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70)
그런데 먼저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 놓고 혼자서 내리게끔 해 봤는데,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비틀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
“이야… 너 오늘 어른들한테 좀 혼나겠는데?”
“내가 어른인데?”
“내가 진짜 널 어떻게 해야 되냐? 아, 쫌 정신 좀 차려 봐. 못 일어서겠어? 다리에 힘 좀 넣어 봐.”
“일어설 수 있어. 자, 봐… 안 되잖아.”
“우와, 미치겠네, 진짜. 일단 너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꼼짝 마,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다시 다리를 차 안으로 넣어 줘 놓고 조수석 문을 닫았다.
그리고 대문 앞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집에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
집안일해 주는 사람들 말고, 하늘이 가족들.
태산이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고, 영석이나 그 처가 집에 있을 줄 알았지.
“접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철컥하고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를 확인한 뒤, 그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안으로 최대한 열어 놓고 차에서 하늘이를 꺼내 업었다.
“오올… 비실인 줄 알았는데, 힘 쫌 쓰네?”
“너 이 시키… 술 깼지?”
“안 깼는데?”
“걸을 수 있지?”
“못 걷는데?”
“와, 너 진짜… 좋다. 일단 들어가자. 내가 네 할아버지, 엄마, 아빠한테 싹 다 일러 줄 거야.”
“아이고 무서워라.”
그런데 집에 사람이 없는 거였다.
집안일을 해 주는 사람들 몇 명 말고는 집안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집안일을 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하늘이를 들쳐 업고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며 얼른 하늘이의 가방과 옷가지를 건네받았는데, 그런 한 아줌마한테 집안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다들 오늘 저녁 먹고 온댔지롱.”
내 등에 업혀서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거리며 하늘이가 말했다.
거실 소파에 하늘이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하늘이가 어차피 업고 있는데 자기 방까지만 좀 더 힘을 써 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마침 옆에서 하늘이의 짐을 대신 받아 준 아줌마도 그게 더 좋을 거 같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이 집 정원이 좀 넓냐고.
대문부터 시작해서 정원을 가로질러 집 안까지 온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다시 또 계단을 오르라고?
그걸 또 내가 하고 있네.
스물세 계단.
내가 이 집 실내 계단 수를 세어 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리고 나는 계단을 다 올라갈 때까지 내 뒤로 집안일을 해 주는 아줌마가 같이 따라 올라오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하늘이 가방하고 외투를 그 아줌마가 받아서 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계단을 다 올라서 얼른 하늘이 방문을 좀 열어 보라고 할 요량으로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네?
계단 빈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거실이 텅 비어 있었다.
다른 할 일을 하러 간 모양이다.
사람을 이렇게 업고 있는데, 업는 건 내가 하더라도 같이 따라와서 문이라도 열어 줘야 할 거 아닌가.
진짜 하는 짓들 하고는….
결국 한 손으로 하늘이가 안 떨어지게 받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대 위로 하늘이를 떨어뜨리려고 했는데….
“…….”
하늘이 이놈이 내 목에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게 아닌가.
“아, 뭐 하는데? 놔.”
“싫은데?”
“너, 이 씨… 진짜 좀 놔. 힘들다.”
“싫은데, 싫은데, 안 놓을 건데?”
“분명히 놓으라고 했다?”
“난 싫다고 했다?”
별수 있나.
같이 뒤로 눕는 수밖에.
깔리는 놈만 아픈 거지.
난 하늘이를 업은 채,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졌다.
“아야!”
“그러게 놓으랄 때 놓지, 뭐 한다고 버티냐? 버티길. 이러니 내가 너한테 곰이라고 하는 거야.”
“나쁜 놈. 어떻게 한 번을 안 져 주냐?”
“나쁜 놈이 아니라, 아픈 놈이다. 허리 다 나가겠다, 너 때문에.”
대충 눕혔으니까 일어나야겠다고 할 때였는데, 하늘이 이놈이 여전히 내 목에 두른 팔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다.
“아, 진짜 뭐 하냐? 힘들다, 좀 놔라.”
“으흐흐흐… 싫은데.”
“와, 너 진짜 주사 장난 아니다.”
“주사 아닌데, 주사 아닌데.”
“그래, 알았다. 주사 아니다. 주사 아니니까 일단 좀 놓자.”
“싫은데, 싫은데. 으흐흐흐.”
딱 그런 기분이었다.
하는 짓은 어이가 없는데, 요상한 웃음 소리 때문에 기가 막혀서 함께 웃음이 나와 버린 상황.
그 상황 때문에 힘이 빠지는 기분.
어이가 없어서 하늘이를 깔고 뒤로 누워 있는 상태에서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그 상태로 잠시 꼼짝도 못 한 채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러다 이젠 진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 같이 딸려 올라올 만큼, 하늘이는 내 목에 두른 팔에 힘을 단단히 넣고 있었다.
진짜 이런 주사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해 봤다.
