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83)
“여기에서 뺄 살이 어디에 있다고?”
“내가 이래서 항상 다이어트에 실패를 하는 거야, 아줌마들 때문에. 나를 너무 안심시키지 말라고요. 압박하고 긴장을 하게 만들어 달란 말이에요.”
“푸훕.”
“다른 건 됐고, 생강차 한 잔만 준비해 주세요.”
“왜? 감기 기운 있어요?”
“감기 기운까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목이 조금 따끔거리네. 쉿쉿. 또 아빠 듣고 컨디션 조절 못 한다고 잔소리할라.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쬐금, 아주 쬐금 목이 불편해. 나 올라가서 씻을 테니까 방에 올려만 주세요.”
“택배 온 거 방에 넣어 놨어요.”
“아싸!”
후다닥 실내 계단을 뛰어 올라간 하늘이는 방 한쪽 수납장 위로 올려진 택배 박스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재미를 붙인 인터넷 쇼핑.
예전에는 직접 밖으로 돌아다니며 입어 보고, 신어 보고, 만져 보고 하는 쇼핑을 더 선호했는데, 얼굴이 크게 팔리고 어딜 가나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후부터는 그런 사소한 취미마저 조심하게 됐다.
그러다 인터넷 쇼핑에 맛을 들였는데, 물건을 고르고 주문을 하는 것보다 주문을 해 놓고 깜빡 잊고 있었던 것들이 배달되어 오는 걸 열어 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엄청났다.
“오우!”
눈썹 칼로 박스를 휘감고 있는 테이핑을 잘라 놓고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하는 순간 하늘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 감탄을 흘렸다.
해외 직구로 주문한 속옷이 도착을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면 정훈이 오빠와 함께 스키장을 갈 계획이었다.
이미 말은 몇 번이나 던졌고, 구체적인 스키장 리조트의 이름까지 알려 준 상태.
워낙 비싸게 구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확인을 받듯 강제를 해야겠지만, 올겨울만큼은 반드시 정훈이 오빠와 스키를 타러 갈 작정이었다.
자신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이가 느끼기엔 정훈이 오빠 역시 자신을 상대로 연애 감정을 쌓아 가고 있는 거 같다.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한데, 아무리 봐도 그 결정적인 한 방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만 했다.
상관없다.
다가가는 만큼 상대가 뒷걸음질만 치지 않는다면, 하늘이는 정훈이를 상대로 얼마든지 먼저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울 앞으로 서서 제법 야샤시한 속옷을 몸에 대어 본 후, 눈썹 칼로 제품에 붙은 태그를 떼어 냈다.
아직 태그를 뜯지 않은 속옷 한 벌은 주문을 할 때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걸 주문했나 싶을 정도로 파격에 가까운 디자인이었다.
“어머… 어떡해. 너무 야해, 너무 좋아.”
스키장 리조트 안에서 정훈이와 데이트를 즐길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날은 이렇게, 이거랑, 이거… 이렇게 챙겨 가면 되겠네.”
평소엔 잘 하지도 않은 혼잣말이 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 때였는데….
웅… 웅… 웅….
“응?”
정엽이 오빠의 전화.
오늘 정태 오빠, 정훈이 오빠를 불러서 같이 술을 한잔한다는 말은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직 정훈이 오빠에게 전화를 안 걸고 있었다.
괜히 형제들끼리 만나서 놀고 있는데,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전화를 받기 전부터 하늘이는 이 인간들이 술 한잔 마시고 술김에 자신을 놀리거나 장난을 치겠다고 전화를 거는 중이라는 걸 눈치챘다.
“또 왜, 왜, 왜. 벌써 술안주 떨어졌어? 자기들끼리 논다고 빈말이라도 올 거냐고 묻지도 않았으면서 왜 전화질인데?”
―하늘아.
착 가라앉은 음성.
그 음성에 하늘이는 웃음이 터졌다.
정엽이 오빠는 원채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다.
실없는 소리도 입에 달고 있고.
첫 통화 음성만 듣고도 하늘이는 이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술 마시면서 자신을 상대로 뭔가 내기를 했거나 아님 장난을 칠 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왜, 정엽 오빠.”
하늘이는 정엽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투 그대로 90년대 영화에서나 쓰였을 법한 말투를 재현해 냈다.
―정훈이가…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다.
“그러게… 좀 적당히들 마시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푸히히히. 아, 뭐야 진짜. 완전 어색해. 뭔데? 내가 무슨 말 해 주면 되는 건데?”
―정훈이가 지금 많이 다쳤어.
“…….”
―지금 병원 가는 길인데, 심각해.
“에이, 아무리 장난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오빠도 이제 감 다 죽었네.”
―장난 아니야, 하늘아.
어렴풋이 폰 너머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아니다.
여기에서 넘어가면 안된다.
얼마나 장난을 전문적으로 치는 인간인데.
이깟 앰뷸런스 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폰으로 만들어 놓고 장난을 걸 만큼, 장난에 진심인 인간이 정엽이 오빠다.
―너 지금 와야 돼.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늘이는 몸이 빳빳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뭐, 어, 어쩌다가 다쳤는데?”
―그런 거까지 전화로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야.
“오빠 이거 장난이면, 나 이번엔 진짜 좀 화날 거 같은데?”
―장난 아니라니까.
“나 분명히 말했다. 이거 장난이면 이번엔 나 오빠한테 진지하게 실망할 수도 있어. 다른 장난은 몰라도, 이런 장난은 진짜 아닌 거야.”
