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11)
“대표라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경마트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정확하게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외국계 브랜드가 새롭게 들어오지 않는 이상, 한국의 대형 마트 시장은 결국 태영과 부경, 이렇게 양강 구도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현재 저희 재경 식품은 한쪽 유통판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깝죠. 물론 유통이 온라인 기반으로 다양화되면서 가공제품 판매량의 50퍼센트 이상을 인터넷 채널 쪽에서 책임져 주고 있긴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판은 그 자체로도 브랜드 노출, 홍보라는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종목이니까요.”
“그래서요?”
“앞으로는 부경이 아닌 저희 재경과 그 양강 구도를 만들어 가는 게 태영 입장에서도 더 건설적이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구현애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오히려 저는 부경이 아닌 재경이 경쟁사가 되어 버리면 아주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아질 거 같은데요?”
“어떤 부분에서요?”
“과연 재경이 마트 유통까지 잡게 되면, 현재 재경식품에서 생산해 내는 가공품들이 우리 태영마트 쪽으로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들어올까부터가 의문이네요.”
협상을 통해 약속을 받아 내겠다는 게 아닌, 약속부터 받아 놓고 협상을 시도해 보겠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다.
확실히 구봉학이가 법쟁이, 정치쟁이들을 사돈으로 둔 부분을 제외하고는 자식들 사업 교육까지도 흠잡을 곳 없이 잘 시켜 놓았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실까요? 저는 반대로 저희 재경이 식품이라는 종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경과 태영이 마트 사업 쪽에서도 아주 건강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런 자신감이 저한테도 필요한 거죠.”
“아쉽습니다.”
“뭐가요?”
“그동안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충분히 저희 재경식품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 드리고, 설명을 드렸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금방 말씀드렸잖아요. 계속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버릇이 있다고.”
“그 확인을 앞으로도 제가 계속 시켜 드려야 하는 거라면 저도 힘들죠.”
“혹시 제가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건가요?”
“제가 대표님 눈에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나 봅니다.”
“……?”
“미래금융 게이트로 인해 현재 저희 재경이 보고 있는 피해에 대해서요.”
내 말에 구현애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빠르게 인정했다.
“이슈가 터지고 일부러 먼저 연락을 안 드렸죠. 혹시라도 제 연락이 대표님 사업하시는 데 괜한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서요. 미래금융에서 한 기자 회견을 보고 나니까 지금쯤이면 잠시 막혀 있던 사업을 천천히 다시 풀어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을 드리고 찾아왔던 겁니다.”
“…….”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죠. 똥 묻은 기업 이미지, 폭락한 주가, 박살이 난 매출… 그것들을 다시 회복을 해야 하니까요. 저희 재경은 태영을 파트너를 넘어 아군이라고까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태영은 저를 상대로 구걸을 원하시는 거 같습니다.”
“아니에요. 무슨 소릴! 괜히 그런 오해하지 말아요. 나 그렇게 사업 주책맞게 하는 사람 아니니까. 미안해요. 실은 저희 아버지가 손 회장님께 전화를 드리셨다네요.”
벌써?
“이야기 들었어요?”
“아뇨, 지금 처음 듣는 내용이네요.”
“저희 쪽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연락을 드리셨대요.”
“저희 회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답니까?”
“재경 쪽으로 들어온 타격 정도는 얼마든지 빠르게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을 하는데, 미래금융이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에요. 그렇겠죠. 사돈이 될 집안이니까. 그 전부터도 두 집안은 깊은 인연이 있어 왔고. 저희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넣으셔서 도울 게 없냐고 물으셨다 보니, 조금은 편하게 부탁을 하셨던 거 같아요. 검찰 쪽으로는 재경에서도 충분히 손을 넣어 볼 수 있겠지만, 해당 이슈에 함께 걸려 있는 만큼, 재경이 아닌 제삼자가 줄을 대어 주는 게 좋을 거 같다면서.”
잘했다.
그래, 그렇게 풀어 가야 맞는 거다.
이건 우리 재경이 중심에 서서는 절대 풀 수가 없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부경은 홍준이의 처가.
장혜란이의 형제들이다.
자칫 흉측한 집안싸움으로 프레임이 씌워질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집안싸움으로 엮이는 순간 부경은 다시 한번 빠져나갈 구멍이라는 게 생기게 된다.