하늘이가 흘리고 있는 요상한 웃음소리가 멈춘 뒤, 힘으로 내 목을 감싸고 있는 하늘이의 팔을 풀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팔을 끝까지 풀지 않겠다는 듯, 하늘이는 더 힘을 주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손가락을 깨물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해 봤다.
그러던 차였는데….
볼 뒤쪽, 귀 언저리로 하늘이 녀석의 감촉이 느껴졌다.
흡사 자신의 볼을 붙이고 있는 듯한 느낌.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 봤는데, 생글거리며 웃는 녀석의 눈이 바로 눈앞에 붙어 있었다.
웃는다?
설마 이거… 일부러 장난을 친 건가?
“뭐 하냐?”
“뭐가?”
“안 놓냐?”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이렇게 나랑 같이 누워 있는데, 내가 끌어안고 있는데, 볼까지 비벼 봤는데…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냐?”
난 말없이 하늘이를 빤히 쳐다봤다.
“좀 놔라, 힘들다.”
“왜?”
“왜? 왜는 뭐가 왜야?”
“내가 이걸 왜 놔?”
“와, 너는 진짜 앞으로 술 마시지 마라.”
“싫은데? 계속 마실 건데?”
“그래, 네 마음대로 하고, 일단 이건 좀 놓자.”
“싫은데?”
“이거 뭐야, 진짜,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아니?”
“그럼 놔. 불편….”
불편하다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이가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붙여 버리네.
그리고 다시 내게 물었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입술까지 맞췄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 * *
272화 아까부터 계속 따라오는 거 같아서요
내 목을 감싸고 있던 하늘이의 손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풀려 있는 상태였다.
그 순간 잠깐이었지만 당황을 했던 건 하늘이가 내게 입술을 맞춰서가 아니었다.
그것도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늘이의 입술이 아닌, 하늘이의 감정이 내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란 말은 내가 한 거였고, 그에 기대를 하듯 날 쳐다보며 “뭐가?”라고 물은 건 하늘이었다.
“대낮부터 술을 떡이 될 때까지 마신 이유.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안 좋을 줄 알았는데, 알아서 마음을 잘 정리하고 있네.”
“또 이렇게 빠져나가는 거야?”
“내가 왜 빠져나가? 빠져나갈 이유가 나한테 있나? 우리 관계, 내가 붙잡고 있는 거야, 네가 아니라.”
“그럼 대답을 해.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어? 문 다 열어 놓고, 코로 나오는 숨에서까지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 여자랑 입술을 맞췄는데.”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낮잠치고는 꽤 많이 잤어. 샤워라도 한번 해라. 나는 밑에 내려가서 꿀물 타서 올려 주라고 할 테니까.”
“…갈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할아버지 얼굴은 보고 가야지. 다들 저녁은 먹고 오는 거야?”
“아마도.”
“씻어. 술 좀 깨. 나는 할아버지한테 전화나 한번 해 볼 테니까.”
그렇게 말해 놓고 방을 나서려고 몸을 돌렸는데, 내 뒤통수에 대고 하늘이가 말했다.
“나는 오늘부터 제대로 시작해 보려고.”
다시 몸을 돌려 하늘이를 쳐다봤다.
“그동안은 나도 내 감정에 긴가민가한 게 많았어. 그리고 그런 게 없었더라도 오빠 사정, 오빠네 사정을 어쩔 수 없이 봐줄 수밖에 없었고.”
“……?”
“이 나이 먹고 나도 애절, 간절, 구구절절… 그런 연애는 별로야. 하지만 감정까지 비즈니스이고 싶지는 않아. 그럴 거면 내가 오빠랑 결혼을 왜 해? 그런 거 안 해도 이미 우리 미래금융과 재경은 떨어지기 힘든 관계가 됐는데.”
하늘이도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화장대가 있는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저럴 줄 알았다.
걸을 수 있으면서….
화장대에서 고무밴드 같은 걸 하나 챙기더니, 머리카락을 모두 뒤로 쓸어 넘겨 단단하게 묶는 하늘이었다.
“내가 오빠를 좋아하네, 그것도 꽤 많이. 이쯤 되면 내가 다 먼저 한 거지? 키스, 고백. 근데 자존심이 안 상해. 그냥 재밌어. 내 감정, 그리고 오빠 반응. 내가 안 하면 안 했지, 한 번 하면 제대로 하는 사람이거든? 제대로 해 봐야겠어. 그래 보고 싶어졌어. 아직 저녁 전이지? 먹고 가라.”
여전히 취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해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내가 있는 곳을 지나 방문 앞까지 걸어간 하늘이는 실내 계단 난관에 몸을 기댄 채, 아래층을 향해 말했다.
“아주머니!”
“네, 아가씨.”
“저희가 저녁을 아직 못 먹었어요. 나는 속이 조금 부대끼고. 콩나물국 같은 거 지금 준비할 수 있어요?”
“오징어 넣고 시원하게 끓여 볼게요.”
“나 금방 샤워만 하고 내려갈게요. 부탁 좀 해요.”
“네에!”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하늘이가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