“…….”
―제가 조만간 따로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오늘은 제 걱정 해 주시는 형님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끊어진 전화.
장선길 회장은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목 근육을 풀었다.
그런 장선길에게 비서실장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다시 차를 돌립니까?”
“아냐, 차 돌리기 전에 잠시 저기 한쪽으로 차 좀 세워 봐.”
장선길을 태운 차가 도로 한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고,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세워졌다.
비서실장은 상체를 뒤로 빼고는 있었지만, 장선길 회장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야이, 새끼야.”
장선길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란 비서실장은 자신을 향해 내뱉는 말이라 생각을 하고 얼른 고개를 들어 회장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장 회장의 손이 운전기사의 뒤통수를 조롱하듯 내리치기 시작했다.
탁, 탁!
한 대, 두 대… 처음엔 가벼웠던 손매에 점점 힘이 붙어 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운전기사의 머리채를 잡고 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누가. 운전을. 그따구로. 하라고 했어? 아까 브레이크 왜 잡았어?”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몸을 움추리고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악이 터질 대로 터진 장선길은 이번엔 발길질을 해 대기까지 했다.
그 좁은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 거침없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운전만 하는 새끼가 그것조차 제대로 못 해내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야?”
퍽!
급기야 운전기사가 쓰고 있는 안경이 어딘가로 날아갔다.
화풀이를 위한 짐승과도 같은 발길질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내가. 너 같은 새끼한테. 왜. 내 피 같은 돈을. 월급으로. 줘야 하는 거냐고.”
말이 끊어질 때마다 발길질의 강도는 강해지고 있었고, 급기야 구둣발에 긁힌 운전기사의 한쪽 얼굴에선 피가 올라오고 있었다.
퍽!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대답 안 하지? 어?”
퍽!
“대답 안 해?”
그런 장선길의 짐승 같은 모습, 그리고 그 짐승에 의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는 운전기사의 모습을 보고 있던 비서실장은 결국 자신의 두 눈을 감아 버렸다.
* * *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뜨겁구나
태영마트의 구현애를 찾아갔다.
마치 내가 미래금융의 기자 회견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을 찾을 줄 알았던 사람처럼, 흔쾌히 약속을 잡아주었다.
“어서 와요. 좀 어때요? 회사 분위기 많이 안 좋죠?”
우리 재경식품 쪽으로 민망한 마음이 있을 거다.
미래금융 게이트가 터짐과 동시에 태영의 백화점, 아웃렛 쪽으로는 쁘띠 기뿔리 매장의 오픈이 보류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태영마트 쪽에서도 미리 잡혀 있던 우리 제품에 대한 프로모션들이 일제히 취소가 되고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 태영 쪽으로 컴플레인을 걸 수도 없었던 게, 그만큼 여론이 미래금융 게이트로 인해 우리 재경 쪽으로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태풍이 불 땐 배를 띄우는 법이 아니지.
우리 재경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그리고 태영의 입장에선 적절한 조치였다고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성급한 정치·경제 이슈 유튜버들, 렉카라는 친구들이 앞다투어 검증되지 않는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어 뿌려 댔고, 오히려 공중파, 편성 채널에서보다 더 집중적으로 해당 이슈를 다루다 보니 거기에서 파장된 기업 이미지 실추, 매출 감소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업이라는 게 아무리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지만, 의리만 가지고 해낼 수는 없는 게 사업이기도 하니 엄한 태영쇼핑 쪽으로 아쉬운 소리, 섭섭함을 표현할 수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모처럼 코끝에 고무 타는 위기의 냄새가 걸렸던 지난 한 주였다.
하지만 동시에 확신도 있었다.
태영 쪽에서도 우리 못지않게 하루빨리 상황이 역전되길 바라고 있을 거라는 확신.
정치쟁이들, 법쟁이들을 사돈으로 잡고 있는 구봉학이가 아닌가.
미래금융 게이트의 본질과 구성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내 예상대로 구현애 역시 자신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미래금융 측에서 능동적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는 모습에 무척 안도를 하며, 자신들이 협조를 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물어 왔다.
“부경마트를…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못 알아듣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구현애는 실눈을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내가 보이는 의지로부터 한발 뒤로 물러서려 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벌써부터 주고받기엔 퍽이나 부담스러운 결심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부경마트? 제가 제 시동생 통해 듣기로는 부경마트 쪽이 아니라, 부경통신 쪽이 이번 미래금융 게이트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거다, 청탁을 넣었을 거다…라고 하는 거 같던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장선길이 말고는 이렇게 간 큰 짓을 할 인물이 부경 쪽엔 없는 게 사실이니.
하지만 난 지금의 부경을 완전히 주저앉히기 위해선 우리 재경으로 인해 반토막이 난 부경유통, 즉 부경마트를 강하게 때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유통을 불통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생활 화학을 끼고 있는 장선동이의 부경화학까지 함께 발을 묶어 버리고 숨통을 막아 버릴 수 있는 거다.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조심해야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차마 이 젊은 얼굴을 해 가지고 구현애를 상대로 내가 홍명이, 홍준이 놈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쳤던 내 기업 철학을 읊어 댈 자신이 없었다.
자기 아들뻘밖에 안 되는 젊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우습고 같잖게 느껴질까 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던 거 같다.
“그 두 가지가 뭔가요?”
“인과응보, 그리고 자업자득.”
“인과응보, 자업자득?”
“네, 사업이라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듯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모든 건 결국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뜻이겠죠. 누군가가 제게 똥을 던졌다면, 똥을 던진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 이유를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내 몸에 묻은 똥을 상대방에게 똑같이 던져 주겠다고 하면 결국은 제 손에도 그 똥이 묻는 거겠죠.”
“흠….”
“제 손에 똥이 묻는 게 무서워서 제 몸에 똥을 묻힌 상대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겠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어차피 몸에 묻었든 손에 묻었든 똥은 묻은 건데 목욕을 해야죠.”
“그럼요?”
“남에게 똥을 묻힌 그 사람에겐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똥을 묻혀 줄 거라고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현애는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다시 커피 잔을 들었다.
“살짝 의외네요. 미래금융이 만들었던 기자 회견. 그 기자 회견이 저는 어쩌면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보고 있었는데, 액셀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겠다는 뜻인가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건 아니지만, 제가 손 상무님을 만난 이후로 가장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주고 계시네요. 아직 부경통신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정도로 제가 이해를 하면 될까요?”
그 질문에 난 가벼운 웃음을 흘려 주었다.
“장사꾼은 장사를 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상황이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역전이 되고 있는데, 이런 절호의 찬스를 고작 똥이나 던질 줄 아는 인간들 때문에 놓친다는 건 장사꾼의 자질이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더 되겠습니까?”
다시 한번 눈매가 가늘어지는 구현애였다.
“미래금융 기자 회견 한 번으로 지금 난립니다.”
“네. 더 많이 시끄러워질 거 같아요.”
“이미 미래금융이 손에 똥을 묻혔죠. 거기에 저희 재경까지 거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미래금융이 보여 준 의지를 믿기 때문에 함께 네거티브를 하기보다는 재경의 실속을 챙기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는 장사다?”
“남는 장사를 해야죠, 저는 장사꾼이니까요. 장사꾼이 실속도 따져 보지 않고 제 기분대로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제 기분 하나에 재경식품 전 직원의 밥줄을 위협받게 만든다면, 전 자격이 없는 경영인인 거죠.”
커피 한 모금.
잔을 다시 우아하게 내려놓고 구현애가 내게 물었다.
“제가 계속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버릇이 있어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고, 그래서 확신이 서기 전에는 쉽게 움직이지도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