“제가 오늘 우리 손 상무님과 약속이 잡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런 전화 통화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시네요. 저는 반대로 사안이 작지 않은 건이라 아버지 생각과 반대되는 결정을 제가 하게 될 거 같아, 미리 전화를 드려서 손 상무님과 약속을 잡았다는 걸 말씀드린 건데 말이죠.”
“그렇군요.”
“저희 아버지가 검찰 쪽으로 손을 쓰는 순간, 우리 태영은 재경과 아주 큰 걸 나누게 되는 거죠. 그 나눔이 우리 태영이 재경에게 보내는 일방적인 호의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계속 그렇게 물어봤던 거예요. 확인을 받고 싶었으니까.”
“…….”
“그런데 주책이었네. 손 상무님 말대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해 보이셔서 지금 재경의 상황을 깜빡했어요. 내 실수. 미안해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결국 구현애의 입에서 먼저 우리 재경식품 쪽으로 태영마트가 해 줄 수 있는 지원의 종류가 흘러나왔다.
“프로모션이 꽤 길게 미뤄지고 있었죠?”
“어쩔 수 없었죠.”
“재경식품 특별전을 따로 기획해 볼게요.”
“특별전이요? 마트에서도 그런 걸 합니까?”
“못 할 이유는 없죠? 여론 방향만 확실하게 기울어진다면, 우리 태영마트 쪽으로도 반사 이익이 크게 잡힐 거예요. 그리고 편의점 쪽에서도 집중 프로모션을 기획해 보도록 할게요. 편의점에서는 묶음 판매 아이템들이 가장 큰 효과를 보여 주니까, 자체 도시락하고 같이 묶을 수 있는 음료나 유제품 위주, 재경식품 쪽 컵라면 위주로 집중 프로모션을 기획해 보라고 할게요.”
“그럼 저는 행사 제품 위주로 태영마트, 편의점 쪽과 단가 조절을 최대한 유연하게 진행하게끔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태영과 손을 잡고 부경마트만 공격을 하면 된다.
우리가 태영마트와 손을 잡는 순간 장선동이의 부경화학은 유통판의 절반을 잃게 될 것이다.
부경마트 공략만 제대로 해내면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여론은 우리 재경과 미래금융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봉학이가 검찰 쪽으로 손을 대어 주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 왔다고 하니, 우리 재경과 태영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어설프게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언론만 적절하게 잘 이용을 하면 태산이가 장선길이의 목줄을 쥐어 짜내는 것도, 내가 식품을 등에 업고 장선열이의 부경마트를 압박해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장혜란이.
지금부터 잘 지켜보거라.
너와 네 친정 식구들이 찢어발겨 놓은 나의 재경.
그 재경에서 네 두 아들이 어떻게 네 형제들, 그리고 부경을 철저하게 찢어발겨 놓을지.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뜨겁구나.
* * *
운전기사입니다
스너프 본사 사장실.
JK 드 누락의 손정엽 대표가 마치 감각적인 갤러리를 방문하듯 사장실 안의 인테리어에 감탄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 밖에서 봤을 때랑은 완전 딴 세상이네. 이거 재경이 인수하기 전부터 사장실 인테리어가 이렇게 고급졌던 거야, 아님 인수 후에 네가 이렇게 바꾼 거야? 어떻게 된 게 우리 호텔 스위트룸보다 회사 사장실 컨디션이 더 좋아?”
소파 상석에 앉아 있던 정태는 분위기 파악이 전혀 안 되어 보이는 덜떨어진 사촌 형의 행실에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코몬드! 야, 이거 진품이야?”
“꼴에 보는 눈은 있나 보네. 단번에 코몬드도 다 알아보고. 손대지 마라. 거기 그 부분은 청소하는 사람들한테도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진짜라고? 이거 진짜 코몬드 작품이라고? 근데 이걸 이렇게 진열해 놓는다고? 미쳤구나, 네가.”
그 후로도 정엽이는 한참 동안 정태의 사무실 안을 구경하듯 돌아다녔다.
그러다 정태의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히기 일보 직전에 눈치껏 자리에 앉았다.
“꼭 직접 만나서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게 도대체 뭔데?”
“확실히 달라, 한국은. 인터넷만 빠른 게 아냐.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사람들 성격까지 급한지….”
“노닥거릴 시간 없다. 정신은 더 없고. 할 말만 해, 할 말만. 이렇게 여유를 부릴 형편이 아니지 않나?”