―하늘아, 제발 좀….
“어, 어딘데? 어느 병원인데, 어떻게, 왜 다쳤는데! 뭐가 얼마나 심각한 건데, 오빠 목소리가 이래!”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만 분명 말하지 않았나.
만약 이게 장난이면 진지하게 실망을 할 수도 있다고.
평상시였다면 자신이 이 정도로 정색을 하며 말을 하면 이쯤에서 그치는 게 정상이다.
애초에 장난이 많기는 해도, 정엽이 오빠가 이런 저질 장난을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병원 주소 찍어. 지금 바로 가.”
하늘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급하게 방을 나섰다가 깜빡 차 키도 안 챙겼다는 걸 떠올리며 얼른 방으로 다시 들어가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러는 사이 집안일을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생강차를 나무 트레이에 받쳐 실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와 부딪치기까지 했다.
쨍그랑!
“어머!”
쨍그랑! 컵 깨지는 소리를 듣고도 하늘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실내 계단 쪽에서 일어난 소란에 장영석 회장이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어 그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무슨 일이야?”
장영석 회장은 자신의 물음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퇴근하고 온 복장 그대로 가방을 챙겨 들고 현관 쪽으로 달려가는 딸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쾅!
하늘이는 뛰었다.
만약 장난이라면 정엽이 오빠뿐 아니라, 같이 있을 정훈이 오빠, 정태 오빠, 손씨 집안 형제들 모두를 절대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 하늘이는 장난이길 바랐다.
차라리 장난인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급하게 차를 몰아 차고를 빠져나오며 폰을 확인했는데, 정엽이 오빠가 보내 준 병원 주소가 지도와 함께 화면에 뜨고 있다.
장난이어라.
장난이라면, 장난이라도… 이번 한 번만큼은 내가 그냥 한번 넘어가 주겠다.
그러면서 하늘이는 얼른 폰으로 정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열 번이 넘는 신호음에서 정훈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장난이어라.
제발 장난이어라.
화내지 않을 거다.
큰소리도 치지 않을 거다.
장난이라면 그냥 이번에도 또 미련하게 당했다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함께 웃어넘겨 주겠다.
스피커폰으로는 계속해서 신호음만 흘러나올 뿐 정훈이의 목소리는 깜깜무소식이었다.
결국 하늘이는 상대를 바꾸었다.
정태.
정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난이어라.
무조건 장난이어야 한다.
한 번, 두 번….
정태 오빠마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왜, 도대체 왜!”
붙잡고 있는 핸들을 강하게 때리며, 하늘이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고 혼잣말로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그리고 이번엔 다시 정엽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장난 아니지?”
―하늘아. 지금 내가 해야 할 게 많거든. 이것저것 수속을 밟아야 해.
“진짜 장난 아니야?”
―전화 이거 끊을게. 나도 지금 정신이 없어. 조금 이따가 봐.
* * *
병원 앞으로 도착한 하늘이는 더 이상 정엽이 오빠가 친 장난일 수도 있다는 희망마저 버려야 했다.
병원 입구로 검은색 세단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고, 병원과는 크게 어울리지 않은 제복 차림의 경찰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병원 입구에서 내리는 아주머니, 장혜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나마 한 가닥 품고 있던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3층 응급 수술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하늘이는 수술실 앞으로 모여 있는 손홍준 회장과 장혜란, 그리고 핏물이 그대로 배어 있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경찰들과 이야기 중인 정태 오빠의 모습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 * *
285화 자수를 하려고요
어느덧 밤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삼성동에 위치해 있는 아란테 리제빌.
주인 없는 호사 별장 시설을 홀로 즐기고 있던 장민규의 폰으로 오지만의 전화가 걸려 온 건 바로 그때쯤이었다.
―문제가 쪼메 생긴 거 같습니다.
“무슨 문제요?”
중국엔 잘 도착을 했냐, 지금 어디냐… 하는 식의 인사 따위는 필요가 없는 통화였다.
이미 발신 번호 없이 걸려 온 국제 전화만으로도 장민규는 오지만이 현재 중국에 도착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도 장민규는 한쪽 눈썹이 잠시 꿈틀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작업 중에 엄한 새끼들이 끼어들어가지고 실패를 했답니다.
“그래서 못 죽였어요?”
―…네.
“먹튀한 거네?”
―무슨 말은 또 그렇게 합니까?
“먹튀 맞잖아요. 내 입장에선 문제가 조금만 생긴 게 아닌데? 아예 호구 짓을 한 건데? 돈은 돈대로 다 받아가 놓고, 해 주겠다고 한 일을 제대로 못 했단 말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돈 벌기 참 쉽네. 미안하다 한마디로 미리 받아 간 10억을 퉁치겠다 그런 소리로 들리는 건 나만의 착각이겠죠?”
10억.
지금의 장민규에겐 그저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했다.
―상황이 크게 일그라진 거 같아요. 우리도 어지간하면 AS를 해 주지. 이 바닥도 신용이 중요하거든. 근데 지금 작업하러 들어간 아들 중에 벌써 두 놈이나 현장에서 붙잡혔어요.
“하하하, 크크크큭….”
―와 웃는교?
오지만의 음성에도 차가운 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돈만 맞춰 주면 작업 못 할 대상이 없을 거 처럼 말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네?”
손정태를 죽이지 못했다?