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81)
벌써 10분.
내릴 사람들이었음 진작에 내렸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재현 과장이 차를 세워 놓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은 지 10분이 지났는데, 검은색 스타렉스 승합 차량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정재현 과장의 양쪽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며 몸을 굳게 만들고 있었지만, 정재현 과장은 더 이상 자신이 가진 예민함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보다 먼저 주차장에 도착을 해 있었던 차량이다.
손정훈 상무의 이동 경로를 먼저 알고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리는 없다.
정작 정재현 과장마저도 퇴근 직전에 JK 드 누락에서 저녁 약속이 잡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 JK 드 누락이 강남점인지, 소공동점인지는 출발 직전 손정훈 상무를 통해 다시 확인을 해서야 확실시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예민함과 지금 느끼고 있는 불길함만 가지고 섣불리 퇴근을 한 강인성 차장에게 연락을 넣는다면, 그래서 다시 또 아무 일도 아닌 해프닝으로 끝나 버린다면 민폐가 될 수밖에 없다.
실없는 사람, 예민한 사람이라는 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예민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그래서 받게 될 비난만큼은 솔직히 두려웠던 정재현 과장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정재현 과장은 일전의 파파라치 미행 건 이후로 혹시 모를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호신용 전기 충격기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걸 차량 조수석 수납공간에 넣어 놓고 다녔는데, 그걸 꺼내 충전 상태를 확인하고 바지 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었다.
그래, 아닐 거다.
전기 충격기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바지 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으면서도 정재현 과장은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여긴 호텔 지하 주차장이다.
연말이기도 하고.
얼마나 많은 행사가 있겠나.
어느 행사에 불려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안 맞아 대기를 하고 있다거나, 혹은 일행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을 돌려 보니 조금은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정재현 과장은 장선길 회장의 상습적인 구타와 욕설을 언론에 고발할 결심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극심한 공황 장애를 얻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그걸 재경식품 사람들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그리고 자신의 이력에 지금의 재경식품보다 더 나은 직장은 구할 수가 없었기에.
크게 한 번 공황 발작이 터진 후, 그 후론 주기적으로 왼쪽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전해졌고, 잠자리에 들 때면 괜히 숨이 가빠지는 호흡 곤란 증상이 일어나거나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미리 크게 부풀려 걱정을 하는 등, 자신의 신변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안고 있었다.
에어컨을 켜 본다.
추운 바깥 날씨.
차라리 차창을 살짝 내리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데, 혹여나 앞에 세워진 스타렉스 차량이 눈치를 챌까 하는 걱정에 창문을 열기보다는 에어컨을 켜서 조금이라도 시원한 바람을 피부에 닿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1시간이 더 지났을 때부터 정재현 과장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극심한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 저 차 안에 최소한 세 명 이상의 사람이 타고 있는 건 확실한데, 지나칠 정도로, 의도적이라고밖에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보통 차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도 혼자가 아닌 몇 명이서 함께 기다리고 있다면 최소한 실내등 정도는 켜 놓고 기다리지 않나?
일반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아닌 호텔 주차장.
그렇게까지 환한 공간이 아니다.
심지어 스마트폰 불빛조차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저 고요할 뿐이다.
마치 사냥감이 다가오길 숨어서 기다리는 맹수처럼.
그리고 다시 30분이 더 지나 8시가 가까워지고 있을 때, 정재현 과장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느낀 예민함이 맞았기 때문이다.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현관으로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재현 과장의 폰으로 진동음이 전해졌다.
손정훈 상무의 번호가 뜨고 있다.
눈으로는 저 멀리, 엘리베이터 현관 앞에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손정훈 상무의 모습을 보면서 전화를 받았다.
―자리 다 끝났어요. 지금 주차장 엘리베이터 입구 앞인데, 이쪽으로 와 주면 되겠네.
“네, 바로 가겠습니다.”
정재현 과장이 차에 시동을 거려고 할 때였다.
바로 앞에 세워져 있던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의 후미등에 불이 들어왔다.
시동을 걸었다는 소리.
분명 시동은 먼저 걸었는데,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은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바지 주머니 속으로 챙겨 놓은 전기 충격기를 손으로 더듬어 보며 정재현 과장은 차를 몰아 주차장 엘리베이터 현관으로 향했고, 여전히 모든 감각은 시동만 걸어 놓은 채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스타렉스 차량에 집중시켜 놓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손정훈 상무가 탈 뒷자리 문을 열어 놓고 잠시 고개를 스타렉스 차량이 있는 곳으로 돌려 본다.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러는 동안 손정태 스너프 사장의 차량이 뒤로 다가와 섰다.
