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34)
“너는 도대체 말을 뭘 어떻게 전한 거야? 그냥 승현이 잠깐 보고 그렇게 가겠다니까.”
“애 엄마 입장에선 또 그런 게 아닌가 봐요. 아버지가 어디 자주나 오십니까? 오늘이 처음이잖아요.”
“이런 거 보면 네 말대로 수경이도 참 극성은 극성이야.”
그리고 얼마 뒤 홈 인터폰에서 등록 차량이 입차를 했다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원수경이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정태는 속으로 근본을 알 수 없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은근히 돌아 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K―장남 기질을 정태 역시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니까 참아야 된다.
웃어야 된다.
어떻게든 화목한 가정임을 보여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하실 거다….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던 정태는 잠시 후 현관 비밀번호 풀리는 소리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
“어머, 아버님!”
정태는 헐레벌떡 신발을 벗고 마트에서 장을 본 비닐 봉투를 든 채 안으로 들어서는 원수경의 모습에 아랫입술이 터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본능적으로 원수경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편을 상대해선 안 된다고 느꼈다.
천연덕스럽게 남편을 향해 싱긋이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 급하게 봐 온 장을 식탁 위로 올려놓고 시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많이 시장하시죠? 제가 금방 준비할게요.”
“천천히 해라, 천천히.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요리, 상차림 쪽으로는 워낙에 센스가 좋은 원수경이었기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들을 대충 본 것만으로도 금방 완벽한 상을 차려 낼 수 있었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직접 앞치마를 입은 뒤 고기를 구울 준비를 끝낸 원수경.
그녀는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식탁 쪽으로 오시라는 말을 해 놓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능숙하게 꽃등심 부위를 굽기 시작했다.
“아버님, 약주 한잔하셔야죠?”
“아니다. 다시 회사 들어가 봐야 해. 술은 됐고, 고기도 너무 많이 굽지 마.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고기를 굽겠다고 힘들게 밖에를 나갔다 와?”
원수경은 핏물이 적당히 뭉쳐 있는 고기를 가위로 싹뚝싹뚝 잘라서 시아버지 앞접시 위로 한 점을 먼저 올려놓은 뒤, 곧바로 남편의 앞접시까지 먹음직스러운 고기로 채워 놓았다.
그렇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원수경은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후 고기는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구으라는 시아버지의 말씀에 그제야 전자 스토브의 전원을 끄고 자리에 앉았다.
“수경아.”
“네, 아버님.”
손 회장은 이만하면 식사는 충분하다는 식으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정태 역시 함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제 너희들 돌아가고 나서 함씨하고 이야기를 좀 나눴다.”
함씨라는 존재에 원수경은 물론이고, 아내가 어제 본가에서 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정태는 침을 한 번 꿀꺽하고 삼켰다.
“이젠 집에 사람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으면 함씨한테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네.”
“함씨한테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지?”
평소 아버지하고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사업에 관한 내용이라면 몰라도, 일상 대화를 이렇게까지 직통으로 이끌고 가시는 분이 아니다.
“너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거냐?”
“그건….”
“네 남편이 나하고 같이 다니는 노 실장 시켜서 아침, 저녁으로 내 업무 일과를 보고하게 만든 거하고 똑같은 거다.”
손 회장의 눈은 더 이상 그간 며느리를 대할 때 보여 왔던 인자한 눈빛이 아니었다.
아들 정태를 바라볼 땐 그보다 몇 배는 더 매서운 눈을 하고 있었다.
“만약 정태 네가 노 실장 시켜서 그렇게 했다면, 그걸 또 내가 알았다면 이 애비가 어떻게 할 거 같으냐?”
* * *
혹시 남자 생겼어?
원수경의 콧가에 공포가 걸리기 시작했다.
아주 매운 향이 느껴졌다.
서둘러 자신의 의도는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니에요, 아버님. 왜 그런 오해를 하세요. 저는 어머님도 집에 안 계시고 하니까, 아버님 혼자 지내시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도록… 그, 그… 네, 어제 제가 집에 갔는데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관리가 어머님 계실 때랑 비교해서 너무 엉망인 거예요, 그래서….”
“모든 판단은 내가 하는 거다, 수경아.”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지금껏 시아버지를 상대로 이만큼 큰 벽과 두려움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평소였다면,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 주는 척이라도 해 주셔야 정상인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계셨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말을 해. 그럼 넌 그때 가서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거다.”
“앞으로는 꼭 그렇게 할게요, 아버님. 하지만 진짜 오해세요. 저는 절대 그런 의도로….”
