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66)
손 회장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몸도 불편하신 장태산 회장이 정훈이에게 너무 비싼 개인 과외를 해 주고 계시다고….
정훈이는 손 회장에게 기대를 아예 놓을 수는 없었지만, 거의 포기에 가까운 아들이었다.
회사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앉혀 놓으면, 자리 구실이나 할까 싶었다.
그게 이유였다.
장남 정태에게만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정훈이에게 이런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일찍 눈치를 챘더라면 아마 손 회장이 직접 정훈이를 가르쳤겠지.
아니다.
아예 안 가르쳐 본 게 아니다.
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많은 실망과 한계를 느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정훈이를 이렇게까지 바꿔 놓을 수가 있으셨던 거지?
그런 머리 아픈 호기심도 잠시, 손 회장은 씁쓸한 미소로 한쪽 입꼬리를 올려놓고 조 전무에게 말했다.
“내가 해야 하는 건데, 그걸 그 어르신이 신경을 많이 써 주시네. 그건 그렇고, 외식사업부 분리는 구체적인 일자가 나온 게 있다던가?”
* * *
도성훈 과장이 내 방을 찾아왔다.
본사의 본관 임원층 방문은 재경식품에 입사 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QC팀 자체가 본사 소속이긴 해도 본관 생활을 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앉으세요. 커피 한잔하실래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차라도 한 잔 내려 줄까요? 나도 조금 전에 커피를 마셔서 차를 한잔 마실까 하던 참이었거든요.”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본부장님만 드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사람을 보자고 불렀는데, 마실 거 준비도 안 해 주는 법이 어디에 있어요. 안 그래요?”
최대한 분위기를 가볍게 가져가 보고 싶었다.
“제가 4시에 관능검사를 해 줘야 하는 제품이 있습니다.”
“그걸 QC팀 과장이 왜 신경을 쓰는 겁니까?”
“신제품도 아니고, 기존 제품의 경우 관능검사에 외부 테스트 인원까지 섭외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연구소 안에서 서로 돕고 돕는 거죠.”
“근데 관능검사를 하는 거하고, 차 한잔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는 관능검사 2시간 전에는 양치도 안 합니다. 사정상 못 해 주면 못 해 주는 거지, 해 주겠다고 스케줄까지 같이 잡았으면 제대로 해 주는 게 부탁하는 사람에 대한 매너이니까요.”
입 안을 깨끗하게 유지한다는 말인데, 참 이해가 안 되는 소리지만 억지로라도 그 정성을 이해해 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곰이라는 소리 자주 듣죠?”
내 말에 도성훈 과장의 광대가 살짝 도드라졌다.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이겠지만, 곰이라는 소리보다는 미련하다는 소릴 종종 듣는 편이죠.”
“그런 소릴 들어도 전혀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뿌듯해할 거 같은데?”
결국 웃음을 보이며 도 과장이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게 보여요. 에프엠. 본인 스스로에게 상당히 엄격한 사람일 거 같아요. QC 업무를 하기엔 제격일 테고. 하는 일이 적성에는 잘 맞아요?”
“아직까지 업무를 보는데 큰 부담스러움을 느낀 적이 없는 걸 보면, 적성에도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할 줄 아는 사람이 어째서 회사가 하지 말라고 하는 거, 거기에 본인 스스로 동의까지 한 내용을 어길 생각을 하셨어요?”
“…….”
“제가 왜 보자고 했는지 알고 있죠?”
“…네.”
언제 내게 웃음을 들켰냐는 듯 도 과장은 흔들리는 초점으로 내 눈을 피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인사부장님하고는 다시 따로 면담을 해 보셨어요? 인사부장님 스타일상 따로 다시 자리를 만들었을 거 같은데….”
“…네, 어제 따로 부르셔서 잠시 만났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본부장님께서 겸업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사장님께 제안했고, 그게 그룹 본사 쪽으로도 이야기가 올라간 거 같다면서 별일 없을 거라고….”
이해를 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도 과장의 입장이 아닌, 현 대한민국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30대 중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들을 이해해 보기 위해선 내 몸에 굳어 버린 화법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인사부장의 존재를 거론하며, 그가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을 때 난 과연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약속을 어겨 미안합니다, 신뢰를 깨뜨려 죄송합니다, 혹은 그런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기대했던 건 아닐까?
그랬던 것 같다.
내가 편 사장을 앞세워 임원 회의를 열게 하고 그 자리에서 겸업 금지 조항을 앞으로는 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고, 그 제안이 본사에 올라갔다는 내용을 아느냐고 물었던 게 아니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도 과장은 인사부장이 자신에게 별일이 없을 거라며 안심을 시켜 준 내용까지 있는 그대로 다 내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이 시대의 30대 직장인들에 대한 이해가 생기는 거 같았다.
“인사부장님 말처럼 별일은 없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그죠?”