“그렇게 뭐든 다 빠른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왜 이렇게 진실만은 빨리 안 밝혀지는 거야? 아닌가? 이 나라에선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실을 믿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라고 봐야 하나?”
정태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정엽이는 재빨리 표정을 가볍게 풀어 놓고 너스레를 떨었다.
“4월 장사까지 이렇게 망쳐 버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나 이제 진짜 큰일 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5년 뒤에 너한테 호텔 경영권 넘기기도 전에 호텔 부도부터 내겠다.”
“어떤 방향이든 난 크게 상관없어. 부도 낼 거 같으면 미리 말해. 그래야 내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주워 담기가 수월하지.”
“뭐라도 마시면서 하자. 짧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야.”
정태는 커피 두 잔을 넣어 달라고 내선 전화를 넣었고, 커피가 들어오기 전까지 정엽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정태의 사무실 인테리어를 감상했다.
커피가 들어왔고, 정엽이가 모든 결심을 끝낸 듯 웃음기를 지워 버린 뒤 입을 열었다.
“호텔 경영권 다시 가져오기 전에 부산에서 정훈이를 만났던 적이 있어.”
“다 아는 이야기야. 본론만 말해.”
“그때 정훈이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정신 차리라고. 여기 한국이라고.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날고 긴다는 스펙을 장착한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부경 그룹이고, 그 안에서도 뛰어난 사람들끼리 자기 자리 지켜 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박이 터지게 싸우고 있는 곳이 부경이라고.”
그 말에 정태는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 우리 재경이 부경한테 밀릴 거 같아?”
“최소한 절실함만큼은 밀리고 있는 중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야?”
“오너 사이드, 경영, 운영진의 절실함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회사가 사라지면 자신의 삶까지 위협받게 될 직원들의 절실함은 아직 부경 쪽으로 크게 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말을 똑바로 해.”
“원래 전쟁도 말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략을 하는 쪽이 수성을 하는 쪽 인원의 최소 4배, 5배는 되는 병력이 필요한 거야. 그게 전쟁이고, 정복인 거 아냐? 모든 게 다 오픈된 맨땅에서 붙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부경이라는 큰 성을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중이잖아. 그럼 더 많은 인원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인원이 아니라면 상대보다 월등히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군대는 갔다 와서 전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넌 갔다 왔냐?”
“나 원 참… 됐다. 내가 형이랑 무슨 말을 하겠냐. 설레발치지 마. 때를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야.”
“언제까지 기다리게? 부경이 다른 이슈로 미래금융 게이트를 다 덮어 버릴 때까지?”
정엽이의 얼굴엔 장난기, 그리고 그 장난기에 감춰진 진지함이 동시에 들어가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진짜 재밌는 나라야. 이건 신기한 걸 가볍게 넘어 버렸어.”
“뭐가 그렇게 재밌고, 신기한데?”
“어떻게 연예인 한 명이 마약을 한 게 미래금융 게이트 이슈를 이렇게까지 빨리 밀어낼 수가 있어? 진짜 재밌지 않아? 타이밍도 정말 예술이야. 정확하게 태산이 할아버지가 기자 회견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미리 다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이 마약 혐의에 관한 뉴스가 떴어.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런데 뉴스 분량이 지나쳐. 똑같은 사회 이슈라도, 객관적으로 연예인 마약 혐의가 미래금융 게이트를 덮을 수준은 아니잖아.”
“순진한 거야, 아님 순진한 척을 하는 거야?”
“둘 다 아니니까 널 찾아온 거 아니겠어? 네가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재경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뭐?”
“언제는 오기만 해 보라며? 다 죽여 버릴 거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뻥카였어?”
“뭐, 뭐? 뻥카?”
“왜 이렇게 점잔을 떨고 있냐고. 내가 봤을 땐 미래금융 말고는 지금 현재 끝까지 부경을 물어뜯고 있는 건 정훈이 하나뿐인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
“부경마트에 들어간 재경식품 물건들 완전히 다 빠진 거 뉴스 봐서 알고 있지? 정훈이는 지금 그런 방법으로라도 계속 부경과 관련된 이슈를 끌고 가고 있잖아.”
그 부분에 있어선 정태 역시 시원한 방법을 못 찾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정엽이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기껏 물에 빠진 사람 살려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소릴 넘어 아예 훈계질까지 하시겠다?”
“설마 내가 하는 게 훈계겠냐? 나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아 등신처럼 느껴지는데.”