원수경의 입에서 전날 본가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한 변명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려고 할 때였다.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들어 불판에 놓여진 고기 한 점을 집으며 손 회장이 말했다.
“요즘은 호텔에서도 이런 생고기를 파는 모양이지?”
정태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내 원수경을 곁눈질로 쳐다봤고, 이내 사색이 되어 버린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들은 호텔을 마트라고 부르고. 그렇게 말하는 놈들이 날 상대로 내가 지금 오해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만약 앉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서 있는 상태였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원수경은 온몸에 마비가 온 듯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하는 머리까지도 그대로 멈춰 버린 느낌을 받았다.
“감시라는 건 객이 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하는 거다, 수경아. 그리고 이 집에서 누군가를 감시해도 되는 건 아직은 나뿐이야. 명심해라.”
원수경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시아버지 앞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정태는 마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도대체 왜 무릎까지 꿇고 저러는 거지?
그리고 금방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소린 무슨 소리고.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정태는 원수경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는 물음도, 그게 도대체 무슨 질문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날 감시하면 안 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아버님. 그런데 오해세요, 정말 오해세요.”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네가 하는 행동은 오해가 아니라 의심을 하게 만든다. 정태.”
“…네, 아버지.”
“앞으로 너도 그렇고, 특히 수경이 얘, 본가에 올 때 미리 온다는 말 하고 오게 만들어. 내가 여기 와서 너희가 신경이 쓰이고 불편한 만큼, 나도 내 공간에 누가 불쑥불쑥 말도 없이 찾아와 네들 마음대로 헤집고 가고 나면 꽤나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다. 그게 비록 며느리라도. 자식과 며느리는 다른 거야.”
그런 다음 원수경을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널 친딸처럼 생각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만약 친딸처럼 생각을 했다면, 넌 지금 아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손 회장은 몇 걸음 옆으로 옮겨, 베이비 체어에 앉아 멀뚱멀뚱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손주를 들어 안았다.
“이놈이 엄마를 찾기는 하냐?”
“…….”
“찾을 리가 있나. 든 자리는 물론이고 난 자리까지도 전혀 표가 안 나는데. 고얀 놈.”
바닥에 꿇어앉아, 여전히 일어설 엄두를 못 내는 원수경을 한참 동안 엄한 눈으로 내려다보다, 이내 그 시선을 아들, 정태 쪽으로 옮긴 후 손 회장이 말했다.
“네들 엄마. 비록 지금은 나하고 내외를 하고 있지만, 날 참 많이 외롭게 만든 사람이고, 그래서 그에 대한 원망도 내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최소한 네들한테만큼은 진심이었던 사람이다.”
“…….”
“내가 그 부분만큼은 하기 싫어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어. 네들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한 부분에 대해선 내가 할 말이 없단 말이다. 이 긴 세월 내가 참고, 참고 또 참아 가며 네들 엄마하고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건 그 이유가 제일 컸다.”
시작된 무서운 정적.
그 정적 속에서 손 회장은 한참 동안 손주를 안아 주다가 다시 자리에 앉혔다.
“간다. 나오지 마.”
집을 나와 차에 올라탄 손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그룹 본사로 복귀를 한다는 말만 남겨 놓고 둘째 정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 안에서 보여 줬던 야차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편한 표정이라 운전기사조차도 회장님의 상태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네, 회장님.
언제부턴가 둘째 정훈이가 자신을 회장님으로 부르는 게 익숙함을 너머 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미래금융 장영석 회장의 말처럼 속에 능구렁이가 든 놈이다.
생각의 깊이, 너비를 여간해서는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불과 작년, 재작년까지만 해도 녀석이 쓰는 말투에서까지 도대체 이놈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들 지경이었다.
회사 일 관련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 시작했지, 그 전까지는 아들이라도 정태에 비해 정훈이와는 따로 시간을 가져 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손 회장이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차등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냐만, 확실히 정훈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손 회장에게 첫째 정태와 둘째 정훈이는 대함에 있어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관리보다는 재경을 지켜 내는 게 더 중요했던 손 회장.
그에게는 정신을 못 차리는 정훈이의 일탈에 신경을 쓰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 쓸 에너지가 없었다.
똑똑하고 큰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정태를 어떻게든 단단하게 키워 내는 게 더 중요할 뿐이었다.
그런 손 회장의 앞으로 깜짝하고 등장한 정훈이의 능력과 기질.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미래금융과의 단단한 연대.