“…….”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도 과장한테 아무런 직접적인 패널티는 안 갈 거 아니에요. 그럼 된 거죠.”
“회사에는 죄송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송하게 생각을 하는 것과, 자신이 한 행동, 그 행동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다른 걸 거다.
그럼에도 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도 과장의 모습에서 최소한 자신이 회사를 상대로 했던 떳떳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했다.
“저는 이렇게라도 도 과장에게 불편한 소리를 해야만 되는 사람이에요. 나도 싫지. 그런데 어쩌겠어요? 도 과장은 QC팀에서 우리 회사 제품에 대한 품질 관리, 제품 분석, 인증을 따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나는 유능하고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각자가 회사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다 다른 거니까.”
“…….”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거라도, 사칙은 사칙이죠. 우린 그 사칙을 또 다른 표현으로 약속이라고 부릅니다. 약속은 신뢰가 바탕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약속이 어느 한쪽에 의해 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신뢰가 깨어지는 겁니다.”
“…….”
“제가 왜 겸업 금지 조항을 없애자고 한지 아세요? 상처를 받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서 없애자고 한 거예요. 나는 하늘이 반쪽이 나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 쏟고 있는데, 틀림없이 회사엔 도 과장 말고도 더 많은 사람이 회사와 한 약속을 어기고 있을 거거든요.”
도 과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 과장은 한 사람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도 과장처럼 회사와 한 약속을 쉽게 생각하고, 혹은 눈치를 보며 에이, 뭐 어때, 다들 몰래몰래 하고 있는데… 하며 어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우리 직원들이 회사에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 만들고 싶어서, 그 미안한 감정에, 사람이란 존재에 상처 받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서 없애자고 한 거예요. 시대착오적인 조항이란 느낌도 강했고.”
도 과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현재 고비드 아이스크림 해썹(HACCP―인증 마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그게 생각보다 다른 아이템들에 비해 잘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이건 제가 직접 보고를 할 게 아니라 팀장님이 하셔야 하는 내용인데….”
“걱정 마세요. 팀장님한테도 따로 물어볼 테니까. 고비드 해썹 내용 말고는 내가 도 과장님하고 업무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가 없잖아요.”
“유지 빙과류 관련된 식약처 관련 법규가 지난달에 바뀌었습니다. 심사 단계에 들어가 있는데, 기존보다 심사 절차가 많이 까다롭고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요청한 공증 증빙 서류는 다 제출을 한 상태이고, 자체적으로도 식약처 기준의 평가를 수차례 해 봤기 때문에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난 고개만 한 번 끄덕여 보여 준 뒤 도 과장에게 말했다.
“해썹이 제때 안 나와 주면 고비드 아이스크림이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럴 땐 조직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정체 구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QC팀에서야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일주일, 보름 정도 해썹을 받아 내야 하는 일정이 늘어지는 거뿐이겠지만, 그 일주일, 보름에 맞춰서 다른 부서가 동시에 대기를 하고 있다가 곧바로 다 같이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네.”
“그만큼 QC팀, 그 안에서도 한 과를 담당하고 있는 도 과장님의 역할이 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
“겸업 금지 조항이라는 약속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도 과장님의 몸값은 고작 겸업 금지 조항이라는 약속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고 측정된 게 아니죠. 더 많은 약속이 회사와 도 과장님 사이에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약속 중 도 과장님이 잊고 있는 약속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다시 한번 회사와 어떤 약속을 하며 이 회사에 들어와 과장의 역할까지 하고 계신지를 잘 한번 되새겨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겸업 금지 조항을 삭제시켰다는 이유로, 지금부터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결과물로 증명해 내야 하는 책임이 생겨 버렸습니다. 제가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죠?”
“네.”
됐다.
그럼 된 거다.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합시다. 저도 더는 못 하겠네요. 억지로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게 내 역할이기 때문에, 이 정도 주의는 줘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소릴 길게 했네요. 도 과장님.”
“네.”
“괜찮습니까? 전세 사기. 그거 이야기 들었습니다.”
“…….”
“신혼 생활이 한순간 지옥 생활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인사부장님 통해서 듣고 과연 회사가 도 과장님한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찾아봤거든요. 그런데 아쉽게도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이 회사의 직원이 도 과장님 한 사람뿐이었다면 제 사비로라도 도움을 드렸을 건데, 그럴 수가 없는 거잖아요.”