“그럼 아까 정엽이 형이 말한 거처럼, 크리스마스 연휴 끝나고 다들 바쁜 거 정리되면 날 잡고 가까운 근교라도 같이 한번 나가자.”
“뭘 또 그렇게까지 해? 다들 바쁜데, 그냥 데이비드하고 안나 한국으로 들어오면, 다 같이 식사 한번 하는 걸로 하면 되지.”
“이 자식 이거 또 말 바꾸는 거 봐라. 아까는 그러자며?”
“그럼 그 자리에서 싫다고 하냐? 손정엽이가 말이 좀 많냐고. 아까 그 자리에서 싫다고 했음 오늘 자리가 이렇게 빨리 끝날 수나 있었겠어?”
“너는 인마, 손정엽이가 뭐냐, 손정엽이가.”
“어랍쇼?”
“내 앞이라고 일부러 마음에도 없으면서 정엽이 형 까고 그러지마. 그럴 필요 없다, 이제.”
“아무튼 아까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왜? 바쁜 거 끝내 놓고 하루 정도 시간 내서 다 같이 바람 쐬고 오는 것도 괜찮지. 데이비드, 안나도 앞으로는 환경이 아예 바뀌는 건데 가족들이 그런 자리 만들어 주고 하면 얼마나 고마워할 거야?”
“추우니까 그러지, 날씨가 추우니까. 형수 그 임신한 상태로 바깥바람 너무 많이 쐬고 하면 안 좋아. 암튼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차 왔네. 타고 들어가.”
손정훈 상무가 손정태 스너프 사장과 인사를 끝날 때까지 정재현 과장은 스타렉스 차량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척을 하며 수차례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손정훈 상무가 차에 올랐을 때부터 속으로 갈등을 시작했다.
이대로 그냥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확인도 안 해 보고?
아무래도 저 스타렉스 차량이 손정훈 상무를 따라붙은 차량인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정재현 과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백미러를 통해 손정훈 상무의 상태를 확인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뭐 얼마 마시지도 않았어요. 저녁은 어떻게 했어요?”
“생각이 없어서요.”
“뭐야? 그럼 아까부터 저녁도 안 먹고 계속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바로 그때였다.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뒤엔 손정태 스너프 사장을 태운 차량이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의 특성상 어느덧 거리가 제법 벌어져 있었다.
그사이 스타렉스 차량은 완전히 주차 공간을 벗어나 손정태 사장이 타고 있는 차량 뒤로 붙어 있었다.
“왜 그래 미련하나. 그러지 말라니까. 정 과장이 이러면 내가 어디 마음 편하게 약속을 잡을 수나 있겠어?”
“죄송합니다.”
영혼 없는 대답.
귀로와 입으로는 손 상무와 대화를 이어 가면서도 정재현 과장의 두 눈은 쉬지 않고 백미러로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을 쫓고 있었다.
그러다 정재현 과장은 조금씩 차의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주차장 출구를 돌아 핸들을 꺾었을 땐 뒤에 앉은 손정훈 상무가 “뭐 하는 거예요. 출구 여기잖아.”라며 답답한 투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출구로 빠지지 않은 건 정재현 과장의 고의였다.
크게 돌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하중 기둥 두 개 정도만 돌면 스타렉스 차량 뒤로 붙어서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갈 수 있다.
지금 저 차량이 손정훈 상무를 따라붙은 건지, 아님 손정태 스너프 사장을 따라붙은 건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손정태 스너프 사장이 타고 있는 차량을 따라 주차장을 빠져나간다면, 그리고 저 차를 따라가지 않고 함께 하중 기둥을 따라 돈다면 모든 게 명확해지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쿵!
하중 기둥을 돌아 스타렉스 차량 뒤로 붙었을 때였다.
앞서 달리는 손정태 스너프 사장 차량과 속도를 맞춰 달리던 스타렉스 차량이 갑자기 급발진을 시도, 순식간에 지하 주차장 안으로 큰 굉음을 만들어 내며 손정태 사장 차량의 뒤 범퍼를 박아 버리는 거였다.
고의였다.
누가 봐도 고의였다.
하지만 그 고의를 눈치채고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정재현 과장뿐이었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가 시작되기도 전에 손정태 스너프 사장이 타고 있는 차량 운전석에서 기사가 뒷목을 잡으며 내렸고, 그와 동시에 스타렉스 차량에선 건장한 남자 네 명이 동시에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뒷문을 통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뭐, 뭐예요? 박은 거야?”
미처 정재현 과장이 내리지 말고 가만히 계시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뒷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뺀 손정훈 상무.