그것들이 부경을 무너뜨린 지금의 재경을 있게 만들고 있었다.
“점심은 했냐?”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에 리듬이 들어 있다.
자신을 실제로 마주하건, 이렇게 통화를 하건 정훈이에겐 정태가 가지지 못한 여유가 있다.
자신을 상대할 때를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사적인 자리에선 아버지란 호칭을 쓰는 정태.
반면에 정훈이는 사적인 자리에서건 공적인 자리에서건 한결같이 회장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럼에도 각기 다른 호칭에서 전해지는 친근함의 온도 자체가 다르다.
이건 기분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정태에게선 부모 자식 간에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세대의 벽 같은 게 느껴지는데, 자신을 꼬박꼬박 회장이라 부르는 정훈이에게선 이상하리만치 그런 벽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벽을 손 회장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오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오늘 오후요? 그게 지금… 오후 일정을 만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같이 식사 중인 사람들과 그 이야기 중입니다.
“무슨 그런 얼뜨는 대답이 다 있어?”
―스위트럼이요. 우리 쪽으로 레시피를 팔아 준 사장이 지금 한국에 와 있습니다.
“그렇다면서. 알고 있다.”
―원래는 어제 따로 저녁 자리를 마련했었는데 같이 못 했고, 오늘쯤 다시 자리를 만들어 봐야 되나… 그 생각 중입니다.
“이번에 한국엔 그냥 형식상 온 거 아냐?”
―그러니 우리 쪽에서도 형식은 갖춰 줘야지요.
“그 자릴 꼭 네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야?”
―직접 해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라도 직접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우리 재경 쪽으로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준 고마운 파트넙니다. 그게 어디 회사 규모만 가지고 감히 평가를 할 수 상대입니까. 지금 저한테는 삼성 이재용이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중요한 VIP입니다.
감탄을 안 할 수가 없다.
사뭇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는 표현, 단어 선택들마저도 손 회장의 귀엔 자신이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자신도 가지지 못한 대단한 자신감과 자기 소신으로만 들리고 있었다.
과연 이런 건가.
정훈이의 이런 모습이 장태산이라는 거인으로 하여금, 미래금융이 재경 쪽으로 계속해서 일방적인 양보와 배려를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럴 것이다.
자신의 아들임에도, 정훈이의 이런 단단한 모습을 장태산 회장보다 더 늦게, 그의 선택으로 인해 알게 된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혹시 오늘 말고 내일이나 그다음 날로 자리를 만들어도 되는 거냐.”
―내일까지는 괜찮은데, 그다음 날은 출국하는 날입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로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내일로 잡아라. 그럴 수 있나?”
―얼마든지 되지요.
“그러면 너는 오후에 본사로 들어와라.”
비록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 주관 속에도 과정만큼은 객관적인 게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손 회장은 오전에 정태를 본사로 불러 현 스너프의 사업에 관한 내용을 같이 이야기하고, 곧바로 함께 정태의 집을 방문했던 것처럼 오후엔 정훈이를 상대로 똑같이 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가만 보자… 세 시까지 가도 되겠습니까?
세 시?
사실 손 회장에게는 정훈이가 3시에 오나, 4시에 오나 큰 차이는 없었다.
―그 VIP가 조금 이따가 알앤디 센터에서 재경식품이 만든 마카롱, 티라미수 맛을 관능 평가를 해 주겠다고 합니다.
“똑같이 만들어 내는 데 성공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 난 그렇게 보고받았는데?”
―아무리 흉내를 잘 내도 모창 가수가 원곡자를 뛰어넘을 수는 없지요. 우리끼리 하는 평가가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원곡자의 인정이 중요한 거지.
“모창 가수가 원곡자가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래서 스위트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든 거 아닙니까. 비록 그 시작은 삐에르 에슈메의 아류로 시작을 하지만, 아류로만 그칠 생각이 없다고. 지금 당장은 우리 노래가 없으니까 모창을 하는 거지,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 노래를 만들어야죠.
“그래 봤자 사람들 인식에 스위트럼은 삐에르 에슈메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브랜드야. 마케팅으로 승부를 봐야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걸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고요. 돈만 있으면 누구든 다 할 수 있는 마케팅. 그걸로 승부를 볼 거면 마진 5퍼센트 떼기 식품 사업을 할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렇게 자신하냐?”
―제가 가지고 있는 자신감은 지금부터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다른 우리 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선 삐에르 에슈메 측의 감탄과 놀람, 그리고 인정이 필요하지요. 우리 직원들이 그걸 느끼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