“아닙니다, 그건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셔도 제가 받을 수 없는 내용인 거죠. 저만의 제 인생 계획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조금은 솔직해진 모습으로 도 과장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는 성격상 그 계획대로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까지 함께 움직여져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그 계획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일그러졌던 겁니다.”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처음 느껴 보는 불안이었습니다. 그런 선택을 했던 저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분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지난 주말에 제가 대리운전을 했던 걸 본부장님께서 보셨다는 이야기를 인사부장님을 통해 듣는데, 식품 관련 학과에 진학을 했던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지난 15년간 죽자 살자 앞만 보고 살아온 제 지난날들이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봤던 건 아닙니다. 아무튼 계속하세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내가 잠시 뭐에 씌었구나. 내가 도박을 했구나. 당장 굶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도 아닌데, 본전 생각에만 눈이 멀어 아내가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걸 했고, 결국은 그거 때문에 다 잃게 생겼구나….”
“…….”
“아내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둘이서 같이 벌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선택 때문에 제 계획은 물론이고 아내와 함께 세운 계획까지 모두 엉켜 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제가 직접 만회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거 같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죄송하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직원이 회사 일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적인 일 때문에 지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이럴 때 회사라도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럴 때 도 과장한테 회사까지 지옥이면 안 되는 거니까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제가 걱정했던 것만큼 상황이 최악은 아닌 거 같아서.”
“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럼 됐습니다. 내려가셔서 관능검사 스케줄 잡혀 있는 거 하러 가세요.”
“네.”
* * *
바로 그때부터였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재경 그룹 본사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가 재경식품 내부에서, 그것도 직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게.
겸업 금지 조항이 사라지고, 재경식품 인사부에선 곧바로 전 직원을 상대로 새로운 고용 계약서에 사인을 받았다.
과연 운영 본부장, 손정훈은 겸업 금지 조항이라는 그 한 문단을 삭제시킴으로 인해 재경식품의 분위기가 단숨에 바뀔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회사의, 회사에 의한, 회사를 위한 조항이었던 겸업 금지 조항.
그런데 신기하게도 직원들에게는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그 겸업 금지 조항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재경식품 직원들의 근무 태도에는 더 날이 바싹 서기 시작했다.
조직의 근무 환경, 대우가 직원들에게 유리해지면 유리해질수록 그 조직을 이탈하고 싶어 하던 직원들의 용기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었다.
자의에 의한 이탈이 아닌 조직, 타의에 의한 이탈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은 재경식품 직원들에게 회사가 강요를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경쟁이라는 걸 할 수밖에 없도록 부추기고 있었다.
그랬다.
손정훈은 이미 이런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걸 미리 다 알고 있었다.
재경식품, 재경이라는 이름이 30년 세월 만에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는 무게감이 직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를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겨울이 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경식품의 겨울은 지난여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 *
268화 살인이라도 돈만 맞춰 준다면
“육천삼백이십팔 번. 면담.”
철창 사이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교도관이 영혼 없는 목소리로 수감자 한 명을 호명했다.
다섯 평이나 될까.
좁은 그 안으로 일곱 명의 죄수가 각자의 공간을 확보해 놓고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있던 한 남자.
그는 자신의 수감 번호와 함께 면담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교도관의 인내심은 굉장히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장민규.
전 부경통신의 부사장.
장민규는 낡아서 나무가 다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관물대 안으로 손을 넣었다.
관물대 안으로 들어갔던 장민규의 손안으로는 비닐이 벗겨지지도 않은 새 티머니 카드들이 노란 고무 밴드에 단단하게 묶여 있었는데, 얼핏 봐도 최소 서른 장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장민규와 함께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다른 죄수들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장민규의 호사스러운 징역살이를 가능케 해 주는 티머니 카드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방을 나서기 위해 장민규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다른 죄수들은 저마다 다리를 안으로 당겨 앉거나 옆으로 엉덩이를 옮겨 주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티머니 카드를 손에 들고 있음에도, 교도관은 그 어떤 제지도 없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오늘은 또 무슨 맛 나는 걸 혼자 먹고 올까?”
교도소보다는 소년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앳되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혼잣말을 하듯, 그곳 방장의 다리를 다시 주무르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곳 방장인 오지만은 손날로 장난을 치듯 방 막내의 정수리를 때려 놓고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리는 고만하믄 됐으니까 여기 어깻죽지 좀 주물라 봐라.”
오지만은 한국과 중국 옌변을 오가며 인력 보도 장사를 크게 하던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조직 폭력배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고 하는 중국 인력 보도 장사.
그 세계에서도 오지만은 꽤 큰 거물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오지만이었지만,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장민규에게만은 최소한의 예의와 대접을 해 주며 방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돈.
그게 바로 세상에 무서울 것 없고, 내일까지 없는 오지만으로 하여금 장민규 앞에서만큼은 매너 있는 사업가인 척을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오늘도 올 때 그때처럼 뭐 좀 따로 챙겨서 오겠죠?”
“뭐 맡기 놨나? 갖다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얻어먹는 기고, 빈손으로 오면 고마 그런갑다… 하면 되는 기지, 쥐뿔 맡기 놓은 것도 없고 해 주는 것도 없으믄서 뭘 그렇게 바라는 기 많노, 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