그리고 그때부터 정재현 과장의 눈앞에선 도무지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 이보세요! 무슨 운전을… 커헉!”
가장 앞선 차량의 운전기사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스타렉스 차량 운전대를 잡았던 남자 앞으로 다가가 섰을 때였다.
마주 보고 선 스타렉스 차량 운전자의 한쪽 어깨 위로 턱을 받친 채 미동도 없는 남자.
곧바로 다른 거구들은 손정태 사장이 타고 있는 차량의 문을 열려고 몇 차례 시도를 하다 들고 있던 흉기와 팔꿈치를 동시에 이용해 차창을 깨뜨리려 시도했다.
정재현 과장의 시간은 슬로 모션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장면이 환상인 듯, 꿈을 꾸고 있는 듯 어지럽기까지 했다.
지하 주차장을 울리게 만들었던 굉음이 터지고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이 정재현 과장에겐 1분, 2분, 10분에 걸쳐 장황하게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스스로 뒷좌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손정훈 상무가 “야, 이 미친 새끼들아!”라는 고함과 함께 맨손으로 앞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283화 애비 없이 컸던 건 정엽이 하나로 족하다
상황을 이해할 틈이라는 게 없었다.
주차장 출구를 바로 앞에 두고 정 과장이 평소엔 잘 하지도 않던 운전 실수를 했다.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내려와 내가 정태, 정엽이와 시간을 가지는 동안 저녁도 안 챙겨 먹고 계속 대기만 하고 있었다는 말에 살짝 짜증이 올라와 있던 중이었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여기에서 더 뭐라고 하면 잔소리가 될 거 같아 불편한 마음을 애써 삼키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고 사고가 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재현이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거였다.
운전석 목받이 부분에 얼굴이 부딪칠 정도로 앉은 상태에서 몸이 급하게 앞으로 쏠렸다.
분명 쾅! 하는 소리가 먼저 났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정 과장이 사고를 낸 건가 하고 앞을 쳐다봤는데, 앞 차와의 거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정태가 타고 있는 차에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 봤더니 정태를 의전하는 기사 친구가 목덜미를 잡으며 내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동시에 사고를 낸 승합 차량에서 건장한 남자 넷이, 그것도 동시에 차에 달린 모든 문을 열어 재끼며 일제히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냥 내린 게 아니라, 튀어나왔다.
“……!”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걷던 걸음을 멈춰 세울 정도로 놈들이 가진 기운엔 살기가 가득했는데, 난 이게 사고에 대한 수습을 자기들 쪽으로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낸 살기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정태를 의전하고 있는 친구에게 멈추라고, 얼른 뒤로 가라고 말을 하려는데 한발 늦었다.
승합차 운전석에서 내린 녀석이 아주 능숙하게 재킷 안주머니에서 시퍼런 뭔가를 꺼내고는 끌어안듯 기사 친구의 품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평소엔 쉽게 맡기도 힘든 지독한 메탄올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기분.
얼른 경찰에 신고하라고 정 과장에게 말을 했지만, 이 친구는 내 말이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털썩! 하고 기사 친구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친구의 흰 셔츠 아랫배 쪽은 이미 검붉은 피가 번져 있었고, 입술만 달달 떨어 댈 뿐 아무런 소리도 못 내는 상태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피가 곧 바닥에 고일 것 같았다.
이건 작정을 한 것이다.
단순 접촉 사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히려 고의적으로 낸 접촉 사고가 분명했다.
건장한 놈들이 흉기로 정태가 타고 있는 차 뒷문 창을 사정없이 가격하기 시작했다.
내리지 마, 기다려! 문 꼭 잠근 채 기다려!
난 속으로 정태에게 소리치며 얼른 그곳으로 뛰어갔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있는 힘껏 뛰어가, 달리던 속도만 믿고 놈들 중 한 명을 끌어안았다.
한 놈을 정태가 타고 있는 차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데 성공을 한 뒤, 얼른 소리쳤다.
“정 과장! 야, 정 과장!”
“…네, 네!”
“야, 이 씨! 정 과장! 뭐 하고 있어! 얼른 경찰에 신고해!”
“네!”
나와 함께 뒹굴었던 녀석이 씩씩거리며 일어섰고, 다른 한 놈도 합세해 시퍼런 흉기를 위협하듯 흔들어 대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오로지 녀석들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깨진 차창 사이로 쉬지 않고 흉기를 찔러 넣고 있는 어느 한 놈.
그리고 그 위협을 피하기 위해 차 안에서 발버둥 치며 저항을 하는 정태.
반대쪽 차창까지 깨지며, 그 안으로 손을 넣은 어느 한 놈이 차 문을 여는 데 성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