“스너프에서도 오늘, 내일 중으로 부경화학 쪽 생활 건강 제품들 다 내릴 거야.”
“진작에 좀 하지.”
“그러고 싶어도 우린 부경화학이랑 다이렉트로 거래를 트는 게 아니라, 따져 볼 게 많았어. 우리 스너프에 깔리는 상품들이 어디 형네 백화점처럼 기업 다이렉트인 줄 알아? 거의 대부분이 기업 쪽 제품들 중간 유통상들이야. 자영업자들이라고. 그거 다 추리고, 사정 따져 봐 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정도만 가지고 미래금융 게이트 이슈를 계속 더 끌고 가는 건 어렵지 않겠어?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져 버리면, 부경이 미래금융, 그리고 재경을 상대로 한 공격은 비즈니스라는 정당성을 얻게 돼. 그게 가능한 나라가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이잖아.”
정태는 다시 한번 정엽이를 비웃었다.
“꼭 일 못하는 직원들이 회사의 문제점은 귀신같이 짚어 내지. 회사의 문제점을 자신이 일을 못하는 무능의 핑계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데 일 잘하는 직원들은 형처럼 안 그래. 문제점을 찾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내지. 그래서 결국은 그 문제점을 회사 발전의 계기로 만들어 주거든. 형이 지금 가지고 있는 답답함? 나도 가지고 있어. 내가 더 많이 답답하지 않을까? 스너프하고 형이 운영하는 호텔 몇 개. 사업 사이즈로 비교가 돼? 마음대로 안 된다고 나 찾아와서 징징거릴 시간에, 방법을 찾아.”
하지만 정엽이 역시 정태를 보며 웃었다.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단 말이네.”
정엽이가 툭 하고 던진 뜬금없는 한마디에 정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원래 내가 따로 한국에 가지고 들어올 아이템이었으니까, 완벽한 판을 깔아 놓고 진행을 할 생각에 안 꺼낸 거라지만, 너라면 내가 주기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꺼내 놓으라고 해야 맞는 거 아냐?”
“…뭐가?”
“세이트론.”
세이트론.
이번에 미래금융 게이트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제콤 컴퍼니, 그 제콤 컴퍼니에서 유럽 전역과 일본 쪽으로 활발하게 수출을 하고 있는 구스다운 이불의 브랜드가 바로 세이트론이다.
“태산이 할아버지가 기자 회견을 하자마자 실검 순위에까지 올라갈 정도로 세이트론의 이름이 화제가 됐었잖아.”
“그게… 왜?”
“제콤 쪽으로는 내가 말을 해 놓을 테니까, 그거 스너프에서 최대한 빨리 받아라.”
“뭘 받으란 말이야?”
“당장은 병행 수입 형태로라도 받아서 스너프에 깔아 버리라고. 이슈는 내가 만들 테니까.”
“어떻게?”
“어차피 JK 드 누락의 전 객실 침구를 다 세이트론으로 교체할 계획이었어. 그리고 객실 판매량을 올릴 방안으로, JK 드 누락의 객실 이용자에 한해 세이트론 침구 세트를 50퍼센트 가격 수준으로 할인 판매를 해 주는 프로모션을 준비 중이었고. 왜 예전에 조선호텔에서도 똑같은 프로모션으로 객실 판매율을 크게 올린 적이 있었잖아. 그거 원래 한국에서만 특수한 프로모션이지 유럽 쪽에선 계절 바뀔 때마다 종종 하는 프로모션이야.”
“당장은 한국에 수입 업체가 없으니, 그걸 나더러 병행으로 받아 달라?”
“마진은 제콤 쪽에서 수출 단가를 낮춰서라도 최대한 맞춰 줄 거야. 정태야.”
아주 진지해진 눈빛으로 정엽이가 정태를 불렀다.
“지금 우리가 무조건 해내야 되는 건 미래금융 게이트가 다른 이슈에 묻히지 않도록 재경, 부경, 미래금융, 또 스너프, JK 드 누락… 관련된 키워드를 계속 노출시키는 거야.”
이번엔 비웃음이 아닌, 조금은 마음이 열린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정태가 말했다.
“다 좋은데, 그래도 가르치는 말투는 여전히 좀 거슬리네.”
그 말에 정엽이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호텔은 내가 아닌 태산이 할아버지의 생각이셨어. 내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고. 난 오히려 부경으로 넘어간 재경의 계열사 중 호텔이 아닌 물산 쪽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